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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고 또 읽기/인문

[책 추천] 나의 카프카



[완독 42/ 인문] 나의 카프카. 막스 브로트. 편영수 옮김. 솔출판사.

책 읽는 행위를 즐기지만, 고전은 두려운 존재였다. 어릴 적 읽었던 ‘데미안’은 우리말이지만 읽어낼 수 없어 좌절하게 했고, 그 후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하게 읽을 수 있었던 고전은 지난해 말 읽었던 카프카의 ‘변신’이 유일하다. 심오하고 오묘했지만 ‘나 같은 초보자도 읽을 수 있다’라는 용기 같은 게 생겼고, 그때 생긴 카프카에 관한 관심으로 무겁고 두꺼운 이 책에 관심 두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두께에 비교해 무겁거나 거창하지 않았다. 번역체 특유의 이해하기 어려운 문구가 거의 없기에 두께에 대한 부담감을 떨칠 수 있다면 ‘카프카에 대한 모든 것’이 담긴 이 책을 즐겁게 읽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내 안에 사랑이 없다면, 바로 내 안에 사랑이 없다는 것 때문에 내가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레프 톨스토이, 일기, 1896년 11월 (364)


‘나의 카프카’는 저자이자 친구인 막스 브로트가 바라보는 ‘친구’이자 ‘작가’로서의 ‘카프카’일 수 있고, 옮긴 이인 편영수 님이 바라보는 ‘카프카’일 수도 있고, 이 책에 등장하는 -편지를 주고받았던 수많은- 카프카 지인들이 기억하는 ‘카프카’일 수도 있다. 그리고 카프카의 작품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분석해낸 ‘카프카’일 수도 있다. 많은 사람의 관계 속에서 재조명된 ‘나의 카프카’. 세상에 보여진 작품만으로 읽어낼 수 없는 인생과 사상, 삶을 대하는 방식들. 각자가 기억하고 있는 것들을 책 한 권으로 묶어냈다.

주고받은 편지로서 알 수 있는 그의 인생, 학자들의 연구로서 드러나는 여러 견해와 오해들, 카프카의 작품에서 읽을 수 있는 어떤 것들. 카프카의 모든 것을 담아낸 이 책은 어떤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가 없다. 비판적이며 비관적인 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로 사람을 판단할 수 없다. 그의 인생만으로 작품을 그려내기도 어렵다. 짧지만 치열하게 살다 간 한 사람과 그를 연구한 사람들의 모든 것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카프카는 톨스토이보다 총명에서, 논리에서 천 배 뛰어난 것처럼 보인다. 그 논리는 머리의 문제가 아니라, 인격 전체의 문제, 마음의 문제이다. (399)

단순한 친구 그 이상의 동반자였던 막스 브로트에 의해 치밀하게 연구되었고, 그 결과물로 ‘카프카’라는 사람을 돋보이게 만들어낸 ‘나의 카프카’는 원서에 대한 궁금증을 갖지 않아도 될 만큼 재미있었다. 아마도 번역의 힘일 것이다. 독일 현대 문학(카프카 문학) 전공자이며, 카프카와 관련된 여러 권의 책을 이미 출간한 바 있는 번역자 편영수 님의 노고를 느낄 수 있는 이 책. 막스 브로트가 아니었다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고 해도 믿을 만큼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던 사람. 선한 영향력을 믿고 평온한 가정을 꾸리기를 원했던 한 남자의 안타깝고 짧은 인생을 지켜보았다.

카프카의 작품이라곤 하나밖에 읽지 않은 내가 카프카 소설에 대한 비평을 제대로 읽어낼 수는 없었지만, 예술가 같고 성인 같은 한 사람의 마음과 그를 되새기려는 또 한 사람의 마음은 읽어낼 수 있었다. 그래서 오늘을 좀 더 치열하게 감사하며 살기로 다짐했다.




카프카는 애정과 정밀함을 갖고 개별적인 것, 눈에 띄지 않는 것의 근원까지 파고들었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까지 결코 알아차리지 못했던, 기이하게 보이지만 오로지 진실한 사물들이 나타났다. 따라서 도덕적 책무, 삶이라는 사실, 여행, 예술작품, 정치 운동에 대한 그의 견해는 결코 기이하지 않고, 단지 아주 정확하고, 날카롭고, 올바르고 그 결과 일상의 언어와는 거리가 있다. 그리고 어쩌면 그 결과 꽤 자주 우리가 ‘실용적인 삶’이라고 부르는 것에는 쓸모가 없을지도 모른다. (78)

순수한 사람이 순수하지 않은 것에 손을 댈 수 없었다는 사실은 순수한 사람의 강점이기도 하고 약점이기도 하다. 강점인 이유는 자신과 절대자 사이의 간격을 철저하게 느끼는 것, 끝까지 느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간격은 그 자체가 부정적인 것, 약점이다. 따라서 순수한 사람의 강점은 그가 속임수를 써서 절대자와의 간격을 없애버리지 않겠다고 고집하는 것에서, 그가 자신의 약점을 천 배의 확대경을 통해 솔직하게 과장하는 것에서 표현될 수 있을 뿐이다. (...) 따라서 카프카의 작품에서는 강점과 약점이, 상승과 하강이 아주 특수한 방법으로 서로 스며든다. (191)

세상이 어떠하든 나는 원시적인 상태에 머무를 것이다. 나는 원시적인 상태를 세상의 판단에 따라 바꿀 생각이 없다. 이 말이 들리는 바로 그 순간에 전 존재 안에서 변신이 일어난다. 그 말이 발언될 때, 마치 동화에서처럼 백 년 동안 마술에 걸렸던 성이 열리고, 모든 것은 생명을 얻는다. 그렇게 존재는 온통 주목을 받는다. (247)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선을 위한 투쟁을 하려는 사상가로서 카프카 입장의 핵심, 최선이며 본질적인 것을 형성한다. (248)

“인간은 자기 내면에 존재하는 파괴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지속적인 믿음 없이는 살 수 없다.” (...) “믿음은 자신 안에 있는 파괴할 수 없는 것을 해방하는 것, 혹은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자신을 해방하는 것, 혹은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파괴할 수 없게 존재하는 것, 혹은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존재하는 것이다.” (378)


“공동체에서 고립되지 마라.” (...) 카프카가 되풀이해서 자의든, 자신의 잘못이 아니든, 상황에 굴복하는 것이든 상관없이 공동체에서 고립된 인물을 묘사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인간이 더 이상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과 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벌레로 변신하는 것이 그러한 설명할 수 없고 불행을 초래하는 상황이다. (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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