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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미완 2 ​ 미완 “언니도 이제 늙었다.” 그녀는 이제 젊은 나이가 아니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국회도서관이 내 집인 듯 주말마다 출석하며 학구열을 불태우던 그녀는 어디에. 풀코스 마라톤을 준비하며 100일 계획을 세우던 그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 피부 유지의 비결을 물을 때 ‘물 많이 마시고 잠 푹 자면 되.’ 라고 말하던 그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젠 sk-2 피테라 에센스 같은 고가의 화장품과 매일 한 장씩 붙이는 팩 없이는 피부를 유지할 수 없다. 요즘 들어 부쩍 모공도 커지고 있다. 폭삭이란 말이 어울릴만큼 갑자기 ‘폭삭’ 늙어버렸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아직 괜찮은 나이인데. 또래보다 더 많은 업무에 짓눌리거나, 가정을 돌보거나 애를 키우지도 않는다. 그저 자기몸 하나 ..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2017) ​판타지의 거장 '기예르모 델 토로'의 새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미국과 소련이 서로의 과학 기술 발전을 견제하던 1950년대의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연구 대상 생물체의 출현, 성공의 욕망을 담은 사람들과 시대의 변화에 따르지 못한 사람들, 그리고 충실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 장애가 있지만, 자신의 삶에 충실한 여주인공 엘라이자. 등장인물 한 명 한 명 눈에 들어오지 않는 캐릭터가 없었다. 정밀하게 계산되어 딱 맞는 조화를 이루는 사람들. 판타지 거장 감독의 영화답게 딱 들어맞는 시대 배경과 모든 설정에 감탄했다. -여자 청소부와 남자 관리인(그리고 연구원), 청소부와 그의 늙은 화가 친구. -조용할 수밖에 없는 백인 농아 청소부와 수다스러운 흑인 청소부. -낡고 시..
[일상] 미완 ​ 미완 뭔가 깔끔한 끝맺음을 하고 싶은데 요즘의 나는 끝이 없는 굴레를 돌고 있다. 주말 동안 방 정리를 하려 마음먹었지만, 으슬으슬 찾아오는 몸살 기운으로 일찍 잠을 청해 다음 주로 미뤄졌고, 지난주까지 마감하려 했던 업무 자료도 끝을 맺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다. 매일 할 수 있는 만큼만 처리하고 나머지는 다음으로 넘겨버리는 이상한 굴레를 벗어나고 싶은데, 끝내고 싶은 의지보다 하고 싶지 않은 의지가 더 큰가 보다. 출근길 해야 할 일들 산더미 ‘투두리스트’를 떠올리며 곧바로 적어두는데 업무를 마무리할 시간이 되면 아무런 정리도 하지 못한 채 멍하게 퍼져있다가 정신만 챙겨 퇴근한다. 업무뿐 아니라 일상도 미완의 연속이지만 그나마 서평단 활동은 책 한 권을 다 읽고 느낌을 쓰고 완료 표시를 한다. 밑..
[일상] 3월 ​ 3월 매년 3월이 되면 끝도 없는 쓸쓸함을 주체하지 못해 마음이 아픈 시기를 보내곤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올해는 봄이 너무 좋다. 너무 멀쩡하게 봄맞이를 하는 내 모습이 어색할 만큼 봄이 편안하다. 아직은 진짜 봄이 찾아온 건 아니니까 쌀쌀하니까, 내게 찾아올 마음의 폭풍 같은 걸 조만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마음이 편안한 봄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별 일없이 지내고 있다. 크고 작은 사건 사고 탓에 감정 변화에 무덤덤해져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더 우울해지지 않으려 긴장하던 나의 봄이 올해에는 마냥 가라앉지 않아서 다행이다. 3월을 맞이하여 오랜만에 분주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한동안 신경 쓸 겨를조차 없었던 화장품과 새 옷을 샀다. 유난히 혹독한 겨..
[책 추천] 내가 살 집은 어디에 있을까? ​ [완독 39 / 사회과학] 내가 살 집은 어디에 있을까? - 떠돌이 세입자를 위한 안내서. 한국여성민우회. 후마니타스. 월세와 전세 때문에 떠돌 수밖에 없는 20~30대 세입자를 위한 책. 사전 준비, 방을 구하고, 살고, 계약 만료까지 초보 세입자로서 어리숙한 부분들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특히 선배 세입자들의 실제 사례 덕분에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수년 전 비교적 괜찮은 집에 살고 있었지만, 계약만료 시 사정상 6개월 전 집을 비웠던 적이 있었다. 나의 사정이니까 그러려니 했는데 2~3개월 후쯤 아직 내가 계약 중인, 그 빈집엘 가보니 누군가 살고 있었다. 집주인은 이중계약을 맺고 있었으면서 내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았다.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이런 일을 어찌 해결해야 할지 알 수 없었기에 그..
[일상] 기계 ​ 기계 감정 변화 같은 건 애초부터 갖고 있지 않은 기계처럼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억지 감정을 만들지 않아도 되고, 의식하지 않아도 되고. 발연기, 로봇 연기하던 장수원이 그 자체로 가십거리가 되어 기사화되고 패러디되는 모습이 우습기도 했는데 아예 로봇 사람이 주인공인 ‘보그맘(2017)’이란 드라마를 보면서 상상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이상함을 경험했다. 발연기인지 원래 그런 듯 아닌 듯 기계 엄마 연기에 충실했던 박한별은 이쁨 그 자체였다. 사실 박한별이니까 가능했던 거지 덜 예쁜 누군가가 로봇 사람을 연기했다면 그만한 재미도 호응도 없었을 거다. 그러고 보니 1998년에 데뷔한 사이버 가수 1호 아담도 있었다. 아담 외에도 여자가수도 있었는데 기억은 나지 않는다. 이동건 같은 조각 미남 얼굴..
[일상] 첫 만남 ​ 첫 만남 2008년 8월 비 오는 주말 오후, 아마 셋째 주쯤 종각역 스타벅스. 두세 시쯤이었나, 커피숍에서 만나 커피를 마시다 자리를 옮겼는지 무얼 먹었었는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그 커피숍에 혼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던 사람이 몇 있었던 건 기억이 난다. '저 사람은 아니길, 저 사람이면 좋겠다' 둘 다 맞지 않았지만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던 그저 그랬던 그 날. 수많은 첫 만남 중에서 굳이 그날 그 사람과 첫 만남이 생각나는 이유는 10년이란 시간이 지나버려서일까. 기억을 손에 쥐지 않고 사는 요즘은 뭐든 기억해내기가 쉽지 않은데 그 사람에 대한 그리움은 여전히 남아있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람이라서일까, 만나지 못할 사람은 그 말고도 많은데 새삼 그를 다시 떠올리며..
[일상] 그리다 ​ 그리다 아침잠이 길어지면 으레 꿈을 꾼다. 예지몽 같은 게 아닌, 수면의 질이 얕은 상태에서 나타나는 의미 없는 꿈이지만 꿈 자체를 믿는 편인 나는 그 개꿈조차도 의미부여 하게 된다. 이상하고 찜찜했지만 조금 그리웠던 감정의 꿈을 꾸다가 잠시 깼다. 그러고 나서 다시 잠들어 새 꿈을 꾸었는데 그 내용이 참 현재 감정 상태를 반영한 듯 불안하기도 하고 변화가 필요하기도 한 요즘의 업무를 대하는 내 상태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었다. 당황스러운 그 상황에 한마디 말도 꺼내지 못한 채 그저 상황에 직면해 당황하던 꿈속 내 모습이 아쉽기도 하고, 진짜 그런 상황이 닥친다면 어떨까 철렁하기도 하고. 모든 상황을 내가 통제하고 싶은 얼토당토않은 이 마음은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원하는 대로만 살 수 없듯이 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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