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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4/에세이] 책 대 담배. 조지 오웰. 강문순 옮김. 민음사. (2020)

3년 전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를 읽다가 포기한 적이 있다. 난해했고, 재미없었다. 일 년에 한두 번씩 고전이나 스테디셀러 문학 작품을 도전하곤 하지만 쉽지가 않다. 읽기 어려운 그때마다 사정이 생기기 때문이다.

코로나로부터 정상적인 업무 생활을 하지 못하게 된 지 8주째이다. 처음엔 두려웠고, 점점 줄어드는 통장 잔고로 스트레스받았지만, 지금은 견딜만하다. 돈만 없을 뿐 내 생활 리듬은 그럭저럭 적응되어 괜찮다. 이 시기에 우연히 ‘책 대 담배’ 신간 소식을 접했다. 제목부터 끌림이 느껴졌다. 몇 번을 도전했다가 포기한 경험이 있는 조지 오웰의 에세이라니, 시간적 여유가 있는 이 시기에 도전해볼 만한 가치를 느껴 동네 서점에 입고를 부탁해서 사 왔다.

‘동물농장’이나 ‘1984’등 조지 오웰이 쓴 몇 가지 소설이 크게 알려져 소설가로 불리지만, 사실 에세이를 더 많이 남겼다고 한다. 그중 9가지의 이야기를 엮은 ‘책 대 담배’는 얼마 전 읽은 이승우의 ‘소설을 살다(민음사, 2019)’와 비슷한 결을 느낄 수 있었다. 이승우는 우리나라 사람이라 감정의 결을 이해하며 읽을 수 있었지만, 조지 오웰은 남의 나라 사람이라 종잡을 수 없고 독특하다고 느꼈다.

저자는 인도에서 태어났지만,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며 살았고 2차 세계 대전을 겪으며 ‘동물 농장’을 발표했다. 아내를 잃고, 지병이었던 폐결핵이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했다. 병상에서도 집필활동을 이어가며 ‘1984’를 발표했고, 47세에 생을 마감했다.’ (책 소개 참고)

‘책 대 담배’는 이 책에 수록된 첫 번째 에세이의 제목이다. 책과 담배를 비유하는 설명이 일반인인 나의 생각과도 비슷해서 피식거리며 읽었다. ‘어느 서평가의 고백’은 서평단에 속해 책을 읽는 사람으로서 찔림과 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작가로서 책과 서평, 글 쓰는 행위, 책방 등 책과 관련된 생각을 엿볼 수 있어 좋았다. 글을 통해 느끼는 저자는 매력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보통 요정도 느낌과 무게를 지닌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보는 편인데 석 달째 도서관이 휴관 중이라 보고 싶은 것은 사게 된다. 다시 읽게 되진 않을 것 같은데, 여러 상황이 아쉽기만 하다. 어서 도서관에 가고 싶다.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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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5/에세이] 마흔의 서재. 장석주. 프시케의 숲. (2020)


<마흔의 서재>는 물안개 자욱한 새벽 마당을 가로질러 서재로 나가 써 내려간 그 시절의 조촐한 마음을 담은 책이다. 그때 찾아 읽은 책과 나를 품었던 서재는 나의 피난처이자 은신처였다. 갈매나무 한 그루 품지 못한 채 마흔에 불시착한 이들에게 나침반 같은 책이기를 바랐다. 살아온 날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다가올 날의 꿈을 기획하는 이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랐다. 미망과 의혹을 뚫고 앞으로 나아가기. 깨어 있을 땐 숨결을 가지런하게 하고 밤에는 작은 꿈들을 꾸며 고요하게 살기. (7)-작가 서문 중에서


2012년 한빛비즈에서 출간한 동명의 책 ‘마흔의 서재’가 출판 계약의 법적 시한을 다 채운 2020년 1월 프시케의 숲 출판사에서 다시 출간되었다. 저자 장석주가 마흔이던 시절 읽고 쓰고 느낀 것들을 엮은 이 책은 어떠한 울림을 주었길래 8년 만에 또다시 나오게 되었을까. 출간된 지 이제 한 달이 지났을 뿐인데 벌써 베스트셀러에 속해있다.


‘마흔의 서재’는 장석주가 마흔을 맞이하며 읽은 책을 소개하고 본인의 생각을 덧붙이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책 속 소개되는 저자가 읽어낸 수많은 훌륭한 책 보다 저자의 생각에 더 공감하고 감동받았다.

-목차-

제2장 삶의 갈림길마다 책이 있다.
제3장 이전과는 다른 생이 기다린다.
제4장 넓어지지 말고, 깊어지는 삶을


성인으로 불리는 나이가 되면 좋은 스승님을 만나기가 어렵다. 물론 학창 시절에도 좋은 스승님 만나기는 하늘에 별따기지만, 교육기관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면 더하다. 생계를 살다 보면 그저 살아가기에도 급급하고, 점점 여유가 없어지는데 마흔이 아마 그 중턱쯔음 되나 보다. 열심히 일하며 성실하게 살아왔는데 이룬 건 없고, 돈을 좇으며 살아온 건 아니니까 적은 게 당연한데 남과 비교하게 되고, 방향을 잃으니 더욱 혼란스러운 시기가 바로 마흔인가 보다. 나의 마흔은 남들과는 다를 줄 알았는데. 무엇을 위해 이토록 열심히 살아왔나 허무해진다. 뭐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으로 더욱 열심히 살아보지만, 그동안 마음먹은 대로 살아왔던 건 내 인생의 축복이었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무튼 마흔이라는 새로운 성장통을 맞이하게 되어 힘겨운 사람들에게 나침반 같은 스승님이 되어줄 책이다.


저자는 마흔 시절에 이 책을 쓸 만큼 단단하고 야무진 사람인데 나의 마흔은 여전히 아직도 어설프다. 마흔쯤이 되면 남들처럼 어른처럼 살 줄 알았는데 나의 마흔은 그렇지 못하다. 얄궂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덕분에 업무가 휘청거려 책에 집중하기가 어려웠지만, 다시금 정신을 붙잡고 나아가야겠다.

——

자발적으로 선택한 고독은 일상의 분주함에서 벗어나 “심리적 피난처”를 찾는 일이다. 대개 작가나 예술가들이 창작을 위해 스스로 고립의 환경을 찾아내 고독을 추구한다. 이때 고독은 “위안과 새로운 활력, 내적 평온”이라는 선물을 준다. 명상, 휴식, 기도와 같은 활동도 고독을 동반한다. 이때 고독은 일상의 번잡함에 매여 지친 영혼을 달래고 내적인 여유와 평화를 가져다준다. (74)

대부분의 갈매기들은 비상의 가장 단순한 사실-즉 먹이를 찾아 해안을 떠났다 다시 돌아오는 방법 이상의 것을 배우려고 마음 쓰지 않는다. 대부분의 갈매기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나는 것이 아니라 먹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갈매기에게 중요한 것은 먹는 것이 아니라 나는 것이었다. 어떤 것보다 조나단 리빙스턴은 나는 것을 사랑했다. -리처드 바크, <갈매기의 꿈>(129)

비가 내리는 풍경에 무심한 눈길을 주고 있는 이 순간, 그 순간들이 바로 삶이라는 꽃이 피어 있는 순간이다. ‘나’란 존재는 바로 이 순간의 순수의식 그 자체이다. 이 순간밖에 없는 삶은 없다. 산다는 것은 바로 이 순간에 온전히 집중해야 하는 일이다. (178)

나는 삶을 소유할 수 없다. 삶 그 자체가 바로 나이고 나일 것이기 때문이다. (180)


——
장석주와 연관된 책을 5권이나 읽었다. 옛 기록을 찾아보니 내가 만난 장석주의 책은 모두 좋았다. ‘마흔’이라는 제목에 끌려 손이 간 줄 알았는데 역시 장석주의 글이어서 더욱 마음이 기울었나 보다.

1. 은유의 힘. 장석주. 다산책방. (2017)
2. 내 아침 인사 대신 읽어보오. 장석주. 박연준. 난다 출판사.(2018)
3. 게으름의 즐거움. 피에르 쌍소 외 지음. 함유선 옮김. 호미 출판사. (2003)
이토록 멋진 문장이라면. 장석주 쓰고 엮음. 추수밭 출판사. (2015)
5. 정원으로 가는 길. 질 클레망. 이재형 옮김. 홍시 출판사. (2012)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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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74 / 에세이] 서점의 온도. 류얼시. 김택규 옮김. 유유 출판사. (2019)


책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던 시기에 만난 두 책이 묘하게 닮아있다. ‘서점의 온도(유유 출판사, 2019)’와 ‘만 권의 기억 데이터에서 너에게 어울리는 딱 한 권을 추천해줄게(21세기 북스, 2019)’가 그것이다. ‘서점의 온도’는 중국 광저우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저자의 에피소드를 담고 있고, ‘만 권의 기억 데이터에서 너에게 어울리는 딱 한 권을 추천해줄게’는 일본 서점에 근무하는 저자의 소설 같은 에세이이다. 일본 서적 번역본은 종류와 장르가 다양해서 그들의 사고방식이나 내용 구성 등이 낯설지 않았고, 흥미로웠다면 중국 서점의 에피소드를 담은 ‘서점의 온도’는 낯설어서 관심이 갔다. 몇 년 전 와이즈베리 출판사 서포터즈를 하며 출판사 관계자님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일본 번역서는 많이 접할 수 있는데, 중국을 포함한 다른 동아시아 지역의 서적을 볼 수 없으니 많이 번역해달라고 건의(?)한 적이 있었다. 그 후로 중국 번역서를 종종 만나왔지만, 그들의 문화 자체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인지 재미있게 읽은 건 몇 권 안 되는 것 같다.


서점의 온도는 나의 중국에 대한 특별한 로망을 해소해주는 책이었다. 중국 광저우에서 24시간 운영하는 독특한 서점 1200북숍의 이야기이다. 중국과 우리나라의 생활 문화 자체가 달라서 에피소드도 상상 이상의 경험이었다. 저자의 이야기가 중국 내 보편적으로 겪을 수 있는 이야기인지, 저자만의 특별한 경험인지 알 수 없지만,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로 동경하던 중국에 대해 조금 더 알 수 있어 즐거웠다.


한동안 유유 출판사의 책을 기피해왔다. 요즘은 공부하듯 읽는 책이 끌리지 않았기 때문인데, 오랜만에 만난 유유 출판사의 발랄함이 좋았다. 다시 책에 대한 관심을 한 발짝 나아가게 해 준 것 같아 반가운 책. 광저우의 1200북숍을 꼭 한번 가보고 싶다. 중국 서점원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추천·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취업 자리를 제공하고 그들이 자아실현을 하도록 돕는 것, 이것이 타이완인이 지닌 인간미이자 내가 타이완에서 감동을 받은 점이었다. (126)


이것은 아마도 운명이겠죠. 하늘은 시련을 내려 인생이 좀 더 공평해지게 하니까요. (142)

 

운명은 누구도 편애하지 않는다. (164)


큰일이 눈앞에 닥쳐도 계속 살아가야 하고 어떻게든 방법은 있게 마련이다. (166)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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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70 / 에세이] 만 권의 기억 데이터에서 너에게 어울리는 딱 한 권을 추천해줄게. 하나다 나나코. 구수영 옮김. 21세기북스. (2019)


책을 소개하는 책 읽기를 나름 즐겼었나 보다. 기억하는 첫 책은 ‘서재 결혼시키기(지호, 2002)’이다. 한 연인이 결혼을 앞두고 서로의 책을 어떤 방식으로 정리할 것인가를 다룬 이야기이다. 겹치는 책을 버릴 것인지 놔둘 것인지, 어떤 기준으로 정리할 것인지 서로 다른 두 사람의 책장을 합치는 과정에서 벌어진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엿보는 소소한 재미가 있었다. 그 책에 등장하는 책은 한 권도 읽어본 적도 없고 이젠 기억나지도 않지만, ‘남들은 책을 대하는 방식’ 같은 것이 궁금했고 나와 비슷한 점과 차이점을 알아가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만 권의 기억 데이터에서 너에게 어울리는 딱 한 권을 추천해줄게’는 독특한 제목에 끌려 읽게 되었다. 읽어보진 않았지만, 익히 들어본 긴 이름의 제목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책 세상, 2005)’처럼 제목이 주는 아우라에 끌렸다. 이 책은 -기업 문화가 있는 조금 특별한- 서점에서 일하던 한 여성이 만남 사이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책을 추천하는 경험을 쌓아가며 세상과 사람, 자신을 대하는 방법을 알아가며 용기 내고 도전하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이다. 당시 이혼 조정 중이던 저자는 현실도피의 수단으로 자신을 알지 못하는 타인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위안을 얻었던 것 같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행위를 통해 세상과 관계하는 방법을 알아가고 용기를 내고, 새로운 직장을 찾아가며 전남편과 이혼하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는 것으로 책이 마무리된다.

사람들에게 책을 소개하는 특별할 것 없는 내용인데 책을 읽는 내내 뭉클하고 울컥했다. 그녀가 문제의 상황에 직면하지 못 한 체 타인에게 책을 소개하며 갖는 생각들이 지금의 내 모습 같았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 역시 중요한 게 뭔지 알지 못 한 체 주변만 방황하고 있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끝이 없는 쳇바퀴를 돌고 있는 기분이다. 그래서 그녀가 차근히 해결해가는 과정에 마음이 놓였다. 이 이야기는 소설이 아니고 에세이니까 그녀의 삶이 앞으로 어떻게 흘러가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책의 내용이 끝나는 즈음 한 단계 넘어섰음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책을 읽는다고 해서 당장 내 삶에 해결될 건 없지만, 저자의 삶에 감정 이입되었다. 그녀가 도전하고 해낸 것처럼 내 삶도 한 걸음 나아가게 되길.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할 때는 자유로운 삶의 방식을 고르렴. (...) 할아버지의 경야에 참석하지 않는 선택을 할 수 있다면, 그보다 못한 선택지가 내 앞에 놓일 때 망설이지 않고 자유로운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으리라. (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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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61 / 에세이] 밥 먹는 술집을 차렸습니다. 김광연글. 박승희 그림. 지콜론북. (2019)

지인 권유였나? SNS 팔로우 계정에서 추천하는 글을 봤던가? 어떤 경로로 알게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이 책은 을지로에서 ‘광장’을 운영하는 저자 김광연의 에세이다. 밥 먹는 술집 ’광장’을 준비하게 된 계기, 광장에서 만드는 음식 이야기나 사는 이야기 등의 에피소드가 담겨있다. 비슷한 느낌의 에세이로 속초 동아서점 책’ 당신에게 말을 건다(알마,2017).’가 오버랩된다.

에세이를 쓰는 사람들은 늘어났지만, 읽기 좋은 에세이는 많지 않다. 더구나 자기 자신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일을 하는 자영업자로서 이렇게 솔직한 에세이를 쓸 수 있는 저자의 용기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나 역시 이따금 무언가를 끄적이지만, 내가 드러나는 부분에서는 당당하지 못하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공간에서의 글쓰기지만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어떤 식으로 나의 존재를 금세 알아챌 수 있다는 공포와 불안감으로 희미하게 얼버무리거나 존재를 감추곤 하는데, 저자 김광연은 날것 그대로의 자신을 오롯이 드러낸다. 그래서 더 솔직하고 매력적인 공간으로 느껴진다. 마침 오늘 책을 다 읽었고, 내일 그 공간에 방문하기로 계획했다. 첫사랑을 다시 만나는 기분? 오랫동안 보고 싶고 갖고 싶던 무언가를 만나는 기분? 치킨 남방도 먹고 싶고, 꽁치 파스타도 먹고 싶고, 카레도 먹고 싶고. 책에서 받은 그 느낌 그대로 따듯하고 안전한 공간이길 바라본다.

앞머리는 무성하고 뒷머리가 없는 벌거벗은 몸에 날개가 달린 기회의 신, 카이로스가 떠올랐다. 늘 눈에 띌 준비가 된 카이로스는 기회를 노리고 있는 사람 앞에 무성한 앞머리로 다가간다. 기다렸던 기회를 낚아채기 쉽게 하기 위함이었으리라. 하지만 가까이 다가간 카이로스가 스쳐 지나가고 알아차린들 뒷머리는 민둥머리로 잡을 곳 없이 순식간에 사라진다고 한다. (294)

저자의 신중하면서 활기차고 곧은(?) 에너지가 내게 전해졌다. 멍~~함을 깨우고 정신 번쩍 오늘 이 순간에 집중하는 시간이 되길.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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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54 / 에세이] 자기만의 침묵. 엘링 카게. 김민수 옮김. 민음사. (2019)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선 침묵을 지켜야 한다.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122)





'자기만의 침묵'은 극지 탐험가 엘링 카게의 침묵 체험기이다. 쫓기고 눈치 보고, 견제하느라 더욱 열심히 일에 매진하는 요즘의 내게 꼭 필요한 것이 바로 나만의 고요한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불쑥 쳐들어오는 외부의 횡포(?)에 맞설만한 나만의 무기를 챙기는 것. 적당한 거리와 방패, 여유로운 마음가짐이라는 무기를 확보해야 한다. 침입 따위 불편하지 않은 보통 사람이라면 그따위는 필요 없겠지만, 부쩍 뾰족하고 예민한 요즘의 나에게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는 것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은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다.



무더운 여름날에 찾아온 짜증과 화와 넘치는 업무에서 벗어나 나를 찾아야 할 이유를 되새김하게 해준 이 책. 작년 봄 읽었던 게으름의 즐거움(호미출판사, 2003)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골똘히 생각하기를 즐기는 엘링 카게의 에세이는 두서없고, 정돈된 느낌도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내게 ‘나만의 방식으로의 침묵’이 얼마나 필요한지 다시 한번 느끼게 한 책이라 올여름 읽은 책 중 가장 의미 있는 책이 될 것 같다.





두려움은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는 것에 대한 것이다. 그러한 두려움을 회피하려 할 때마다 나한테서 비겁한 악취가 확 풍긴다. (21)

나는 길이 바뀔 때마다 자연도 변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그렇지 않았다. 내 주변 환경은 변함 없이 그대로였다. 변한 것은 나였다. (23)

시간은 과거와 미래로 대비되지 않는다. 시간은 지나가는 경험에 더 가깝거나, 키에르케고르가 말했듯이 "소멸된 연속"에 더 가깝다. 시간은 정지되어 있다. (131)

당신이 경험하는 침묵은 다른 사람이 경험하는 침묵과 다르다는 것을 명심하라.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침묵이 있다. (137)

소리는 움직이고 있는 공기이다. (...) 당신의 뇌 활동은 음악이 이곳과 저곳을 계속 오갈 수 있는 중간 지대에 있을 때 귀 기울이고 싶어 한다. 바로 그때 당신의 뇌가 외부로 확장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146)

내가 침묵에 잠기는 이유는 어쩌면 하루도 안 빠지고 매일 무언가로부터 분리되어 있다는 느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 넘어설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은데, 예술은 내게 그러한 것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좀 더 솔직해지고,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더 몰두하면서 살고, 세상을 차단한다. 그 외에 도움이 될 만한 의견을 조금 보탠다면 나는 장거리 스키 여행으로 기진맥진할 때, 혹은 정말 맛있는 무언가를 먹거나 마실 때 느끼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그럴 때 나는 더 이상 내가 하고 있는 일에서 분리되지 않는다. (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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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2019-25 / 여행에세이] 스페인은 순례길이다. 김희문. 오브제. (2019)

친절하지 않은 책.
이 책은 스페인 여행 정보를 담은 책인지, 여행 에세이인지, 여행일기인지, 드로잉북인지, 스페인 역사책인지, 기행문인지, 건축기행문인지 정체를 알 수가 없다. 여행기처럼 저자의 흔적을 따라가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좀 더 깊이 호흡하고 싶은 나로서는 거리감이 느껴졌다. 몰입하여 빠져들면서 읽히는 게 아니라 읽을수록 분석하게 된다. 저자가 남의 경험을 듣고 다시 쓴 글처럼 애매함이 느껴진다. 중간중간 보이는 삽화도 어색하다. 저자의 그림 솜씨를 뽐내기 위함인지, 섬세하지 않고 둔탁한 묘사 덕분에 감동도 공감도 어렵다. 그림과 글을 함께 담은 표 같은 것의 가독성도 부족하다. 글씨체가 멋진 건 알겠지만, 부연 설명으로 준비한 표나 그림의 글씨는 좀 더 분명하게 써주었으면. 퇴고가 부족한 건지, 책을 만들면서 필요한 내용이 추가된 건지 군데군데 어색하고 불편한 부분이 느껴지지만, 그런데도 술술 읽히는 부분도 있다.

언젠가 훗날 순례길 걷기를 꿈꾸는 사람으로서 먼저 다녀온 선배님의 여정을 통해 미리 경험하고 싶어 읽게 되었지만, 어려움이 많았다. 저자 자신의 경험을 담은 글인데 왜 이렇게 공감이 어려웠는지 좋은 글에 공감하지 못하는 게 아닌지 너무 많은 기대를 갖고 책을 보는 게 아닌지 자책하며 곱씹었지만, 공감이 쉽지 않은 건 분명했다. 재독 한다면 다르게 읽힐지도 모르겠지만, 한 번 더 정돈하고 출판하였으면 좋았겠지 싶다. tvN<스페인 하숙>을 이미 알고 있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추천한다. 기초 지식 없이 읽기엔 다소 불편한 책이었다.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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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130 / 에세이] 당신이 허락한다면 나는 이 말 하고 싶어요. 김제동. 나무의 마음. (2018)

촛불시위, 법륜스님의 강연 등으로 김제동 님의 행보를 아주 조금 알고 있다. 의식 있는 연예인들이 말과 행동에 제약이 많고, 연예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소리소문없이 제지당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나는 과연 흔들림 없이 잘살고 있는가를 고민하는 시기에 알게 된 이 책, ‘당신이 허락한다면 나는 이 말 하고 싶어요.’는 감동 그 자체였다. 개그맨이자 사회자인 김제동의 텔레비전 속 모습은 어설프게 웃긴 노총각 아저씨였는데, 저자 김제동 님은 ‘님’을 붙여야만 할 것 같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느껴졌다. 책 속에 나오는 약간의 농담들로 동일인이라는 걸 알 수 있었지, 그것마저 없었더라면 전혀 다른 사람의 글이라고 해도 믿었을 것이다.

책과 인문학에 관한 관심이 커지면서 작년 이맘때 정치에 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읽은 정치 관련 책 ‘쓸모 있는 인문 수업 정치학’(이룸북, 2017)이 상당히 의미 있게 출판된 책이라는 걸 알 수 있었는데 이 책도 같은 맥락으로 느껴졌다.

다정한 제목의 ‘당신이 허락한다면 나는 이 말 하고 싶어요.’는 김제동이 곱씹어 읽고 쉽게 풀어쓴 헌법 독후감이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시절 외우기에 급급했던 어려운 말 투성인 헌법이 이렇게도 따뜻하고 아늑한 글을 담고 있었다니.

무지한 시민들을 개화하여 혁명을 일으키려는 세계사 속 몇몇 사건들이 떠올라 가슴 뭉클해 하며 읽었다. 그 감정이 무엇이라고 딱히 설명하기 어렵지만 깨어있어야 함을 자각하면서 애국심이 마구 솟아나는 책이었다. 혼란(?)의 시기에 이런 책을 용감하게 쓰고 출판할 수 있는 출판사와 저자의 도전에 응원한다.

금사빠라서 금세 또 김제동 님에게 빠져버렸다. 누군가 한 사람의 짝꿍보다는 만인의 연인으로 남겨지길 바라는 마음이 김제동 님을 향해서도 생겨났다. 부디 오랫동안 좋은 글, 좋은 생각, 좋은 강연 많이 나눠주시기를.






​저는 이 삶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삶이 저를 선택해준 것이죠. (261)-알비 삭스와의 인터뷰 중에서



​박준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278)

철봉에 오래 매달리는 일은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폐가 아픈 일도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눈이 작은 일도
눈물이 많은 일도
자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눈에서
그 많은 눈물을 흘렸던
당신의 슬픔은 아직 자랑이 될 수 있다

나는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한다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하는 것은

땅이 집을 잃어가고
집이 사람을 잃어가는 일처럼
아득하다

나는 이제
철봉에 매달리지 않아도
이를 악물어야 한다

이를 악물고
당신을 오래 생각하면
비 마중 나오듯
서리서리 모여드는

당신 눈동자의 맺음새가
좋기도 하였다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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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129/ 에세이] 아무튼, 비건. 김한민. 위고출판사. (2018)

위고, 제철소, 코난북스 세 출판사에서 2018년 ‘아무튼’ 에세이 시리즈를 출판하고 있다. ‘아무튼, XX’ 형식의 제목을 가진 이 책들은 나에게 기쁨이자 즐거움이 되는, 생각만 해도 좋은 한 가지를 담은 에세이 시리즈로, 아무튼 게스트하우스, 아무튼 피트니스 등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봄 직한 올해 출판된 에세이 시리즈 중 가장 핫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책날개 참고)

‘비건 q&a’ 같은 이 책은 반려견 ‘난희’를 키우며 동물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 김한민의 비건 예찬론이다.

생태 관련 책을 읽다가 ‘아무튼, 딱따구리’를 읽었다. 그 책 속에 소개되어 알게 된 ‘아무튼, 비건’은 평소 비건에 대한 얕은 지식만 갖고 있던 내게 왜 비건을 해야만 하는지, 인간이 식생활과 의생활을 위해 얼마나 무자비하게 동물을 학대하고 있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다소 섬뜩하기도 하고 징그럽기도 하다. 비건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거나 문외한에게는 이 책을 추천하지 않는다.

8년 전부터 반려견을 키우며 동물에 관한 관심이 생겨났고, 길가에 버려진 길고양이, 참새, 비둘기에게도 사랑이 샘솟았다. 마트에 식자재로 둔갑한 닭과 돼지, 소까지 관심 영역이 늘어나 동물을 먹는 행위가 불편해졌고 채식에 관한 관심으로 이어져 이 책을 읽었다. 나처럼 채식이나 동물에 관한 관심 같은 연결고리가 있는 사람이 읽기 편할 것 같다.

외국에서 거주하고 있는 저자는 비건이 비건으로서 당당하게 생활하지 못하는 한국을 비판하고 있지만, 아주 가끔 외국 여행해 본 게 전부이고 한국에서 온전히 생활하고 있는 나는 각 나라의 문화 차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비건이라는 용어를 직접 사용하진 않지만, 나처럼 고기를 즐기지 않고 환경과 동물을 생각하는 사람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2~3주에 한 번씩 체력이 고갈될 때 먹는 등심이나 삼겹살은 엄청난 에너지를 주기 때문에 완전히 육식을 그만둘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진 않지만, 환경과 동물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더욱 덜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 함께 행복한 따뜻한 세상이 되길 바랄 뿐이다.


참으로 사람다운 삶은
그냥 존재함의 차원에 만족하는 조용한 삶이 아니다.
사람답게 사는 삶은
타자에 눈뜨고 거듭 깨어나는 삶이다.

-철학자 레비나스 (7)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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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128 / 에세이] 아이가 잠들면 서재로 숨었다. 김슬기. 웨일북. (2018)

좋아하는 글쓰기 강사님의 강의를 듣고 추천받아 읽게 된 책이다. 추천받지 않았더라면 읽지 않았을 제목의 책이지만, 책장을 덮은 후에야 왜 추천해주셨는지 알 수 있었다.

이 책은 표면적으로는 ‘초보 엄마로서 육아 스트레스를 책을 통해 해결방법을 찾았다.’라는 육아 에세이지만, 다독, 정독한 책을 독서 모임을 통해 나누며 느끼고 깨달은 것을 정리한 독서 노트이다. 육아에 지친 스트레스를 블로그에 풀어내던 엄마가 만든 책이 ‘육아도 하지 않는’ 내가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육아를 모르더라도 저자의 흡입력 있는 글솜씨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독서영역과 육아세계를 간접경험 하니 ‘과연, 역시’ 고개가 끄덕여졌다.

나도 저자처럼 2016년부터 1년에 100권 이상 책을 읽었지만, 출판사 서평단(서포터즈)으로 신간을 읽은 게 70% 이상이니, 질 좋은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내년엔 베스트셀러나 신간보다는 스테디셀러나 고전문학을 중심으로 좋은 책을 읽으며 삶의 지혜를 쌓아가야겠다.

또 다른 고수를 발견한 것 같아 기쁘다. 나와 같이 읽고 쓰면서 행복을 느끼는 저자의 삶을 응원한다.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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