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는 어느 날은 향이 괜찮고 어느 날은 그렇지 못하다. 아무리 맛 좋은 원두여도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엔 맛도 별로다. 커피 맛이 가장 좋을 때는 아침 식사 후 여유로움을 간직하고 있을 무렵이다. 신선한 원두를 핸드밀에 넣고 드르륵 갈고 있으면 소리와 행위가 한 몸이 되어 무념무상의 순간으로 이어진다. 드륵 드르륵 삐걱삐걱 돌돌 거리는 소리와 코끝에 맴도는 고소하고 시큼한 향기를 즐긴다. 예열을 위해 물을 내리면 커피 빵이 부풀어 오른다. 봉긋하게 솟아오른 원두 가루 위에 가는 물줄기를 덧붙는다. 우유 거품 처럼 보드랍고 하얀 거품이 피어오른다. 커피 한 잔을 위해 준비한 모든 시간과 한 모금 입에 머금으면 생기는 여운, 그 순간은 짧다. 짧지만 그런 날은 아무 일이 없어도 견딜 수 있을 것만 같고, 커피 맛이 좋았지만 요란스럽게 보낸 날은 몸도 마음도 여유 없이 조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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