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2019-61 / 에세이] 밥 먹는 술집을 차렸습니다. 김광연글. 박승희 그림. 지콜론북. (2019)

지인 권유였나? SNS 팔로우 계정에서 추천하는 글을 봤던가? 어떤 경로로 알게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이 책은 을지로에서 ‘광장’을 운영하는 저자 김광연의 에세이다. 밥 먹는 술집 ’광장’을 준비하게 된 계기, 광장에서 만드는 음식 이야기나 사는 이야기 등의 에피소드가 담겨있다. 비슷한 느낌의 에세이로 속초 동아서점 책’ 당신에게 말을 건다(알마,2017).’가 오버랩된다.

에세이를 쓰는 사람들은 늘어났지만, 읽기 좋은 에세이는 많지 않다. 더구나 자기 자신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일을 하는 자영업자로서 이렇게 솔직한 에세이를 쓸 수 있는 저자의 용기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나 역시 이따금 무언가를 끄적이지만, 내가 드러나는 부분에서는 당당하지 못하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공간에서의 글쓰기지만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어떤 식으로 나의 존재를 금세 알아챌 수 있다는 공포와 불안감으로 희미하게 얼버무리거나 존재를 감추곤 하는데, 저자 김광연은 날것 그대로의 자신을 오롯이 드러낸다. 그래서 더 솔직하고 매력적인 공간으로 느껴진다. 마침 오늘 책을 다 읽었고, 내일 그 공간에 방문하기로 계획했다. 첫사랑을 다시 만나는 기분? 오랫동안 보고 싶고 갖고 싶던 무언가를 만나는 기분? 치킨 남방도 먹고 싶고, 꽁치 파스타도 먹고 싶고, 카레도 먹고 싶고. 책에서 받은 그 느낌 그대로 따듯하고 안전한 공간이길 바라본다.

앞머리는 무성하고 뒷머리가 없는 벌거벗은 몸에 날개가 달린 기회의 신, 카이로스가 떠올랐다. 늘 눈에 띌 준비가 된 카이로스는 기회를 노리고 있는 사람 앞에 무성한 앞머리로 다가간다. 기다렸던 기회를 낚아채기 쉽게 하기 위함이었으리라. 하지만 가까이 다가간 카이로스가 스쳐 지나가고 알아차린들 뒷머리는 민둥머리로 잡을 곳 없이 순식간에 사라진다고 한다. (294)

저자의 신중하면서 활기차고 곧은(?) 에너지가 내게 전해졌다. 멍~~함을 깨우고 정신 번쩍 오늘 이 순간에 집중하는 시간이 되길.


Posted by 따듯한 꽃.개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19-54 / 에세이] 자기만의 침묵. 엘링 카게. 김민수 옮김. 민음사. (2019)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선 침묵을 지켜야 한다.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122)





'자기만의 침묵'은 극지 탐험가 엘링 카게의 침묵 체험기이다. 쫓기고 눈치 보고, 견제하느라 더욱 열심히 일에 매진하는 요즘의 내게 꼭 필요한 것이 바로 나만의 고요한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불쑥 쳐들어오는 외부의 횡포(?)에 맞설만한 나만의 무기를 챙기는 것. 적당한 거리와 방패, 여유로운 마음가짐이라는 무기를 확보해야 한다. 침입 따위 불편하지 않은 보통 사람이라면 그따위는 필요 없겠지만, 부쩍 뾰족하고 예민한 요즘의 나에게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는 것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은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다.



무더운 여름날에 찾아온 짜증과 화와 넘치는 업무에서 벗어나 나를 찾아야 할 이유를 되새김하게 해준 이 책. 작년 봄 읽었던 게으름의 즐거움(호미출판사, 2003)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골똘히 생각하기를 즐기는 엘링 카게의 에세이는 두서없고, 정돈된 느낌도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내게 ‘나만의 방식으로의 침묵’이 얼마나 필요한지 다시 한번 느끼게 한 책이라 올여름 읽은 책 중 가장 의미 있는 책이 될 것 같다.





두려움은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는 것에 대한 것이다. 그러한 두려움을 회피하려 할 때마다 나한테서 비겁한 악취가 확 풍긴다. (21)

나는 길이 바뀔 때마다 자연도 변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그렇지 않았다. 내 주변 환경은 변함 없이 그대로였다. 변한 것은 나였다. (23)

시간은 과거와 미래로 대비되지 않는다. 시간은 지나가는 경험에 더 가깝거나, 키에르케고르가 말했듯이 "소멸된 연속"에 더 가깝다. 시간은 정지되어 있다. (131)

당신이 경험하는 침묵은 다른 사람이 경험하는 침묵과 다르다는 것을 명심하라.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침묵이 있다. (137)

소리는 움직이고 있는 공기이다. (...) 당신의 뇌 활동은 음악이 이곳과 저곳을 계속 오갈 수 있는 중간 지대에 있을 때 귀 기울이고 싶어 한다. 바로 그때 당신의 뇌가 외부로 확장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146)

내가 침묵에 잠기는 이유는 어쩌면 하루도 안 빠지고 매일 무언가로부터 분리되어 있다는 느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 넘어설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은데, 예술은 내게 그러한 것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좀 더 솔직해지고,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더 몰두하면서 살고, 세상을 차단한다. 그 외에 도움이 될 만한 의견을 조금 보탠다면 나는 장거리 스키 여행으로 기진맥진할 때, 혹은 정말 맛있는 무언가를 먹거나 마실 때 느끼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그럴 때 나는 더 이상 내가 하고 있는 일에서 분리되지 않는다. (150)

Posted by 따듯한 꽃.개

댓글을 달아 주세요

[완독 2019-25 / 여행에세이] 스페인은 순례길이다. 김희문. 오브제. (2019)

친절하지 않은 책.
이 책은 스페인 여행 정보를 담은 책인지, 여행 에세이인지, 여행일기인지, 드로잉북인지, 스페인 역사책인지, 기행문인지, 건축기행문인지 정체를 알 수가 없다. 여행기처럼 저자의 흔적을 따라가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좀 더 깊이 호흡하고 싶은 나로서는 거리감이 느껴졌다. 몰입하여 빠져들면서 읽히는 게 아니라 읽을수록 분석하게 된다. 저자가 남의 경험을 듣고 다시 쓴 글처럼 애매함이 느껴진다. 중간중간 보이는 삽화도 어색하다. 저자의 그림 솜씨를 뽐내기 위함인지, 섬세하지 않고 둔탁한 묘사 덕분에 감동도 공감도 어렵다. 그림과 글을 함께 담은 표 같은 것의 가독성도 부족하다. 글씨체가 멋진 건 알겠지만, 부연 설명으로 준비한 표나 그림의 글씨는 좀 더 분명하게 써주었으면. 퇴고가 부족한 건지, 책을 만들면서 필요한 내용이 추가된 건지 군데군데 어색하고 불편한 부분이 느껴지지만, 그런데도 술술 읽히는 부분도 있다.

언젠가 훗날 순례길 걷기를 꿈꾸는 사람으로서 먼저 다녀온 선배님의 여정을 통해 미리 경험하고 싶어 읽게 되었지만, 어려움이 많았다. 저자 자신의 경험을 담은 글인데 왜 이렇게 공감이 어려웠는지 좋은 글에 공감하지 못하는 게 아닌지 너무 많은 기대를 갖고 책을 보는 게 아닌지 자책하며 곱씹었지만, 공감이 쉽지 않은 건 분명했다. 재독 한다면 다르게 읽힐지도 모르겠지만, 한 번 더 정돈하고 출판하였으면 좋았겠지 싶다. tvN<스페인 하숙>을 이미 알고 있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추천한다. 기초 지식 없이 읽기엔 다소 불편한 책이었다.

Posted by 따듯한 꽃.개

댓글을 달아 주세요



[완독 130 / 에세이] 당신이 허락한다면 나는 이 말 하고 싶어요. 김제동. 나무의 마음. (2018)

촛불시위, 법륜스님의 강연 등으로 김제동 님의 행보를 아주 조금 알고 있다. 의식 있는 연예인들이 말과 행동에 제약이 많고, 연예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소리소문없이 제지당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나는 과연 흔들림 없이 잘살고 있는가를 고민하는 시기에 알게 된 이 책, ‘당신이 허락한다면 나는 이 말 하고 싶어요.’는 감동 그 자체였다. 개그맨이자 사회자인 김제동의 텔레비전 속 모습은 어설프게 웃긴 노총각 아저씨였는데, 저자 김제동 님은 ‘님’을 붙여야만 할 것 같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느껴졌다. 책 속에 나오는 약간의 농담들로 동일인이라는 걸 알 수 있었지, 그것마저 없었더라면 전혀 다른 사람의 글이라고 해도 믿었을 것이다.

책과 인문학에 관한 관심이 커지면서 작년 이맘때 정치에 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읽은 정치 관련 책 ‘쓸모 있는 인문 수업 정치학’(이룸북, 2017)이 상당히 의미 있게 출판된 책이라는 걸 알 수 있었는데 이 책도 같은 맥락으로 느껴졌다.

다정한 제목의 ‘당신이 허락한다면 나는 이 말 하고 싶어요.’는 김제동이 곱씹어 읽고 쉽게 풀어쓴 헌법 독후감이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시절 외우기에 급급했던 어려운 말 투성인 헌법이 이렇게도 따뜻하고 아늑한 글을 담고 있었다니.

무지한 시민들을 개화하여 혁명을 일으키려는 세계사 속 몇몇 사건들이 떠올라 가슴 뭉클해 하며 읽었다. 그 감정이 무엇이라고 딱히 설명하기 어렵지만 깨어있어야 함을 자각하면서 애국심이 마구 솟아나는 책이었다. 혼란(?)의 시기에 이런 책을 용감하게 쓰고 출판할 수 있는 출판사와 저자의 도전에 응원한다.

금사빠라서 금세 또 김제동 님에게 빠져버렸다. 누군가 한 사람의 짝꿍보다는 만인의 연인으로 남겨지길 바라는 마음이 김제동 님을 향해서도 생겨났다. 부디 오랫동안 좋은 글, 좋은 생각, 좋은 강연 많이 나눠주시기를.






​저는 이 삶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삶이 저를 선택해준 것이죠. (261)-알비 삭스와의 인터뷰 중에서



​박준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278)

철봉에 오래 매달리는 일은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폐가 아픈 일도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눈이 작은 일도
눈물이 많은 일도
자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눈에서
그 많은 눈물을 흘렸던
당신의 슬픔은 아직 자랑이 될 수 있다

나는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한다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하는 것은

땅이 집을 잃어가고
집이 사람을 잃어가는 일처럼
아득하다

나는 이제
철봉에 매달리지 않아도
이를 악물어야 한다

이를 악물고
당신을 오래 생각하면
비 마중 나오듯
서리서리 모여드는

당신 눈동자의 맺음새가
좋기도 하였다

Posted by 따듯한 꽃.개

댓글을 달아 주세요



[완독 129/ 에세이] 아무튼, 비건. 김한민. 위고출판사. (2018)

위고, 제철소, 코난북스 세 출판사에서 2018년 ‘아무튼’ 에세이 시리즈를 출판하고 있다. ‘아무튼, XX’ 형식의 제목을 가진 이 책들은 나에게 기쁨이자 즐거움이 되는, 생각만 해도 좋은 한 가지를 담은 에세이 시리즈로, 아무튼 게스트하우스, 아무튼 피트니스 등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봄 직한 올해 출판된 에세이 시리즈 중 가장 핫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책날개 참고)

‘비건 q&a’ 같은 이 책은 반려견 ‘난희’를 키우며 동물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 김한민의 비건 예찬론이다.

생태 관련 책을 읽다가 ‘아무튼, 딱따구리’를 읽었다. 그 책 속에 소개되어 알게 된 ‘아무튼, 비건’은 평소 비건에 대한 얕은 지식만 갖고 있던 내게 왜 비건을 해야만 하는지, 인간이 식생활과 의생활을 위해 얼마나 무자비하게 동물을 학대하고 있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다소 섬뜩하기도 하고 징그럽기도 하다. 비건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거나 문외한에게는 이 책을 추천하지 않는다.

8년 전부터 반려견을 키우며 동물에 관한 관심이 생겨났고, 길가에 버려진 길고양이, 참새, 비둘기에게도 사랑이 샘솟았다. 마트에 식자재로 둔갑한 닭과 돼지, 소까지 관심 영역이 늘어나 동물을 먹는 행위가 불편해졌고 채식에 관한 관심으로 이어져 이 책을 읽었다. 나처럼 채식이나 동물에 관한 관심 같은 연결고리가 있는 사람이 읽기 편할 것 같다.

외국에서 거주하고 있는 저자는 비건이 비건으로서 당당하게 생활하지 못하는 한국을 비판하고 있지만, 아주 가끔 외국 여행해 본 게 전부이고 한국에서 온전히 생활하고 있는 나는 각 나라의 문화 차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비건이라는 용어를 직접 사용하진 않지만, 나처럼 고기를 즐기지 않고 환경과 동물을 생각하는 사람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2~3주에 한 번씩 체력이 고갈될 때 먹는 등심이나 삼겹살은 엄청난 에너지를 주기 때문에 완전히 육식을 그만둘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진 않지만, 환경과 동물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더욱 덜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 함께 행복한 따뜻한 세상이 되길 바랄 뿐이다.


참으로 사람다운 삶은
그냥 존재함의 차원에 만족하는 조용한 삶이 아니다.
사람답게 사는 삶은
타자에 눈뜨고 거듭 깨어나는 삶이다.

-철학자 레비나스 (7)



Posted by 따듯한 꽃.개

댓글을 달아 주세요





[완독 128 / 에세이] 아이가 잠들면 서재로 숨었다. 김슬기. 웨일북. (2018)

좋아하는 글쓰기 강사님의 강의를 듣고 추천받아 읽게 된 책이다. 추천받지 않았더라면 읽지 않았을 제목의 책이지만, 책장을 덮은 후에야 왜 추천해주셨는지 알 수 있었다.

이 책은 표면적으로는 ‘초보 엄마로서 육아 스트레스를 책을 통해 해결방법을 찾았다.’라는 육아 에세이지만, 다독, 정독한 책을 독서 모임을 통해 나누며 느끼고 깨달은 것을 정리한 독서 노트이다. 육아에 지친 스트레스를 블로그에 풀어내던 엄마가 만든 책이 ‘육아도 하지 않는’ 내가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육아를 모르더라도 저자의 흡입력 있는 글솜씨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독서영역과 육아세계를 간접경험 하니 ‘과연, 역시’ 고개가 끄덕여졌다.

나도 저자처럼 2016년부터 1년에 100권 이상 책을 읽었지만, 출판사 서평단(서포터즈)으로 신간을 읽은 게 70% 이상이니, 질 좋은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내년엔 베스트셀러나 신간보다는 스테디셀러나 고전문학을 중심으로 좋은 책을 읽으며 삶의 지혜를 쌓아가야겠다.

또 다른 고수를 발견한 것 같아 기쁘다. 나와 같이 읽고 쓰면서 행복을 느끼는 저자의 삶을 응원한다.

Posted by 따듯한 꽃.개

댓글을 달아 주세요



[완독 123 / 에세이] 홍차와 장미의 나날. 모리 마리. 이지수 옮김. 다산 책방. (2018)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이 무엇인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삶을 결코 진흙탕으로 만들지 않는다. (9)

나쓰메 소세키와 더불어 일본 근대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 모리 오가이의 장녀인 모리 마리는 유명한 아버지의 자식으로 자라났지만, 생활력 같은 건 없는 저자는 객관적으로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았지만 자신만의 행복 포인트를 찾아 삶을 살아냈다.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 자신의 삶 속 이야기들을 짧은 글로 써 삶을 이어갔고, 그 기록을 묶어 이 책이 탄생하였다. 매력적인 표지와 삽화, 제목 덕에 제2의 사노 요코를 기대하며 읽어갔지만, 여러 에피소드를 묶은 책이어서 반복된 구절이 많아 읽을수록 흥미가 떨어졌다.

책날개에서 소개하는 작가 배경 이야기를 알지 못했다면 관심 갖지 않았을 이 책은 작가 소개와 배경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준다.

확고한 책임의식이나 정신력 없이 삶을 살아가는 한량 같고 무기력하게 느껴져 읽는 내내 에너지가 빨리는 기분이었지만, 저자가 애정하고 자부심 갖고 있는 프랑스풍의 분위기와 요리, 아버지와의 추억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만큼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프랑스나 요리를 좋아하고 동경하는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모리 마리식의 ‘호화로운 가난의 미학’이 멋스럽게 느껴지기보다는 ‘정신은 어린아이인 채로 몸만 어른이 된 사람’으로 느껴져 읽는 내내 안타깝고 힘들었다. 나처럼 ‘삶의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지 못하는 안타까운 예술가’에 대한 편견이 없는 사람이라면 가볍고 즐겁고 재미있게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며 나의 상처와 편견과 맞닥뜨리게 되어 힘들게 읽었지만, 좋아하는 사노 요코가 사랑한 작가 모리 마리, 그녀가 부디 행복하게 살다 갔기를 바래본다.


Posted by 따듯한 꽃.개

댓글을 달아 주세요



[완독 122 / 에세이] 아무튼, 딱따구리. 박규리. 위고 출판사. (2018)

좋아하는 지인에게 요즘 즐겨 읽는다는 ‘아무튼 시리즈’의 책을 추천받았지만, 읽고 싶은 책이 이미 많이 쌓여있어 여기까지 손이 닿질 않았다. 그러다가 환경에 관한 이야기를 다룰 것 같은 ‘아무튼, 딱따구리’를 알게 되었고, ‘아무튼 시리즈’에 입문하게 되었다.

‘아무튼, 딱따구리’는 지속 가능 디자인 연구원인 저자 박규리가 영장류학자 김산하와 결혼해 함께 살아가던 중 가는 곳마다 만난 인연 ‘딱따구리’ 이웃을 발견했고, 딱따구리에게 관심 두고 새와 인간의 삶을 비교하며 살아가는 삶의 이야기를 쓴 책이다.

이 땅에 더 많은 쓰레기를 남기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유별나게 안 쓰고 안 버리고 다시 쓰는 생활을 하는 나 자신이 지독해 보여서 나는 이렇게 살고 있지만, 남들에게 강요나 설득한 적은 없는 것 같다. 몇몇 지인과 ‘미니멀리즘’에 대한 이야기 나눈 적은 있지만, ‘환경’과 ‘생태’를 위해 아끼고 다시 쓰는 사람들과 대화 나눠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면서 짝꿍과 함께 멋진 삶을 꾸려나가는 저자가 들려주는 사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자신 없던 내 행동들에 용기가 조금 생겼다. 나와 비슷한 사람이 많진 않지만, 없지도 않다는 걸 알게 된 점이 좋았다.

같은 이유로 책사기를 즐기지 않는다. 소유에 의미를 두지 않으니 어차피 한 번 읽고 버려질 거라면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해서 함께 읽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어쩌다 새 책을 사거나 선물 받는다면 다 읽고 동네 사랑방에 나눔 한다. 가뜩이나 좁은 집에 모셔두기보다는 나눔 하여 여러 사람과 함께 보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니까.

부부의 알콩달콩한 사는 이야기도 재미있었지만, 좋아하는 사물이나 공간에 별명 붙이기를 좋아하는 저자의 귀여운 습관이 기억에 남는다. 역시 진지함보다는 약간의 재미가 곁들여진 삶이 보기에도 좋고, 살기에도 좋겠지. 글솜씨나 행동 하나하나에 한 인간의 매력이 뿜어져 나왔다. 역시 에세이는 매력적인 사람이 쓰는 글이었다.

우연하게도 다음 읽을 책으로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이 저자 박규리의 남편인 영장류학자 김산하의 책이고, 그다음 책은 김산하의 동생 김한민의 새 책 ‘아무튼, 비건’이다. 삶의 이상향 같은 건 없지만, 이 가족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리함을 위해 마구 소비하는 생활 보다는 적당히 소비하고 아껴 쓰고 다시 쓰는 삶, 거기에 약간의 재미를 더하여 함께 살기.

가볍고 쉽고 편안한 책이었다.​

Posted by 따듯한 꽃.개

댓글을 달아 주세요



[완독 113 / 에세이]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구나. 김신회. 놀. (2018)

관계의 어려움으로 지끈거리는 요즘, 밀려있는 책 탑 중 먼저 손에 닿은 책이 나를 위로한다.
관계도 일도 책 읽기도 뭐든 목숨 걸고 하지 말자.

관계에 치여 유난히 피곤한 이번 달, 명절 휴일 내내 감기몸살로 헤롱거리다 겨우 힘을 내어 읽어낸 이 책은 보노보노 작가 김신회 님에 대한 재발견(?)이었다. 보노보노처럼 엉뚱 발랄 유쾌한 아우라를 가진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나와 공통점이 많았다. 나처럼 예민하고 한없이 게으르고(!) 강박증도 있었다. 작가 김신회의 일상을 엿보면서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구나’ 제목처럼 아무것도 안 하고 손 놓고 있어도 괜찮다고 스스로 자기 위로했던 나의 9월을 다독였다.

아직 남아있는 감기 기운으로 눈이 침침하여 겨우 읽어냈다. 거절당하기 싫고, 초라해지기 싫어 보류된 나의 관계들을 되살리던지 정리하던지 흘려보내던지 어떻게든 내가 해결해야 한다. 이렇게 잠깐 쉬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뭐라도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챙겼으니 이만하면 토닥여주어야겠다.



우리는 종종 상대방이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이는 ‘우리는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는 착각을 불러오기도 한다. 대부분의 다툼이 이로부터 시작된다. (17)

어제의 내가 다르고 오늘의 내가 다르듯, 어제의 우리가 다르고 오늘의 우리가 다르다. 관계는 그렇게 매일 변해간다. (31)



목숨 걸고 하지 마세요. 무슨 일을 하든 죽을 듯이, 아등바등대면서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35)

시간이 지날수록 연약해진다. 틈만 나면 서글퍼지고, 마음이 쓸쓸해지고 사소한 일에도 풀썩 꺾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틸 수 있는 것은 나는 이렇게 약하고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고 털어놓을 수 있는 누군가가 곁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라도 말하고 나면 마음이 괜찮아진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싫은 걸 싫다고, 좋은 걸 좋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런 사람이 하나만 있어도 하루를 더 살 수 있는 것이다. (214)

자존감은 자신의 부족함이 사랑받을 자격이나 관계의 화목함, 나아가 세상과의 유대감을 헤치는 게 결코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김진관, 홀로서기 수업(생각의힘, 2018) (289)

Posted by 따듯한 꽃.개

댓글을 달아 주세요



[완독 112 / 에세이]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김혼비. 민음사. (2018)

축구 자체가 어차피 오해와 오해가 촘촘하게 엮여 만들어지는 운동인 게 사실이다. 앞서 아웃사이드 드리블의 최고 강점으로 말했던 “공을 이쪽으로 몰고 갈 것처럼 몸을 기울이는” 것으로, 그러니까 1956년 발롱도르의 첫 수상자이자 드리블로 세계 축구를 평정한 스탠리 매튜스의 말대로 “왼쪽으로 살짝 속이고 오른쪽으로 가는” 페인트들이 피치 위 여기저기서 다양한 형태로 일어나는 게 축구다. 이쪽으로 갈 것처럼 오해하게 만들고는 저쪽으로 도망가고, 이쪽으로 패스하는 척하다가 저쪽으로 패스하고, 골대 왼쪽으로 차는 척하다가 오른쪽으로 차서 골인시키는, 누군가의 오해를 이용해서 원하는 것을 얻는 게임. (75)

에세이는 매력적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책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축구에 전혀 관심 없지만, 호기심 반으로 읽기 시작했다가 최근 읽은 책 중 가장 재밌게 읽은 책이 되었다. 격렬하고 치열한 몸싸움 덕에 남성 중심의 스포츠 같은 축구를 사랑하는 여성들이 아마추어 축구단에 소속되어 벌어지는 이야기. 글 속 상황에 빠져 함께 웃고 울고 안타까워하며 몰입하였다.

‘축구하고 글 쓰고 축구 보고 글 읽는 삶을 살고 싶다’는 저자 김혼비의 글을 계속 읽고 싶다.

Posted by 따듯한 꽃.개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