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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123 / 에세이] 홍차와 장미의 나날. 모리 마리. 이지수 옮김. 다산 책방. (2018)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이 무엇인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삶을 결코 진흙탕으로 만들지 않는다. (9)

나쓰메 소세키와 더불어 일본 근대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 모리 오가이의 장녀인 모리 마리는 유명한 아버지의 자식으로 자라났지만, 생활력 같은 건 없는 저자는 객관적으로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았지만 자신만의 행복 포인트를 찾아 삶을 살아냈다.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 자신의 삶 속 이야기들을 짧은 글로 써 삶을 이어갔고, 그 기록을 묶어 이 책이 탄생하였다. 매력적인 표지와 삽화, 제목 덕에 제2의 사노 요코를 기대하며 읽어갔지만, 여러 에피소드를 묶은 책이어서 반복된 구절이 많아 읽을수록 흥미가 떨어졌다.

책날개에서 소개하는 작가 배경 이야기를 알지 못했다면 관심 갖지 않았을 이 책은 작가 소개와 배경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준다.

확고한 책임의식이나 정신력 없이 삶을 살아가는 한량 같고 무기력하게 느껴져 읽는 내내 에너지가 빨리는 기분이었지만, 저자가 애정하고 자부심 갖고 있는 프랑스풍의 분위기와 요리, 아버지와의 추억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만큼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프랑스나 요리를 좋아하고 동경하는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모리 마리식의 ‘호화로운 가난의 미학’이 멋스럽게 느껴지기보다는 ‘정신은 어린아이인 채로 몸만 어른이 된 사람’으로 느껴져 읽는 내내 안타깝고 힘들었다. 나처럼 ‘삶의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지 못하는 안타까운 예술가’에 대한 편견이 없는 사람이라면 가볍고 즐겁고 재미있게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며 나의 상처와 편견과 맞닥뜨리게 되어 힘들게 읽었지만, 좋아하는 사노 요코가 사랑한 작가 모리 마리, 그녀가 부디 행복하게 살다 갔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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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122 / 에세이] 아무튼, 딱따구리. 박규리. 위고 출판사. (2018)

좋아하는 지인에게 요즘 즐겨 읽는다는 ‘아무튼 시리즈’의 책을 추천받았지만, 읽고 싶은 책이 이미 많이 쌓여있어 여기까지 손이 닿질 않았다. 그러다가 환경에 관한 이야기를 다룰 것 같은 ‘아무튼, 딱따구리’를 알게 되었고, ‘아무튼 시리즈’에 입문하게 되었다.

‘아무튼, 딱따구리’는 지속 가능 디자인 연구원인 저자 박규리가 영장류학자 김산하와 결혼해 함께 살아가던 중 가는 곳마다 만난 인연 ‘딱따구리’ 이웃을 발견했고, 딱따구리에게 관심 두고 새와 인간의 삶을 비교하며 살아가는 삶의 이야기를 쓴 책이다.

이 땅에 더 많은 쓰레기를 남기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유별나게 안 쓰고 안 버리고 다시 쓰는 생활을 하는 나 자신이 지독해 보여서 나는 이렇게 살고 있지만, 남들에게 강요나 설득한 적은 없는 것 같다. 몇몇 지인과 ‘미니멀리즘’에 대한 이야기 나눈 적은 있지만, ‘환경’과 ‘생태’를 위해 아끼고 다시 쓰는 사람들과 대화 나눠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면서 짝꿍과 함께 멋진 삶을 꾸려나가는 저자가 들려주는 사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자신 없던 내 행동들에 용기가 조금 생겼다. 나와 비슷한 사람이 많진 않지만, 없지도 않다는 걸 알게 된 점이 좋았다.

같은 이유로 책사기를 즐기지 않는다. 소유에 의미를 두지 않으니 어차피 한 번 읽고 버려질 거라면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해서 함께 읽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어쩌다 새 책을 사거나 선물 받는다면 다 읽고 동네 사랑방에 나눔 한다. 가뜩이나 좁은 집에 모셔두기보다는 나눔 하여 여러 사람과 함께 보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니까.

부부의 알콩달콩한 사는 이야기도 재미있었지만, 좋아하는 사물이나 공간에 별명 붙이기를 좋아하는 저자의 귀여운 습관이 기억에 남는다. 역시 진지함보다는 약간의 재미가 곁들여진 삶이 보기에도 좋고, 살기에도 좋겠지. 글솜씨나 행동 하나하나에 한 인간의 매력이 뿜어져 나왔다. 역시 에세이는 매력적인 사람이 쓰는 글이었다.

우연하게도 다음 읽을 책으로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이 저자 박규리의 남편인 영장류학자 김산하의 책이고, 그다음 책은 김산하의 동생 김한민의 새 책 ‘아무튼, 비건’이다. 삶의 이상향 같은 건 없지만, 이 가족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리함을 위해 마구 소비하는 생활 보다는 적당히 소비하고 아껴 쓰고 다시 쓰는 삶, 거기에 약간의 재미를 더하여 함께 살기.

가볍고 쉽고 편안한 책이었다.​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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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113 / 에세이]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구나. 김신회. 놀. (2018)

관계의 어려움으로 지끈거리는 요즘, 밀려있는 책 탑 중 먼저 손에 닿은 책이 나를 위로한다.
관계도 일도 책 읽기도 뭐든 목숨 걸고 하지 말자.

관계에 치여 유난히 피곤한 이번 달, 명절 휴일 내내 감기몸살로 헤롱거리다 겨우 힘을 내어 읽어낸 이 책은 보노보노 작가 김신회 님에 대한 재발견(?)이었다. 보노보노처럼 엉뚱 발랄 유쾌한 아우라를 가진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나와 공통점이 많았다. 나처럼 예민하고 한없이 게으르고(!) 강박증도 있었다. 작가 김신회의 일상을 엿보면서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구나’ 제목처럼 아무것도 안 하고 손 놓고 있어도 괜찮다고 스스로 자기 위로했던 나의 9월을 다독였다.

아직 남아있는 감기 기운으로 눈이 침침하여 겨우 읽어냈다. 거절당하기 싫고, 초라해지기 싫어 보류된 나의 관계들을 되살리던지 정리하던지 흘려보내던지 어떻게든 내가 해결해야 한다. 이렇게 잠깐 쉬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뭐라도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챙겼으니 이만하면 토닥여주어야겠다.



우리는 종종 상대방이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이는 ‘우리는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는 착각을 불러오기도 한다. 대부분의 다툼이 이로부터 시작된다. (17)

어제의 내가 다르고 오늘의 내가 다르듯, 어제의 우리가 다르고 오늘의 우리가 다르다. 관계는 그렇게 매일 변해간다. (31)



목숨 걸고 하지 마세요. 무슨 일을 하든 죽을 듯이, 아등바등대면서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35)

시간이 지날수록 연약해진다. 틈만 나면 서글퍼지고, 마음이 쓸쓸해지고 사소한 일에도 풀썩 꺾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틸 수 있는 것은 나는 이렇게 약하고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고 털어놓을 수 있는 누군가가 곁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라도 말하고 나면 마음이 괜찮아진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싫은 걸 싫다고, 좋은 걸 좋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런 사람이 하나만 있어도 하루를 더 살 수 있는 것이다. (214)

자존감은 자신의 부족함이 사랑받을 자격이나 관계의 화목함, 나아가 세상과의 유대감을 헤치는 게 결코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김진관, 홀로서기 수업(생각의힘, 2018) (289)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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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112 / 에세이]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김혼비. 민음사. (2018)

축구 자체가 어차피 오해와 오해가 촘촘하게 엮여 만들어지는 운동인 게 사실이다. 앞서 아웃사이드 드리블의 최고 강점으로 말했던 “공을 이쪽으로 몰고 갈 것처럼 몸을 기울이는” 것으로, 그러니까 1956년 발롱도르의 첫 수상자이자 드리블로 세계 축구를 평정한 스탠리 매튜스의 말대로 “왼쪽으로 살짝 속이고 오른쪽으로 가는” 페인트들이 피치 위 여기저기서 다양한 형태로 일어나는 게 축구다. 이쪽으로 갈 것처럼 오해하게 만들고는 저쪽으로 도망가고, 이쪽으로 패스하는 척하다가 저쪽으로 패스하고, 골대 왼쪽으로 차는 척하다가 오른쪽으로 차서 골인시키는, 누군가의 오해를 이용해서 원하는 것을 얻는 게임. (75)

에세이는 매력적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책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축구에 전혀 관심 없지만, 호기심 반으로 읽기 시작했다가 최근 읽은 책 중 가장 재밌게 읽은 책이 되었다. 격렬하고 치열한 몸싸움 덕에 남성 중심의 스포츠 같은 축구를 사랑하는 여성들이 아마추어 축구단에 소속되어 벌어지는 이야기. 글 속 상황에 빠져 함께 웃고 울고 안타까워하며 몰입하였다.

‘축구하고 글 쓰고 축구 보고 글 읽는 삶을 살고 싶다’는 저자 김혼비의 글을 계속 읽고 싶다.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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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111 / 에세이] 크리슈나무르티와 함께한 1001번의 점심식사. 마이클 크로닌. 강도은 옮김. 열림원. (2018)


웃음은 진지함의 일부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29)




나는 탐욕스럽지 않습니다. 단지 전부를 원할 뿐입니다. (123)




나는 채식주의에는 관심이 없고,채식주의 신봉자가 아닙니다. (...) 무슨 주의-ism 같은 것은 없습니다. 이곳은 어떤 주의, 어떤 도그마, 어떤 이데올로기를 위한 곳이 아닙니다. 나는 단순이 죽이지 않을 뿐입니다. 죽이는 일은 잘못이니까요. 그게 전부입니다. (403)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에서 태어나 유대인 학살에 대한 슬픔과 죽음, 공포, 죄의식, 허무를 겪으며 청소년기를 보내고 삶을 향한 여정을 떠난 저자, 마이클 크로닌의 이야기이다. 1970년대 초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던 중 저자는 크리슈나무르티를 만나게 되었다. 당시에 크리슈나무르티는 깨달음을 추구하거나 새로운 문화를 추구하는 많은 이들이 정신적 스승으로 모셨던 유명한 인물이었다. 유명하지 않은 한 젊은이가 크리슈나무르티라는 인물을 만나 요리사로 지내며 겪은 소소한 이야기를 담은 ‘마이클 크로닌이 바라본 크리슈나무르티’ 이야기로 한 젊은이의 순수한 애정과 관심을 느낄 수 있었다. 비슷한 느낌의 책으로 ‘죽음의 수용소에서(청아출판사, 2005)’가 오버랩되었다.

이런 책의 공통점은 생각의 폭이 좁은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허공을 맴도는 말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가끔가끔씩 이런 종류의 책을 읽는 이유는 내 마음이 공허하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에 대한 불만과 불안으로 편안하다고 느끼지 못해서 옛사람의 이야기에 기대어 쉬운 길을 찾고 싶어서. 내가 책에 집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법정 스님을 참 좋아했다. 그리 오랫동안 좋아했던 건 아니지만 돌아가시기 한 두 해 전부터 지금까지 가장 좋아하는 스님은 법정 스님이다. 법륜 스님처럼 친근한 옆집 할아버지처럼 잔소리 많고(!) 따뜻한 분도 좋지만 법정 스님처럼 고요하고 날카로운 카리스마를 지닌 분이 나는 더 좋다. 아무튼 깨달음을 얻은 분들에게 풍기는 아우라가 있다. 그 아우라를 경험하고 그분 뜻을 따르기 위해 함께하는 보살님들이 많이 있음을 알고 있다.

이 책의 저자 마이클 크로닌도 그런 사람 중 하나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독일인으로서, 1970년대에 20대를 보냈던 젊은이로서 베트남 전쟁과 대안 문화가 팽배하던 시절에 정신적 스승으로 떠오른 크리슈나무르티를 사랑으로 모셨고, 그가 사망한 1986년으로부터 10년이 지난 후 옛 기억을 떠올리며 이 책을 썼다. 책을 읽으며 가장 가까이에서 성인과 호흡하고 나누며 깨달음을 가진 저자의 순수한 애정을 간접 체험할 수 있었다.

좋은 외국 서적은 좋은 번역자를 만나야 깊이가 더해진다. 옮긴 이(강도은) 덕분에 시대 배경과 저자, 크리슈나무르티에 대한 설명으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요즘은 어떤 이유로 책도 글도 다른 그 무엇도 집중할 수가 없다. 관계에 대한 불신과 흔들림 때문인데 그 또한 오롯이 나의 문제다. 그러한 불안감이 나를 이 책으로 끌어당겼나 보다.

내가 살아가는 시간이 모여 내가 된다. 나의 하루를 위해 매일 보내는 시간을 다듬어야 한다. 자유롭게 흘러가지만 아무렇게나 보내진 않도록.
모든 순간에 의미를 담아 무거워질 필욘 없지만 대충 보내진 않도록.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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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106 / 에세이]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정문정. 가나출판사 (2018)

김찬호 교수의 책 <모멸감>을 보면, 자신의 결핍과 공허를 채우기 위해 한국인이 가장 많이 취하는 방법 중 하나가 다른 사람을 모멸하는 것이라고 한다. 위계를 만들어 누군가를 무시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것이다. (20)

내 인생은 롱테이크로 촬영한 무편집본이다. 지루하고 구질구질하게 느껴진다. 반면 다른 사람의 인생은 편집되고 보정된 예고편이다. 그래서 멋져 보이는 것이다. 그걸 이해하지 못하면 세상에서 나 혼자만 힘든 것같이 느껴진다. 결국 피해의식과 자기연민에 가득 차 사람들에게 상처 주고, 이기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 행복한 사람은 자기를 알아달라고 남을 괴롭히지 않는다. 스스로 충만하면 남의 인정을 갈구할 필요가 없으니까. (82)

취향이 자신을 끊임없이 부정하고 단지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한 것일 뿐이라면, 일기를 검사받는 것과 뭐가 다를까. 내가 정말 좋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솔직하게 표현하고 남들의 취향에 대해서도 무시하지 않아야 세상은 여러 색으로 다양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서로 ‘취존’부터! (109)

어른이 되어서 좋은 것 중 하나는 싫은 사람을 덜 봐도 된다는 것과 친구에 덜 연연하게 된다는 것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며 깊이 있는 관계를 맺기도 하고 나쁜 관계 속에서 내가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도 관찰해보니, 행복감은 관계의 양이 아니라 질이 결정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깊이 있는 관계는 함께한 시간과 비례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 나는 인간관계에서 무리하지 않는다. 알고 지낸 지 오래됐지만 만나는 것이 불편해지기 시작하면 당분간 만나지 않고, 뾰족한 말을 던지는 사람에게는 여러 번 경고하다 정도가 심해지면 관계를 끊는다. 그러면서 좋은 사람을 최대한 옆에 두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어느새 더 좋은 사람들이 다가오곤 했다. 나 또한 모든 관계는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자꾸 노력하게 된다. (202)


예약초과로 빌려오기 힘들었던 이 책.
재미있게 읽었지만, 5월 말~ 6월 초에 예약 신청해서 지금 빌려와 읽을 만큼 재미난 이야기였나? 올해 1월 8일에 1쇄를 찍고, 1월 23일에 4쇄를 찍은 아마 올해의 베스트셀러 중 한 권이 될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은 기대보다 강렬하게 다가오진 않았지만,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긴 하다. 특히 눈치 보느라 의사 표현 같은 것에 서툰 여자 사회초년생이라면 더욱 더.

저자가 이렇게 시원시원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건 그동안 쭉 글을 쓰며 먹고사는 직업으로 살아왔었고, 죽을 고비를 넘겼고, 살면서 ‘왜’라는 궁금증을 늘 갖고 지냈기 때문일 것이다. 죽음의 고비를 현명하게 넘긴 사람만이 가진 군더더기 없는 인생관이 있다. 나는 아직 경험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경험해보고 싶진 않지만, 죽음 바로 앞까지 다다르지 않더라도 이 책을 통해 간접경험 해보았으니 조금 더 유들유들하고 조금 더 단호하고 여유 있게 의사 표현하고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지금도 충분하지만, 더욱 충족하고 싶다.

아.
이 책의 좋은 점은 작가의 글 하나하나에 내 사족을 붙이게 된다는 것. 아마도 동년배인 그녀의 생각에 보태어 내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드나 보다.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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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101 / 에세이] 당신에게 말을 건다. 김영건. 정희우 그림. 알마. (2017)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다. <베르세르크> (23)

‘속초에 있는 3대째 이어지는 서점 이야기’라고 누군가에게 소개받은 이 책의 첫인상이 마냥 좋지는 않았다. 너도나도 책을 쓰는 - 이런 글을 쓰는 나도 원하는 행위 - 지금 출판계 분위기가 좋지 않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존재하는 의미가 없는 책은 없겠지만 ‘너도 쓰면 나도 쓰겠다’는 생각에 반신반의의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

2대째 이어지는 책방 가업을 함께 이어가기를 제안받은 3대 아들이 쓴 이 책은 글쓴이 김영건이라는 한 사람의 적나라한 일상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야기 대부분이 서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여서 ‘3대째 이어오는 지방 서점’, ‘독립서점의 생존’에 대한 관심으로 읽었지만, 저자의 글솜씨는 충분했다. 꼭 서점 이야기가 아닌 다른 영역의 책이더라도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글솜씨를 자랑하거나, 서점의 일상을 낭만적으로 포장하지도 않았지만 담담한 그의 문체엔 흡입력이 있다. 후에 책장을 덮고 책날개를 보니 이전 직장에서 보도자료를 쓰는 등 글쓰는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어쩐지’

대를 잇는 가업은 그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큰 수입이 보장되지도 않는데도 굳이 이어가는 자부심엔 무엇이 담겨있을까. 가업은커녕 평생 한 직업 지키기도 우스운 나 같은 사람이 바라보는 환상, 오래 유지해주시기를. 그리고 귀여운 에피소드로 등장한 저자의 아버지. 오랫동안 건강하세요.



인생이 농담을 하면 우리는 책을 산다.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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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98/ 에세이, 불교] 다시 태어나도 우리. 문창용. 홍익출판사. (2017)

불교에서는 ‘옴마니 반메 홈(ommani padme hum)’이라는 말을 매우 귀하게 여긴다. 이 말은 불교의 천수경에 나오는 관세음보살의 진언으로, 이 말을 지극정성으로 읊으면 관세음보살의 자비에 의해 번뇌와 죄악이 소멸되고 지혜와 공덕을 갖추게 된다고 한다. (44)

지난가을 동명의 영화 ‘다시 태어나도 우리(2017)’로 린포체 앙뚜 스님의 존재에 대하여 알게 되었고, 최근 영화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2018)과 책 ‘관점’(2018, 쑹훙빙)을 보고 카슈미르라는 지역적 의미를 되새기고자 읽게 된 책.

카슈미르는 중국과 인도, 파키스탄의 경계에 있는 산악지대이다.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에서 본 카슈미르는 인간의 흔적이 묻지 않은 위대하고 아름다운 자연 그 자체였지만, ‘관점’에서 본 카슈미르는 중국 경제 발전의 야심(?) 펼칠 수 있는 -중국의 신장 지방과 만나는 지점에 있으며 복잡한 지질구조로 되어 있어 개발에 영향을 미칠 요소를 지닌- 핵심 지역이었다. ‘다시 태어나도 우리’에서 본 카슈미르는 인도와 중국, 파키스탄의 분쟁지역으로 오랜 분쟁 덕분에 종교적 교류뿐만 아니라 그 어떤 교류가 어려운 군사경계지역이었다.

그 카슈미르의 한 지역, 티베트 캄의 노스님이 환생하여 인도 북부 지역 라다크에서 다시 태어난, 린포체 앙뚜이다.

책 ‘다시 태어나도 우리’는 다큐멘터리 감독 문창용이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 인도를 여행하는 중 알게 된 이야기를 영화와 책으로 펴냈다. 이미 영화를 본 후였기에 그 후의 이야기가 궁금하여 책을 읽었지만, 영화의 내용과 상당 부분 일치하였다. 영화는 영상미에 감동하며 보았다면, 책은 감정선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읽을 수 있었다.

카슈미르라는 지역을 각 작품에서 각자 다르게 다룬 점이 인상적이다. 우리는 하나의 존재로 살아가지만, 누구와 어떤 상호작용을 주고받느냐에 따라 다른 이미지로 읽힌다. 모든 것은 하나의 모습만 지니고 있지 않다. 나와 너도 그렇듯, 자연도 마찬가지. 지금 내가 아는 이것이 전부인 양 자만하고 경계하지 말아야 함을 다시 한번 느낀 계기가 되었다. 세상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는 현재 내 삶에 대한 감사를 부른다. 특별한 굴곡 없는 내 인생, 단순하고 따분할지라도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함을 느낀다.

우르갼과 앙뚜의 관계, 린포체로 사는 삶을 인정하지만, 그렇게 살 수 없는 어린 앙뚜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쉽게 해결되지 않는 분쟁지역을 건너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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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96 / 에세이] 요가 매트만큼의 세계. 이아림. 북라이프. (2018)

자기 리듬, 그건 어떻게 가능할까. 난 우선 어깨에 힘을 빼는 것으로 시작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에게 솔직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씩씩하게 내딛는 거다. 물론 처음엔 어렵다. 자꾸 움츠러든다. 몸과 마음이 얼어붙는다. 하지만 자꾸 알아차리고 바로잡으면 된다. 그렇게 심기일전하며 다시 뚜벅뚜벅 걷는다. 좀 더 가볍게, 천천히 오래. 오늘도 그렇게 나아가기로 했다. 쉽진 않지만 해볼 만한 일이다. (28)

다른 사람이 만든 걸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옮기는 것뿐인 사람들은 신용할 수 없어. ‘리틀 포레스트’, 유우타군이 한 말(76)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쫄지 않는 것이다. 당장의 실패, 성과 없음이 내 노력의 전부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나는 해나가고 있고 배워가고 있고 나아지고 있으니까. (89)

한병철 ‘시간의 향기’
고유하게 존재하는 자는 말하자면 늘 시간이 있다. (...) 그는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기 때문에 시간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다. (167)


지금 이대로도 충분해.
마음과 영혼이 예쁘고 차분한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나도 닮아간다. 불안하고 흔들리는 내 영혼이 그들의 맑은 기운을 흡수한다. 좋은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에세이는 쉬운 글, 전문 지식 같은 것 없이 아무나 쓸 수 있는 글이라 생각한 적이 있었지만, 요즘은 아니다. 쉬운 글로 예쁜 마음을 보들보들하게 풀어가는 기술은 아무나 가지지 못한다. 도서시장에서 가장 잘 팔리는 베스트셀러들을 보면 에세이가 대부분이다. 다들 나와 같은 일상의 힘듦을 책을 통해 치유하고 싶은 모양이다.

글 쓰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브런치라는 사이트에서 제 4회 카카오 브런치 프로젝트에서 금상을 받고, 브런치에 연재한 글을 책으로 출간한 이아림은 요가를 사랑하는 서른 하나 예쁜 아가씨이다. 요가와 함께 한 그의 일상이 참 예쁘다. 얼마 전 읽었던 ‘빵 고르듯 살고 싶다.(임진아, 휴머니스트, 2018)’와 비슷한 듯 다른 이 책은 내가 요가를 좋아하는 이유가 모두 담겨있어 저자와 깊이 공감하며 읽었다.

(덧붙이기.
요즘 에세이는 이름이 예뻐야 쓸 수 있나 보다. 임진아, 이아림.. 그리고 또 누가 있더라?
아무튼 예쁜 글 많이 쓰시고 좋은 기운 나눠주시길.)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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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95 / 에세이, 사진에세이] 숲의 하루. 글 블리. 사진 빅초이. 소로소로. (2018)

생활 모험가 부부, 빅초이와 블리가 담아낸 소소한 계절의 조각들을 담은 ‘숲의 하루’는 라이프스타일 포토그래퍼 남편과 작가 아내가 쓴 두 번째 책이다. 단순한 삶을 지향하는 부부는 예쁘고 비싼 자전거 브롬튼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시작은 브롬튼’, 그리고 이 책 ‘숲의 하루’를 출간했다.

부부끼리 취미를 공유하면서 서로에게 긍정의 에너지를 주고받는 건 어떤 느낌일까? 남편의 눈에 비친 예쁜 순간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풀어낸 아내의 글이 적당히 어울린다. 궁금하지만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캠핑, 사진 찍고 글을 쓰는 이 부부의 취미생활을 몰래 구경하는 기분이다. 캠핑하면서 느끼는 감정과 순간들, 자연 한복판에서 느끼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사진 속 이미지와 글로 계절과 시간의 변화를 간접 체험할 수 있었다.

사진도 글도 부부의 애칭에서도 느낄 수 있었던 건 책과 나의 거리감이다. 비밀스럽기도 하고 베일 속에 가려져 있는 것 같은 마냥 친근하지만은 않은 우리의 거리감 덕분에 약간의 긴장감도 느낄 수 있었지만, 부부의 속내를 정확히 알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아름다운 사진과 글로 잠시동안 힐링했지만 진짜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던 점은 조금 아쉽다.

몇 년 전 읽었던 마스다 미리의 ‘주말엔 숲으로’(이봄, 2012)와 비슷한 듯 다른 ‘숲의 하루’. 문득 부부의 평일 하루가 궁금해졌다.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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