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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56/ 소설. 호러소설] 한밤중에 나 홀로. 전건우. 북오션. (2019)

무덥고 무기력한 여름밤엔 아무래도 호러소설이 제격이다. 2년 전 교토를 배경으로 쓰여진 야행(예담, 2017)을 읽으며 보낸 여름밤이 좋아서 올해 여름도 일부러 공포 소설을 찾았다. ‘한밤중에 나 홀로’는 냉면(안전가옥, 2019)에서 알게 된 전건우 작가의 호러 단편소설 신작이다. 호러소설은 여름과 궁합이 좋다. 긴 것보단 단편이 좋고, 직접적인 것보단 엉뚱하고 열린 결말처럼 유연한 게 좋다. 이미 가을이 성큼 다가와 있지만, 전작에 대한 믿음(?)으로 시작한 도전은 꽤 괜찮았다.

소설 자체를 즐기지 않고, 장르 소설도 익숙하지 않지만 몇 권 읽다 보니 나름의 재미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특히 이 책은 과격한 호러가 아니어서 나 같은 초보자가 읽기에 부담이 없었다. 써야 하는 독서 노트에 밀려 읽은 지 한참 지난 후의 기록이라 전반적인 내용이 가물가물하지만, 한동안 가방 속엔 늘 이 책이 있었다. 밤에 읽긴 무서워서 출퇴근길 이동 중에 한참 동안 함께 했다. 하루에 한 편씩 약 일주일 동안 이동길이 덥지 않았다.

냉면(안전가옥, 2019) 덕분에 인스타 인친이된 저자는 밝고 가벼운 무게의 로맨틱 소설 같은 걸 쓸 것 같은 꽤 편안한 인상이던데 이런 장르 소설 작가라니. 역시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평가해선 안 되는 거다. 내겐 일탈 같은 장르 문학, 저자의 다음 작품도 궁금하다. 내년 여름을 기약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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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2019-49/ 문학. 일본문학] 마음. 나스메 소세키. 송태욱 옮김. 현암사. (2016)

나는 처음부터 선생님에게는 다가가기 힘든 신비함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어떻게든 다가가지 않을 수 없다는 느낌이 어딘가에서 강하게 작동했다. 선생님에게 이런 느낌을 가진 사람은 많은 사람들 중에 어쩌면 나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직감이 나중에 나에게만은 사실로 입증되었기 때문에 나는 너무 어리다는 말을 들어도, 바보 같다는 비웃음을 당해도, 아무튼 그것을 내다본 자신의 직감을 미덥고 기쁘게 생각한다.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 그러면서도 자신의 품으로 들어오려는 사람을 손을 벌려 안아줄 수 없는 사람, 그가 바로 선생님이었다. (29)

작년 여름 2018 서울국제도서전 현암사 부스에서 나스메 소세키 전집을 알게 되었고, 눈여겨보다가 올해 여름 문득 읽게 되었다. ‘마음’이라는 단어가 품는 느낌에 끌렸고, 제목과 잘 어울리는 내용의 책이었다. 마음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상)는 선생님과 나, 2부(중)는 부모님과 나, 3부(하)는 선생님과 유서이다. 1, 2부는 나의 시선으로, 3부는 선생님의 시선으로 쓰여있다. 왠지 모르게 비밀스러우며 매력이 느껴지는 선생님, 그리고 그런 선생님과 아버지의 모습을 비교하는 이야기가 화자의 일방적인 시선으로 쓰여져 있다. 3부에서는 그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선생님의 속 이야기를 꺼내지만, 그 부분 역시 선생님의 생각이나 판단일 뿐, 선생님과 관계한 사람들이 직접 무언가를 전달한 건 아니다. 내가 그 사람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의 마음 전부를 알 수 없을 텐데.

책을 읽으며 느껴지는 기분은 화자의 생각일 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신의 심정이나 생각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쉽게 읽히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특히 3부에서는 선생님이 꺼내놓은 글이 잘 읽히지 않아 - 선생님의 마음일 뿐, 독자인 나의 마음과 다르니까 감정 이입이 되지 않아서- 몇 번 씩 되뇌며 읽어냈다. 그런데도 계속 생각을 곱씹게 되는 것이 나쓰미 소세키라는 사람의 글의 매력인 것 같다. 좋은 책을 혼자서 읽고 끝나는 게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읽고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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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2019-47 / 소설, 스릴러 소설] 죽여 마땅한 사람들. 피터 스완슨. 노진선 옮김. 푸른 숲. (2016)

모임 도서여서 읽기 시작한 책. 이런 장르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아 나의 의지로는 거들떠보지도 않을 종류의 책을 읽는다는 건 한편으론 스트레스지만, 읽고 나면 색다른 뿌듯함이 있다.

우연히 비행기 옆자리에서 만난 사람과의 대화로 시작되는 ‘죽여 마땅한 사람들’을 읽으며 예전에 읽었던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청미래, 2002)가 문득 오버랩되었다. 비행기 옆좌석 사람과 살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이게 무슨 헛소리? 말도 안 되는 이야기 자체가 흥미롭지 않았고, 화자의 시선이 바뀔 때마다 전환되는 시점과 이야기의 변화도 정신없었다.

하지만, 첫인상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는 법. 이 책도 마찬가지다. 1/2 정도 책장을 넘기니 왜 이렇게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가 엉켜있는지, 왜 그렇게 정신없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야기를 풀어나갔는지, 남은 절반은 다음 장이 궁금해서 앉은자리에서 곧바로 읽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진짜로 이런 일이 존재할 수 있을까? 무엇이 그들을 본인이 다른 누군가를 ‘죽여’ 마땅하다고 생각하도록 만들었을까? 소설 ‘안나 카레니나’(문학동네, 2009)의 안나를 보는 것 같았다. 자기 의지로 절망 속으로 인생을 몰아가는 주인공들이 안타까웠고, 그렇게 살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너무나도 도덕적이며 정석적인- 나는 절대 저지를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소설이 짜릿했다. 무더운 여름날 아찔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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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2019-37 / 소설. 한국소설] 2019 제10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 문학동네. (2019)

2000년대 후반, 이상문학상 작품집이던가? 젊은 작가 수상 작품집에서 처절한 가난이 담긴 김애란의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너무 강렬한 그 느낌 덕분에 젊은 작가들의 수상작품집에 손이 가질 않는다. 수상한 작품들은 좀 더 자극적인 주제나 소재가 담겨있을 거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감정의 처절한 밑바닥을 굳이 들여다보고 싶지 않아서 피해왔다.

그리고 올해 십여 년 만에 수상작품집을 읽게 되었다. 안전 가옥 앤솔로지의 냉면(안전가옥, 2018)과 문학동네에서 매해 봄에 만들어내는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문학동네, 2019) 두 권을 읽었다. 십여년 전 강렬했던 첫 기억에 비하면 비교적 괜찮았다. (덜 괴로웠다) 그동안 나이가 들었기에 감정을 인정하고 극복할 수 있게 된 걸지도, 이제 이 정도는 견딜만한 내공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내겐 백수린의 시간의 궤적이 가장 좋았지만, 가장 강렬하면서도 흡입력이 좋았던 건 박상영의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이었다. 그래서 많은 작품 중에서 대상으로 뽑히지 않았을까. 정영수의 우리들, 이미상의 하긴은 불편한 감정이 들었고, 김희선의 공의 기원과 이주란의 넌 쉽게 말했지만은 잔잔하게 흘러가서인지 푹 빠지기 어려웠다.

백수린의 소설을 가장 재미있게 읽었지만, 나머지도 나쁘지 않았다. 처음 만난 2019년 제10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은 나쁘지 않았다. 내년 11회 작품집도 기대된다.


박상영의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은 상처가 가득한 상처에서 벗어나려 노력하지만, 자의와 타의에 의해 좌절하고 다시 또 살아가는 허무한 감정을 잘 보여준다. 화자가 누구인지 헷갈려 몇번이나 앞장을 다시 넘겨보았다. 동성애 소설일 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동성애에 대해 알지 못하므로 언급하긴 어렵고, 온전하지 못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의 불완전한 감정 표현을 세 명의 등장인물 모두에게서 느낄 수 있었다. 가정에서 어머니의 책임과 무게, 소중함을 느꼈다.

백수린의 시간의 궤적을 읽으며 또 다른 내 모습을 보는 듯이 몰입했다. 주인공 언니가 무덤덤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나 같았고, 그들이 함께 살아가며 겪는 단조로운 일상이 보편적인 것들이라 더 울림을 주었다. 큰 사건은 없었지만, 시시하지도 않았다. 작가의 다음 소설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뭐랄까, 거기엔 모든 것, 그러니까 그때까지 문명이 만들어낸 나쁜 것과 좋은 것들이 온통 한데 뒤섞여 있는 느낌이었다.”(143)김희선-작가 노트

소설 속에서 ‘나’는 끝내 사과를 하지 않는데, 그것은 ‘나’가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히 더 나빠서라거나, 더 비겁해서는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받은 상처에 대해서는 호들갑을 떨며 아파하면서도 타인의 상처에는 태연한 얼굴로 손가락을 들이미는 그런 존재들이니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점점 더 참혹해져서, 안간힘을 써봤자 모든 것의 끝에는 결국 후회와 환멸, 적의나 허무만이 남을 것만 같다는 두려움을 안고 사는 존재들이니까. 하지만 시간이 드러내는 진실이 그토록 하찮은 것뿐일지라도, 우리가 서로 사랑했던 순간들, 온기를 나눴던 순간들, 타인의 입장이 되어 “그 사람, 그런 사람 아니거든요?”라고 말해주던 순간들마저 온통 거짓은 아닐 것이다. (184)백수린-작가 노트

우리의 삶은 동경하는 일의 아름다움과 그로부터 도래할 불안을 감내하고 마주하는 용기로 이루어진다. (191)선우은실

이곳에 온 다음 날, 나는 올해의 첫 매미 울음소리를 들었었다. 그렇게 6월이 갔고 7월이 가고 있다. 하루하루가 가고 있다는 것,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아주 잘 느끼고 있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숨을 쉬는 일은 재미있고 행복하다. (196)이주란-넌 쉽게 말했지만

모든 것이 끝난 뒤에 그것을 복기하는 일은 과거를 기억하거나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재해석하고 재창조하는 일이니까. 그것은 과거를 다시 경험하는 것이 아닌 과거를 새로 살아내는 것과 같은 일이니까. 그러나 읽을 사람이 아무도 없는 글을 쓰는 것은 생각보다 고독한 일이다. 그래서 어느 날 나는 글을 쓰다가 어쩌면 내가 영원히 혼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그게 문득 참을 수 없이 두려워졌다. (264)정영수-우리들

사랑에서 애걸로 되는 건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하지만 그건 과연 유의미한 변화인 것일까? 무의미한 변화는 없었던 것인가? 돌이킬 수 없는 변화만이 유의미한 것인가? 아는 것과 변하는 것은 얼마나 어떻게 다른가? 기억의 열람만이 가능할 뿐이라면 무엇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겠는가? (305)김봉곤-데이 포 나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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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2019- 29 / 소설, 한국소설] 냉면. 안전가옥 앤솔로지 1. 김유리. 범유진. Dcdc. 전건우. 곽재식. 안전가옥. (2019)

장르문학을 응원하고 창작자와 협업, 지원하는 안전가옥. 지인을 통해 알게 된 성수동의 핫플레이스 안전가옥은 관계자(?)를 위한 공간도 있지만, 수다 없이 고요히 책 읽기를 원하는 보통 사람들에게도 꽤 쾌적하고 아늑한 공간이다. 소나기가 내리던 지난여름 어느 날, 지붕 위에 투두둑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고즈넉한 분위기에서 책을 읽으며 낭만적인 한 때를 보낸 적이 있다. 커피 전문점이 아닌데 커피 맛도 제법 괜찮아서 많이도 찾아다녔다. 월요일을 제외한 모든 날 11시부터 11시까지 영업을 하니, 퇴근이 늦은 나도 저녁 늦게까지 즐길 수 있는 아지트가 되었다. 그런 안전 가옥 앤솔로지를 선물 받아 읽게 된다니, 영광이다.

앤솔로지는 하나의 주제로 쓰인 여러 명의 작품을 묶은 것이다. 안전가옥 스토리 공모전 수상작품 집 ‘냉면’. 단편 소설이라 두께의 부담도 적고, 작가별로 냉면이라는 소재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흥미로웠다.

김유리 작가의 ‘a, b, c, a, a, a’는 안전가옥의 냉면 앤솔로지 첫 작품으로 안성맞춤이었다. 냉면 이야기가 아닌 듯 냉면 이야기로 이어지는 이 소설은 평소 소설을 즐기지 못하는 내가 읽기에도 달달하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작가 김유리는 십수 년 전 재미나게 읽고 보았던 <옥탑방 고양이>의 저자이기도 하다. 정확히 내용인지 기억나진 않지만, 고 정다빈과 이현우의 약간 어설프고 생기발랄한 장면이 문득 생각났다. 오래전 좋아하던 친구를 우연히 만난 기분이 든다. 십수 년 동안 적당히 농익은(?) 글에 연륜이 느껴졌다.

범유진 작가의 ‘혼종의 중화냉면’은 첫 소설에 비해 읽는 진도가 더디었다. 그도 그럴 것이 원래 나라는 사람이 원체 소설을 즐기지 못하기도 하고, 첫 소설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쉽게 읽혔던 것에 비해 ‘혼종의 중화냉면’은 어떤 무게 같은 게 느껴져 술술 넘겨버리면 안 될 것 같았다. 중국식 냉면을 먹어본 적이 있다. 슴슴한 평양냉면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화려한 중국식 냉면이 과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맛도 재료도 기름진 무게도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느껴 딱 한 번 먹어보고 그 후로 도전해본 적이 없다. 작가 범유진은 중화냉면이 가진 아리송한 무게를 ‘혼종(잡종, 혼혈)’으로 풀어냈다. 섬세한 글쟁이만이 풀어낼 수 있는 비유가 멋지게 느껴졌다.

Dcdc의 ‘남극낭만담’은 냉면 앤솔로지 중 내게 가장 충격적인 소설이면서 장르문학의 개성을 확 느낄 수 있는 sf 소설이다. 평소 ‘장르문학’이 뜻하는 게 무언지 궁금했는데, 남극낭만담을 읽으며 이런 게 ‘장르’라는 걸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일반인에게 미지의 공간 남극이라는 공간 자체가 주는 낯섦과 설렘, 학문적이며 사실적인 설명과 묘사, 등장인물로 정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허구일 텐데. 살벌하지만 한 번쯤 맛보고 싶은 냉면이다.

초대작인 전건우의 목련 면옥은 수상작이 아니라 초대작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어서인지, 안전가옥 앤솔로지의 무게 중심을 담당하고 있는 듯 이전 세편의 글보다 단단하고 묵직함이 느껴졌다. 평소 밍밍하고 슴슴한 평양냉면을 즐겨 먹는다. 자극적인 맛있는 맛도 아닌데 대체 뭐가 들어있길래 많은 사람이 좋아할까 궁금하던 적이 있다.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면 누구든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초대작인 곽재식의 하와이안 파인애플 냉면은 소재가 냉면일 뿐, 흥미로운 단편소설이다. 다른 이야기도 마찬가지였지만, ‘하와이안 파인애플 냉면’은 기발하게 재미있다. 있을법한 등장인물, 있을법한 상황과 전개가 짧지만 강렬하게 느껴졌다.

더위가 시작되는 요즘 같은 시기에 적당히 즐길 거리가 필요하다면 ‘냉면’ 책을 추천한다. 단편이라 부담스럽지도 않고, 5가지 소설이 조화롭게 어울려 나의 식욕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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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2019-7 / 고전, 서양 현대고전]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이미애 옮김. 민음사. (2016)

책장을 덮으며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후련함이다. 꽤나 힘겹게 완독 한 이 책은 ‘로맹 가리(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과 늘 헷갈리던 제목, -그리고 이젠 헷갈리지 않을-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다. 얇은 두께인데도 쉽지 않았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 깊게 공감하지 못했다. 수년 전 읽었던 ‘서재 결혼시키기(지호, 2002)’가 생각났다. 좋은 책인 것은 분명한데 저자가 이야기하는 작가와 책에 대한 나의 배경지식이 부족했다. 문맥상 어떠하리라 추측할 수 있었지만, 진정으로 공감할 수는 없었다. 수박 겉핥기에 그쳐 깊게 몰입할 수 없었다. 나의 독서력을 조금 쌓은 후에 다시 보면 다르게 느끼려나.

둘째,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 책 읽는 시기가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요즘은 책 읽기도 쓰기도 다른 무엇도 깊게 몰입하질 못한다. 그래서 자꾸 멈추고, 다시 책장을 열고 반복되는 시간이 쌓이며 재미도 시들해졌다.

셋째, 페미니즘적 사고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나는 그저 개인주의적 사람이었다. 중성적 사고방식을 가진 조금 다른 사람일 뿐이었다. 페미니즘을 논하기엔 나의 지식이 적다. 21세기에 내가 누리는 것은 이전 시대의 여성들은 결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들이다. 이전 시대 성역할이나 평등 같은 건 나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단지 내가 누려야 할 성평등에 관심 있었을 뿐.

나의 무지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좋은 책이다. 2019년에 살면서 적절한 수입과 나만의 방을 가진 지금 이 시간에 감사함을 느낀다. 모든 여성에게 자기만의 방과 연간 500파운드가 보장되기를.


저녁식사를 잘하지 못하면 사색을 잘할 수 없고 사랑도 잘할 수 없으며 잠도 잘 오지 않습니다. (38)

16세기에 시적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여성은 스스로에 대한 투쟁을 벌여야 하는 불행한 여성이었을 겁니다. 그녀의 삶의 모든 조건과 그녀의 모든 본능은, 두뇌에 간과된 그 무엇이든 자유롭게 풀어놓기 위해 필요한 마음 상태에 적대적이었을 겁니다.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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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2019-5 / 소설, 중남미소설] 백 년의 고독 2. 가르시아 마르케스. 조구호 옮김. 민음사. (2000)

두 번째로 읽은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이자, 두 번째로 읽은 노벨 문학상 수상작이자, 두 번째로 읽은 라틴아메리카 작가의 책이다. (첫 번째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은 안나 카레니나(민음사, 2009)였고, 첫 번째로 읽은 노벨 문학상 수상작은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있는 나날’(민음사, 2010)이며, 첫 번째 라틴아메리카 작가의 책은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다산책방, 2017)’이다. -Tmi)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1927년 콜롬비아의 아라까따까에서 태어나 콜롬비아 대학에서 법률 공부를 하다가 정치적 혼란 속에서 대학을 중퇴하고, 기자 생활을 한다. 1954년 특파원으로 파견된 로마에서 본국의 정치적 부패와 혼란을 비판하는 칼럼을 쓴 계기로 파리, 뉴욕, 바르셀로나, 멕시코 등지로 떠돌며 유배 아닌 유배 생활을 했다. 그 사이 여러 책을 발표했고 1982년 ‘백 년의 고독’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 라틴아메리카 대륙이 겪어야 했던 역사의 ‘리얼리티’와 원시 토착 신화의 마술 같은 ‘상상력’을 결합하여 새로운 소설 미학을 일구어낸 작가에게 세계의 문인들은 ‘마술적 리얼리즘의 창시자’라는 헌사를 바쳤다. ‘백 년의 고독’은 시한부 선고를 받은 소설이란 장르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으며, 문학이 21세기에 다시 소생하는 것을 예비하는 작품이다. (책날개 참고)

비교적 빠른 시간 동안 읽었던 1권(약 2주)에 비해 책장을 넘기기가 힘들었던 2권(2주, 기간은 같지만 몰입한 시간의 깊이가 달랐다). 알 수 없이 반복되는 부엔디아 집안사람들의 무기력과 허무함, 무모함 때문이었다. 불편한 마음이 드는 부분도 많았지만, 책 마무리에 ‘마꼰도와 라틴 아메리카의 고독에 대한 탐구’를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힘겹게 넘겼던 책장을 덮을 수 있었다. 여러 시간대를 넘나드는 작가의 서술방식 덕분에 집중하지 않으면 이야기의 흐름을 놓치기 쉬워 책 맨 앞에 있던 가계도를 따로 적어두고 틈틈이 살펴보았다. 마지막 20장을 읽을 때 몰입도는 첫 장을 넘길 때와 비슷한 에너지였고, 왜 그렇게 시대를 넘나드는 복잡한 서술 구조를 사용하였는지 이해가 되면서 소름이 돋았다.

지금 이 시대를 사는 내가 이해하기 힘든 근친상간과 엄청난 성욕(?)을 지닌 부엔디아 가문의 남자들, 생존을 위한 능력치를 지닌 여자들, 그들에게 일어난 허무맹랑한 이야기들. 작가와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 책의 깊이를 좀 더 느낄 수 있으려나. 이 책을 다 읽은 누군가와 대화하고 싶어졌다. 이런 마음 덕분에 수많은 책모임이 만들어지고 유지되고 있나 보다.



아우렐리아노 세군도는 마꼰도를 건설하기 위해 산맥을 넘었던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의 엄청난 과단성, 무익한 전쟁을 이끌어 갔던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의 맹목적인 자존심, 가문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한 우르술라의 무분별한 집요함을 지닌 채, 그렇게 단 한순간도 낙심하지 않고 페르난다를 찾아다녔다. (16)

그러나, 기적소리와 거친 숨소리로 인한 혼란으로부터 안정을 되찾은 주민들은 모두 길로 쏟아져 나와 기관차 위에서 손을 흔드는 아우렐리아노 뜨리스떼를 보았고, 예정보다 여덟 달이나 뒤늦게 마을에 처음으로 도착한, 꽃으로 장식된 기차를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많은 불안과 확신을, 많은 즐거움과 고난을, 많은 변화를, 재난을, 향수를 마꼰노에 실어날라야 했던 그 아무것도 모르는 노란 기차를. (36)

꿈을 꾸신 게 틀림없습니다. 마꼰도에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현재도 일어나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도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여긴 살기 좋은 마을입니다. (157)

그리고 어느 곳에 있든지 과거는 거짓이고, 추억은 되돌아오지 않는 것이고, 지난봄은 다시 찾을 수 없고, 아무리 격정적이고 집요한 사랑도 어찌 되었든 잠시의 진실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할 것을. (286)

가르시아 마르케스 자신이 ‘작가보다 마술사가 되고 싶었다’라고 했던 말은 그가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표현하기 위한 기재로 차용한 마술적 사실주의와 연관이 있을 법도 하다. 마술사처럼 하는 것, 즉 현실을 무한히 확대하고, 현실을 재해석하려는 그의 시도는 ‘백 년의 고독’에서 충분히 탐지되는데, 이 허구적 세계는 마치 창조주가 실제로 눈에 보이지 않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마술에 의해, 마술 속에서, 마술로부터 생성되고 파괴되고 있다. (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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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2019- 2 / 소설, 중남미소설] 백 년의 고독 1. 가르시아 마르케스. 조구호 옮김. 민음사. (2000)

읽기의 깊이를 넓혀야겠다고 생각하던 중 지인에게 고전 몇 권을 추천받았다. 그중 덜 부담스러울 것 같은 책을 골랐는데, 가장 난해한 작품을 골랐다는 이야기를 듣고 긴장하며 책장을 넘겼다. 하지만 재미있게 책장을 넘길 수 있었던 이 책, 백 년의 고독. 아직 1권을 읽었을 뿐이지만 이 책에서 느껴지는 특징은 시간이다. 부엔디아 가문에서 100년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 같은 이 책은 시간의 흐름이 왔다 갔다, 복잡한 가족사 전개도 왔다 갔다 하는 와중에 반복되는 강렬한 느낌은 어떠한 상황에도 가정을 지키려 무한으로 노력하는 강인한 여성, 전쟁이나 다른 무엇에 빠진 남성, 되풀이되는 이야기들이 어떠한 상징성을 지니는지, 콜롬비아에서 벌어졌거나 작가의 어떤 경험에서 나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뒷 내용이 궁금해 책장을 덮기 어려웠으니 재미있는 소설임은 분명하다. 소설이 힘든 내게 의미 있고 재미까지 있는 책을 권해준 지인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2권을 펼쳐야겠다.

저자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1927년 콜롬비아의 아라까따까에서 태어나 콜롬비아 대학에서 법률 공부를 하다가 정치적 혼란 속에서 대학을 중퇴하고, 기자 생활을 한다. 1954년 특파원으로 파견된 로마에서 본국의 정치적 부패와 혼란을 비판하는 칼럼을 쓴 계기로 파리, 뉴욕, 바르셀로나, 멕시코 등지로 떠돌며 유배 아닌 유배 생활을 했다. 그 사이 여러 책을 발표했고 1982년 ‘백 년의 고독’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 라틴아메리카 대륙이 겪어야 했던 역사의 ‘리얼리티’와 원시 토착 신화의 마술 같은 ‘상상력’을 결합하여 새로운 소설 미학을 일구어낸 작가에게 세계의 문인들은 ‘마술적 리얼리즘의 창시자’라는 헌사를 바쳤다. ‘백 년의 고독’은 시한부 선고를 받은 소설이란 장르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으며, 문학이 21세기에 다시 소생하는 것을 예비하는 작품이다. (책날개 참고)




“친구, 한 가지만 얘기해 주게, 자넨 왜 전쟁을 하고 있는가?”
“왜라니, 친구. 위대한 자유당을 위해서지” 헤리넬도 마르께스 대령이 대답했다.
“그걸 알다니 자넨 행복한 사람이군. 난 말이야, 자존심 때문에 싸우고 있다는 걸 이제야 겨우 깨닫게 되었네” 그가 말했다.
“그것 참 안됐군” 헤리넬도 마르께스 대령이 말했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친구의 놀란 표정이 재미있었다. “그래. 하지만 어찌 됐든, 왜 싸우는지도 모르는 것보다야 더 낫지”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 말했다. 그는 친구를 쳐다보다가 미소를 머금으며 덧붙였다.
“또 말이야, 자네처럼 그 누구에게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그 무엇을 위해 싸우는 것보단 더 낫지” (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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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134 / 소설. 영미 근대문학] 이성과 감성. 제인 오스틴. 김순영 옮김. 펭귄 클래식 코리아. (2015)





연애소설 같은 건 한가한 시간이 많은 사람의 놀잇거리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소설보다는 인문학이나 실용서를 즐겨왔다. 지금도 여전히. 학창시절 여고생이라면 한 번쯤 읽어봤을 법한 하이틴 로맨스 같은 책도 읽은 기억이 없다. 최근 쓰기와 읽기에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던 중,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제주도 서귀포 한경면에 위치한 무명서점에서 의미 있는 책 한 권을 샀다. 펭귄북스의 수석 북 디자이너인 코럴리 빅포드 스미스의 디자인으로 새롭게(!) 2015년에 선보인 ‘이성과 감성’은 책 등과 표지 디자인만으로도 ‘이거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영화 ‘비커밍 제인(2007)’을 통해 이 소설의 저자 제인 오스틴이 멋진 여성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정작 그녀의 소설을 읽은 적은 없다. 명성은 익히 들어왔기에 호감이었고, 표지는 당연하고 두께에 비해 가벼운 무게도 마음에 들었다. 2018년의 마지막 책으로 함께하기에 손색없을 것 같아 바로 읽기 시작한 이 책의 느낌은 ‘역시’이다.

이성적인 언니 엘리너와 감성적인 동생 메리엔을 둘러싼 연애 이야기. 작가는 이성과 감성 중 어느 편에 손을 들어줄지 궁금했다. 소설을 쉬이 읽지 못했던 지난 경험을 떠올려 등장인물의 관계도를 그려가면서 읽었더니 이해하기 쉬웠다. 지명을 종종 언급하는데, 영국 시골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어 지도를 검색하며 지역적 거리감이나 특성을 파악하려는 노력을 더 했더니 공감각적 이해가 더해졌다. 뒤로 갈수록 반전과 빠른 전개 덕분에 긴장을 놓을 수 없었고, 그래서 책을 덮는 순간까지 여운과 감탄을 담을 수 있었다.

작가는 이성과 감성 어느 한쪽에 편을 들어주었다기보다는 두 감정이 어떻게 조화롭게 연결되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 인과응보 권선징악을 좋아하는 내게도 불편함이 아닌 안정감을 주었다. 이 소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분위기는 가족 간의 사랑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서로를 위해 그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듯하게 풀어냈다. 대시우드 모녀, 특히 엘리너와 메리엔의 관계는 정말 이상적이다. 그렇게 다른데 서로를 이해하고 품어주는 관계가 과연 현실에도 존재할지 궁금할 정도이다. 다만 여주인공들의 나이가 10대 후반인데, 사춘기~청춘에 겪는 경험들을 10대가 훨씬 지난 나도 공감할 수 있었다는 점이 웃프다. 하지만 인간사가 다 그런 거니까, 10대에만 사랑하고 이별하는 감정을 경험하는 건 아니니까.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문제 상황을 어떻게 풀어가는지를 통해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책 속 등장인물들처럼 정답대로 나의 경험과 감정이 술술 풀리진 않겠지만, 각자의 사연을 알고 이해하면서 사람 사이의 거미줄 같은 관계의 깊이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18세기에 살던 여성의 책이 21세기에 사는 많은 사람에게 아직도 사랑을 받는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았다. 이렇게 양질의 소설을 읽다 보면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려나?

나의 2018년과 2019년을 이어준 ‘이성과 감성’. 시작과 끝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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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132 / 소설, 중국문학] 풍선인간. 찬호께이. 강초아 옮김. 한스미디어. (2018)

홍콩 여행을 준비하던 작년 이맘때 찬호께이의 ‘13.67(한스미디어, 2015)’에 대하여 알게 되었고 읽어보고 싶었지만, 소설에 대한 두려움과 책의 두께 덕분에 도전하지 못한 적이 있다. 지난주 산란하고 바쁜 시기에 우연히 도서관에 들러, 신간 코너에서 발견한 찬호께이의 ‘풍선인간’은 비교적 얇은 두께와 익숙한 이름 덕분에 선택되었다. 흡입력이 있는 짧고 쉬운 소설이어서 거부감 없이 몇 시간 만에 후딱 읽어버렸다. 평소 공포나 추리 같은 건 즐기지 않는 편인데 찬호께이의 ‘풍선인간’만큼은 잔인하거나 징그럽거나 부담스럽지 않았다. 왜냐하면, 주인공의 행위에 엄청난 악의가 담겨있거나 사회 이슈나 비판을 포함하지 않았고 비교적 가벼운(?) 짓이었기 때문이다. 작가가 말하는 ‘길티 플레저’, 잘못된 일인 줄 알면서도 즐거움을 느끼는 것, 잘못된 일이기에 나는 할 수 없지만, 간접경험 함으로써 쾌감을 느끼는 것. 요즘 관심 갖고 있는 영국 현대미술작가 아니 낙서쟁이 뱅크시의 행보를 응원하는 사람들도 같은 맥락이겠지.

‘나는 할 수 없지만, 너는 마음껏 해다 오. 내가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도록.’


올해에는 130여 권의 책을 읽었지만 기억에 남거나 감동적인 책이 딱히 없다. 시간과 마감에 쫓겨 읽은 책이 절반 이상이기도 하고 업무나 다른 일에 쫓기기도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의미 있는 독서의 기억을 떠올리자면 소설이나 고전에 대한 두려움을 줄이고 호기심을 키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내년엔 고전과 소설에 좀 더 도전해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만 2년 동안 여러 출판사의 서평단으로 활동하면서 다양한 장르의 책을 많이도 읽었다. 책을 통해 상식과 지식을 쌓을 수 있던 것은 좋았지만, 읽기 싫은 책을 억지로 읽느라 형식적인 읽기와 쓰기에 그친 적도 많았다. 내년 독서는 올해보다 발전된 방향으로 진화할 수 있기를. 내년엔 어떤 책과 만나 어떤 생각의 깊이를 키울 수 있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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