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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

[일상] 이방인


이방인
여행이 좋은 이유는 낯선 공간에서 동떨어진 사람처럼 거리감을 두고 주변을 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평소 생활로는 절대 할 수 없는 것들. 끈끈하게 얽혀있고 속해있는 주변에서 잠시 멀리 떨어져 미술관 속 작품을 감상하듯 그것들을 구경하고 나면 낯선 이들의 모습을 통해 새로운 내가 보이기도 한다.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는지, 얼마나 힘겹게 살아왔는지.

해마다 한 두 번씩 여행을 꼭 챙겨가던 적이 있었다. 즐기기에, 충분한 휴가 기간이 주어졌고, 적당한 여유 자금도 있었고, 건강했고, 마음의 여유도 있었다. 말도 통하지 않는, 생전 가보지 않았던 곳으로 떠나 외로움을 오롯이 즐기며 시간을 보내며 여행지에서의 설렘도 좋았지만, 내가 속해있는 이곳이 얼마나 소중한 곳인가를 느끼며 돌아오곤 했다. 최근 몇 년은 긴 휴가를 낼 수 없는 마음의 여유 덕분에 짧게, 근교의 호텔로 재충전을 핑계로 돌아다니고 있지만, 예전만큼 설레지도 일상으로 복귀했을 때 만족스럽지도 않아 새로운 여행을 계획하기가 망설여진다.

그래서 올해엔 그나마 짧은 휴일을 긁어모아 일정을 계획 중이다. 오랜만에 비행기를 예약하고, 숙소를 알아보는 과정에 설렌다. 낯섦은 나를 긴장하게 하고 설레게 한다. 늘 그랬듯 잠깐 영어 공부에 빠져있을 테고, 여행지에서 사 온 원두를 마시며 그곳을 추억하게 되겠지. 이 여행을 다녀와서도 후련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어쩌지 하는 고민도 있지만, 그런 고민까지 하면서 나를 들들 볶지 말아야 한다. 이미 충분히 스트레스로 가득한 인생을 사는 중이니.

나 혼자 만들어낸 삶의 무게에 눌려 마음 한구석이 답답하다. 한 달 정도 일상에서 도망쳐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 내 인생이니까 내가 계획하고 만들어가기 나름이지만 미련한 책임감이 그럴 수 없게 만들었다. 큰 변화 없이 쳇바퀴 돌듯 돌아가는 하루하루가 좋지만 지치기도 한다.

뭐든 적당한 게 좋은 법. 낯섦과 익숙함을 적당히 섞어야 하는데 적당한 상태를 만드는 게 제일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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