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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106 / 에세이]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정문정. 가나출판사 (2018)

김찬호 교수의 책 <모멸감>을 보면, 자신의 결핍과 공허를 채우기 위해 한국인이 가장 많이 취하는 방법 중 하나가 다른 사람을 모멸하는 것이라고 한다. 위계를 만들어 누군가를 무시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것이다. (20)

내 인생은 롱테이크로 촬영한 무편집본이다. 지루하고 구질구질하게 느껴진다. 반면 다른 사람의 인생은 편집되고 보정된 예고편이다. 그래서 멋져 보이는 것이다. 그걸 이해하지 못하면 세상에서 나 혼자만 힘든 것같이 느껴진다. 결국 피해의식과 자기연민에 가득 차 사람들에게 상처 주고, 이기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 행복한 사람은 자기를 알아달라고 남을 괴롭히지 않는다. 스스로 충만하면 남의 인정을 갈구할 필요가 없으니까. (82)

취향이 자신을 끊임없이 부정하고 단지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한 것일 뿐이라면, 일기를 검사받는 것과 뭐가 다를까. 내가 정말 좋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솔직하게 표현하고 남들의 취향에 대해서도 무시하지 않아야 세상은 여러 색으로 다양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서로 ‘취존’부터! (109)

어른이 되어서 좋은 것 중 하나는 싫은 사람을 덜 봐도 된다는 것과 친구에 덜 연연하게 된다는 것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며 깊이 있는 관계를 맺기도 하고 나쁜 관계 속에서 내가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도 관찰해보니, 행복감은 관계의 양이 아니라 질이 결정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깊이 있는 관계는 함께한 시간과 비례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 나는 인간관계에서 무리하지 않는다. 알고 지낸 지 오래됐지만 만나는 것이 불편해지기 시작하면 당분간 만나지 않고, 뾰족한 말을 던지는 사람에게는 여러 번 경고하다 정도가 심해지면 관계를 끊는다. 그러면서 좋은 사람을 최대한 옆에 두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어느새 더 좋은 사람들이 다가오곤 했다. 나 또한 모든 관계는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자꾸 노력하게 된다. (202)


예약초과로 빌려오기 힘들었던 이 책.
재미있게 읽었지만, 5월 말~ 6월 초에 예약 신청해서 지금 빌려와 읽을 만큼 재미난 이야기였나? 올해 1월 8일에 1쇄를 찍고, 1월 23일에 4쇄를 찍은 아마 올해의 베스트셀러 중 한 권이 될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은 기대보다 강렬하게 다가오진 않았지만,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긴 하다. 특히 눈치 보느라 의사 표현 같은 것에 서툰 여자 사회초년생이라면 더욱 더.

저자가 이렇게 시원시원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건 그동안 쭉 글을 쓰며 먹고사는 직업으로 살아왔었고, 죽을 고비를 넘겼고, 살면서 ‘왜’라는 궁금증을 늘 갖고 지냈기 때문일 것이다. 죽음의 고비를 현명하게 넘긴 사람만이 가진 군더더기 없는 인생관이 있다. 나는 아직 경험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경험해보고 싶진 않지만, 죽음 바로 앞까지 다다르지 않더라도 이 책을 통해 간접경험 해보았으니 조금 더 유들유들하고 조금 더 단호하고 여유 있게 의사 표현하고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지금도 충분하지만, 더욱 충족하고 싶다.

아.
이 책의 좋은 점은 작가의 글 하나하나에 내 사족을 붙이게 된다는 것. 아마도 동년배인 그녀의 생각에 보태어 내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드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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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107 / 어린이, 환경] 내일을 바꾸는 작지만 확실한 행동. 시릴 디옹, 피에르 라바 글. 코스튐 트루아 피에스 그림. 권지현 옮김. 한울림어린이. (2018)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면 마음이 점점 허전해져요. (15)

마지막 나무가 베어지고
마지막 강물이 오염되고
마지막 물고기가 사라지면
그제서야 인간은
돈을 먹을 수 없다는 걸
깨닫겠지요. (29)

어떤 계기로 환경에 민감해졌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다른 이들보다 좀 더 감각적이며 감성적으로 반응하는 삶을 살아온 것이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지구과학이나 자연환경 생태계에 대한 관심은 어린이에겐 자연스러운 모습이지만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된다. 그러한 순수한 자연에 대한 동경 같은 감정을 어른이 된 지금까지 이어온 나는 환경운동가나 전문가는 아니지만 나 하나라도 잘 하자라는 마음을 늘 갖고 있다.

어린이가 읽기엔 아니, 다 큰 어른이 읽어도 다소 난해한 이 책은 그림에 시선이 머무르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한 번 읽으면 기억나지 않는데, 두 번, 세 번 읽으면 더 읽으면 읽을수록 자꾸만 곱씹게 되는 철학적인 이야기의 힘도 지녔다.

어린이들이 이 책을 읽고 어떤 감정을 느낄지 궁금하다. 나와 같을지, 다른 어떤 느낌으로 읽을지.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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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고 또 읽기/인문2018. 8. 26. 21:04




[완독 105 / 인문학, 교양인문학] 시크:하다. 조승연. 와이즈베리. (2018)

15년 전 다녀온 배낭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나라는 프랑스이다. 깨끗하고 정돈된 느낌이었지만 인종차별을 당연하게 느꼈던 거만한 영국에 비해 더러운 만큼 자유분방하며 무엇보다 사람들이 입은 옷의 색이 미묘하게 세련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색채에 예민한 내게는 그 점이 가장 인상적으로 남아있다.

10년 전 미술관 인턴으로 일하던 시절 한 작가님의 초대로 프랑스 가정식 레스토랑에 간 적이 있었다.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 중반의 나는 술을 거의 마시지 못했고, 특히 와인에 문외한이었다. 몇 가지 와인을 권해주셨지만 쓰기만 하고 맛이 없었다. 와인을 좋아하는 몇몇은 쓰고 떫은 와인들이 굉장히 좋다며 행복해했다. 그곳에서 먹었던 음식들도 특별히 기억나는 만큼 맛있지도, 인상적이지도 않았지만 ‘이렇게 맛없는 음식이 전 세계인들이 열광하는 프랑스 음식인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프랑스로 유학 간 대학 동기의 전시회를 본 적이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한국에서 전시회를 열고자 내게 조언을 구했는데,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도도하고 거만하게 전시회를 치렀다. 학부 때에도 보던 특별히 다를 게 없던 전시였지만 그의 작품 세계가 좀 더 견고해졌음을 느낄 수 있었고, 아마도 ‘프랑스’라는 나라의 분위기가 더해졌음이 분명했고, 그녀의 세상이 부러웠다.

내가 아는 단편적인 프랑스는 복합적이다. 가장 화려하면서 가장 서민적이기도 하고, 테러도 파업도 많은 이상하게 매력적인 나라.

<시크:하다>는 미국과 프랑스에서 공부한 저자 조승연이 경험하고 바라본 프랑스인의 이야기이다. 나와 다른 타인의 삶, 누군가는 동경하는 프랑스인들의 삶을 엿보는 재미가 있었지만, 외국인으로서 그곳에서 몇 년 살다 온 저자의 시선이 과연 ‘모든 프랑스인의 삶의 모습일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그들의 방식이 전부 옳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얇고, 가벼운 책이었지만 결코 가볍게 읽을 수 없었던 건 프랑스와 관련된 기억을 하나씩 꺼내어보았기 때문일까? 저자가 경험한 책 속에 담긴 프랑스가 이상적인 모습이어서? 이런저런 생각에 쌓여 한 장 한 장 곱씹으며 읽어냈다. 책을 읽기 전 아리송했던 부분이 무색할 만큼 금방 해결되었다. 이 책은 ‘인문학 관찰 에세이‘가 맞았다.



‘시크하다’를 떠올리면 프랑스 여배우 샬롯 갱스부르가 떠오른다. 미인은 아니지만, 매력적인 유니크한 그녀를 참 좋아하는데, 그 이미지를 차용한 제목이라면. 음….
그럴듯하다. 제목도 소제목도 표지도 잘 어울리는 책이다.



​​용케도 잘 돌아가는 구닥다리 톱니바퀴 같은 포근한 편안함.
예측 가능한 삶 (25)




​​그렇지 않아도 지구에 넘쳐나는 쓰레기를 보태게 되는 것을 ‘불편’하게 여겼다. 비록 지주 고장나기는 했지만, 근처에 있는 철물점에서 나사나 용수철 같은 부품만 적절하게 교체해주면 큰 문제 없이 몇 달은 더 쓸 수 있었다. (16)





한 프랑스의 슈퍼마켓 벽에는 루이제 콜렛이라는 여류 시인이 했던 말로 여겨지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
“내게 장가 보낼 아들이 있다면,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하겠다. 아들아! 와인과 치즈와 송로버섯을 즐겨 먹지 않는 여자와 절대로 결혼하지 말거라.”
(...) 식자재를 까다롭게 고를 줄 아는 사람은 인생에서 자기 갈 길을 제대로 선택할 줄 안다는 프랑스식 근대 철학에서 나온 말이다. (72)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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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104 / 경제경영, 기업경영] 최고의 리더는 어떻게 변화를 이끄는가. 기무라 나오노리. 이정환 옮김. 다산북스. (2018)

이 책은 리더의 스킬 두 가지 중 쉽게 드러나지 않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논리적 사고력, 업무에 관한 지식 등 주어진 일을 요령 있게 처리하는 능력인 ‘브라이트사이드 스킬’보다 상사나 조직원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설득하고 움직이는 ‘다크사이드 스킬’이 바로 그것이다. ‘다크사이드 스킬’은 유연하게 변화를 주도할 수 있다.

리더십은 처음부터 타고나는 재능이 아니다. 자신의 장단점을 확실하게 인식한 사람이 스스로 빠지기 쉬운 함정은 피하고 직원들과 자유로운 소통을 해나가다 보면 어느새 자연스럽게 리더십을 발휘하게 된다. ‘리더십’이라는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하지만, 그 방식은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방식을 훙내 내는 것은 의미가 없다. 자신의 성향에 적합한 자기 나름의 방식을 찾아 개발해나가야 한다. (...) 모든 사람에게 통하는 절대적인 해답은 없다. 결국, 모두가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내야만 한다. (133)

논리적이며 명확하게 표면에 드러나는 ‘브라이트사이트 스킬’에 비해 그때그때 다르며 숨겨져 있는 ‘다크사이트 스킬’은 딱히 무엇이다. 라고 설명하기 어렵다. 정확한 정의 같은 게 있지도 않고 어울리지도 않으니 모호하고 뭉뚱그려 표현되고 있지만, 손에 잡히지 않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그것에 관한 이야기이니까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리더십을 이야기하는 다른 어떤 책보다 부드럽지만, 수수께끼 같으며 이해하기 쉬운 듯 어렵다.

철저하게 ‘듣는 사람’의 입장에 서서 계속 질문을 이어나가는 방식은 효과적인 협상 기술 중 하나다. 올바른 정답을 말하기보다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 핵심을 찌르는 질문이 거듭될 때 직원의 입에서 지금까지 몰랐던 정보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그것이야말로 현장의 진짜 목소리라고 할 수 있다. (124)

리더다운 리더란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가진 사람이다. (156)

회사는 사장의 그릇, 말하자면 사장의 인격 이상으로는 커지지 않는다. 다시 말해, 사장이 포용할 수 있는 범위가 작으면 회사 역시 어느 정도 이상으로는 확장될 수 없다. (213)

리더의 신념이란 무엇일까.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나 자신에게 떳떳하고 괜찮은 리더가 되고 싶다. 알 수 없는 자신감이 밀려온다. 다크사이드 스러운 기분?!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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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102 / 자기계발, 행복론] 지적인 낙관주의자. 옌스 바이드너. 이지윤옮김. 다산북스. (2018)


독일의 심리학 전문가이자 낙관주의자인 옌스 바이드너의 2017년작, ‘OPTIMISMUS. Warum manche weiter kommen als andere’ 를 번역한 책 ‘지적인 낙관주의자’(다산북스, 2018)는 제목에 끌려 읽기 시작한 책이었으나, 책장을 넘길수록 ‘지적임’과 ‘낙관주의’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건지 의심이 생기다 1/2 이상을 읽고 나니 의문이 풀렸다.

몇 년 전 큰 인기를 끌었던 마스다 무네아키의 지적자본론(민음사, 2015) 덕분인지, 지난해 큰 유행을 만들었던 ‘인문학’ 바람 덕분인지 낙관주의조차 지적이길 원하는 건지, 낙관주의에도 지식이나 지성 같은 것이 필요한 것인지 혹하는 제목과 표지를 가진 이 책 ‘지적인 낙관주의자’는 인문학 + 자기계발서가 적절하게 섞여 있어 읽기 부담스럽지 않다. 책의 앞쪽 보다는 4장 이후 부분이 특히 흥미로웠다.

책의 내용을 한눈에 정리하고 싶다면 맨 뒤 쪽 282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진정한 행복을 찾는 사람은 엘리트층의 폐쇄적 냉소주의와 하류층의 배타적 포퓰리즘을 동시에 배격한다. 그들의 올바른 태도는 예언의 자기 실현성을 성취한다. (...) 그들은 두툼한 은행 통장을 좋아하면서도, 신분을 과시하는 상징에 현혹되지 않는다. 상징 대신 가치를 추구하는 ‘덜 쓰는 사람’이 사회 전체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67)


‘나는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는 메아리가 가슴 속에 울려 퍼지도록 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건 우리를 불필요한 자기 의심으로부터 지켜준다. (81)

행동은 의연하게, 태도는 부드럽게 (127)

성공은 세 가지 수준으로 나뉜다. 나 자신을 위한 성공과 회사를 위한 성공, 그리고 사회를 위한 성공이다. 이 성공을 개별적 조각이 아니라 하나의 덩어리로 생각할 때 바로 지속 가능한 성공을 위한 낙관주의의 삼박자가 완성된다. (137)

낙관주의는 저절로 이뤄지지 않는다. 낙관주의는 개인적 태도와 교육, 사회의 영향력과 직장에서의 경험이 어우러진 결과다. (151)

상호작용은 지뢰밭이며 동시에 이 지뢰밭 위에서 인간의 다면성이 드러난다. 다양한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까닭에, 카리스마 있는 상사와 친절한 대화상대, 절대 지지 않는 협상가이자 노동자 친화적인 사업가의 역할이 한사람에게 요구되는 것이다. (242)

낙관주의자는 100%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아도 70%가 제대로 돌아간다는 사실에 행복감을 느낀다. (...) 해결되지 못한 30%를 견디는 능력이 바로 모호함에 대한 관용의 기술이다. (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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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에게 추천받아 교토 여행을 계획하며 여행하며 읽으려 고른 책. 무더운 날씨와 꼬이는 일정 등 각종 돌발상황 덕분에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몇십 쪽을 읽고 일상 속에서 읽는 이 책은 처음 생각했던 ‘여행지에서 읽을 가벼운 책’이 아니었다. ‘안목의 성장’의 저자 이내옥은 한국 미술사 연구와 박물관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인 최초로 미국 아시아파운데이션 아시아미술 펠로우십을 수상한, 34년간 국립박물관에서 근무한 우리나라 박물관 발전에 이바지한 상당히 유명한 분이었다. (책날개 참고)

이 책은 백제 역사나 윤두서, 정약용 등의 학문적 가치나 예술성을 알리는 책이라기보다는 ‘박물관에서 반평생을 보낸 사람 이내옥의 이야기’책이다. 비슷한 아우라를 가진 책으로 ‘문장의 온도(다산초당, 이덕무, 2018)’와, ‘내가 사랑한 백제(다산초당, 이병호, 2017)’가 있다. 책 세 권의 느낌이 비슷하지만 이내옥의 책에서 가장 깊은 울림을 받았다. 역사와 미술을 사랑하는 한 사람의 깊이, 우리 것의 아름다움이 짧은 글 하나에도 느껴져 이런 사람들이 지키는 박물관이라면 믿을만하겠다 싶은 마음도 들었다.

교토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읽었더라면 좀 더 깊은 감흥을 느낄 수 있었겠지만 다녀와서 읽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여행하는 동안은 그 순간에 집중하느라 이내옥의 글을 깊이 공감하며 읽지 못했을 것이다. 문장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느끼는 기분, 이 순간이 좋다. 우리 것을 지키는 사람의 소중한 마음과 미래의 내 모습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던 울림이 있는 책이었다.


나는 무엇 하나에 열정을 다해 본 적이 있던가? 먼 훗날 내가 생각하고 추구하는 것들을 쌓아 어떠한 지위나 위치에 올랐을 때, 나보다 어린 세대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춰질까?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회한만 남고, 앞으로 다가올 날을 바라보면 두려움만 가득한 것이 우리의 삶이다. (6)

무담시, ‘괜히’ 또는 ‘아무런 이유 없이’라는 뜻.
다산과 교유하던 백련사 혜장 스님이 마흔의 나이로 숨을 거둘 때, ‘무담시 무담시’를 되뇌며 유언 아닌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알고 난 이후부터 나의 뇌리에는 뜻하지 않을 때 이 무담시란 말이 괜히 떠오르곤 했다. 무담시, 무담시...... (29)

이렇게 소박하고 검소하며 집착 없는 고요함을 추구하는 일본 다도에서 배운 것도 없는 천한 조선 장인이 오랜 숙련과 무심한 마음으로 만든 결과물이 최고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비록 조선 장인들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수행은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61)


우리 모두는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고귀한 존재이다. 그렇기에 진정으로 가치와 품위를 가지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이를 생각하며, 흔적도 없이 사라진 조선의 아름다운 유풍을 그리워한다. (76)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자신의 느낌과 정서, 생각이다. 그런 점에서 결국 예술이란 인간적이고 인간을 지향한다. (157)

인생이란 뿌리도 꼭지도 없이 바람에 떠도는 티끌과 같다. 도연명의 말이니, 우리네 일생 오는 데도 없고 가는 데도 없이 이리저리 날리다가 떨어지는 곳에 하룻밤을 청하는 신세이다. (248)

일본 중세의 승려 요시다 겐코는 굶주리지 않고, 헐벗지 않고, 비바람 맞지 않고 한가롭게 사는 것이 인생의 즐거움이라고 했다. 여기에 병의 고통을 참기 어려우므로 약을 포함하여 이 네 가지가 부족함을 가난이라 하고, 네 가지가 부족하지 않음을 부유하다고 하며, 네 가지 이외의 것을 얻으려 함을 사치라고 했다. (250)

다치하라 마사아키, '겨울의 유산'
이 세상 모든 것은 물거품이요 그림자여라.
나, 오늘 이 육신을 벗고 텅 빈 무로 돌아가노라.
옛 부처의 집 앞에는 달이 밝은데,
다만 원적으로 돌아가지 못함을 한할뿐이로다.

우리는 자유 의지와 상관없이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이니, 우리 생의 본질은 능동적일 수 없으며 타락적이다. 그저 주어진 삶을 살아가다가 생명이 다하면 먼지로 돌아갈 뿐이다. (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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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98/ 에세이, 불교] 다시 태어나도 우리. 문창용. 홍익출판사. (2017)

불교에서는 ‘옴마니 반메 홈(ommani padme hum)’이라는 말을 매우 귀하게 여긴다. 이 말은 불교의 천수경에 나오는 관세음보살의 진언으로, 이 말을 지극정성으로 읊으면 관세음보살의 자비에 의해 번뇌와 죄악이 소멸되고 지혜와 공덕을 갖추게 된다고 한다. (44)

지난가을 동명의 영화 ‘다시 태어나도 우리(2017)’로 린포체 앙뚜 스님의 존재에 대하여 알게 되었고, 최근 영화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2018)과 책 ‘관점’(2018, 쑹훙빙)을 보고 카슈미르라는 지역적 의미를 되새기고자 읽게 된 책.

카슈미르는 중국과 인도, 파키스탄의 경계에 있는 산악지대이다.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에서 본 카슈미르는 인간의 흔적이 묻지 않은 위대하고 아름다운 자연 그 자체였지만, ‘관점’에서 본 카슈미르는 중국 경제 발전의 야심(?) 펼칠 수 있는 -중국의 신장 지방과 만나는 지점에 있으며 복잡한 지질구조로 되어 있어 개발에 영향을 미칠 요소를 지닌- 핵심 지역이었다. ‘다시 태어나도 우리’에서 본 카슈미르는 인도와 중국, 파키스탄의 분쟁지역으로 오랜 분쟁 덕분에 종교적 교류뿐만 아니라 그 어떤 교류가 어려운 군사경계지역이었다.

그 카슈미르의 한 지역, 티베트 캄의 노스님이 환생하여 인도 북부 지역 라다크에서 다시 태어난, 린포체 앙뚜이다.

책 ‘다시 태어나도 우리’는 다큐멘터리 감독 문창용이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 인도를 여행하는 중 알게 된 이야기를 영화와 책으로 펴냈다. 이미 영화를 본 후였기에 그 후의 이야기가 궁금하여 책을 읽었지만, 영화의 내용과 상당 부분 일치하였다. 영화는 영상미에 감동하며 보았다면, 책은 감정선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읽을 수 있었다.

카슈미르라는 지역을 각 작품에서 각자 다르게 다룬 점이 인상적이다. 우리는 하나의 존재로 살아가지만, 누구와 어떤 상호작용을 주고받느냐에 따라 다른 이미지로 읽힌다. 모든 것은 하나의 모습만 지니고 있지 않다. 나와 너도 그렇듯, 자연도 마찬가지. 지금 내가 아는 이것이 전부인 양 자만하고 경계하지 말아야 함을 다시 한번 느낀 계기가 되었다. 세상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는 현재 내 삶에 대한 감사를 부른다. 특별한 굴곡 없는 내 인생, 단순하고 따분할지라도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함을 느낀다.

우르갼과 앙뚜의 관계, 린포체로 사는 삶을 인정하지만, 그렇게 살 수 없는 어린 앙뚜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쉽게 해결되지 않는 분쟁지역을 건너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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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97 / 예술, 미술] 100권의 그림책. 마틴 솔즈베리. 서남희 옮김. 시공아트. (2016)


요즘은 현실도피와 공감을 핑계로 책을 고른다. 정신없는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며, SNS 라는 가상 공간에서 알게 된 사람들과 공감하고 교류하고 싶어 이것저것 뒤적이다 골라 읽는다.

그래서 읽게 된 ‘100권의 그림책’의 저자 마틴 솔즈베리는 앵글리아 러스킨 대학교 케임브리지 스쿨 오브 아트에서 ‘영국 최초’ 어린이 책 일러스트레이션 석사과정을 이끌고 있다.

그림책 작가 양성 지도자가 쓴 ‘100권의 그림책’은 그림책을 소개하는 책인데 책 분류가 ‘어린이’가 아니라 ‘예술’이다. 동화책이 아닌 그림책은 어린이 문학이라기보다는 ‘미술’보다 넓은 영역, ‘예술’이 맞을 것이다.

그림책이 예술사처럼 길고 긴 역사나 학문적 가치를 가진 게 아니기에 어떠한 기준으로 100권의 책이 선택됐는지 궁금했고, 아무래도 작가의 취향이 많이 반영되었을 거라 짐작했다. 반신반의다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1910년도부터 2014년까지 10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비교적 다양한 나라 다양한 작가의 책이 소개되고 있다. 서양인의 책이 주류였지만 한국이나 일본 등 동양 작가의 책도 눈에 띄어 한 개인의 취향이라기보다는 그림책의 역사나 흐름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나라 그림책 일러스트레이션 작가 시장의 규모와 가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작가의 말처럼 이 책은 일러스트레이션 전공생들과 그림책을 사랑하는 이들이 좋아할 책이다. 그림책을 좋아하는 어른의 시선에서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책이지만, ‘어린이가 좋아하는 그림책 100권’은 아닌 것 같다.

‘정서적으로 와 닿을 때’, 그때가 바로 그 그림책과 내가 인연을 맺는 때일 테고, 내 마음의 그림책으로 자리 잡는 때일 거예요. (218)

무언가, 누군가와 만날 때 번쩍이는 순간이 있다. 내게는 ‘순이와 어린 동생’(한림출판사, 1995)과 ‘100만 번 산 고양이’(사노 요코, 비룡소)이다. 뛰어난 예술성과 가치가 있는 그림책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림책을 읽던 시절 어떠한 순간에 정서적으로 와 닿아 마음에 자리 잡은 그림책.

문득 나만의 100권의 그림책에 관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어졌다. 나 같은 사람들이 쓴 이야기들이 모여 그림책의 역사나 취향이 담겨있는 책이 많아져, 그림책이 아동문학의 한 부분이 아니라 하나의 장르로 살아남게 되길. 언젠가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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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96 / 에세이] 요가 매트만큼의 세계. 이아림. 북라이프. (2018)

자기 리듬, 그건 어떻게 가능할까. 난 우선 어깨에 힘을 빼는 것으로 시작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에게 솔직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씩씩하게 내딛는 거다. 물론 처음엔 어렵다. 자꾸 움츠러든다. 몸과 마음이 얼어붙는다. 하지만 자꾸 알아차리고 바로잡으면 된다. 그렇게 심기일전하며 다시 뚜벅뚜벅 걷는다. 좀 더 가볍게, 천천히 오래. 오늘도 그렇게 나아가기로 했다. 쉽진 않지만 해볼 만한 일이다. (28)

다른 사람이 만든 걸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옮기는 것뿐인 사람들은 신용할 수 없어. ‘리틀 포레스트’, 유우타군이 한 말(76)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쫄지 않는 것이다. 당장의 실패, 성과 없음이 내 노력의 전부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나는 해나가고 있고 배워가고 있고 나아지고 있으니까. (89)

한병철 ‘시간의 향기’
고유하게 존재하는 자는 말하자면 늘 시간이 있다. (...) 그는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기 때문에 시간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다. (167)


지금 이대로도 충분해.
마음과 영혼이 예쁘고 차분한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나도 닮아간다. 불안하고 흔들리는 내 영혼이 그들의 맑은 기운을 흡수한다. 좋은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에세이는 쉬운 글, 전문 지식 같은 것 없이 아무나 쓸 수 있는 글이라 생각한 적이 있었지만, 요즘은 아니다. 쉬운 글로 예쁜 마음을 보들보들하게 풀어가는 기술은 아무나 가지지 못한다. 도서시장에서 가장 잘 팔리는 베스트셀러들을 보면 에세이가 대부분이다. 다들 나와 같은 일상의 힘듦을 책을 통해 치유하고 싶은 모양이다.

글 쓰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브런치라는 사이트에서 제 4회 카카오 브런치 프로젝트에서 금상을 받고, 브런치에 연재한 글을 책으로 출간한 이아림은 요가를 사랑하는 서른 하나 예쁜 아가씨이다. 요가와 함께 한 그의 일상이 참 예쁘다. 얼마 전 읽었던 ‘빵 고르듯 살고 싶다.(임진아, 휴머니스트, 2018)’와 비슷한 듯 다른 이 책은 내가 요가를 좋아하는 이유가 모두 담겨있어 저자와 깊이 공감하며 읽었다.

(덧붙이기.
요즘 에세이는 이름이 예뻐야 쓸 수 있나 보다. 임진아, 이아림.. 그리고 또 누가 있더라?
아무튼 예쁜 글 많이 쓰시고 좋은 기운 나눠주시길.)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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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95 / 에세이, 사진에세이] 숲의 하루. 글 블리. 사진 빅초이. 소로소로. (2018)

생활 모험가 부부, 빅초이와 블리가 담아낸 소소한 계절의 조각들을 담은 ‘숲의 하루’는 라이프스타일 포토그래퍼 남편과 작가 아내가 쓴 두 번째 책이다. 단순한 삶을 지향하는 부부는 예쁘고 비싼 자전거 브롬튼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시작은 브롬튼’, 그리고 이 책 ‘숲의 하루’를 출간했다.

부부끼리 취미를 공유하면서 서로에게 긍정의 에너지를 주고받는 건 어떤 느낌일까? 남편의 눈에 비친 예쁜 순간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풀어낸 아내의 글이 적당히 어울린다. 궁금하지만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캠핑, 사진 찍고 글을 쓰는 이 부부의 취미생활을 몰래 구경하는 기분이다. 캠핑하면서 느끼는 감정과 순간들, 자연 한복판에서 느끼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사진 속 이미지와 글로 계절과 시간의 변화를 간접 체험할 수 있었다.

사진도 글도 부부의 애칭에서도 느낄 수 있었던 건 책과 나의 거리감이다. 비밀스럽기도 하고 베일 속에 가려져 있는 것 같은 마냥 친근하지만은 않은 우리의 거리감 덕분에 약간의 긴장감도 느낄 수 있었지만, 부부의 속내를 정확히 알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아름다운 사진과 글로 잠시동안 힐링했지만 진짜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던 점은 조금 아쉽다.

몇 년 전 읽었던 마스다 미리의 ‘주말엔 숲으로’(이봄, 2012)와 비슷한 듯 다른 ‘숲의 하루’. 문득 부부의 평일 하루가 궁금해졌다.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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