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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고 또 읽기/문학2020. 1. 27. 16:42

[2020-04 / 문학, 한국소설] 사랑의 생애. 이승우. 예담. (2017)

사랑은 모든 사랑하는 이들을 사랑하게 하는 근거이다. 사랑의 근거이고 사랑의 깊이이고 사랑 자체이다. 세상의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 근거이고 깊이이며 사랑 자체인 사랑 없이는 사랑할 수 없다. 사랑은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을 품고 있다.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은 사랑 안에 포섭되어 있다. 사랑 자체인 이 사랑이 두 사람 사이로 들어와 자기 생애를 시작한다. 그 생애가 연애의 기간이다. 어떤 생에는 짧고 어떤 생애는 길다. 어떤 생애는 죽음 후에 부활하고, 어떤 생애는 영원하다. (167)


2019서울 국제 도서전 기념품(?)이었던 '맛의 기억(다양한 분야의 작가들이 맛에 대한 이야기를 엮은 소책자)'을 통해 이승우라는 소설가를 알게 되었다. 언어를 가지고 노는(!) 저자 특유의 필력에 반해 이승우의 여러 책을 담아왔고, 그중 첫 번째로 완독한 책이다. 작가는 저자의 말을 통해 '떠오르는 대로 순간의 단상들을 적어둔 여러 개의 메모들을 여러 권의 몰스킨 수첩을 거쳐 스마트폰의 메모장으로 옮겨 왔다가 책으로 만들었다.'라고 소개한다. 저마다 다르지만 비슷하고 비슷하면서도 다른, 사랑이라는 경험의 신비를 담은 책이다.


'사랑의 생애'는 등장인물 형배, 선희, 영석, 그리고 준호의 사랑 이야기가 우연하게 얽혀있다. 각자 자신만의 어쩔 수 없는, 치열하고 못나빠진 날것의 사랑 이야기를 전하고 있지만, 저마다의 사정에 공감되는 것은 작가 이승우의 솜씨 덕분일 것이다. 글을 읽는 내내 때로는 형배에게, 때로는 선희에게, 영석, 그리고 준호에게 감정이입하여 내가 그 사람인 듯 몰입하여 읽을 수 있었다. 한 사람의 감성, 심리 묘사가 너무나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표현되어 있어 한때 즐겨 읽던 알랭 드 보통이나 김형경의 소설을 떠오르게 한다. 내 감정을 들킨 것만 같은 이런 묘사는 마음이 바쁠 때에는 잘 읽히지 않다가 여유가 있고, 한가한 시기에 후루룩 읽게 된다.

어떤 방식이 더 좋거나 괜찮다고 말할 수 없는 각자 사랑에 대한 경험, 사랑의 생애는 작가의 말마따나 사랑 그 한가운데 빠져 있는 자에게는 관심 밖의 일이다. '진정으로 살지 않는 자가 삶이 무엇인지 묻는다.'라는 글귀가 마음에 남는다. 책을 읽으며 사랑이 하고 싶어졌고, 삶이 궁금해졌다.

분명하고 알아듣기 쉽게 고백하기가 쉽지 않다. 사랑하는 자의 말은 불가피하게 우회하는 말이다. 사랑의 말은 직선을 모른다. 아니, 모르지는 않지만 쓰지 못한다. 쓰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두근거림과 조심스러움, 즉 수줍음이 쓰지 못하게 한다. 직선의 언어는 빠르지만 날카로워서 발화자든 청자든 누군가를 다치게 하기 쉽다. 자기든 남이든 다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사랑이 시작되는 현장에서 직선의 언어는 여간해서는 채택되지 않는다. (48)

가치를 부여하는 일은 사람마다 다르다. 이 사람이 가치를 부여하는 일이라고 저 사람도 반드시 그래야 하는 법은 없다. 이 사람에게 대단한 일이 저 사람에게는 대단하지 않거나, 저 사람에게 하찮은 일이 이 사람에게는 엄청나게 중요한 일인 경우는 허다하다. 기쁨과 보람을 느끼며 하는 일에 우리는 가치를 부여한다. (...) 우리는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하는 대단한 일을 하며 살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 순간을 기다리면서, 기쁨과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일을 견딘다. 그 대단한 일을 하기 위해, 혹은 그 일을 하기를 갈망하며 이 대단하지 않은 일을 한다. 이 일을 소홀히 하지 않는 건 그 일 때문이다. 그 일에 대한 기대가 이 일을 감당하게 한다.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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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고 또 읽기/문학2020. 1. 21. 01:34

[2020-03 / 문학, 한국소설] 서독 이모. 박민정. 현대문학. (2020)


요즘은 수많은 근심 걱정으로 책 읽기가 쉽지 않은데, 서독 이모는 예외였다. 큰 기대 없이 책장을 넘겼다가 앉은자리에서 단숨에 끝까지 읽어버렸다. 흡입력이 좋고 재미있으면서 명쾌(!)하지만, 마냥 가볍기만 한 것도 아니라 곱씹을 거리도 있다. 서독 이모는 1985년생 작가 박민정의 소설이다. 소설에 있어 나이라는 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기준이 되어버리니 ‘나보다 어린 작가’가 되었다. 어리면서 잘 나가는 대부분 사람들의 소설은 전개가 빠르거나 소재가 자극적이어서 불편한 경험이 많았다. 도도하고 거친 느낌이 싫어서 웬만하면 피하는 편이다. 하지만 박민정의 소설은 그런 나의 선입견을 깨트렸다.


소설 속 주인공 정우정은 글을 쓰는 사람이다. 대학원을 졸업하기 위해 구질구질한 대학원 생활을 버티며 논문과 소설을 쓴다.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소재를 찾다가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인 이모와 이모부 이야기를 선택했고,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허구인지 기억나지 않을 만큼 쓴 글과 석사 논문 통과 과정인 자신의 이야기가 소설이 되었다. 흥미롭다. (이런 과정을 책 뒤편에 드라마투르기라고 표현한다.)


드라마투르기는 작품에 대한 여러 해석 중 하나의 관점을 채택하여 작품에 의미를 구체화하는 비평적 활동이다. 즉, 하나의 스토리에 대한 비평적 시선 및 연출을 위한 이론적 실천이다. (106)


너에게는 이모의 불행이 심심풀이 땅콩이니, 나는 엄마의 말을 떠올렸다. 두 번째 단락을 넘어서고 나서도 꽤 많은 분량을 단숨에 써버렸지만 더는 이 이야기를 이어 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82)


나의 쓰기도 떠올랐다. 고작 나의 경험과 내 주변 이야기를 쓰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미천한 글짓기가 부끄러웠지만, 정우정, 아니 박민정 작가처럼 나도 할 수 있다면 계속 쓰면 작가가 될 수 있으려나?!


소설 속 작가는 본인의 가족사, 서독과 동독의 통일에 엮인 비극, 정체성과 삶, 씀이라는 행위 등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결코 무겁지만 한 건 아니다. 이 소설에 재미가 더해지는 것은 통일 전후 독일과 현재 한국의 상황이 오버랩되는 점이다. 정우정이 박민정은 아닌지, 이 소설 자체가 진실인지 허구인지 궁금증을 갖고 ‘서독 이모’를 읽으며 최근 재미있게 보는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이 떠올랐다. 현실에서 일어날 것 같지 않은 통일 같은 소재를 독일 이모와 그녀의 남편 클라우드의 이야기를 통해 불쑥 차용한다는 점에서 더욱 드라마처럼 느껴졌다. 소설 속 이야기들이 너무나 거짓말 같은데 그래서 더욱 진짜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이렇게 덜컥 통일이 이루어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는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을 선정, 월간 ‘현대문학’ 지면에 선보이고 이것을 다시 단행본 발간으로 이어가는 프로젝트이다. (책날개 참고)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 선은 현재 021권까지 발행되었고, 30권까지 예정되어 있다. 어떤 출판사에서 이렇게 앙큼(!) 발랄한 책을 시리즈로 묶어놓았나 찾아보았더니 좋아하는 미래엔 출판사의 성인 단행본 브랜드 중 하나였다. 미래 엔에는 와이즈베리, 북폴리오, 현대문학이 속해 있다. 소설을 잘 알지 못할 때는 양질의 인문 서적을 출간하는 와이즈베리를 좋아했지만, ‘서독 이모’를 알게 된 이상 현대문학의 핀 시리즈에 관심 갖고 챙겨보려 한다. 다음 책은 017 이승우의 캉탕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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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고 또 읽기/문학2019. 12. 30. 23:19

[2019-77 / 기타] 맛의 기억. 권여선 외. 대한출판문화협회.(2019)



어릴 적 엄마가 해주신 음식 중 가장 기억나는 건 정어리 찌개이다. 맛이 좋고 나쁨을 떠나서 꽤 자주 먹었던 기억이 난다. 정어리 통조림을 꽁치찌개처럼 끓인 정어리 찌개는 통조림 생선 특유의 식감, 생선 가시를 혀로 살살 녹이는 맛이 좋았다. 그 시절 우리 집 식단은 맞벌이 부모가 손쉽게 끼니를 때울 수 있는 김치찌개, 카레, 곰탕 등이 전부였다. 손이 많이 가는 김밥 같은 건 언감생심. 김밥보다 손쉬운 유부초밥도 먹어본 적이 없다. 그저 엄마가 익숙하고 빠르게 준비할 수 있는 것들을 먹곤 했다.


엄마의 퇴근이 늦은 날엔 가까운 곳에 사는 이모 댁에 일부러 찾아가 저녁을 먹었다. 이모 댁에서 먹는 밥은 늘 맛이 좋았다. 정말, 밥부터 맛이 달랐다. 뛰어난 음식 솜씨 따위 필요치 않은 그저 밥에 불과한데도, 우리 집에서 매일 먹던 그것과 차이가 커서 이모네에서 식사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너무 오래 끓여 배춧잎이 흐물거리는 우리 집 김치찌개와는 비교할 수 없는 맛. 이모네에서 먹던 음식이 특별한 요리는 아니었다. 흔히 말하는 집밥, 그 정도다. 갓 지은 따끈한 밥과 엿기름이 섞여 달곰하고 고소한, 깔끔하게 똥을 발라낸 매콤한 멸치볶음, 퍽퍽한 목살 같은 돼지고기와 감자 등을 넣고 은근하게 끓여낸 고추장찌개, 갓 구워낸 고등어나 꽁치구이, 슴슴하고 부들부들한 무나물, 김과 김치. 밥과 찌개에 3~4개 정도의 정갈한 반찬, 그리고 식탁 앞에서 내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나를 지켜봐 주셨던 이모. 그 시절 그 순간에는 맛있는 음식과 이모가 있었다. 이모는 늘 내가 밥 먹는 모습을 지켜보셨다. 그러면서 사는 이야기나 동네 사람들 이야길 하셨다. 501호 누구는 어쩌고, 이모 동창 누구 딸이 어쩌고. 지금은 전혀 기억나지도 않고 기억할 수도 없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다 보면 이내 머리가 아파져 왔다. 가끔은 그런 행위들이 이모께서 차려주신 밥을 먹고 지불해야 하는 비용처럼 느껴져 습관적 맞장구가 피곤할 때도 있었지만, 아직도 여전히 엄마밥보다 이모밥이 그립다.


C와 함께할 땐 거의 맛집을 찾아다녔다. 내가 찾았다기보다는 그쪽에서 늘 데이트 코스를 준비해왔다. 스파게티나 피자, 커피숍 등 ‘데이트’라고 불릴만한 메뉴가 대부분이었고 그와 함께 다녔던 곳은 다 맛이 좋았다. 그는 맛뿐 아니라 멋에도 관심이 있었다. 우리는 취향도 잘 맞았다. 음악회를 다녔고, 미술관을 다녔다. 그는 첫 연애였고 나도 그와 다를 바 없었다. 우리는 영혼의 단짝인 줄 알고 열렬하게 사랑했지만, 열정적으로 타오르던 불씨는 금세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C와 함께했던 맛집을 더는 찾아다니지 않는다.


B와 함께할 땐 늘 고기를 먹었다. 함께한 시간 동안 다른 메뉴를 먹은 기억이 거의 없다. 고기와 커피, 그게 전부다. 회, 주꾸미, 소고기, 삼겹살 등 다양한 고기류를 섭렵했고, 그중에 제일은 삼겹살이다. 삼겹살을 유난히도 부르짖던 그 사람, 우리의 마지막 식사도 삼겹살이었다.


N과 함께 식사를 ‘즐기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365일 언제나 다이어트를 하고 있었기에 어떤 음식이든 개미 눈곱만큼 먹었고, 배부르다며 절반 이상 남기곤 했다. 남겨진 음식이 보기 싫었던 나는 언제나 찬반 처리반이 되었다. N과 함께 식사하면 종종 배부른 불쾌감이 들곤 했다. 이럴 거면 차만 마시고 헤어질걸. 어떤 메뉴든 가리지 않고 먹질 않았기에 맛있는 음식을 먹는 즐거움 같은 걸 느껴본 기억이 없다. SNS에 공유된 N의 데이트 사진에는 언제나 맛있게 먹었고, 배부르다는 글이 남겨있지만, 그가 정말 맛있게 배부르게 먹었을지, 뭔가 먹긴 하는 건지 늘 궁금하다.


사람과 맥주를 좋아하는 J 덕분에 수제 흑맥주의 맛을 알아버렸다. 이전에도 기네스나 코젤 다크 같은 진한 흑맥주를 좋아하는 나의 취향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J 덕분에 흑맥주의 스펙트럼이 넓어졌다. 스타우트에는 브라우니와 올리브가 참 잘 어울렸다. 속상할 때 꿀꺽꿀꺽 마시는 술 말고 기분 좋게 홀짝이는 맥주의 맛을 알게 되었다. J와 자주 만나지 않는 요즘은 맥주 따위와 멀어진 지 오래다.


K가 소개하는 곳은 전부 기념할만하다. 음식점이나 예쁜 공간, 전시회 등 영감을 받을만한 핫플레이스를 상당히 구체적으로 분류하여 정리하고 있고, 이따금씩 소개해준다. 가장 좋았던 곳은 이디야 커피랩이다. 보급형(?) 프랜차이즈 커피 본사가 뭐 얼마나 하겠나 싶은 마음으로 방문했지만, 그 후 다른 지인과 세 번을 더 방문했다. 맛과 멋 분위기 모두 굉장한 공간이었다. K가 소개하는 곳은 무조건 좋다. 공간이나 음식 맛이 주는 매력도 상당하지만, 사실 K와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좋다.


평소 간단하게 때우는 식사를 하는 편이다. 어릴 적부터 길들여진 식습관 덕분에 삼시 세끼 같은 음식을 먹어도 상관이 없다. 한솥 가득 끓인 청국장에 밥 말아먹고, 두부나 고기류를 넣어 한 번 또 끓이고, 남은 국물에 라면을 넣어 또 먹는다. 내게 식사란 배고프지 않기 위해 먹는 것이지만, 사람이 더해지면 의미가 달라진다. 맛이 우선순위인 상대방과 함께라면 나도 맛 좋은 음식을 먹게 된다. 역시 내겐 맛보다는 ‘함께’가 먼저다. 좋은 것을 함께하고 싶은 마음, ‘너와 내가 함께한 시간이 만족스럽다.’가 ‘맛있다’로 기억된다. 이런 걸 푼크툼이라고 칭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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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서울 국제도서전의 ‘리미티드 에디션’ 맛의 기억은 권여선, 김봉곤, 박찬일, 성석제, 안희연, 오은, 이승우, 이용재, 이해림, 정은지 이상 10명의 작가가 ‘맛’을 모티브로 쓴 글을 엮었다. 각양각색 작가들의 글을 읽다 보니 ‘나의 맛의 기억’도 기록하고 싶어 졌다. 그런 의미에서 참 재미있는 책이다. 그중 이승우라는 작가에게 관심이 갔고 조만간 이승우의 소설을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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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고 또 읽기/문학2019. 12. 17. 13:31

[2019-72 / 고전] 좁은 문. 앙드레 지드. 조정훈 옮김. 더클래식. (2017)


은희경의 ‘빛의 과거(민음사, 2019)’에서 등장인물 이동휘가 주인공 김유경에게 했던 말 중에서 자신은 사실 ‘브론스키보단 제롬에 가까웠다’는 말에 꽂혀 제롬이 주인공인 소설을 검색하였고, ‘좁은 문’을 읽게 되었다. 브론스키가 화려하고 열정적인 사랑을 좇는 사람이라면 제롬은 지고지순하고 끈질긴 인물일까 싶은 단순하고 단편적인 생각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좁은 문은 가벼운 연애 소설이 결코 아니었다) 청소년 권장 도서라는데 어느 부분이 청소년이 꼭 읽고 이해하고 넘어갈 부분인지, 주의해서 알아채야 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어렵고 버거웠다. 재미있는 소설을 읽을 때 느낄 수 있었던 긴장감 같은 것은 하나 없고, 고구마처럼 답답해서 책장을 넘기기 어려웠다. 이것은 마치 얼마 전 읽었던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나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읽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한 사람 특히 여성의 자유로운 연애 같은 건 보장되지 않은 100년 전의 생활 모습이 느껴졌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크고 넓은 길은 멸망으로 인도하나니 그리로 가는 자가 많음이라. 하지만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과 길은 좁으니 그것을 찾는 자가 적음이라. (25)


내가 행하는 모든 미덕이 모두 그를 기쁘게 하기 위한 것이지만 그의 곁에 서면 나의 미덕이 파괴되는 느낌이 든다. (178)


2019년을 사는 나는 절대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150년 전의 삶. 불만에 가득 차 있는 시기를 보내고 있는 요즘이지만, 이 역시 100년 전 어떤 여성도 누리지 못한 여유와 자유였으리라. 지금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어려운 책 한 권을 읽어냈다. 불과 100년 전 소설과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를 돌아보며 지금의 우리를 이해할 수 없는 100년 후 사람들의 모습이 문득 그려졌다. 100년 전 소설 속에 등장하는 모습들이 옳지 않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어떤 기준으로 지금이 옳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과연 잘 가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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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고 또 읽기/문학2019. 11. 23. 21:34




[2019-68 / 한국소설] 빛의 과거. 은희경. 문학과 지성사. (2019)

어느 순간 나는 그녀에게서 나의 또 다른 생의 긴 알리바이를 보았던 것이다. (13)

혼자라는 건 어떤 공간을 혼자 차지하는 게 아니라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익명으로 존재하는 시간을 뜻하는 거였다. (84)

그동안 자기 자리가 아닌 곳에 가지 않고 모르는 것에 대해 말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왔던 오현수는 모르는 것이 거의 다라는 생각을 하나 더 보태게 되었다. 그녀에게는 그것이 다른 조건을 가진 삶에 대한 존중의 한 방식이었다. (264)

그녀는 깨어 있는 것과 행동하는 것 모두 중요하다고 말한 뒤 깨어난 사람은 누구나 행동해야 할 책임이 있으며 그 책임을 회피한다면 언제까지나 주인 된 세상에 살지 못하고 남의 세상에 억지로 적응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267)

우리가 아는 자신의 삶은 실제 우리가 산 삶과는 다르며 이제까지 우리 스스로에게 들려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334)

어차피 우리는 같은 시간 안에서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들이었고 우리에게 유성우의 밤은 같은 풍경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 책에서 말하듯 과거의 진실이 현재를 움직일 수도 있다. 과거의 내가 나 자신이 알고 있던 그 사람이 아니라면 현재의 나도 다른 사람일 수밖에 없다. (335)

문학소녀(?) 가 되고 싶던 20대 후반에 열심히 챙겨보던 은희경 작가가 신간을 냈다. 마지막으로 본 게 ‘새의 선물’,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이니 꽤 오랜만이다. 한동안 소설 같은 걸 읽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사실 그런 건 나 하기 나름인데.. 사실 소설을 멀리했던 건 핑계다. 열심히 먹고사는 사람 코스프레가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아무튼 무슨 바람이 불어 은희경 작가의 신작을 만났다. 인물 심리묘사가 가득한 여성여성한 감정을 건드리는 내 기억 속 은희경 그대로다. 기숙사 같은 건 살아본 적도 없고, 70년대에 대학을 다니지도 않았지만, 작품 속 등장인물이 된 듯 소설에 푹 빠져 읽었다. 은희경 작가의 실제 이야기인지 내 이야기인지 소설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푹 빠져들었다. 등장인물 이동휘의 마음이 궁금해서 ‘좁은 문’을 읽기 시작했다. 내 취향은 제롬보단 이동휘지만.

한없이 철없고 부족하고 어쩔 수 없이 맑은 청춘 나의 이십 대 초반이 떠올랐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삶에 찌든 지금이 오버랩되었고. 건조한 가장의 무게만 가득한 내게도 여성스러운 감성이 아직 남아있다는 걸 되새기게 해준 ‘빛의 과거’, 참 좋았다. 역시 은희경. 대세 김금희보단 은희경의 연륜과 탄탄함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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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고 또 읽기/문학2019. 10. 27. 14:56




[2019-66 / 소설. 독일 고전] 수레바퀴 아래서. 헤르만 헤세. 이은경 옮김. 아이템 비즈. (2019)

헤르만 헤세의 저서 ‘데미안’을 두세 번 정도 읽다가 포기했던 적이 있다. ‘절망 독서’, ‘시 읽는 엄마’ 등의 몇몇 책에서 헤세의 시를 인용한 구절을 만난 적이 있지만, 고전은 어려울 것 같은 부담감으로 작가의 저서 한 권 전부를 읽을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우연한 기회로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게 되었다.

1892년 신학교에서 도망쳤다가 붙잡혀 처벌을 받고 우울증을 앓는 등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자전적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는 19세기 말 독일 교육체계를 배경으로 하여 학교 비판의 맥락에서 쓰인 교육소설이다. 기숙학교에서 벌어지는 일들, 청소년 자살 등의 사회문제를 담고 있어 당시 사회상을 엿볼 수 있고, 불안한 청소년기 학생들의 마음을 담은 성장 소설이기도 하다. 책의 제목에도 등장하는 ‘수레바퀴 아래~’가 나온 구절을 3번 정도 읽었다. 수레바퀴가 어떤 의미인지 강렬하게 와 닿진 않지만, 돌아가는 바퀴 아래로 깔리지 않게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로 안타까움과 답답함이 느껴졌다.

이 책에서 특히 좋았던 점은 7장으로 나뉜 각 장의 구분이 적절하다는 점이다. 읽기 학습하기에 딱 적당한 내용으로 구분되어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1장은 배경 설명과 신학교 시험을 치르고 온 주인공, 2장은 고향에서 즐거운 한때, 3장은 수도원 생활, 4장은 위기, 5장은 고향으로 돌아온 한스, 6장은 이성에 눈뜬 한스, 7장은 사회생활을 시작한 한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각 장마다 세월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헤세(작가)의 시선인지, 한스(주인공)의 관심인지, 둘 다인지 모르지만, 독자로서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음에도 머릿속에 그려지는 묘사가 특히 좋았다. 헤세의 글에서 느껴지듯 자연과 유유자적을 사랑하던 주인공 한스 기벤트는 정체성을 찾기 이전 주위 어른들의 기대와 강압에 눌려 아름다운 꽃을 미처 피우지 못하고 꺾여버렸지만, 저자인 헤르만 헤세는 위대한 문학가로 살아남아 다행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영혼을 더럽히는 것보다는 차라리 육체를 썩히는 게 더 낫다. 너는 장차 목사가 될 사람이야. 목사가 된다는 건 참으로 힘든 일이지. 평범한 사람들과는 달라야 한다. 아마 너는 틀림없이 훌륭한 목사가 될 거야. 너를 위해 기도 하마. (77)

주인공 한스를 향한 어른들의 강요와 억압적 시선은 21세기를 사는 성인인 내가 읽는 것만으로도 답답하다.

곱씹을 거리를 만들어주는 고전의 재미를 새삼 느낄 수 있었던 읽기 어렵지 않고 적당한 무게를 지닌 소설이다.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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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고 또 읽기/문학2019. 10. 17. 12:30




[2019-65 / 소설. 한국소설] 오직 한 사람의 차지. 김금희. 문학동네. (2019)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붙드는 일, 삶에서 우리가 마음이 상해가며 할 일은 오직 그뿐이다.

“오직 한 사람의 차지, 작가의 말” 중에서


금희 님 금희 언니 등등 더욱 친근한 호칭으로 김금희 작가를 유난스럽게 좋아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 적이 있다. 요즘 책 좀 읽는 사람들 사이에서 김금희를 모르면 간첩(?)일 정도로 절대 모를 수가 없는 김금희. 대체 김금희 표 소설의 매력이 무엇이길래 아이돌 가수를 좋아하는 여고생처럼 강렬한 팬층이 형성되어 있는지 궁금했지만, 굳이 일부러 찾아보고 싶진 않았다. 모두가 좋아하는 걸 나까지 관심 가져야 하나 싶은 생각에 소설, 영화, 드라마 등 남들이 보편적으로 좋아하는 건 피하는 평범치 않은 취향 덕분이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김금희 작가의 단편 소설집을 읽게 되었고 나쁘지 않았다. 어떤 매력 덕분에 광팬이 생겨났는지, 왜들 그렇게 좋아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속을 파헤치거나 날카롭지 않은 적당한 깊이의 섬세한 묘사가 특히 좋았다. 작가는 나만 알고 있는 우리 가정의 문제점을 알고 있었다. 자료조사를 한 건지, 작가만의 관찰력인지, 김금희 작가도 가정사에 소소한 문제를 겪은 건지 우리 집 안 사람들 소통의 한계로 느꼈던 일상 속 소소한 이야기들을 작가의 언어로 매끄럽게 정리된 글을 읽으니 비단 우리 가족만의 상처가 아님을 알게 되면서 가벼워졌다.

요즘 유행하듯 인기를 얻고 있는 소설 중에는 자극적인 소재나 주제를 다룬 글이 종종 있는데 나는 그쪽은 영 별로라 쥐어짜는 식의 글은 피하곤 한다. 삶도 팍팍한데 일부러 힘듦을 찾아다니기 싫기 때문이다. 김금희의 글은 그렇게 힘겹지도 거북하지도 않으면서 적당한 노련미가 느껴진다. 감당할 수 있는 감정선 언저리에 왔다 갔다 해서 좋았다. 하지만 끝이 나지 않는 길고 긴 문장은 조금 불편했다. 끝도 없는 미사여구를 붙여도 어색하지 않은 문맥을 만들 수 있는 작가의 노련미가 느껴지는 부분이지만, 어렵고 버겁고 숨이 찼다. 그런 부분들은 스킵하고 지나가면 그뿐이니까 소설 한 편 읽는 데엔 큰 지장이 없지만, 나 말고 대부분의 사람(특히 감수성이 섬세한 여성 독자)에게는 큰 강점으로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청년이 그렇게 물었을 때 K는 비닐봉지를 들고 올랐던 아파트의 그 경사진 언덕과 엄마가 야무지게 싸매어놓았던 그 일용할 음식들과 엄마는 그것이 습관이 되어 요즘도 장을 볼 때 그렇게 꽁꽁 묶어, 바코드를 찍어야 하는 캐셔가 다시 그것을 하나하나 풀 게 되는데 열한 살의 어느 날 그가 정문을 빠져나갈 때 마지막까지 그렇게 최선을 다해 작은 몸을 흔들었던 한 아이와, 자기가 픽션으로 쓰지 않았던 죽음, 견디고 살아내지 못했던 그 불행한 가족의 얼굴을 아주 오랜만에 어떤 공포도 거부감도 없이 다만 안타까움을 느끼며 떠올렸으나 실제로 귀 기울인 것은 아직 술꾼들이 다 떠나지 않은 야간시장의 포장마차에서 들려오는 둠둠바, 둠둠바, 하는 디스코 음악이었다.

“오직 한 사람의 차지, 쇼퍼, 미스터리, 픽션” 중에서


‘오직 한 사람의 차지’는 2016~2018년까지 2년 동안 쓴 단편 소설을 묶어 발간한 책이다. 나처럼 김금희를 처음 만나는 사람이나 소설에 익숙지 않은 사람도 부담스럽지 않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과한 건 부담스럽고 적당한 재미난 걸 읽고 싶다면 추천.

인생이란 열기구와 같아서 감상을 얼마나 재빨리 버리느냐에 따라 안정된 기류를 탈 수 있다고.

송은 희극배우가 확실히 나쁘다고 생각했다. 왜 나쁘냐면 지운 흔적이 없기 때문이다. 뭔가 옛일을 완전히 매듭짓고 끝내고 다음의 날들로 옮겨온 흔적이 없었다. 그의 날들은 그냥 과거와 과거가 이어져서 과거의 나쁨이 오늘의 나쁨으로 이어지고 그 나쁨이 계속되고 계속되는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그는 어떤 선택을 하든지 어차피 나빠질 운명인 것이다. 선택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 실패가 선택되는 것이다.

“오직 한 사람의 차지, 문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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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56/ 소설. 호러소설] 한밤중에 나 홀로. 전건우. 북오션. (2019)

무덥고 무기력한 여름밤엔 아무래도 호러소설이 제격이다. 2년 전 교토를 배경으로 쓰여진 야행(예담, 2017)을 읽으며 보낸 여름밤이 좋아서 올해 여름도 일부러 공포 소설을 찾았다. ‘한밤중에 나 홀로’는 냉면(안전가옥, 2019)에서 알게 된 전건우 작가의 호러 단편소설 신작이다. 호러소설은 여름과 궁합이 좋다. 긴 것보단 단편이 좋고, 직접적인 것보단 엉뚱하고 열린 결말처럼 유연한 게 좋다. 이미 가을이 성큼 다가와 있지만, 전작에 대한 믿음(?)으로 시작한 도전은 꽤 괜찮았다.

소설 자체를 즐기지 않고, 장르 소설도 익숙하지 않지만 몇 권 읽다 보니 나름의 재미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특히 이 책은 과격한 호러가 아니어서 나 같은 초보자가 읽기에 부담이 없었다. 써야 하는 독서 노트에 밀려 읽은 지 한참 지난 후의 기록이라 전반적인 내용이 가물가물하지만, 한동안 가방 속엔 늘 이 책이 있었다. 밤에 읽긴 무서워서 출퇴근길 이동 중에 한참 동안 함께 했다. 하루에 한 편씩 약 일주일 동안 이동길이 덥지 않았다.

냉면(안전가옥, 2019) 덕분에 인스타 인친이된 저자는 밝고 가벼운 무게의 로맨틱 소설 같은 걸 쓸 것 같은 꽤 편안한 인상이던데 이런 장르 소설 작가라니. 역시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평가해선 안 되는 거다. 내겐 일탈 같은 장르 문학, 저자의 다음 작품도 궁금하다. 내년 여름을 기약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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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고 또 읽기/문학2019. 7. 28. 12:37






[완독 2019-49/ 문학. 일본문학] 마음. 나스메 소세키. 송태욱 옮김. 현암사. (2016)

나는 처음부터 선생님에게는 다가가기 힘든 신비함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어떻게든 다가가지 않을 수 없다는 느낌이 어딘가에서 강하게 작동했다. 선생님에게 이런 느낌을 가진 사람은 많은 사람들 중에 어쩌면 나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직감이 나중에 나에게만은 사실로 입증되었기 때문에 나는 너무 어리다는 말을 들어도, 바보 같다는 비웃음을 당해도, 아무튼 그것을 내다본 자신의 직감을 미덥고 기쁘게 생각한다.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 그러면서도 자신의 품으로 들어오려는 사람을 손을 벌려 안아줄 수 없는 사람, 그가 바로 선생님이었다. (29)

작년 여름 2018 서울국제도서전 현암사 부스에서 나스메 소세키 전집을 알게 되었고, 눈여겨보다가 올해 여름 문득 읽게 되었다. ‘마음’이라는 단어가 품는 느낌에 끌렸고, 제목과 잘 어울리는 내용의 책이었다. 마음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상)는 선생님과 나, 2부(중)는 부모님과 나, 3부(하)는 선생님과 유서이다. 1, 2부는 나의 시선으로, 3부는 선생님의 시선으로 쓰여있다. 왠지 모르게 비밀스러우며 매력이 느껴지는 선생님, 그리고 그런 선생님과 아버지의 모습을 비교하는 이야기가 화자의 일방적인 시선으로 쓰여져 있다. 3부에서는 그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선생님의 속 이야기를 꺼내지만, 그 부분 역시 선생님의 생각이나 판단일 뿐, 선생님과 관계한 사람들이 직접 무언가를 전달한 건 아니다. 내가 그 사람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의 마음 전부를 알 수 없을 텐데.

책을 읽으며 느껴지는 기분은 화자의 생각일 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신의 심정이나 생각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쉽게 읽히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특히 3부에서는 선생님이 꺼내놓은 글이 잘 읽히지 않아 - 선생님의 마음일 뿐, 독자인 나의 마음과 다르니까 감정 이입이 되지 않아서- 몇 번 씩 되뇌며 읽어냈다. 그런데도 계속 생각을 곱씹게 되는 것이 나쓰미 소세키라는 사람의 글의 매력인 것 같다. 좋은 책을 혼자서 읽고 끝나는 게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읽고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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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고 또 읽기/문학2019. 7. 21. 15:20



[완독 2019-47 / 소설, 스릴러 소설] 죽여 마땅한 사람들. 피터 스완슨. 노진선 옮김. 푸른 숲. (2016)

모임 도서여서 읽기 시작한 책. 이런 장르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아 나의 의지로는 거들떠보지도 않을 종류의 책을 읽는다는 건 한편으론 스트레스지만, 읽고 나면 색다른 뿌듯함이 있다.

우연히 비행기 옆자리에서 만난 사람과의 대화로 시작되는 ‘죽여 마땅한 사람들’을 읽으며 예전에 읽었던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청미래, 2002)가 문득 오버랩되었다. 비행기 옆좌석 사람과 살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이게 무슨 헛소리? 말도 안 되는 이야기 자체가 흥미롭지 않았고, 화자의 시선이 바뀔 때마다 전환되는 시점과 이야기의 변화도 정신없었다.

하지만, 첫인상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는 법. 이 책도 마찬가지다. 1/2 정도 책장을 넘기니 왜 이렇게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가 엉켜있는지, 왜 그렇게 정신없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야기를 풀어나갔는지, 남은 절반은 다음 장이 궁금해서 앉은자리에서 곧바로 읽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진짜로 이런 일이 존재할 수 있을까? 무엇이 그들을 본인이 다른 누군가를 ‘죽여’ 마땅하다고 생각하도록 만들었을까? 소설 ‘안나 카레니나’(문학동네, 2009)의 안나를 보는 것 같았다. 자기 의지로 절망 속으로 인생을 몰아가는 주인공들이 안타까웠고, 그렇게 살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너무나도 도덕적이며 정석적인- 나는 절대 저지를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소설이 짜릿했다. 무더운 여름날 아찔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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