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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44 / 인문학] 백 년을 살아보니. 김형석. 덴스토리.(2016)



1920년생, 일본 조치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30여 년간 연세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후임을 길렀고 현재에도 활발한 저서 활동과 강의 활동을 펼치고 있는, 우리나라 철학계의 거두, 현 99세인 김형석 교수님의 책.

저자가 살아온 인생을 바탕으로 행복론, 결혼과 가정, 우정과 종교, 돈과 성공, 명예, 노년의 삶 총 5가지 영역으로 나누어 후세들에게 전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젊은 내가 아무리 파닥거려도 알 수 없는 어른의 눈으로 보이는 넓이. 철학 교수의 지혜가 담겨있지만 어렵지 않고 친할아버지의 편지를 엿보는 것 같은 기분이다.

100년쯤 살다 보니 제자의 제자, 그 제자까지 보게 되고 자식의 손주 증손주까지 보며 제자 일생의 마감도 지켜보는 처지가 되어버린 저자는 최근 나를 감성에 빠져들게 했던 드라마 도깨비(2016)의 공유나, 흑기사(2017)의 김래원, 영화 아델라인(2015)의 아델라인 처럼 남들보다 오래 살아 해탈한(?) 인생을 보는 것 같았다. 당장 지금 눈앞에 있는 이익을 위해 씩씩거리며 살아온 나는 언젠가부터 인생이 허무했고 무의미하다는 생각 덕분에 많은 의욕을 잃어버렸다. 그러면서 건강도 정신도 흔들리게 되었다.

2018년 현재 99세를 살고 계신, 100세 어르신의 책을 읽으며 내일 당장 죽을 것처럼 사는 내가 보였다. 80세를 지나며 욕심을 내려두게 되었고, 90세를 지나며 많은 걸 잃어간다고 이야기하셨다. 그 절반도 살지 않은 내가 벌써 다 놓아버린 듯 삶을 대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방향은 비슷했지만, 초점이 틀렸다. 오늘만 살 것처럼 만족하고 행복하고 사랑해야 했는데 내일 당장 죽을 것처럼 욕심내지 않았다. 어차피 내일이면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말 것들, 애늙은이처럼 해탈한 듯 다 놓아야 한다는 듯, 그렇게 살 필요는 없었다. 적어도 지금은.

철학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지만 짧은 지식으로 많은 책을 접할 수 없었는데, 철학 교수의 인생이 녹아있는 한 권의 책 덕분에 하루하루 살아내기에 급급했던 내 삶의 이정표가 생긴 기분이다. 정신 놓치지 말고 삶의 영역으로 뛰어들어가 뭐든 치열하게 신나게 즐겨야겠다.




모든 남녀는 인생의 끝이 찾아오기 전에 후회 없는 삶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사랑이 있는 고생이다. 사랑이 없는 고생은 고통의 짐이지만, 사랑이 있는 고생은 행복을 안겨주는 것이 인생이다. (96)

인촌은 아첨하는 사람, 동료를 비방하는 사람, 편 가르기를 하는 사람을 가까이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 번 당신 밑에서 일하도록 받아들인 사람은 끝까지 돌보아주는 후덕함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점들을 배웠기 때문에 나도 그런 사람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사회생활을 이어온 셈이다. (185)

건강은 일을 하기 위해서
나는 일이 내 건강을 유지해주었다고 믿고 있다. 지금도 하루하루를 그렇게 살고 있다. 일을 하기 위해서는 건강을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운동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243)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
인간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고 성숙되어가는 과정이라고 보는 관념이 보편화되고 있다. 늙는다는 것은 꽃이 피었다가 열매를 맺고 그 열매가 익어가는 것 같은 과정이다. 그 기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지혜이다. 지혜를 갖춘 노년기와 지혜를 갖추지 못한, 흔히 말하는 어리석은 노년기의 차이는 너무나 뚜렷하다. (...) 원로가 있는 사회와 없는 사회는 다르다. 지혜로운 조부모나 부모가 있는 가정과 없는 가정이 다른 것과 비슷하다. (252)

오래 사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생각해보면 인간의 뜻과 운명은 누구도 모른다. 철없을 때 친구들은 추억마저도 사라지고 철들었을 때의 친구들은 헤어질 운명이었던 것 같다. 역사가 안겨준 짐이기도 했다. 그러나 말년에 우리들의 우정은 사회적 공감을 얻으면서 오래 남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들의 삶과 그 의미는 어떤 섭리에 따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128)


운명도 허무도 아닌
쇼펜하우어는 “젊었을 때는 모두가 자유를 외치다가도 늙으면 모든 것이 운명이었다고 인정하게 된다.”고 말한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운명론자가 된다는 뜻이다. 독일의 프리드리히 니체는 “잡스러운 범인들의 삶을 버리고 초인이 돼라.”고 외쳤다. 그러나 그 초인은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운명애의 철인이라고 말했다.
또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 하더라도 허무주의와 회의주의의 울타리를 넘어설 수가 없었다. 솔로몬은 지혜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인간 역사에 관해서는 허무주의자였다. 유신론적인 허무주의자라고 말해서 좋을지 모르겠다. 아마 우리 문화사에서 가장 훌륭한 지혜를 갖춘 사람은 독일의 괴테였을 것 같다. 역사상 가장 아이큐가 높은 사람은 괴테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 그러나 괴테는 ‘파우스트’의 주인공과 같이 회의주의자였다. 회의주의자의 결론은 허무주의로 귀착된다.
그 둘, 즉 운명과 허무가 전부라면 인간과 삶의 의미는 어떻게 되는가. 그렇다면 제3의 삶의 길은 없는가라고 묻고 싶었다. 그런데 구약과 신약의 역사를 보면 운명론도 허무주의도 아니다. 또 다른 차원의 인생관이 있다. 그것이 섭리의 길이다. 섭리를 거부할 수도 있고, 섭리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생각도 할 수 있다. (...) 섭리의 주관자는 자연과 인간을 떠난 제3의 실재이다. 구약과 신약은 그 인격적 타자를 신이라고 불렀고 또 유일신으로 믿고 살았다. 종교적 신앙을 가진 사람은 ‘나와 신’, 세계 역사와 신의 관계를 떠날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 관계를 섭리라고 본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의 삶 속에서 그 섭리에 해당하는 체험을 쌓아온 것이다. (145-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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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43 / 에세이] 보노보노의 인생상담. 이가라시 미키오. 김신회 옮김. 놀출판사.

쌓여가는 업무와 두껍고 깊이 있는 책의 무게에 짓눌려 어딘가로 도망치고 싶을 때 무심결에 펼친 이 책은 위로 그 자체였다. 이제 더 이상 가벼운 에세이에 깊게 공감하지도 않고, 출간되자마자 찾아볼 열정도 없지만 그런데도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건 역자 김신회 님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작년 봄과 여름 사이, 우연한 기회에 접하게 된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2017)을 읽으며 애니메이션 캐릭터에 불과했던 보노보노와 나의 닮음을 큰 언니의 목소리와 토닥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귀엽고 가볍고 산뜻한 이 책은 간단한 50여 가지의 질문을 보노보노 캐릭터들이 ‘속 시원하게’ 해결해준다. 출근길 우연히 펼친 어느 장을 보면서 감정이 복받쳐 올라 울컥했다. 별일 없었고, 별 내용도 아니었는데 갑자기 쏟아지려 하는 눈물을 참아내기 어려웠다. 그러면서 한동안 잊고 지냈던 지난 기억이 떠올랐다. 작년 어느 시기에도 김신회 작가님의 보노보노 책을 읽으며 위로받았었지. 그랬었지, 그 감정을 떠올리며 다시 캐릭터들에 몰입하였다. 말장난 같은 해결책을 내놓는 캐릭터들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건 그만큼 팍팍하게 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마스다 미리의 글과 그림에서 느낄 수 있었던 잔잔한 감동을 보노보노에게서 느꼈다.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감정인 것인지, 나의 감정이 ‘보편적인 것인지’, 우연히 나와 맞는 책과 글을 읽게 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덕분에 마음이 살랑살랑 가벼워졌다. 엉뚱하고 간단한 내용으로 읽기 어렵지도 않아 단숨에 후루룩 읽어낼 수 있지만, 야금야금 아껴 읽었다. 울컥했던 그 순간을 떠올리며 위로받고 싶을 때, 잠시 딴생각하고 싶을 때 아무 장이나 펼치고 읽으면 후련해질 것만 같다. 피식 웃으며 별거 아닌 것들을 적당히 넘길 수 있는 유머를 즐기는 지금 이대로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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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보노보노도 그렇고, 곰돌이 푸도 그렇고 인생에 관한 명대사들이 은근 많이 있죠:) 잘 읽고 갑니다.

    2018.03.25 17:4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완독 42/ 인문] 나의 카프카. 막스 브로트. 편영수 옮김. 솔출판사.

책 읽는 행위를 즐기지만, 고전은 두려운 존재였다. 어릴 적 읽었던 ‘데미안’은 우리말이지만 읽어낼 수 없어 좌절하게 했고, 그 후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하게 읽을 수 있었던 고전은 지난해 말 읽었던 카프카의 ‘변신’이 유일하다. 심오하고 오묘했지만 ‘나 같은 초보자도 읽을 수 있다’라는 용기 같은 게 생겼고, 그때 생긴 카프카에 관한 관심으로 무겁고 두꺼운 이 책에 관심 두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두께에 비교해 무겁거나 거창하지 않았다. 번역체 특유의 이해하기 어려운 문구가 거의 없기에 두께에 대한 부담감을 떨칠 수 있다면 ‘카프카에 대한 모든 것’이 담긴 이 책을 즐겁게 읽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내 안에 사랑이 없다면, 바로 내 안에 사랑이 없다는 것 때문에 내가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레프 톨스토이, 일기, 1896년 11월 (364)


‘나의 카프카’는 저자이자 친구인 막스 브로트가 바라보는 ‘친구’이자 ‘작가’로서의 ‘카프카’일 수 있고, 옮긴 이인 편영수 님이 바라보는 ‘카프카’일 수도 있고, 이 책에 등장하는 -편지를 주고받았던 수많은- 카프카 지인들이 기억하는 ‘카프카’일 수도 있다. 그리고 카프카의 작품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분석해낸 ‘카프카’일 수도 있다. 많은 사람의 관계 속에서 재조명된 ‘나의 카프카’. 세상에 보여진 작품만으로 읽어낼 수 없는 인생과 사상, 삶을 대하는 방식들. 각자가 기억하고 있는 것들을 책 한 권으로 묶어냈다.

주고받은 편지로서 알 수 있는 그의 인생, 학자들의 연구로서 드러나는 여러 견해와 오해들, 카프카의 작품에서 읽을 수 있는 어떤 것들. 카프카의 모든 것을 담아낸 이 책은 어떤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가 없다. 비판적이며 비관적인 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로 사람을 판단할 수 없다. 그의 인생만으로 작품을 그려내기도 어렵다. 짧지만 치열하게 살다 간 한 사람과 그를 연구한 사람들의 모든 것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카프카는 톨스토이보다 총명에서, 논리에서 천 배 뛰어난 것처럼 보인다. 그 논리는 머리의 문제가 아니라, 인격 전체의 문제, 마음의 문제이다. (399)

단순한 친구 그 이상의 동반자였던 막스 브로트에 의해 치밀하게 연구되었고, 그 결과물로 ‘카프카’라는 사람을 돋보이게 만들어낸 ‘나의 카프카’는 원서에 대한 궁금증을 갖지 않아도 될 만큼 재미있었다. 아마도 번역의 힘일 것이다. 독일 현대 문학(카프카 문학) 전공자이며, 카프카와 관련된 여러 권의 책을 이미 출간한 바 있는 번역자 편영수 님의 노고를 느낄 수 있는 이 책. 막스 브로트가 아니었다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고 해도 믿을 만큼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던 사람. 선한 영향력을 믿고 평온한 가정을 꾸리기를 원했던 한 남자의 안타깝고 짧은 인생을 지켜보았다.

카프카의 작품이라곤 하나밖에 읽지 않은 내가 카프카 소설에 대한 비평을 제대로 읽어낼 수는 없었지만, 예술가 같고 성인 같은 한 사람의 마음과 그를 되새기려는 또 한 사람의 마음은 읽어낼 수 있었다. 그래서 오늘을 좀 더 치열하게 감사하며 살기로 다짐했다.




카프카는 애정과 정밀함을 갖고 개별적인 것, 눈에 띄지 않는 것의 근원까지 파고들었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까지 결코 알아차리지 못했던, 기이하게 보이지만 오로지 진실한 사물들이 나타났다. 따라서 도덕적 책무, 삶이라는 사실, 여행, 예술작품, 정치 운동에 대한 그의 견해는 결코 기이하지 않고, 단지 아주 정확하고, 날카롭고, 올바르고 그 결과 일상의 언어와는 거리가 있다. 그리고 어쩌면 그 결과 꽤 자주 우리가 ‘실용적인 삶’이라고 부르는 것에는 쓸모가 없을지도 모른다. (78)

순수한 사람이 순수하지 않은 것에 손을 댈 수 없었다는 사실은 순수한 사람의 강점이기도 하고 약점이기도 하다. 강점인 이유는 자신과 절대자 사이의 간격을 철저하게 느끼는 것, 끝까지 느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간격은 그 자체가 부정적인 것, 약점이다. 따라서 순수한 사람의 강점은 그가 속임수를 써서 절대자와의 간격을 없애버리지 않겠다고 고집하는 것에서, 그가 자신의 약점을 천 배의 확대경을 통해 솔직하게 과장하는 것에서 표현될 수 있을 뿐이다. (...) 따라서 카프카의 작품에서는 강점과 약점이, 상승과 하강이 아주 특수한 방법으로 서로 스며든다. (191)

세상이 어떠하든 나는 원시적인 상태에 머무를 것이다. 나는 원시적인 상태를 세상의 판단에 따라 바꿀 생각이 없다. 이 말이 들리는 바로 그 순간에 전 존재 안에서 변신이 일어난다. 그 말이 발언될 때, 마치 동화에서처럼 백 년 동안 마술에 걸렸던 성이 열리고, 모든 것은 생명을 얻는다. 그렇게 존재는 온통 주목을 받는다. (247)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선을 위한 투쟁을 하려는 사상가로서 카프카 입장의 핵심, 최선이며 본질적인 것을 형성한다. (248)

“인간은 자기 내면에 존재하는 파괴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지속적인 믿음 없이는 살 수 없다.” (...) “믿음은 자신 안에 있는 파괴할 수 없는 것을 해방하는 것, 혹은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자신을 해방하는 것, 혹은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파괴할 수 없게 존재하는 것, 혹은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존재하는 것이다.” (378)


“공동체에서 고립되지 마라.” (...) 카프카가 되풀이해서 자의든, 자신의 잘못이 아니든, 상황에 굴복하는 것이든 상관없이 공동체에서 고립된 인물을 묘사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인간이 더 이상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과 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벌레로 변신하는 것이 그러한 설명할 수 없고 불행을 초래하는 상황이다. (404)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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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41 / 인문학] 조세 피난처. 시가 사쿠라. 김효진 옮김. AK커뮤니케이션즈.


‘세금은 공평한가?’, ‘세금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자금 세탁, 조세 회피, 탈세, 테러 자금 관여 등 검은돈이 거쳐 가는 조세 피난처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부자들이 검은돈 세탁을 위해 스위스의 은행을 이용한다’ 정도로 알고 있던 조세 피난처는 ‘세금이 없는 국가나 지역’ 혹은 ‘세금이 거의 없는 국가나 지역’을 가리킨다.

완벽한 비밀은 없다.
개인 부유층 대상의 자산 운용을 전문으로 하는 프라이빗 은행으로 번영을 누리고 있는 소국 리히텐슈타인의 한 사원이 고객 명부를 빼내 독일의 연방정보국에 팔아넘긴 일(80)도 있고, 완벽하게 근면하고 철두철미한 준법정신을 지니고 있을 것 같은 독일인도 오스트리아의 프라이빗 은행을 이용하고 있었다(81).

시가 사쿠라는 1971년 도쿄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같은 해 대장성(현 재무성) 입성 후 구마모토 국세국 미야자키 세무서장, 외무성 영일 대사관 참사관, 대장성 주세국 국제 조세 과장 겸 OECD 조세위원회 일본 대표, 등 일본 조세, 금융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활동하였다. (책 소개 참고)

저자는 콜롬비아의 내전이 한창일 무렵 국제회의 중 납치하듯 가게 된 곳에서 상처를 입은 대통령을 보게 되었지만 어떠한 내막을 듣지 못한 경험이 있다. 조세 피난처나 자금 세탁과 같은 국제 금융의 이면에 섞여 있는 이상한 일들을 경험하면서 ‘자금에 영혼을 빼앗긴 자들과 맞서 싸우려면 시민들에게 사실을 알리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라는 권유를 듣고 2013년 이 책을 출판하였고, 그리고 올해 우리나라 이와나미 문고를 통해 출판되었다.

남의 나라 이야기지만 요즘 우리나라의 이야기, 혐의 18개로 구속영장이 청구되었지만, 하루 전 구속심사 일정이 취소된 전직 대통령의 사건과 연관 지어 생각해볼 수 있었다.

http://naver.me/FLCUKKHa

http://naver.me/GwgbcAje



어려운 책은 있지만 나쁜 책은 없다. 쉽게 읽히지 않는다고 나쁜 책이 아니고 쉽게 읽힌다고 좋은 책은 아니다. 호기심만으로 관심 분야가 아닌 ‘조세 피난처’를 읽기에 편안하지 않았지만, 책 내용 전체를 곱씹고 시험 봐야 하는 수험생은 아니니까, 부담을 조금 내려놓고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부분만 섭취하였다. 단지 책 한 권 읽었을 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지만 뉴스 보듯 세상사를 알아가기에 좋은 책이었다.

양질이면서 저렴하기까지 한 이와나미 문고 시리즈는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올재클래식이 그랬듯 얇고 단순한 겉모습에 비교해 무거운 내용을 담고 있지만, 인문학에 관한 관심이 있다면 한 번 살펴볼 만 하다. 가볍지 않은 양질의 도서를 한 권을 읽었다.


하지만 이런 협정의 실효성에는 커다란 의문이 남는다. 조세 피난처 당국이 가치 있는 정보를 가지고 있다면, 의미 있는 협정이 될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중요한 정보는커녕 애초에 정보를 확보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없는 정보를 교환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정보교환협정은 형식에 불과하다. 그것을 모를 리 없는 조세 피난처들이 협정을 맺겠다고 나선 것이다. (43)

정부 자금으로 외환 시장의 통제가 가능하다면 애초에 변동환율제를 채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고정환율제를 유지할 수 없는 것은 시장의 집중 투매에 대항해 정부가 매수할 수 있는 자금의 규모가 너무나 작기 때문이다. 헤지펀드 등이 동원하는 투기 자금은 한 나라의 경제를 집어삼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세계 경제까지 뒤흔들 만한 규모이다. (164)

헤지펀드는 거액의 자금을 동원해 위험천만한 머니 게임을 벌이며 세계 경제를 심각한 위기에 빠트린다. (189)

세금은 문명의 대가이다.
미합중국 최소재판소 판사 올리버 웬델 홈즈 Jr.
‘세금이 문명의 대가’라면 세금을 내는 사람은 그 대가인 ‘문명’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조세 피난처는 그런 ‘문명’의 향유를 방해하고 더 나아가 ‘문명’에 재앙을 가져온다. (...) 이제 남은 것은 세금의 대가로서 ‘문명’을 향유할 권리가 있는 일반 납세자가 문제를 확실히 이해하고 주목하는 것이다. 이 책을 펴내는 목적은 오직 그것 뿐이다. (238)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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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세피난처 왠지 제목부터 재미없을 거 같네요...ㅋㅋ그래도 상식을 좀 키우기 위해서 도전해보는 것도 좋을 거 같아요. 제가 그쪽으로는 거의 무지해서 도움이 될거 같기도 하고요 :)

    2018.04.02 04:2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책읽는 고양이님 댓글 감사합니다 :) 조세피난처라는 책은 어렵지만 의미 있었어요. 요즘은 용감한 도전(?)이 돋보이는 책이 많이 출판되는 것 같아요. 조세 피난처라는 책이 나온 것도 그렇고요 ^^

      2018.04.02 09:49 신고 [ ADDR : EDIT/ DEL ]



[완독 40 / 인문] 고전의 시선. 송혁기. 와이즈베리.

고전의 시선은 ‘우리 산문 다시 읽고 새로 쓰다’라는 소제목을 가지고 있다. 고려대 한문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 송혁기는 한문 고전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오늘의 언어로 나누는 영역으로 글쓰기를 확장하고 있다. 경향신문에 ‘송혁기의 책상물림’이라는 제목으로 3년째 칼럼 연재를 했던 글을 묶어 ‘고전의 시선’이 탄생했다. (책 소개 참고)

우리 문학과 역사에 대해 알고 싶지만, 한자 무식자인 내가 직접 읽어낼 수는 없으니 이런 연구물이 나오면 정말 반갑다. 특히 상세한 설명과 붙임 말이 더해져 이해하기 쉽게 정리된 책, 시를 읽듯 언제든 가볍게 한 두 장씩 넘기며 읽을 수 있는 책.

요즘 유행하는 고전 한정주의 ‘문장의 온도(2018)’는 이덕무의 소품문을 재해석한 글로 한 사람의 일상과 생각을 담은 시집 한 권을 보는 것 같았다면, 송혁기의 ‘고전의 시선(2018)’은 송혁기가 추천하는 우리 고전 묶음 집이다. 두 책의 공통점이라면 ‘쓰기’라는 행위에 대해 한 번 더 되새기게 된다는 것이다.

한시로 쓰인 옛글을 한글로 풀어쓴 글, 그리고 시대적 배경 없이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을 오늘날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재해석한 글까지, 하나의 주제로 쓴 여러 글을 보면서 한시를 풀어낼 수 있다는 것, 어떤 글을 쓸 수 있는가에 대해 저자의 한시를 대하는 깊이 있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주어지는 수많은 임무와 업무들로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짧아지는 요즘 같은 시기에 흐름이 짧고 전하는 바가 분명한 고전의 시선은 위안을 준다. 짧은 한시를 내가 직접 읽고 음미할 수는 없으니 전문가의 손을 빌려 이렇게 옛사람들의 생각을 나누어 받을 수도 있으니 나도 옛사람들과 함께 사색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SNS 덕분에 짧고 간단하고 단순한 신변잡기 식의 글쓰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요즘, 글의 가치를 판단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 많은 의미 없는 글들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꾸밈말과 감성을 가득 담은 글이나 유명인의 일상생활을 담은 글 등 요즘 유행하는 산문, 비문학, 에세이류의 책 말고 다른 게 궁금했다. 책을 읽는 이유와 읽는 이들이 제각각이라지만 허공을 떠도는 가벼운 느낌의 글이 싫었다. 내 글도 누군가에겐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고나서부터는 짧고 간단한 글쓰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고전을 재해석하는 시선을 가진 책 덕분에 글을 쓰고 음미하고 다시 생각하는 과정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다.


​‘공부는 책상 위에 서는 것입니다. 더 넓고 먼 곳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고 신영복 선생)(7)

어떤 허기짐을 충족하기 위해 눈과 머리로 책을 쑤셔 넣는 행위를 근 1년째 하는 중이다. 아마 더 넓고 먼 곳이 어디인지 알아가기 위함이 아닐까, 읽기와 쓰기는 멈춰있는 나를 깨어나게 해준다. 지금 하는 이 행위들이 나를 어느 곳으로 데려다줄지 기대된다.





부지런하게 살수록 바빠지기만 할 뿐이라는 게으름뱅이의 일갈은 여전히 유효하다. 쳇바퀴 도는 삶처럼 목적을 상실했다면 우리의 부지런함은 그저 그만큼의 고역일 뿐이다. 그러나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즐거움이 있다면 부지런함도 기쁨일 수 있다. 질문을 바꿀 필요가 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부지런한가? 그래서 어디로 가는가? (37)






근심과 즐거움
“군자에게도 근심이 있습니까?”
자로의 질문에 공자는 답했다.
“없다. 군자는 벼슬을 얻기 전에는 뜻을 즐기고, 얻고 나서는 다스림을 즐긴다. 그러므로 종신토록 즐거울 뿐 근심할 날이 없다. 소인은 그렇지 않다. 벼슬을 얻기 전에는 못 얻으면 어쩌나 근심하고, 얻고 나서는 잃으면 어쩌나 근심한다. 그러므로 종신토록 근심할 뿐 즐거운 날이 없다.” (52)




도둑 부자 이야기 도자설, 강희맹.
배워서 이룬 지혜는 한계가 있고 스스로 터득한 지혜라야 여유롭다. 너는 아직 멀었다. (90)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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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38 / 경제경영] 다시, 장인이다. 장원섭. 영인미디어.

석사 졸업 후 더는 내 머릿속만 채우는 배움에 머물지 않고 내가 가진 지식이나 정보를 노동으로 사회에 환원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일을 시작했다. 그런 마음으로 직업을 구하니 직업의 귀천이나 월급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그때 내가 원하던 건 나누는 삶이었다. ‘다시, 장인이다’의 저자 장원섭처럼 ‘선한 영향력’, 바로 그게 내가 하고 싶던 직업, 노동, 삶이다.

연대 교육학과 교수이며 지적 장인으로서 일을 통한 배움과 성장에 관하여 연구하고 있는 저자 장원섭의 신간 ‘다시, 장인이다’는 2015년 ‘장인의 탄생’의 2편이라고 볼 수 있다. 배움과 성장과 나눔을 연구 중인 저자의 관심사가 진화하는 과정을 엿볼 수 있었다.

최근 나의 읽기 목록 중 1/2 정도를 차지하는 분야는 교육이다. 언어와 교육에 관계된 책을 출판하는 유유출판사의 책을 즐겨 읽었고, 교사교육자인 사이토 다카시의 책을 몇 권 읽었다. 그 외에도 교육과 관련된 책이거나 교육관계자가 쓴 책을 즐겨 읽었다. 배움과 성장을 꿈꾸는 내게 어쩔 수 없이 끌림으로 다가온 이 책은 100% 만족 그 자체였다.

대기업 속 부품처럼 돈 버는 기계로 일하며 살아가는 오늘날 사람들에게 ‘장인 정신을 가지고 일해야 한다.’라는 이 책은 나이든 부장님의 잔소리처럼 케케묵은 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부자가 되기를 꿈꾸기보다 왜 장인처럼 일해야 하는지, 그런 방식이 자신에게 어떤 도움을 주는지, 결국 한 사람 한 사람이 장인이 되어 일한다면 어떤 변화가 찾아올지 생각해보면 저자의 주장이 전부 맞는 말처럼 느껴진다.

인간의 본성을 선하게 여겨 성선설을 주장한 맹자가 있듯 성악설을 주장한 순자가 있다. 맹자의 관점에서 보면 장원섭의 논리는 그럴듯하다. 순자의 관점에서 보면 과연 모든 사람이 장인을 바라며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해 의심하게 된다. 나는 장인처럼 일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할 것 같진 않다. 이렇게 생각하는 나도 성악설을 전제로 두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이야 어떻든 나는 옳다고 여기는 나의 방식대로 살아가야겠지만. 아무튼.

노동은 하찮은 것, 직업은 먹고 살기 위해 해야 하는 것, 장인은 특별한 사람, 삶은 이런 거라고 생각했던 나의 짧은 생각을 반성하며 저자가 곱씹어주는 장인 예찬론을 읽고 있으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노동과 직업, 장인과 삶이 연장 선상에 놓여있다면 그 삶은 얼마나 행복할까. 마법사의 마법에 홀리듯 저자 장원섭의 글에 홀려 장인이 되고 싶어졌다. 그놈의 돈 때문에 먹고사는데 팍팍해서 지쳐있던 내게 장인처럼, 능동적인 노동을 하며 내 삶을 이끌어가야겠다고 다짐한다.



직업명은 소유의 이름이라서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이기면 가질 수 있는 반면, 일의 의미는 존재의 방식이기 때문에 오랜 기간 거기에 자기 자신을 투입하지 않으면 얻어질 수 없다. (47)

남이 아니라 자신의 리듬에 따라 일할 때 비로소 기계가 하지 못하는 인간만의 고유하고 독특한 생산과 서비스가 만들어 질 수 있게 된다. 한 마디로, 김밥 한 줄을 말더라도 정성을 다하여 스스로 의미를 찾고 다른 사람에게도 인정받는 일이 필요하다. (73)

많은 사람, 특히 생계를 위해 시간과 공간을 때우는 방식으로 노동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일에 대해 철두철미하지 못할 수밖에 없다. (78)

성공은 ‘끝까지 해내는 것’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89)

‘생각하는 손’과 ‘수고하는 머리’는 필연적이다. (108)

장인이 자신의 리듬을 따라 일한다는 것은 기계나 고객의 리듬에 휘둘리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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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37 / 경제경영] 블록체인의 미래. 오키나 유리, 야나가와 노리유키, 이와시타 나오유키 편저. 이현욱 옮김. 한스미디어.

블록체인이라는 이름은 돈이나 상품의 거래 이력 정보를 전자 형태로 기록하면서 그 데이터를 블록으로 집약해서 체인처럼 차례차례 연결한다는 의미이다. (...) ‘거래 이력 정보를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참가하는 전원에게 분산하여 보관, 유지하고 참가자들의 합의를 통해 거래 데이터의 정당성을 보증하는 분산원장’이다. (25)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의 관계 (100)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적인 토대 위에 비트코인이라는 가상화폐가 성립된다. (...) 사토시 나카모토가 만들었다고 알려진 블록체인은 비트코인을 움직이게 만드는 시스템인 동시에 기존의 데이터베이스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데이터베이스’로서, 기존 데이터베이스의 상식으로는 상상할 수 없었던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 정부나 중앙은행과 같은 관리자가 없다.
* 절대 고쳐 쓰거나 조작할 수 없다.
* 장애가 발생해도 절대 시스템이 멈추지 않는다.

핀테크 서비스의 등장 (194)
현금 없는 결제가 현금 결제보다 ‘더 편리하고, 더 득이 되고, 더 안심할 수 있다’라는 것은 현금 없는 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대전제가 된다. 정부는 안전성, 신뢰성 확보 등 현금 없는 결제를 위한 인프라를 정비하고 새로운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핀테크 기업의 시장 진입을 촉진하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은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가상 화폐부터 금융기관의 국제 송금과 기업 공급망, 한발 더 나아가 에스토니아의 전자정부 도입 등과 같이 다양한 분야에서 응용할 수 있다. (7)




얼마 전 새로운 재테크 수단으로 알려지면서 경제 문외한인 나도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는 비트코인. 비트코인에 관한 관심보다는 그것을 움직이게 하는 시스템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일본 경제 금융전문가들이 모여 블록체인 기술의 특징과 발전 가능성을 여러모로 살펴본 이 책은 어려운 용어와 처음 접하는 상황들로 편하게 읽을 수는 없었지만 비교적 쉽고 다양하게 설명되어 입문자들도 충분히 읽을 수 있는 경제서이다.

아직 연구 중인 분야라 눈앞에 등장하여 활발하게 통용되진 않지만, 그 발전 가능성을 충분히 엿볼 수 있었다. 비트코인이라는 가상화폐와 핀테크, 전자정부 등 ‘가상’의 미래 사회를 그려볼 수 있었다.

어릴 적 그리던 과학 상상화 속 생각과 주제들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게 놀랍고 무섭게 느껴졌다. 아직도 자판보다는 수첩을 즐기고, 폰뱅킹이나 카카오뱅크도 사용하지 않는 아날로그적 삶을 지향하는 나이지만 시대의 변화를 거부하기 보다는 변화의 흐름을 알고자 경제 경영서를 종종 읽는다. 내용에 대한 이해 보다 단어의 뜻만 겨우 읽는 게 전부이고 읽는다고 내가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내가 사는 이 세상에 관한 관심과 애정을 담아 두꺼운 책 한 권을 읽었다.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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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36 / 인문] 눈이 아닌 것으로도 읽는 기분-읽어본다. 요조. 사진 이종수. 난다.

난다 출판사의 읽어본다 시리즈 5권 중 하나.
한때 홍대 여신으로 불렸고 현 책방 무사의 주인, 예술가이자 작가인 요조의 서평 모음집.

‘눈이 아닌 것으로도 읽는 기분’이라는 오묘한 제목에 약간 끌렸지만 읽고 싶은 생각이 들진 않았다. 요즘 SNS에 많이 등장하는 가볍고 예쁜 감성의 책, 예쁨으로 한껏 포장하여 홍보하는 책처럼 느껴져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우연히 장강명과 요조의 ‘책, 이게 뭐라고’라는 팟캐스트를 듣게 되었고 그때 요조라는 사람이 풍기는 오묘한 매력이 궁금해서 읽게 되었다.

그녀의 음악을 귀 기울여 들어본 적도 없고,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잘 모르지만 차분하고 나긋나긋한 그녀의 목소리가 느껴지는 짧은 글들을 보다 보니 예쁜 사람이 느껴진다. 이런 느낌의 사람이라면, 이런 사람이 만든 음악이라면, 책방이라면?

가볍고 자유롭고 싶은 흔한 예술가 중 하나인 줄 알았는데 책을 읽을수록 요조라는 사람의 매력이 느껴진다. 글을 읽으며 그의 목소리를 상상했다. 변태 같지만.

‘서평 쓰는 법(2016, 유유)’을 읽으며 서평과 독후감의 차이를 알게 되었다. 그 책에 의하면 요조의 책에 등장하는 이 글들은 서평이 아니다. 하지만 이것도 서평 같다. 쓴 사람의 취향과 개성이 느껴지는 글이니까.

책을 읽고 기록하기 위한 글쓰기를 하고 있다. 언젠가부터 잘 쓰는 글을 쓰고 싶다는 강박에 분석적으로 읽으며 읽는 재미가 줄어든 게 사실이다. 요조의 신간을 읽으며 서평에 대한 부담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다. 글자 수 제한 따위, 내 생각과 느낌을 조금 드러내면 어떠랴, 취미생활인데, 아무렴 어때.

이런 사람과 알고 지내면 어떨까? 신수진이라는 사람이 궁금해지는 예쁜 책이었다.




책방에 대해서라면 나는 진짜 할말이 많다. 근데 대체로 있는 그대로 말하지는 않는 편이다. 어떻게 말해도 내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언제나 곡해되는 느낌이 든다.
할말이 많은데 안 하는 데에는 수고가 조금 필요한데, 이 책 덕에 견딜 만 하다.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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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34 / 소설] 펫숍 보이즈. 다케요시 유스케. 최윤영 옮김. 놀.

일상에 쫓겨 이제서야 읽을 수 있었던 게 아쉬울 만큼 아름답고 따뜻한 소설이다. ‘카모메 식당’이나, ‘하나와 앨리스’, ‘웰컴 투 맥도나르도’처럼 잔잔하고 소소한 일상 이야기. 몰리스 펫숍처럼 반려동물과 생활용품도 함께 파는 펫숍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이야기.


‘이곳은 펫숍. 언제나 사건으로 가득한 내 직장이다.’

일본 드라마를 본 적은 없지만 이런 나레이션이 에피소드 사이사이에 나올 것 같은 독백체의 문구가 등장한다.


띠지에 대한 선입견이 있다. 책 자체에 자신이 없어 포장한, 쓸모없는 광고 용품으로 여겨 책을 펼치면서 바로 버리곤 하는데, 이 책은 띠지가 신의 한 수다. 귀여운 동물 스티커도 좋았지만 띠지 안쪽에 등장인물의 이름과 성격을 엿볼 수 있는 간단한 스케치(책 표지에도 나와 있는 인물 스케치) 덕분에 등장인물 헷갈릴 염려 없이 편하게 읽었다. 너무 귀여운 소설과 덩달아 귀여운 띠지였다. 덕분에 버려지지 않을 유일한 띠지가 될지도.

삭막하고 단순 반복적인 나의 업무에도 이 소설처럼 찰나의 행복과 즐거움이 공존할 것이다. 밥벌이의 무거움 덕분에 소소한 행복을 놓치고 있었다. 아름다운 소설 덕분에 업무를 맞이하는 하루의 시작이 즐겁다. 모두 ‘펫숍보이즈’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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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33 / 인문학, 책읽기] 우리는 독서모임에서 읽기, 쓰기, 책쓰기를 합니다. 남낙현, 더블엔

2년, 횟수로 3년 전 시작한 모임 덕분에 읽고 쓰기에 익숙해졌다. 처음엔 모임의 규칙대로 한 달에 한 권 정도를 읽고 마음에 드는 구절을 발췌하곤 했다. 잘 읽는 법에 관한 관심으로 ‘잘 읽는 법’에 대한 책을 읽었고, 읽고 기록하는 것이 즐거워 ‘서평 쓰는 법’에 대한 책을 읽었다. 그렇게 읽고 쓰는 행위에 중독되어 이제는 일주일에 2~3권은 거뜬히 읽고 쓸 수 있는 속도(?)를 지니게 되었다. 잘 읽고, 잘 쓰기를 즐기는 행위 자체는 즐거웠지만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이 행위에 매너리즘을 갖게 된 지금, ‘우리는 독서 모임에서 읽기, 쓰기, 책쓰기를 합니다.’라는 제목의 책을 보게 되었다. 무언가에 홀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당장 읽어나갔다. 안개 가득한 길에서 불빛 하나를 발견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읽기 시작한 이 책은 세 아이의 아빠이자 맞벌이 남편, 독서모임 기획 연구가인 남낙현의 신간이다. 그는 혼자 읽는 독서에서 나아가 다양한 분야의 여러 사람과 함께 읽고 싶어 독서 모임을 기획, 운영하고 있다. 저자는 삼독모임 기획자로, 읽기, 쓰기, 책쓰기 모임을 운영 중이다. ‘책을 읽어야만 나오는 곳이 아닌, 책을 읽기 위해 나오는’, ‘독서토론만 하는 게 아닌, 글쓰기와 책쓰기로 이어지는’ 삼독모임을 지향하고 있다. (책 소개 참고)

자신이 운영하는 모임에서의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쓰인 이 책은 ‘독자에서 저자로 성장해가는 3단계 독서모임 활용법’을 제시한다. 그리고 누구나 책쓰기를 할 수 있다고 반복하여 이야기한다. 읽기 모임 2년, 쓰기 모임 1년, 책쓰기 모임 1년 차례대로 따라가다 보면 결국 어딘가에 도달할 수 있으니 도전하라고 한다.

자신에게 맞는 독서 모임을 선택하여, 일단 참여하길 권한다. 책을 완독하든 하지 못했든, 결국 독서모임을 통해 얻는 것은 결국 함께 한 사람, 사람들이 읽어낸 다양한 생각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기에 꼭 참여하길 권한다. 읽기 모임을 2년 정도 참여하면 자연스럽게 쓰기 모임에 관심을 두게 되는데, 완벽하지 않아도 솔직하고 담백한 자신이 드러나는 글쓰기를 권한다. 15분 글쓰기 같은 것을 매일 반복하다 보면 무언가를 쓰는 힘이 생기게 되고 그 힘은 자연스럽게 책쓰기로 이어지게 된다. 책쓰기 모임을 통해서 독자가 아닌 저자의 시선으로 쓰는 글을 쓸 수 있게 되고, 주제를 정하고 머리글을 쓰고 목차를 정하는 일련의 기획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저자가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함께’, ‘꾸준히’이다.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이야기들로 쓰인 이 책은 요약하면 간단하다. (부록이 요약판이다) 하지만 알고 있어도 실천하기 어려운 자기계발서처럼 이 책은 ‘한 번 도전해봐, 쉽지 않을걸’ 같은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최근 읽은 책 중 가장 많은 북마크를 붙였고, 모두 발췌할 거지만 그 내용은 이 글에 붙여넣지 않고 비공개로 볼 것이다. 책의 정수는 스스로 찾아 읽고 발견해야 제맛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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