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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32 / 경제경영] 왓츠 더 퓨처. 팀 오라일리. 김진희 이윤진 김정아 옮김. 와이즈베리.

당장 어제 무얼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 나이가 되었지만 20년 전 어떻게 지냈는지는 기억한다. 삐삐를 사용하다가 삼성의 은색과 금색이 섞인 오묘한 빛의 핸드폰을 썼다. (뚜껑(?)을 열면 안테나가 자동으로 올라오는 모델이었다. 흑백화면에서 영어 암호 같은 글이 깜박이던 컴퓨터를 켜고 하이텔을 이용했고, 아이러브스쿨에 가입하고 동창생들과 연락을 주고받았고 싸이월드를 이용했다. 기억을 떠올려 기록하니 아주 먼 옛날이야기 같다.

카톡 클릭 한 번으로 계좌이체도 하고, 배달음식도 시켜 먹고, 택시도 부를 수 있는 요상한 세상이 조금은 무섭다. 자꾸 변화하는 새로움보다는 익숙한 게 좋은 사람으로서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책을 종종 읽는다. 하지만 우리 모두에게 닥치지 않은 미래이기 때문인지 그 어떤 책도 내게 후련함을 주진 못했다. ‘다들 막연한 고민을 하고 있구나’ 정도로 요약할 수 있었다.


​​마크 트웨인은 “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리듬이 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역사를 연구하고 그 패턴을 파악하자. 이것이 바로 내가 미래에 관해 생각하는 방법에서 배운 첫 교훈이다. (44)


최근 세계사, 한국사 관련 책을 즐겨 읽는데 아마도 미래에 대해 두려움을 극복하려는 방법이 아니었나 싶다.

‘왓츠 더 퓨쳐’는 온라인 학습, 도서 출간, 콘퍼런스 개최 등으로 끊임없이 혁신의 물결을 이끌어온 오라일리 미디어 설립자이자 CEO인 팀 오라일리의 신간이다. 저자는 오라일리 미디어가 정보기술 분야에서 혁신을 이룰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공유함으로써 세상을 바꾸는데 이바지하길 원하며, 월드와이드 웹, 오픈소스, 웹2.0, 정부2.0, 빅데이터 등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끼쳐온 새로운 기술을 발굴하고 소개하고 있다. (책 소개 참고)


‘왓츠 더 퓨쳐, 4차 산업혁명과 우리의 미래’의 원제는 ‘what’s the future and why it’s up to us’로 ‘더 나은 미래, 누가 결정하는가?’로 한국어판 제목이 우리에게 좀 더 강렬하고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우리 정서에 맞게 적절한 제목을 지은 것 같다.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지도’인가 아니면 ‘도로’인가?
지도는 보는 것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보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 이는 도로가 아닌 지도만 보고 갈 경우 방향을 틀 곳을 미리 알아서 준비할 수는 있지만, 예상 지점에서 방향을 틀 곳이 나타나지 않을 경우 잘못된 길로 접어들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62)



변화하는 현상을 이해할 때 본질을 탐구해야 한다고 말하며, 공유 경제의 대표적 모델인 우버와 리프트를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우버는 자사 소속의 차량이나 공유된 차량을 승객과 중계하여 승객이 이용 요금을 내며, 그 회사에서 수수료 이익을 얻는 라이드 쉐어링 서비스를 제공한다. (나무 위키 참고) 공유의 개념으로 쏘카와 비슷하고, 원하는 탑승 장소를 선택하고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카카오 택시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우버와 리프트의 가치를 비교하며 공유 경제에 관해 설명하고,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예로 들어 인간이 선택하고 결정하는 특정 알고리즘과 악용하는 사례로 변화하는 시대에서 대처방법을 제시한다.


처음 접하는 사례와 이야기의 방대함으로 힘겨웠지만, 끝까지 흐름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생소한 분야이기에 저자가 이끄는 대로 생각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고, 책이 제시한 대로 읽다 보니 미래에 대한 어떤 돌파구 같은 것이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지루해질 때쯤 등장하는 ‘하늘색 파란 글씨’ 덕분에 각 장의 핵심 구절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결국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도달한 지점은 ‘사람’이었다. 새로운 알고리즘에 대처할 사람, 인간의 가치를 높여 미개척지를 탐색할 사람,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보살핌과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의 창의성과 도덕성, 긴 안목을 위해 생각의 범위를 넓혀야 함을 이야기한다. 그 외에도 수많은 북마크가 나에게 손 흔들고 있지만, 550페이지의 결론이 사람이라는 점은 만족스럽다.

코딩 교육이 유행인 요즘, 코딩 기술 활용 자체에 집중하기 보다는 그것을 왜 만들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필요한지, 어떤 가치를 위한 일인지 사고하는 능력과 그것을 위해 탐구하는 인간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 이것이 이 책을 읽고 난 나의 결론이다.







몽롱해질 때 쯤 나타나는 구세주, 하늘색 글씨



결국,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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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31 / 어린이, 동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나쓰메 소세키. 다케다 미호 그림. 사이토 다카시 엮음. 정주혜 옮김. 담푸스.

일본 현대 문학의 본보기인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어린이가 읽기 쉽게 엮은 동화책, 원작과 동명으로 출간된 이 책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보통 이런 형식의 책을 그림책이라 말하는데, 이 책은 동화책이라고 칭하고 싶다. 글과 그림이 바탕이 되어, 글과 그림이 조화를 이루는 책을 그림책이라 이야기한다. 이 책은 원작자의 글이 강렬해서인지, 엮은자의 요약이 좋아서인지, 글의 힘이 강렬하여 그림은 단지 도울 뿐, 그림만이 가진 고유한 에너지를 내뿜기보다는 글을 돕는 모습을 취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림이 부족하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글이 가진 흡입력이 좋아 읽는 대로 상상하며 웃음 지으며 단숨에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이 몸은 고양이다. 이름은 아직 없다.”


짧지만 강렬한 이 첫 문장에서부터 이 내용에 푹 빠져들게 만든다.

이름 없는 작은 고양이가 누군가로부터 구해져 보살핌을 받으며 고양이의 시선으로 주인과 주변을 관찰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자신을 ‘이 몸’이라 칭하는 우스꽝스러운 고양이의 일상을 유머스럽게 담아 흐뭇한 미소를 담으며 한 장 한 장 넘길 수 있었다. 그림책이 가진 특성 비교적 적은 페이지에 모든 것을 담아야 하기에 결말 부분의 빠른 전개로 다소 어색한 부분도 있었지만 그 또한 이 책이 가진 유머스러움으로 느낄 수 있을 만큼 귀여운 시선의 고양이 모습이 그려진다.

원작인 소설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간결한 이 동화책만 보아도 흥미로움이 전해져 나쓰메 소세키의 원작도 함께 살펴보고 싶을 만큼 흥미로운 책이다. 다 큰 어른의 시선으로 읽기에도, 호기심 가득한 어린이의 시선으로 읽기에도 적당한 즐거운 소설이다.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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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고 또 읽기/인문2018. 2. 26. 10:15




[완독 30 / 인문학] 문장의 온도. 이덕무. 한정주 옮김. 다산초당.

이덕무는 북학파 실학자이자 영정조 시대에 활약한 조선 최고의 에세이스트이자 독서가이다. 가난한 서얼 출신으로 정규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으나 자신의 힘으로 학문을 갈고닦았다. 당대 최고 지성인 박지원, 홍대용, 박제가, 유득공과 교류하면서 ‘위대한 백 년’이라 불리는 18세기 조선의 문예 부흥을 주도했다. 1792년 개성적인 문체 유행을 금지하는 문체반정에 휘말렸음에도 사후 국가적 차원에서 유고집 ‘아정유고’가 간행될 만큼 대문장가로 인정받았다. (책 소개 참고)

조선 시대 역사와 고전을 연구하고 있는 한정주는 자칭 ‘이덕무 마니아’를 자처하며, ‘조선 최고의 문장 이덕무를 읽다.’ (다산초당, 2016)를 출간한 바 있으며 이번에 이덕무의 소품문 ‘이목구심서’와 ‘선귤당농소’를 정리한 ‘문장의 온도’를 출간했다.

역사와 문화, 우리 문학에 관한 관심이 이어져 이 책을 읽게 되었다. 학창시절 시험을 위해 외웠던 단편적 지식 말고 내 의지로 고전문학을 읽는 건 도덕경, 논어 다음으로 처음이다.

베스트셀러로 크게 인기 있는 어떤 책과 제목이 닮았다. 함축적이고 간결한 제목 덕분에 바이럴 마케팅 일부인가 싶었지만, 일상 속 한순간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짧은 글로 기록하는 이덕무의 한시를 읽고 나니 오늘날 유행하는 에세이들과 다를 바 없었다. 아니, 그것보다 훨씬 깊이 있었다. 1,000년이나 시대를 앞서갔던 에세이스트 이덕무.

저자 한정주는 이덕무의 문장이 동시대 다른 선비들의 그것과 조금 다르다고 한다. 아마도 본인이 처한 환경 덕분이 아닐까? 문장에 뛰어났지만, 양반이 아니니까 틀에 박힌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었고 자신의 관심사를 파고들어 표현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단숨에 읽기보다 시를 즐기듯 한편씩 곱씹으며 오랫동안 곁에 두고 조금씩 읽기 좋았다. 한자를 잘 알았더라면 한시를 직접 읽으며 이덕무가 의도한 음률 같은 것도 즐길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해 번역가 한정주 님의 글로 대신할 수 있었다.


고단한 삶을 살아내느라 힘든 순간에도 늘 책을 놓지 않았던 부모님 덕분에 나도 책벌레가 되었다. 양질의 책을 읽거나, 자주 읽는 것으로 중요하겠지만 해결해야 할 문제가 생길 때 책으로 해결한다. 책에서 얻는 지혜는 수많은 성인이 내게 가르침을 주는 거라 전부를 흡수할 수는 없지만, 책을 읽으며 생각을 곱씹는 행동은 알 수 없는 후련함을 가져다준다. 내게 책은 그런 존재다.
이덕무의 책도 법정 스님의 책처럼 오랫동안 내게 울림을 줄 것 같다.







겸재 정선이 진경 산수화의 대가였다면, 진경 시문의 대가는 이덕무였다. 그는 그림과 시문을 같은 뿌리에서 나온 다른 가지로 보았다. (...) 글을 읽을 때 그림이 그려지면, 그 글은 진실로 좋은 글이다. (...) 마찬가지로 그림을 볼 때 글이 떠오르면, 그 그림은 참 훌륭한 그림이다. 이러한 까닭에 옛 그림에는 반드시 화제나 발문이 있었다. 글을 쓰듯 그림을 그리고 그림을 그리듯 글을 써야 할 까닥이 바로 여기에 있다. (16)


돈오점수와 돈오돈수라는 말이 있다. 돈오점수는 단박에 깨치고 점진적으로 닦는다는 말이다. 깨달음을 얻은 다음에도 계속해서 수행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돈오돈수는 단박에 깨달음을 얻고 단박에 닦는다는 뜻이다. 단박에 깨달음을 얻어 더 이상 수행할 것이 없는 경지에 도달했다는 뜻이다. 전자가 깨달음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에 계속해서 수행을 해야 한다는 말이라면, 후자는 한 번의 깨달음만으로도 수행이 완성된다는 말이다. (69)


이덕무는 박물학자, 박지원은 문학가, 홍대용은 천문학자, 박제가는 사회개혁가, 유득공은 역사학자, 정철조는 돌과 조각칼을 잘 다루는 공장, 유금은 기하학자였다. (91)




복숭아꽃 붉은 물결
삼월 푸른 계곡에 비가 개고 햇빛은 따사롭게 비춰 복숭아꽃 붉은 물결이 언덕에 넘쳐 출렁인다. 오색빛 작은 붕어가 지느러미를 재빨리 놀리지 못한 채 마름 사이를 헤엄치다가 더러 거꾸로 섰다가 더러 옆으로 눕기도 한다. 물 밖으로 주둥아리를 내밀며 아가미를 벌름벌름하니 참으로 진기한 풍경이다. 따사로운 모래는 맑고 깨끗해 온갖 물새 떼가 서로서로 짝을 지어서 금석에 앉고, 꽃나무에서 지저귀고, 날개를 문지르고, 모래를 끼얹고, 자신의 그림자를 물에 비추어 본다. 스스로 자연의 모습으로 온화함을 즐기니 태평세월이 따로 없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노라면, 웃음 속에 감춘 칼과 마음속에 품은 화살과 가슴속에 가득 찬 가시가 한순간에 사라짐을 느낀다. 항상 나의 뜻을 삼월의 복숭아꽃 물결처럼 하면 물고기의 활력과 새들의 자연스러움이 모나지 않은 온화한 마음을 갖도록 도와줄 것이다.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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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고 또 읽기/문학2018. 2. 25. 23:39



[완독 29/ 소설] 한 시간만 그 방에. 요나스 칼손. 윤미연 옮김. 푸른숲출판사.

소설이 어려운 내게 등장인물이 많이 나오는 소설은 시작부터 긴장하게 된다. 어릴 적엔 책읽기를 참 좋아했던 것 같은데 왜 소설을 두려워하게 되었을까 생각해보니 대학을 진학하기 위해, 그리고 진학하고 나서 ‘취업’을 해야한다는 부담감으로 책읽는 걸 사치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자기계발책이나, 전공서적만 읽느라 감을 잃었고, 전공공부하기 위해 읽은 전공 관련 책은 분석적으로 읽어야했기에 소설은 두려운 분야였다.

얼마 전 부터 책읽기에 부담과 무게를 줄이고자 다양한 장르의 책읽기를 도전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소설에 대한 무거움을 내려놓는 중이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읽게된 이 책, ‘한 시간만 그 방에’는 제목과 책 소개가 흥미로웠기에 이 책이라면 나도 도전해볼만 할 것 같다는 자신감과 용기가 생겼다. 그런 알 수 없는 긍정적 마음가짐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저자 요나스 칼손은 스웨덴 대표 배우이자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한 시간만 그 방에>는 그의 첫 번째 장편 소설로 영국, 미국,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중국 등 세계 12개국에 번역, 출간되었다. (책 소개 참고)
이 책은 완벽주의자처럼 보이지만 사회성이 조금 부족하고, 약간 야망도 있는 관공서에서 근무하는 비에른이 상사의 권유로 이직을 하면서 벌어진 이야기이다. 55분 일하기, 5분 휴식이라는 자신만의 업무 규칙으로 새로운 공간에 빠르게 적응하고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 노력하지만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애매한 관계로 지내던 주인공의 사회생활 이야기.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오묘한 기운이 가득한 회사에 다니는 등장인물들이 주인공 비에른을 경계하는 느낌만은 분명하다. 그 ‘공간덕분에’ 사람들과 좀처럼 어울리지 못하던 그가 그 ‘공간덕분에’ 어울릴 수 있게 된다. 그 ‘공간’은 과연 존재하는 곳인가? 주인공의 환상 속에서 존재하는 곳인가.



‘당신들은 절대로 여기 있는 나를 찾아내지 못할 거야’




책을 다 읽고 줄거리를 생각해보니 저자가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쓴 건지 결말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주인공의 행동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걸까? 허무하게 방어를 하는 주인공 비에른을 나는 이해할 수 없지만, 소설이니까 문학적 관점으로 이해하려 들자면 실존주의와 허무주의를 잘 드러내는 공간과 인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렇게 방어할 수밖에 없는 작은 한 사람과 그와 다를 바 없는 우리들. 소외된 주인공의 모습에서 나도 보이고 우리도 보인다.

한 번 더 읽으면 저자의 숨은 뜻을 알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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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고 또 읽기/문학2018. 2. 22. 11:37



[완독 28/ 소설] 남아 있는 나날. 가즈오 이시구로. 송은경 옮김. 민음사.

소설을 잘 읽지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소설을 피하고, 즐겁게 읽지 못하는 이유는 ‘몰입’에 있었나 보다. 등장인물과 소설 속 이야기에 너무나 쉽게 몰입하여 그 이야기에 담긴 이야기나,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를 골
똘히 생각하는 시간이 두려웠을까? 언젠가부터 소설보다는 인문 사회 문화 관련 책만 책장에 한가득 꽂혀있다. 그렇게 소설을 회피하다가 올해 나의 목표 덕에 꾸역꾸역 읽고 있는 이 소설, 작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일본 태생의 영국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대표작, ‘남아있는 나날’을 읽었다.

노년의 영국 집사 스티븐스가 갑작스레 주어진 여유 시간(여행)을 통해 본인의 삶을 되돌아보는 이야기이다. 초반부의 줄거리 - 현재와 과거를 왔다 갔다 하는 부분과 과거 본인이 업무(집사의 일)을 얼마나 노련하게 처리하였는지 설명하는 부분 - 덕분에 헷갈리고 재미없어 같은 구절을 여러 번 읽어나갔다. 소설이 쉽지 않은 내겐 이 책이 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대표작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1/2을 읽고 잠깐 쉬고, 쉽고 유쾌한 소설 ‘시월의 저택’을 읽으며 소설을 대할 때 마음가짐을 다잡을 수 있었고, 마음의 여유를 갖고 나머지 1/2을 도전했는데, 한나절 만에 전부 읽을 만큼 몰입해버렸다.

‘위대한 집사란 무엇인가?’

집사라는 직업이 주는 책임감과 희생,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모습 등은 요즘 즐겨보는 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에서 남자 주인공 최도경네 집의 집사인 ‘민 부장’과 비교해볼 수 있다. 눈에 띄지 않게 집안일 모든 것을 파악하고 대소사를 관리하는 일. 모든 일이 주인의 뜻대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관리 감독하는 일. 드라마 속 집사와 소설 속 집사는 비슷한 듯 다르지만, 도대체 무엇이 그들의 삶을 그렇게 만들었는지 이해할 수 없어 답답했다. (민 부장도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답답한 짓을 하고 있다. 스티븐스도 마찬가지)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데 익숙해져 자신의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인지하지 못한 채, 자기 생각이나 생활 따위 없이 그저 주인을 위해 일하며 주인의 만족에 보람을 느끼는 한 사람. 무식하리만치 묵묵한 주인공 스티븐스는 내가 아는 누군가를 닮았기에 어쩔 수 없는 그의 인생이 안타까웠다. 자신의 삶에 소극적인가 싶다가도 자신과 부친의 삶이 그러했듯,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그저 순응할 수밖에 없었던 충직한 사람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그와 대비되는 인물 켄턴 양과 새 주인 패러데이와 애매하게 관계 맺는 모습을 통해 세상과 타협하지 못하는 내가 보여 부끄러웠다.

노년에 주어진 그 여행을 통해 그는 무언가를 느꼈을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데, 다시 본인만의 삶으로 돌아가겠지. 그저 그 모습이 안타까울 뿐이다.
저녁은 과연 아름다운가?


소설과 내 삶을 비유하여 끈적거리는 무언가를 스스로 느끼게 되기에 명작을 읽는 건가. 겉으로 드러난 쉽고 재미있는 책을 즐겨 읽던 내 독서 습관을 반성하는 의미 있는 책이 된,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 고전이나 문학을 좀 더 관심 갖고 들여다봐야겠다는 마음이 드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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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편력 함께 읽기] 세계사 편력1. 자와할랄 네루. 곽복희 남궁원 옮김. 일빛출판사.

2008년 겨울, 서울대 미술관에서 인도 작가의 전시회를 했었다. 그때는 미술 전시를 즐기던 시기였기에 말랑말랑한 마음으로 인도 작가의 영적인 작품들을 감상하며 황홀했던 기억이 난다. 라마찬드란이라는 이름을 가진 1930년대 생 작가의 화려한 색감이 돋보였던 그 그림. 내게 인도는 그런 것이다. 나와 멀리 떨어진, 기억 저 멀리에 있는 일상적이지 않은.

(확인 결과 나의 기억이 정확했다. 2008년 겨울, 35년생 라마찬드란. 색채가 돋보이는 그림을 그리는 인도의 대표적 현대 화가. 잊혀진줄 알았는데 행복했던 기억은 오래 남아있구나.)

그곳의 한 정치인이 옥중생활을 하면서 하나뿐인 딸에게 쓴 편지를 묶어낸 이 책, ‘세계사 편력’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다. 함께하는 에너지를 알고 있기에 도전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단 몇 장을 읽었을 뿐인데 십 년 전 인도 화가 전시를 보면서 떠올렸던 미지를 향한 신비로움과 설렘이 다시금 떠올랐다. 별 느낌 없던 첫인상에 비해 다음 장이 너무 궁금하다. 이런 마음을 놓치지 말고 부디 3권까지 재미나게 읽을 수 있기를.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E. H. 카. (8)

나는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분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설교가 아니라 대화하고 토론하는 것이라고 언제나 생각한다. 서로 토론하는 가운데 때로 사소한 실마리나마 붙잡게 되고 진리는 풀려나가는 것이다. (19)

변화의 수레바퀴는 돌아가고 있다. 아래 있던 것은 위로 돌아가고, 위에 있던 것은 아래로 돌기 마련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그것이 돌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아무도 감히 멈출 수 없도록 수레바퀴를 더욱 힘껏 밀어야 한다. (32)

팔레스타인은 물론 유럽이 아니고, 또 역사에서 중요하지도 않다. 그러나 구약 성서에 고대사가 실려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흥미를 갖고 있다. 성서에 쓰여 있는 고대사는 이 작은 나라에 살고 있던 작은 유태인 부족과 그 이웃에 있었던 큰 나라들 -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와 이집트 사이에서 벌어진 충돌에 관한 이야기다. 만일 이 이야기가 유태교와 기독교 일부를 이루지 않았다면 아마 아는 사람도 별로 없었을 것이다. (44)

너는 ‘자연’ 이라는 책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자연은 자신의 역사를 바위나 돌에 새겨 둘 줄 알고 있단다. 그리하여 읽으려고만 한다면 누구나 그것을 읽을 수 있다. 그것은 자연이 스스로 쓴 일종의 자서전이다. (48)

한 나라의 국민이 성장하고 그 아이들이 학습하는 것은 반드시 그들 자신의 언어를 통해 이루어져야만 한다.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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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27/ 자기계발] 이키가이. 켄 모기. 허지은 옮김. 밝은 세상 출판사.


이키가이는 일본어로 인생의 즐거움과 보람을 뜻한다. 글자 그대로 풀이해보자면 ‘삶’이라는 단어와 ‘보람’이라는 단어로 이루어져 있다. 일본인은 이키가이라는 단어를 다양한 맥락에서 사용한다. 커다란 목표나 성과를 이루었을 경우 흔히 쓰는 말이지만 일상의 지극히 사소한 경우에도 자주 사용한다.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 흔히 사용하는 말이라서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고 무심결에 내뱉기도 한다.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인생에서 반드시 성공을 거두지 않더라도 이키가이를 갖는 게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키가이는 우리의 인생에 다양한 의미와 가치가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민주적이고 공평한 개념이다. 이키가이는 우리 모두에게 열려 있다. (15)

켄 모기는 현재 일본 소니 컴퓨터사이언스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도쿄 공업대학교 대학원에서 학생들에게 뇌과학과 인지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뇌과학, 문학평론, 미술평론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약 100여 권의 책을 집필했다. 일본인이자 뇌과학자로서 요즘 세계적으로 관심 두는 ‘일본인들의 삶의 철학’에 대한 탐구를 바탕으로 이 책을 집필했다. (책 소개 참고)

저자는 일본인만이 가진 여유, 삶의 지혜, 현재에 충실한 삶 등을 ‘이키가이’라고 부른다. 일본인이 ‘이키가이’를 추구하는 삶 덕분에 의식적으로, 또 무의식적으로 행동하고 생각한다고 여기며 다양한 사람들의 생활을 뇌과학자로서 분석한 결과물을 책으로 담았다.

이키가이는 아래와 같이 다섯 문장으로 정리된다.



시작하기 : 작은 일부터 시작하기
내려놓기 : 자아를 내려놓기
화합하기 : 화합과 지속 가능성
발견하기 : 작은 일들에서 발견하는 기쁨
충실하기 : 현재에 충실하기

스시나 일본 전통 음식을 대하는 일본인의 마음가짐, 다도, 스모 등 일본인들이 삶과 문화를 대하는 방식을 통해 사소하지만 소중한 행복, 삶의 지혜, 전통 등을 ‘이키가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일본만이 가진 것’으로 학문화시켰다. 하지만 그런 것을 일본사람만이 가진 것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그런 건 현자들이 생각하는 삶의 지혜와도 비슷하다. 어린 시절 나의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 해주셨던 ‘남의 것에 욕심내지 말고 가진 것에 감사하라’ 같은 이야기에서도 느낄 수 있는 삶을 대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마음의 여유와 삶의 본질,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한 번쯤 해봄 직한 생각과 비슷하게 여겨져 책을 읽을수록 점점 더 ‘이키가이’라는 개념이 희미해졌다. (물론 저자는 다른 나라에도 비슷한 것들이 있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일본인이자 뇌과학자로서 자신과 나라에 대한 자부심으로 학문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환경과 탐구는 인정할 만 하다. 뇌과학자답게 분석적이며 논리적으로 전통을 중시하는 일본인을 탐구하였고, 이웃 나라인 한국에도 ‘이키가이’의 존재를 알렸으니까. 전통을 소중히 여기고 자신의 전문 분야를 심화 연구하는 한 사람의 노력으로 정리된 이키가이 다섯 문장은 짧고 실행하기 쉽고 간단하기에 자기계발서로서 훌륭한 문구이다.

이 책을 읽으며 일제강점기를 겪으며 사라져버린 우리의 전통문화가 아쉽고 안타까웠다. 수년 전 우리나라 18세기 실학자 중 하나인 풍석 서유구 선생의 백과사전 같은 기록물이 복원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것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의미 있는 연구가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고 우리 것을 지키는 것에 대한 가치를 알게 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




​​들어주는 관객이 아무도 없더라도 연주를 하라. 봐주는 사람이 없더라도 그림을 그려라. 읽어주는 사람이 없더라도 글을 써라. 내면의 기쁨과 만족이 있다면 당신은 계속 살아갈 에너지를 얻게 된다. 보상을 바라지 않고도 일에 몰입할 수 있게 되는 순간, 당신은 현재에 충실하기의 주인이 된다.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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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26/ 에세이]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김동영. 아르테.

주절주절 끄적이는 걸 좋아하던 나인데 언젠가부터 읽기와 쓰기가 지루해졌다. 늘 비슷한 일상에 삶을 대하는 방식도 느슨해졌다. 읽고 쓰기 실력 향상을 위해 좀 더 밀도 높은 책을 읽어야 한다는 선배님들의 조언을 얻었지만 읽고 싶은 책들이 쌓여있으니 실천하기 어려웠다. 끌리는 제목의 신간들, 당장 눈앞에 있는 책에 끌려 책 탑을 쌓아놓고 순서대로 읽다 보면 고전 같은 양질의 도서는 늘 뒷전으로 밀리게 된다. 이책도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라는 제목에 끌려 다른 책보다 먼저 집어 들게 된 책 중 하나였다. ‘언어의 온도’(2016) 이후 에세이는 피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작가에 대해 알고 있거나, 그 사람의 생각이 궁금할 때만 펼쳐보게 되었다. 애정하는 임경선, 마스다 미리의 글 같은 건 종종 읽지만 다른 건 들여다보지 않는다. ‘나도 글 같은 걸 쓰고 있다’라는 오만한 자만심 덕분에 남들의 글이 시시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에세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고전 문학에 대해 술술 읽히기 마련인데 김동영의 신작, 이 책은 좀처럼 책장을 넘기기가 힘들었다. 허지웅의 ‘버티는 삶에 관하여’(2014)나 이석원의 ‘보통의 존재’(2009)처럼 처절하지도 않은데 며칠 동안 책상 위에 놓여있었다. 책의 내용이 어려웠다기보다는 보통 사람인 나와 닮아있어 상념에 빠져들곤 했다. 기억하지 못하는 내가 쓴 나의 이야기를 읽는 것 같았다. 살면서 한 번쯤 나도 생각해봤던 이야기들, 여행과 삶을 대하는 방식, 내 머릿속에 마구잡이로 돌아다니는 생각을 글 잘 쓰는 사람이 대신 정리해준 느낌이다. 그렇게 처절하게 감정이입하다 보니 에피소드 하나하나에 몰입하여 자꾸 나의 지난 경험을 되짚어 보느라 빠르게 책장을 넘길 수 없었다.

일상을 벗어난 명절 연휴가 시작되는 날, 잠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이 시기가 되어서야 이 책을 완독할 수 있었다. 이번 여행(?)의 동반자로 최고의 친구였다. ‘여행지의 감성이 담긴 책’이 참 많지만, 저자 김동영만의 감수성이 지친 나의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만들어 오랜만에 편안함을 채워주었다. 저자의 마음과 이 책을 내게 권한 지인의 마음, 나의 마음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지금 이 순간을 오랫동안 기억할 것이다.

(감성적인 책 표지 디자인 덕분에 앞표지가 두 장이라 가운데가 컷팅이 되어있어 책장을 넘기기가 조금 불편한 것 빼고는 모든 것이 좋았다.)









​​나는 자유로움이 쓸쓸한 거라고 생각한다. 내 가족, 친구,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자유롭지 않은데 혼자 자유로워봐야 의미가 없다.
사실 나는 자유롭지 않다.
그저 내 새장에는 작은 문이 열려 있고, 그곳을 통해 나갔다가 다시 새장 안으로 돌아오는 방법을 알고 있을 뿐이다.
나처럼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당신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당신의 새장은 원래부터 열려 있었고,
그 밖으로 자유를 찾아 날아가는 건 당신의 진심입니다.’ (19)





​​즐겁게 사는 것이 우리가 세상에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다. 무라카미 류 ‘식스티 나인’ 중에서(30)




​​우리는 계속 떠나야 한다. 우리에게는 두 다리가 있고, 두 눈은 앞을 향해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위로하는 방법을 여행을 통해 배우길 바란다. 그리고 여행을 통해 우리 안에 있던 더럽혀진 마음과 필요 없는 생각을 씻어내고, 그곳에 버려두고 오길 바란다. 또 그곳에서 우리에게 결핍된 무엇인가를 슬쩍 주워 품에 담아오길 바란다. 그것을 받아들여 잘 익은 사과 알처럼 탐스럽게 살아간다면 좋겠다.
계속 꿈꾸길 바란다. 그게 하룻밤의 꿈이거나 평생 말로만 떠벌리는 꿈일지라도 우리는 꿈꿔야 한다.
그리고 꿈꾸는 사람을 깨워서도 안 된다! (117)







먹먹한 마음을 담아 글을 쓴다. 내 취향의 잔잔한 일본영화 한 편을 본 것 같은 기분이다. 흠뻑 몰입하여 쏟아지는 눈물 한 방울을 겨우 참아냈다.
지금 이 기분, 따뜻하고 감사한 마음을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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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25/ 에세이] 이렇게 책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나이즈미 렌. 최미혜 옮김. 애플북스.

몇 년 전 미우라 시온의 ‘배를 엮다’(2013, 은행나무)라는 책이 ‘행복한 사전’(2014)이라는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책을 사랑하는 순박하고 성실한, 출판사에서 일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그 영화. - 영화보단 책의 깊이가 좀 더 좋았다. - 상영 기간이 짧았던 걸 보면 출판과 관계된 이야기 같은 건 사람들의 주된 관심사는 아니었나 보다.

‘서재 결혼시키기’(2002, 지호)는 한 남녀가 오랜 시간 연애를 하고 드디어 결혼하여 부부가 되면서 ‘책’ 때문에 생긴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책의 취향과 배치 정리 등 두 사람이 함께 조화로운 삶을 위해 책이라는 매개체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었다. ‘서재’의 ‘결혼’이라는 소재가 흥미로웠지만, 그 책에 나온 ‘책 속의 책’들을 많이 알지 못해 공감의 깊이가 덜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책’을 소재로 다룬 책이 종종 나온다. 책을 즐기는 사람이 10명 중 2~3명 정도인데, 그들 중 1명 정도만 겨우 읽는 책을 다룬 책들. 인기가 없는 게 당연하다. 책을 읽는 인구가 적으니까 책 속의 책 따위 관심이 없을 수밖에.

‘이렇게 책으로 살고 있습니다’라는 제목에서 말해주듯 ‘책과 함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을 쓰는 작가의 글쓰기
다른 나라의 책을 소개하는 에이전트
교정과 교열
서체
디자인
종이
활판인쇄와 활자
제본, 제본 문화

책과 관련된 모든 일과 모든 순간에 장인정신이 깃들어 있었다. 쌓여가는 전통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느낄 수 있는 것들은 책을 만드는 과정과 참 잘 어울린다. 기술의 발전으로 책과 관계된 많은 직종이 사라졌다. 이제는 사람 손을 거치지 않고 기계로 많은 부분을 해결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종이책의 시대는 끝났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새로운 책이 출간되고 있다. 장인의 손으로 낱자 글자를 새기고, 교정하고 정교한 교열을 보진 않지만 그래서 예전보다 더욱 간편하고 쉽고 빠르게 생산된다. 그래서 양질의 글을 담는 것이 더욱 중요해졌다.

책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제는 사라져버린 책을 만들었던 그들의 노고를 기억하고 싶다. 책 한 권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의 노력이 담겨있는지, 읽는 내내 행복했다. 책을 좋아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적은 부수라도 누군가에게 특별한 한 권, 그 사람에게 무엇과도 대신할 수 없는 소중한 한 권을 만들려고 할 때 제본 기술이 잊혀진다면 책을 둘러싼 소중한 세계는 사라져버릴 겁니다. 거기에는 아직 심오하고 우리 마음에 호소하는 뭔가가 있다고 저는 믿고 싶습니다. (266)

인간은 풍부한 상상력을 펼치고 자신이 좋아하는 걸 발견한 후에는 꾸준히 계속하려 하지요. 좋아하는 일을 소중히 여기고 그것을 자신의 인생에서 마음껏 살리려고 궁리합니다. 저는 그런 세계를 대단히 중요하다고 여기려고 해요. 제가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써온 것도 그러한 생각 때문이에요. 그리고 그렇게 계속 써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그게 그 사람의 마법이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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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책이라니 굉장히 흥미롭네요 ~ 나중에 한번 읽어봐야겠어요!

    2018.03.30 02:3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완독 23/ 사회과학] 나르시시스트 리더. 배르벨 바르데츠키. 이지혜 옮김. 와이즈베리.



늘 잘난 척을 하고, 자신의 업적을 뽐내고 싶어 하며, 한편으로는 다른 이들의 성과를 인정하지 않고, 타인보다 한발 앞서나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지닌 경쟁적인 사람. ‘거만하다, 재수 없다’는 다양하고도 부정적인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사람.

출처) 정신의학신문 : 신승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기적이거나, 자기중심적이거나, 개인주의적인 사람들.

비슷하면서 조금씩 다른 이 특성은 현대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지닌 것, 숨기고 싶은 치부가 아닐까. 누구나 조금씩 지니고 있지만 과함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 부정적인 방향으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나르시시스트(Narcissist), 혹은 자기애성 성격장애(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라고 부른다.

이 책의 저자 배르벨 바르데츠키는 심리학자이자 심리치료사로서 36년간 자존감에 상처를 입고 각종 심리 장애와 중독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치료해왔다. 미국과 독일에서의 연구 활동을 통해 폭식증, 거식증 등 각종 섭식장애를 비롯해 알코올, 약물 등 각종 중독 증세를 앓고 있는 환자들의 기저에는 자존감 부족과 대인관계 장애라는 두 가지 특성이 깔려 있음을 발견한다. 그리고 이런 문제들은 결국 '나르시시즘' 문제에서 비롯된 것임을 밝혔다. 현재 심리상담소를 운영하며 조직과 사회의 나르시시즘에 대한 연구와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책 소개 참고)


자아존중감이 강한 사람은 위기에 처했을 때 스스로 지지하고 다독이며 위로할 줄 안다. 이들은 또한 믿음직스러운 인간관계를 구축한다. 다만 이들에게도 타인에게 인정받는 일은 중요하다. 애정 어린 관심과 존중, 소속감이 결핍되면 위축되고 우울함을 느끼기도 한다. (...) 반면에 부정적인 나르시시즘을 지닌 사람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끊임없이 타인에게 인정과 확인을 받으려 하며, 이에 집착한다. (20)


내 이야기는 아닐 거라 생각하며 책을 읽었지만, 숨기고 싶은 나의 어떤 부분을 자극하는 나르시시즘. 건강하지 않은 나의 자아가 활동할 때 드러나는 모습을 들킨 것 같다. 저자는 이 책의 제목에서 말하는 '나르시시스트 리더'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을 빗대어 설명한다. 안하무인식 태도에서 비치는 모습, 불편하고 거북하지만 미국이 아닌 내 주변에도 존재하는 이런 사람들.

나르시시즘에 빠진 사람들은 불안정한 자아존중감을 지닌 탓에 자아상을 확인받기 위해 끊임없이 타인의 인정과 경탄을 얻으려 든다. 또한 기분이 쉽게 상하는 탓에 상대방이 눈썹을 치켜 올렸다든지 하는 지극히 사소한 일에도 심사가 뒤틀린다. 이를 자신에 대한 비하나 비판이라 여기고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들은 내적 균형을 되찾는 일, 상대방에게 해를 입히지 않고 불편한 기분을 표현하는 일에 전혀 소질이 없다. 그래서 대부분 의도적으로 상대방에게 해를 입히거나 파멸시키려 든다. (121)
‘나르시시스트’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어떤 개인적 경험을 가진 특정한 개인이 있을 뿐이다. (15)



짐바르도는 '평범한' 사람이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을 '루시퍼 효과'라 불렀다. (128)
짐바르도는 악이 싹틀 수 있는 조건을 다음과 같이 열거했다. 빈곤, 양육 과정에서의 애정결핍, 폭력의 체험, 비인간화, 전쟁, 고문, 집단학살, 여성 인신매매, 냉담함. 악은 궁지에서 벗어나기 위한 거짓말이나 사소한 사실 왜곡, 정의에 대한 부정같이 작은 것에서 시작되어 시간이 갈수록 확대된다. (130)




책에서는 나르시시스트 리더를 ‘트럼프’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지만 나는 읽는 내내 KBS 드라마 ‘흑기사’ 속 주인공, ‘서린’이 떠올랐다. 그녀의 어떤 경험이 그녀를 악녀로 만든 것일까, 드라마가 종영된 지금 드라마가 끝난 아쉬움보다는 서린에 대한 연민이 마음에 남는다.


출처) kbs 드라마 '흑기사' 중 서린의 의자. 이 책의 표지와도 비슷하다.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밝혀내려고 애쓰기보다는 우리가 존재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무엇인지 밝혀야 한다.” 미셸 푸코(185)

인간의 심리와 사회 문제를 냉철하게 비판하는 시선, 그리고 독일 여성이 지닌 분석적인 문체 등이 오버랩되어 수개월 전 읽었던 '혐오 사회'가 떠올랐다.


https://blog.naver.com/flowerdog314/221063910877


독일인만이 지닌 냉철한 분석력과 비평력이 부럽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갖지 못하는 무기 같은 것.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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