- 일상 (90) 썸네일형 리스트형 [일상] 오늘 하루 나의 리듬 따위 무시한 채 온 신경을 곤두세우던 프로젝트 하나를 끝내고, ‘어린이날’을 맞은 어린이처럼 온종일 마음 내키는 대로 보내고 나니 작은 아이의 모습이던 내가 보였다. 긴장하고 집중해 프로젝트만 보고 달려오느라 주변을 살피지 못하니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었다. 좋아하는 책 조금, 야식, 밀린 드라마, 낮잠과 스타벅스 엑스트라 추가 별까지 나를 위한 하루였다. 그렇게 많은 걸 바란 건 아니었다. 이 정도, 내가 바라왔던 건 딱 이 정도의 편안함이었다. 행복하다. 영화 한 편이 더해지면 딱 좋겠다. 오늘은 실수를 알아낸 것 만으로도 충분하다. [일상] 방전과 기다림 방전 어떤 것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고 나면 내 몸은 여기에 있지만 내 영혼은 사라진듯 내가 나로 존재하지 않는 것만 같다. 나는 지금 여기에 이렇게 존재하지만 내 정신은 알 수 없는 어딘가를 둥둥 떠있는 듯 멍한 상태가 지속된다. 몸의 에너지를 다시 회복하려면 방전된 시간만큼 충전될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스포츠 시계 어플에서 운동 후 회복 시간을 정해 알려주듯 몸 컨디션이 회복되기를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시간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내 몸은 회복될 시간을 마련해야 한다고 아웃풋을 보내고 있지만 업무와 고객, 주변 상황은 나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내가 네가 아니듯, 너도 나와 다르니까, 우리는 서로의 방전을 알지 못한다. 한갖 미물인 핸드폰도 방전되면 제 스스로 작동을 멈춰 충전이 필요함을 .. [일상] 관계 진심이 담긴 관계, 긍정이 오가는 인간관계는 과장되지 않고 인위적이지 않게 묻어 나오는 것이지 하고 싶은 대로 의도한 대로 만들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사회생활이라는 허물로 추구하는 건 진실된 관계인가. 필요에 의해 의도를 숨긴 채 사실과 다른 소통을 주고받으며, 원치 않으면 언제든 끊어져도 상관없다는 듯 냉정함을 드러내고 있지만 사실 우리는 숨겨둔 욕망이나 분노, 자아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스스로 잘 알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일상] 아주 조금 아주 조금 아주 조금 욕심을 내면 아주 조금 멀어진다. 욕심은 손에 닿지 않는 것을 바라는 마음 아무리 움켜쥐려 해도 잡히지 않는다. 무엇도 온전히 내 것인 건 없다. 잠시 곁에 머무를 뿐, 잠시 나란하게 움직일 뿐. 언제든 어디로 방향을 옮길지 알 수 없는 것들. 공허한 울림을 쫓아가려다 길을 잃었다. 방향을 찾지 못한 채 또 욕심내고 있다. 아주 조금 간절하게 바라봐도 세상은 내 것이 아니다. 욕심은 아주 조금 뒤에 숨어 나를 갉아먹고 있다. [일상] 커피 한 잔 커피는 어느 날은 향이 괜찮고 어느 날은 그렇지 못하다. 아무리 맛 좋은 원두여도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엔 맛도 별로다. 커피 맛이 가장 좋을 때는 아침 식사 후 여유로움을 간직하고 있을 무렵이다. 신선한 원두를 핸드밀에 넣고 드르륵 갈고 있으면 소리와 행위가 한 몸이 되어 무념무상의 순간으로 이어진다. 드륵 드르륵 삐걱삐걱 돌돌 거리는 소리와 코끝에 맴도는 고소하고 시큼한 향기를 즐긴다. 예열을 위해 물을 내리면 커피 빵이 부풀어 오른다. 봉긋하게 솟아오른 원두 가루 위에 가는 물줄기를 덧붙는다. 우유 거품 처럼 보드랍고 하얀 거품이 피어오른다. 커피 한 잔을 위해 준비한 모든 시간과 한 모금 입에 머금으면 생기는 여운, 그 순간은 짧다. 짧지만 그런 날은 아무 일이 없어도 견딜 수 있을 것만 같고.. [일상] 낡은 책 낡은 책 낡은 책이 가진 빛바램과 촌스러움이 좋다. 내가 가진 책 중 가장 ‘낡아 보이는 책’은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이다. 스무 살 중턱에 읽었던 그 책은 그 무렵 비행기 옆자리에서 만나 운명적인 사랑을 시작하는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2005, 생각의 나무)를 읽고 알랭 드 보통에 푹 빠져 고른 다음 책이 ‘불안’이었다. 풍부한 심리묘사로 불안하고 깜깜하던 나의 이십 대를 위로해주던 그 책. 하도 들고 다녀서 표지도 위아래 모서리도 너덜너덜, 심지어 커피인지 차인지 모를 음료도 쏟아 얼룩도 있다. 더럽게 낡았지만 차마 버리지 못한 건 이 책이 불안하디불안하던 이십 대의 나를 위로해주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이 되기 전, 청계천이 지금의 깨끗한 모습이 아닌, 고가도로와.. [일상] 같은 자리 같은 자리 늘 같은 자리에 앉아 책을 읽는다. 오늘도 아무도 없는 고요한 이 시간에 이곳에 앉았다. 어딘가 공사하는 소리도 들리고 비둘기, 참새 우는 소리도 들린다. 구구~꾸, 구구~꾸, 짹짹, 드르르, 다다 다닥다닥, 찌이이이잉.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소리가 화음을 이루어 내 자리에 찾아왔다. 십여 년 전부터 이 공간은 어머니의 공간이었다. 매일 아침 홀로 고요히 앉아 이 공간에서 책을 읽으셨다. 그 모습을 보기만 했는데 언제부턴가 내가 같은 자리에서 같은 행위를 하고 있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앉아 비슷한 행위를 한다. 책을 읽거나 생각을 담거나 커피를 마신다. 이 모든 것을 함께 하기도 하고, 한 두 가지만 하기도하고. 그래서 이 공간에 앉아 있으면 내가 어머니가 된 것 같은 기.. [일상] 안도 안도 요 며칠 가슴이 답답했는데 오늘 아침 기운이 좋다. 매일 아침 감사한 마음으로 시작하자고 계획했지만 실천하진 못했다. 아침에 눈 뜨면 비몽사몽 세미와 인사를 나누고 아침밥 먹기 바쁘다. 하긴 이 정도의 인생이라면 감사한 게 맞다. 매일 아침 나를 위해 시간을 쓸 수 있다는 것, 아직도 나를 돌봐주는 사람과 반려견이 있다는 것. 이만큼도 행복해야 하는 게 맞다. 화병인가 싶을 정도로 가슴 한쪽이 갑갑하고 답답하고 응어리진 무언가 덕분에 탄산수를 쟁여두고 마신다. 그나마 이걸 마시면 잠시나마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탄산수는 약한 나의 목에 좋지는 않다. 알고 있지만 자꾸 즐기게 되는 커피와 탄산수. 그래도 해결되지 않았던 답답함은 어떻게 떨쳐버릴 수 있을까 싶었는데 웬일로 오늘 아침에.. 이전 1 2 3 4 5 6 7 8 ··· 1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