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일상

(90)
[일상] 이방인 ​ 이방인 여행이 좋은 이유는 낯선 공간에서 동떨어진 사람처럼 거리감을 두고 주변을 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평소 생활로는 절대 할 수 없는 것들. 끈끈하게 얽혀있고 속해있는 주변에서 잠시 멀리 떨어져 미술관 속 작품을 감상하듯 그것들을 구경하고 나면 낯선 이들의 모습을 통해 새로운 내가 보이기도 한다.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는지, 얼마나 힘겹게 살아왔는지. 해마다 한 두 번씩 여행을 꼭 챙겨가던 적이 있었다. 즐기기에, 충분한 휴가 기간이 주어졌고, 적당한 여유 자금도 있었고, 건강했고, 마음의 여유도 있었다. 말도 통하지 않는, 생전 가보지 않았던 곳으로 떠나 외로움을 오롯이 즐기며 시간을 보내며 여행지에서의 설렘도 좋았지만, 내가 속해있는 이곳이 얼마나 소중한 곳인가를 느끼며 돌아오곤 했다. 최..
[일상] 사기꾼 ​ 사기꾼 업무 능력이 뛰어나 ‘보이는’ 사람은 대략 사기꾼 기질이 다분하다. 남에게 사기를 쳐서 해를 입힐 정도로 과한 사기꾼이라기보다 자신의 업무나 배경 등을 과장하여 적당히 과시하는 정도, 그 정도로 당당하고 자신 있게, ‘나, 이만큼 잘 하고 있어’를 누군가에게 항상 어필하고 있는 사람들. 드러내지 않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도 얼마나 많은데, 마냥 재수 없고 시시하게 느껴지던 그 사람들이 요즘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도 능력이라면 능력, 그런 과시를 가진 사람들은 사업가 기질이 다분한 사람들이며, 대체로 돈을 쉽게 벌고, 돈을 다룰 줄 안다. 아니, 그보다는 돈을 쓰는 사람들의 마음을 다룰 줄 아는 것 같다. 얼마 전 지인과 나눈 대화에서 “네가 무얼 하고 있는지 내가 알고, 우리 모두가..
[일상] 커피 한 잔 ​ 오늘의 커피 : 빈브라더스 벨벳 화이트 아이돌 레드벨벳을 알고있기 때문인지, 하얀 신부 드레스 모습을 가진 빈브라더스의 시그니처 원두 벨벳 화이트를 화이트 벨벳으로 기억하다가 다시 찾아보니 벨벳 화이트. 벨벳 화이트나 화이트 벨벳이나, 자꾸 반복하니까 헷갈린다. 그거나 그거나. 라테와 어울리는 향과 맛이라던데, 적당한 아메리카노도 괜찮았다. 한동안 몸의 기운이 마비되어 커피를 즐기지 못하고 각성제로만 이용했는데 오늘 오랜만에 냉동실에 있던 원두를 꺼내어 쓱쓱 갈았다. 이 아이를 11월 초에 사 왔으니 벌써 반년 전이다. 반년 만에 세상에 나온 빈브라더스의 원두는 예전에도 느꼈지만 보통 알고 있는 크기에 비교해 작고 밝은 갈색을 띤다. 원두의 모양과 색이 맛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더 ..
[일상] 미완 ​ 미완 뭔가 깔끔한 끝맺음을 하고 싶은데 요즘의 나는 끝이 없는 굴레를 돌고 있다. 주말 동안 방 정리를 하려 마음먹었지만, 으슬으슬 찾아오는 몸살 기운으로 일찍 잠을 청해 다음 주로 미뤄졌고, 지난주까지 마감하려 했던 업무 자료도 끝을 맺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다. 매일 할 수 있는 만큼만 처리하고 나머지는 다음으로 넘겨버리는 이상한 굴레를 벗어나고 싶은데, 끝내고 싶은 의지보다 하고 싶지 않은 의지가 더 큰가 보다. 출근길 해야 할 일들 산더미 ‘투두리스트’를 떠올리며 곧바로 적어두는데 업무를 마무리할 시간이 되면 아무런 정리도 하지 못한 채 멍하게 퍼져있다가 정신만 챙겨 퇴근한다. 업무뿐 아니라 일상도 미완의 연속이지만 그나마 서평단 활동은 책 한 권을 다 읽고 느낌을 쓰고 완료 표시를 한다. 밑..
[일상] 첫 만남 ​ 첫 만남 2008년 8월 비 오는 주말 오후, 아마 셋째 주쯤 종각역 스타벅스. 두세 시쯤이었나, 커피숍에서 만나 커피를 마시다 자리를 옮겼는지 무얼 먹었었는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그 커피숍에 혼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던 사람이 몇 있었던 건 기억이 난다. '저 사람은 아니길, 저 사람이면 좋겠다' 둘 다 맞지 않았지만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던 그저 그랬던 그 날. 수많은 첫 만남 중에서 굳이 그날 그 사람과 첫 만남이 생각나는 이유는 10년이란 시간이 지나버려서일까. 기억을 손에 쥐지 않고 사는 요즘은 뭐든 기억해내기가 쉽지 않은데 그 사람에 대한 그리움은 여전히 남아있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람이라서일까, 만나지 못할 사람은 그 말고도 많은데 새삼 그를 다시 떠올리며..
[일상] 그리다 ​ 그리다 아침잠이 길어지면 으레 꿈을 꾼다. 예지몽 같은 게 아닌, 수면의 질이 얕은 상태에서 나타나는 의미 없는 꿈이지만 꿈 자체를 믿는 편인 나는 그 개꿈조차도 의미부여 하게 된다. 이상하고 찜찜했지만 조금 그리웠던 감정의 꿈을 꾸다가 잠시 깼다. 그러고 나서 다시 잠들어 새 꿈을 꾸었는데 그 내용이 참 현재 감정 상태를 반영한 듯 불안하기도 하고 변화가 필요하기도 한 요즘의 업무를 대하는 내 상태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었다. 당황스러운 그 상황에 한마디 말도 꺼내지 못한 채 그저 상황에 직면해 당황하던 꿈속 내 모습이 아쉽기도 하고, 진짜 그런 상황이 닥친다면 어떨까 철렁하기도 하고. 모든 상황을 내가 통제하고 싶은 얼토당토않은 이 마음은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원하는 대로만 살 수 없듯이 바라는..
[일상] 오늘도 ​ 오늘도 몸의 기운이 예전 같지 않다. 날씨 같은 자연의 미묘한 변화를 읽을 수 있을 만큼 맑은 기운을 가졌다고 생각해왔는데 요즘은 전혀 느낄 수 없다. 무언가로부터 오염된 것 같다. 이런 변화를 느끼며 오늘도 평소와 같은 하루를 시작한다. 몇 개월 전까지는 커피를 내리면서 명상 비슷한 걸 했었지만 요즘은 사과를 깎고 당근을 자른다. 아침에 먹는 사과가 우울한 마음을 내려놓는 데 도움이 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밤새 비가 왔는지 바깥이 촉촉이 젖어있다. 예전의 나라면 습도와 빗소리, 평소와 다른 분위기로 비의 기운을 느꼈을 텐데, 오늘은 직접 창밖을 본 후에야 알 수 있었다. 나만이 가진 무기라고 생각했는데 내 기운이 사라져가는 게 아쉽다. 맑은 기운을 끌어올릴 수는 없을까? 조금이라도 되찾고 싶..
[일상] 온도계 ​ 온도계 어릴 적 학교 앞에 있던 온도계와 방향계. 경비실보다 작은 나무집 같은 곳에 작은 울타리 속에 걸려있던 그 온도계. 과학실이나 어린이를 키우는 집이라면 늘 있던 그 온도계를 못 본 지 오래다. 요즘은 핸드폰이 만능이라 뭐든 그 안에 다 있으니까 쓰임을 갖고 있던 물건들이 사라지고 있다. 쓸모를 가진 물건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마치 나도 쓸모가 없어지면 사라져야 할까 봐, 내 존재와 겹쳐 별 것 아닌 온도계를 떠올리며 아쉬운 감정이 교차한다. 모든 만남과 헤어짐에 연연하지 않아야 하는데 하나하나 신경 쓰이는 걸 보니 나이 듦을 느낀다. 나이 들면 관심사가 넓어지는 건가, 걱정이 많아지는 건가. 뭐 하나 하려 하면 끊임없이 잔소리를 늘어놓으시는 할머니의 모습이 내게 보인다.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