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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고 또 읽기/문학

[북 리뷰] 일의 기쁨과 슬픔. 장류진. 창비. (2019)

[2021-11 / 문학,한국단편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 장류진. 창비. (2019)

코로나덕분에 드라마 폐인이 되어버린 작년 어느 날 밤, 의미 없이 틀어놓은 텔레비전에서 인상적인 드라마 한 편을 만났다. 판교에 위치한 애플리케이션 개발회사의 이야기를 담은 내용이었는데, 내겐 당근마켓 같은 중고 거래 앱도 생소했고, 거북이알이라는 등장인물이 가진 에피소드도 충격적이라 한두 시간 정도의 짧은 단편 드라마였지만 여운이 남았다. 검색창에서 찾아보니 장류진의 소설이 원작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드라마만큼 원작도 재미있으리라, 그 인연으로 장류진 단편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을 찾아 읽게 되었다.

나는 책을 좋아한다는 지적 허영을 즐기는 사람이지만, 멍청한 편이며, 글솜씨도 보통일뿐더러 문해력도 별로다. 좋아하는 건 발 빠르게 눈치껏 이해한 척하지만, 관심 없는 분야엔 머리가 멈추는 듯 속도도 느려진다. 아닌 척 연기하며 살아왔지만, 나이가 들수록 내가 아는 것도, 가진 재주도 많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특히 소설 읽기가 어렵다. 손도 안 가고 진도도 안 나간다.

장류진 소설은 문해력이 좋지 않은 나 같은 사람도 쉽게 읽을 수 있다. 가독성도 좋고 어렵지도 않다. 외국 소설을 읽을 땐 등장인물의 이름이 꼬여 전개도를 그리지 않으면 헷갈리기 마련인데, 장류진의 이야기는 인물 숫자가 많지 않을뿐더러 내용도 현실적이며 담백해서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게다가 잔인하거나 공격적이지도 않고, 허무맹랑하지도 않은데 재미가 있다.

1986년생 작가 장류진은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했고, 직장생활을 하다가 한겨레문화센터에서 글쓰기 강의를 접했고, 그렇게 쓴 단편 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으로 창비 신인 소설 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책날개에 소개된 작가의 단아한 사진에서도 소설의 기운이 느껴진다. 비비 꼬여 마음을 후벼파는 자극적인 소재가 아니더라도 마음을 울리는 글이다.

이 책에 나온 모든 단편 하나하나에서 빛이 난다. 어딘가에서는 실제로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만큼 평범한 사건인데 분명 재밋거리가 담겨있다. 가장 몰입했던 건 마지막 ‘탐페레 공항’이다. 꿈이 있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주인공과 그 꿈을 꿈처럼 소중한 의미를 담아준 얀할아버지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건조하게 메마른 내 마음에 울림을 주었다.

소설이 어렵다고 느끼는 나 같은 사람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단편 소설집 한 권을 만났다. 덕분에 이제는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냐는 질문에 당당히 장류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작년 이맘때 읽었던 박민정의 ‘서독이모’도 꽤 좋았지만, 지금은 장류진이 더 좋다. 작가의 다음 이야기가 기대된다. 오랫동안 좋은 소설 많이 써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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