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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130 / 에세이] 당신이 허락한다면 나는 이 말 하고 싶어요. 김제동. 나무의 마음. (2018)

촛불시위, 법륜스님의 강연 등으로 김제동 님의 행보를 아주 조금 알고 있다. 의식 있는 연예인들이 말과 행동에 제약이 많고, 연예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소리소문없이 제지당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나는 과연 흔들림 없이 잘살고 있는가를 고민하는 시기에 알게 된 이 책, ‘당신이 허락한다면 나는 이 말 하고 싶어요.’는 감동 그 자체였다. 개그맨이자 사회자인 김제동의 텔레비전 속 모습은 어설프게 웃긴 노총각 아저씨였는데, 저자 김제동 님은 ‘님’을 붙여야만 할 것 같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느껴졌다. 책 속에 나오는 약간의 농담들로 동일인이라는 걸 알 수 있었지, 그것마저 없었더라면 전혀 다른 사람의 글이라고 해도 믿었을 것이다.

책과 인문학에 관한 관심이 커지면서 작년 이맘때 정치에 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읽은 정치 관련 책 ‘쓸모 있는 인문 수업 정치학’(이룸북, 2017)이 상당히 의미 있게 출판된 책이라는 걸 알 수 있었는데 이 책도 같은 맥락으로 느껴졌다.

다정한 제목의 ‘당신이 허락한다면 나는 이 말 하고 싶어요.’는 김제동이 곱씹어 읽고 쉽게 풀어쓴 헌법 독후감이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시절 외우기에 급급했던 어려운 말 투성인 헌법이 이렇게도 따뜻하고 아늑한 글을 담고 있었다니.

무지한 시민들을 개화하여 혁명을 일으키려는 세계사 속 몇몇 사건들이 떠올라 가슴 뭉클해 하며 읽었다. 그 감정이 무엇이라고 딱히 설명하기 어렵지만 깨어있어야 함을 자각하면서 애국심이 마구 솟아나는 책이었다. 혼란(?)의 시기에 이런 책을 용감하게 쓰고 출판할 수 있는 출판사와 저자의 도전에 응원한다.

금사빠라서 금세 또 김제동 님에게 빠져버렸다. 누군가 한 사람의 짝꿍보다는 만인의 연인으로 남겨지길 바라는 마음이 김제동 님을 향해서도 생겨났다. 부디 오랫동안 좋은 글, 좋은 생각, 좋은 강연 많이 나눠주시기를.






​저는 이 삶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삶이 저를 선택해준 것이죠. (261)-알비 삭스와의 인터뷰 중에서



​박준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278)

철봉에 오래 매달리는 일은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폐가 아픈 일도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눈이 작은 일도
눈물이 많은 일도
자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눈에서
그 많은 눈물을 흘렸던
당신의 슬픔은 아직 자랑이 될 수 있다

나는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한다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하는 것은

땅이 집을 잃어가고
집이 사람을 잃어가는 일처럼
아득하다

나는 이제
철봉에 매달리지 않아도
이를 악물어야 한다

이를 악물고
당신을 오래 생각하면
비 마중 나오듯
서리서리 모여드는

당신 눈동자의 맺음새가
좋기도 하였다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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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128 / 에세이] 아이가 잠들면 서재로 숨었다. 김슬기. 웨일북. (2018)

좋아하는 글쓰기 강사님의 강의를 듣고 추천받아 읽게 된 책이다. 추천받지 않았더라면 읽지 않았을 제목의 책이지만, 책장을 덮은 후에야 왜 추천해주셨는지 알 수 있었다.

이 책은 표면적으로는 ‘초보 엄마로서 육아 스트레스를 책을 통해 해결방법을 찾았다.’라는 육아 에세이지만, 다독, 정독한 책을 독서 모임을 통해 나누며 느끼고 깨달은 것을 정리한 독서 노트이다. 육아에 지친 스트레스를 블로그에 풀어내던 엄마가 만든 책이 ‘육아도 하지 않는’ 내가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육아를 모르더라도 저자의 흡입력 있는 글솜씨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독서영역과 육아세계를 간접경험 하니 ‘과연, 역시’ 고개가 끄덕여졌다.

나도 저자처럼 2016년부터 1년에 100권 이상 책을 읽었지만, 출판사 서평단(서포터즈)으로 신간을 읽은 게 70% 이상이니, 질 좋은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내년엔 베스트셀러나 신간보다는 스테디셀러나 고전문학을 중심으로 좋은 책을 읽으며 삶의 지혜를 쌓아가야겠다.

또 다른 고수를 발견한 것 같아 기쁘다. 나와 같이 읽고 쓰면서 행복을 느끼는 저자의 삶을 응원한다.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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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고 또 읽기/인문2018. 11. 20. 11:53



[완독 127 / 인문학, 교양인문학] 인생 직업. 인생학교 지음. 이지연 옮김. 와이즈베리. (2018)

‘그만하면 이 직업을 사랑한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만 해도 굉장한 성취다. (218)

10여 년 전 쌤앤파커스 출판사에서 출간한 알랭 드 보통의 인생 학교 시리즈를 정독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작년 이맘때 와이즈베리에서 ‘new’ 인생 학교 시리즈를 출간했고, 여전히 쌤앤파커스에서도 새로운 ‘인생 학교’ 책들이 나오고 있다. 비슷한 표지 디자인을 갖고 두 군데 출판사에서 나오는 인생 학교 시리즈가 왠지 아리송하지만, 어쨌든 좋은 책들을 읽을 수 있으니 좋게 생각해야겠지.

성인이 되었으니 먹고 사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이왕 일하는 것 즐겁고 행복하게 일하고 싶다는 생각 외에 직업에 대한 다른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다.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하지 못한 나의 무지와 선택에 대한 후회를 한 적이 있을 뿐, 직업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오랜 역사를 간접경험 해보니 이런 걸 사회 초년생 때 읽었다면 직업을 선택하는 데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을까 생각해본다.

학창시절 학교에서 하는 ‘취업특강’이나 ‘진로 교육’은 선후배들의 대화로 전공 관련 직업을 간접 경험하거나, 성격이나 성향 테스트로 나와 맞는 직업을 추천받을 수 있었지만, 이 책은 ‘인생 직업’이라는 개념을 분석하고 정리하는 방식으로 쓰여 직업을 선택하기 전 여러모로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책은 책일 뿐, 이 세상 모든 직업의 장단점 같은 것을 미리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그 누구도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왕 선택한 직업을 스스로 어떻게 받아들이고 헤쳐나가는 것은 각자의 선택과 책임에 달린 것.

‘그만하면 이 직업을 사랑한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만 해도 굉장한 성취다. (218)

이 정도의 내 직업을 사랑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 다행이고 감사한 책 한 권을 읽었다.


많은 부모가 조용히 자신의 꿈을 자녀에게 물려준다. 그리고 그런 짐을 자녀의 어깨에 지웠다는 사실은 보통 알려주지 않는다. 그래도 메세지는 전달된다. 주어진 길을 따라가는 것이 사랑과 칭찬을 받을 수 있는 확실한 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아들과 딸은 부모가 겁먹고 되지 못했던 건축가가 되거나, 부모에게는 금지되었던 사업가가 된다. 아무도 소리 내어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야망은 심리적 공기 속에 언제나 자리하고 있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것 같지만, 특정한 직업으로 쏠려 있는 15년간의 동경 어린 눈길이 나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놀라울 정도다.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다. (110)





지난주에 읽었던 ‘우리가 몰랐던 섹스’와 인용된 문구가 아예 똑같은 키에르케고르의 <이것이냐 저것이냐> 속 구절. 같은 시기 같은 출판사에서 나올 책이라면 이정도 중복쯤은 없애도 좋을 것 같은데. 2% 아쉽다.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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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고 또 읽기/인문2018. 11. 14. 22:27



[완독 126 / 인문학, 교양인문학] 우리가 몰랐던 섹스. 인생 학교 지음. 이수경 옮김. 와이즈베리. (2018)

이런 주제의 책은 아직도(?) 열린 공간에서 꺼내어 놓고 읽기가 불편하다. ‘와이즈베리’ 출판사의 서포터즈여서 읽게 된 것을 굳이 밝히고 시작.

10여 년 전 샘앤파커스 출판사에서 출간한 알랭 드 보통의 인생 학교 시리즈를 정독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작년 이맘 때 와이즈베리에서 ‘new’인생학교 시리즈를 출간했고, 여전히 샘앤파커스에서도 새로운 ‘인생 학교’ 책들이 나오고 있다. 비슷한 표지 디자인을 갖고 두 군데 출판사에서 나오는 인생 학교 시리즈가 왠지 아리송하지만, 어쨌든 좋은 책들을 읽을 수 있으니 좋게 생각해야겠지.

https://m.blog.naver.com/flowerdog314/221167658238

https://m.blog.naver.com/flowerdog314/221171816755

빨리 읽기도, 곱씹어 읽기도 민망한 이 책은 ‘XX 한 권으로 끝내기’ 식의 가벼운 무게를 지니고 있어 앉은 자리에서 한 두 시간 내에 훌훌 다 읽어버렸다. 10여 년 전 정독하면서 읽었던 나의 인생 학교 시리즈는 어디에….

목차가 책 전부이고, 곳곳에 더해진 삽화가 분위기를 더했다.

그 외 깊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직접 책장을 넘겨보시기를.

1800년경에는 많은 의료인들이 돌팔이 의사였다. 그들은 정확한 의학 지식이 한참 부족했다. 하지만 환자는 많았고, 엉뚱한 치료법일지언정 늘 의료 수요가 있었다. 당시에는 의사가 오늘날처럼 존경과 선망을 받는 직업이 아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풍경이 바뀐 이유는, 진지하고 똑똑하고 훌륭한 진짜 전문가가 의료계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깨달음 때문이었다. 건강은 너무 중요한 사안이므로 신비의 묘약이나 팔고 다니는 자칭 의사에게 맡겨둘 수 없었다. (125)


19세기 덴마크 철학자 쇠렌 키에르케고르 <이것이냐 저것이냐>(1843)
결혼하라. 그러면 그대는 그것을 후회할 것이다. 결혼하지 말라. 그것도 후회할 것이다. 결혼을 하든 하지 않든, 후회할 것이다. 세상의 어리석음을 비웃어라. 그러면 후회할 것이다. 세상의 어리석음을 탄식하라. 그래도 후회할 것이다. (...) 목을 매달아 자살하라. 그러면 후회할 것이다. 목을 매달지 말라. 그래도 역시 후회할 것이다. 목을 매달든 매달지 않든 후회할 것이다. 그대가 목을 매달든 매달지 않든 간에, 어느 쪽을 택해도 후회할 것이다. 이것이 모든 철학의 요점이자 본질이다. (159)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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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125 / 과학,환경공학,도시계획.설계] 도시계획가란? 황지욱. 씨아이알. (2018)

도시재생은 긴 여행이다. 단순히 한두 개의 나무를 보고 그 나무만 고치는 것이 아니라 숲을 먼저 보고 그 숲의 전체적 맥락 속에서 나무를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 나무도 단순히 건물이나 시설물이 아니라 바로 사람이며, 이 사람 간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임을, 그리고 지금 우리가 가치 없이 버려두고 있는 농촌의 가치를 회복하는 것임을. (197)

10여 년 전 미국 뉴욕을 여행할 때 경험했던 맨해튼의 풍경을 잊지 못한다. 그림 같은 스카이라인과 섬 가운데 거대한 크기의 공원, 높고 작은 건물이 뒤엉킨 남쪽, 낮고 낡고 작은 건물들이 있던 북쪽, 다닥다닥 붙어있던 예쁜 건물이 인상적인 동쪽, 동, 남, 북의 중간쯤으로 느껴지던 서쪽. 복잡한 버스 노선과 더러웠지만 나름 합리적으로 느껴지던 지하철 등 다양한 것들이 뒤엉켜있었지만 나름의 조화를 풍기던 그 도시는 약 100여 년 전부터 계획된 도시였고, 스카이라인을 방해하는 건물을 지을 수 없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화려한 건물 따위라기보다는 전체적인 어울림, 조화였다. 좁디좁은 땅덩어리에 화려하고 높은 건물 옆에는 낮고 작고 허름한 공간이 조화를 이루고 있던 그 모습이 신기했고, 이런 게 도시계획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젠트리피케이션이 한창인 동네에 살고 있다. 1~2층이 전부였던 허름하고 낡은 공장은 허물어지고 높은 빌딩이 세워졌다. 스카이라인 따위는 없었다. 네모나고 거대한 건물이 들어서면서 좁은 골목에는 바람길이 생겼다. 작은 우산 정도는 쉽게 날려버릴 만큼 강한 바람이 수시로 불어온다. 주거공간 바로 옆에 새로 짓는 높은 업무시설 덕분에 시야가 막혔고 그늘이 생겼다. 땅 주인이나 건물주는 임대료 같은 거로 돈 좀 벌었겠지만, 이 동네에 20년째 사는 나는 이 변화의 흐름이 달갑지 않다.

우리나라에도 도시계획 같은 게 존재하는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도시계획에 속하는 건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책장을 넘겼다. 대학교 건축과 학생들의 전공 교재 같은 깊이를 지닌 이 책 전부를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한 대학에서 건축과 학생들을 가르치며 느꼈던 문제의식을 한 책에 담은 저자의 열정은 알 수 있었다.

내가 이 책에 담긴 전부를 이해하거나 공감, 함께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는 없었지만, 3장을 읽으며 저자가 의도하는 방향은 알 수 있었다. 계획이나 기획에서 끝나지 않고 실행된 결과물도 언젠가 알 수 있게 되길.

​커다란 비움이 어렵다면 작은 비움으로부터 출발하자. 아니, 왜 비워야 하는지 그 이유부터 스스로 깨닫자. 그것은 도시에 살아가며 도시를 이용하는 모든 이용계층을 위한 도시계획자의 배려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도 여기서 잠깐 왜 비워야 할지 스스로 깨닫기 위해서라도 한 번쯤 우리의 생각을 털어내고 깨끗이 비워보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76)

저자는 도시계획에서의 비움을 이야기했지만,
이 구절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스스로 비워내야 채울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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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124 / 예술, 예술이론] 다빈치가 된 알고리즘. 이재박. 엠아이디출판사. (2018)

인공창의란?
계산 기계의 출현. 의식도 없고 주체도 아닌 반쪽짜리 지능. 인간 창의와 다른 점은 형식을 조작하기 위해 계산하는 일을 ‘기계’가 위임받은 것뿐. 이 작은 변화가 창의의 속도를 엄청나게 가속시킨다. 형식과 의미의 복합변이. (96)

단어 자체로 그 뜻을 유추해낼 수 있는 ‘인간 창의’에 빗대어 기계가 예술을 대신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단어 ‘인공창의’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 이 책이 새로웠다. 기계가 창의적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학부에서 작곡과를 졸업한 저자 이재박은 컴퓨터가 그림도 그리고 작곡도 한다는 기사를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 ‘기계도 창의적일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을 찾아 연구하고 있고, 현재는 박사과정에서 인공지능창작기술에 관한 연구 중이다. (책날개 참고)

인간만이 가진 것으로 생각했던 ‘창의’를 과연 기계가 대신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과학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수학이나 과학 이론이 수식과 기호로 명쾌하게 정리할 수 있는 것처럼 창의를 논리적으로 정리하기 위해 ‘알고리즘’을 만들어냈다. ‘인공창의’라는 낯선 단어와 개념이지만, 저자가 풀어가는 방식이 전혀 어색하거나 부담스럽지 않아서 익숙하게 읽을 수 있었다. 작곡을 전공한 저자가 과학적 분석으로 만들어낸 알고리즘을 따라 책장을 넘기다 보면 예술과 창의가 막연한 뜬구름처럼 느껴지진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제시하는 것은 선택과 책임이다. 창조와 창의를 구분하며 인공지능도 충분히 창의적일 수 있음을 밝혔다. 하지만 그 속에 품은 의미를 풀어내는 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니까, 의미를 어떻게 풀어내느냐는 인간에게 달린 것.

업무로 머릿속이 가득 차 있어 책에 완전히 몰입할 수는 없었지만, 업무와 연관된 부분을 읽을 때는 나 자신이 ‘인간적임’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예술과 창의가 과연 필요한가에 관하여 관심 있는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인공창의’라는 개념을 알게 된 것도 의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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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123 / 에세이] 홍차와 장미의 나날. 모리 마리. 이지수 옮김. 다산 책방. (2018)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이 무엇인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삶을 결코 진흙탕으로 만들지 않는다. (9)

나쓰메 소세키와 더불어 일본 근대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 모리 오가이의 장녀인 모리 마리는 유명한 아버지의 자식으로 자라났지만, 생활력 같은 건 없는 저자는 객관적으로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았지만 자신만의 행복 포인트를 찾아 삶을 살아냈다.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 자신의 삶 속 이야기들을 짧은 글로 써 삶을 이어갔고, 그 기록을 묶어 이 책이 탄생하였다. 매력적인 표지와 삽화, 제목 덕에 제2의 사노 요코를 기대하며 읽어갔지만, 여러 에피소드를 묶은 책이어서 반복된 구절이 많아 읽을수록 흥미가 떨어졌다.

책날개에서 소개하는 작가 배경 이야기를 알지 못했다면 관심 갖지 않았을 이 책은 작가 소개와 배경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준다.

확고한 책임의식이나 정신력 없이 삶을 살아가는 한량 같고 무기력하게 느껴져 읽는 내내 에너지가 빨리는 기분이었지만, 저자가 애정하고 자부심 갖고 있는 프랑스풍의 분위기와 요리, 아버지와의 추억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만큼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프랑스나 요리를 좋아하고 동경하는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모리 마리식의 ‘호화로운 가난의 미학’이 멋스럽게 느껴지기보다는 ‘정신은 어린아이인 채로 몸만 어른이 된 사람’으로 느껴져 읽는 내내 안타깝고 힘들었다. 나처럼 ‘삶의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지 못하는 안타까운 예술가’에 대한 편견이 없는 사람이라면 가볍고 즐겁고 재미있게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며 나의 상처와 편견과 맞닥뜨리게 되어 힘들게 읽었지만, 좋아하는 사노 요코가 사랑한 작가 모리 마리, 그녀가 부디 행복하게 살다 갔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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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122 / 에세이] 아무튼, 딱따구리. 박규리. 위고 출판사. (2018)

좋아하는 지인에게 요즘 즐겨 읽는다는 ‘아무튼 시리즈’의 책을 추천받았지만, 읽고 싶은 책이 이미 많이 쌓여있어 여기까지 손이 닿질 않았다. 그러다가 환경에 관한 이야기를 다룰 것 같은 ‘아무튼, 딱따구리’를 알게 되었고, ‘아무튼 시리즈’에 입문하게 되었다.

‘아무튼, 딱따구리’는 지속 가능 디자인 연구원인 저자 박규리가 영장류학자 김산하와 결혼해 함께 살아가던 중 가는 곳마다 만난 인연 ‘딱따구리’ 이웃을 발견했고, 딱따구리에게 관심 두고 새와 인간의 삶을 비교하며 살아가는 삶의 이야기를 쓴 책이다.

이 땅에 더 많은 쓰레기를 남기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유별나게 안 쓰고 안 버리고 다시 쓰는 생활을 하는 나 자신이 지독해 보여서 나는 이렇게 살고 있지만, 남들에게 강요나 설득한 적은 없는 것 같다. 몇몇 지인과 ‘미니멀리즘’에 대한 이야기 나눈 적은 있지만, ‘환경’과 ‘생태’를 위해 아끼고 다시 쓰는 사람들과 대화 나눠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면서 짝꿍과 함께 멋진 삶을 꾸려나가는 저자가 들려주는 사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자신 없던 내 행동들에 용기가 조금 생겼다. 나와 비슷한 사람이 많진 않지만, 없지도 않다는 걸 알게 된 점이 좋았다.

같은 이유로 책사기를 즐기지 않는다. 소유에 의미를 두지 않으니 어차피 한 번 읽고 버려질 거라면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해서 함께 읽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어쩌다 새 책을 사거나 선물 받는다면 다 읽고 동네 사랑방에 나눔 한다. 가뜩이나 좁은 집에 모셔두기보다는 나눔 하여 여러 사람과 함께 보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니까.

부부의 알콩달콩한 사는 이야기도 재미있었지만, 좋아하는 사물이나 공간에 별명 붙이기를 좋아하는 저자의 귀여운 습관이 기억에 남는다. 역시 진지함보다는 약간의 재미가 곁들여진 삶이 보기에도 좋고, 살기에도 좋겠지. 글솜씨나 행동 하나하나에 한 인간의 매력이 뿜어져 나왔다. 역시 에세이는 매력적인 사람이 쓰는 글이었다.

우연하게도 다음 읽을 책으로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이 저자 박규리의 남편인 영장류학자 김산하의 책이고, 그다음 책은 김산하의 동생 김한민의 새 책 ‘아무튼, 비건’이다. 삶의 이상향 같은 건 없지만, 이 가족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리함을 위해 마구 소비하는 생활 보다는 적당히 소비하고 아껴 쓰고 다시 쓰는 삶, 거기에 약간의 재미를 더하여 함께 살기.

가볍고 쉽고 편안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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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121 / 경제경영, 창업벤처] 뉴 머니. 러닝메이트, 이기문 편저. 북바이퍼블리. (2018)

에어비앤비의 탄생 과정을 담은 책 ‘에어비앤비 스토리(다산북스, 2016)’을 읽으며 3명의 창업자가 숙박업의 스타트업으로 모여 어떻게 투자자를 모으고 성장하였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남의 나라 이야기였고,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이 일어나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https://m.blog.naver.com/flowerdog314/221049566401

사회적기업이나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이 많은 동네에 살고 있어 평일 밤낮으로 커피숍에 앉아 회의하며 컴퓨터를 놓고 무언가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들이 어떻게 일을 해나가는지 늘 궁금했다. 수많은 스타트업이 어떻게 사업체를 꾸려나가고 성장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계속되었다.


뉴머니는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사람들, 한국 벤처 캐피탈리스트(venture capitalist)에 관한 이야기이다. 읽기 좋은 논문처럼 차례와 맺고 끝음이 분명하게 정리되어있어 VC의 투자가 필요한 사람이나, VC가 하는 일, 사업 흐름과 구조를 알고 싶은 사람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특히 4, 6, 7장은 2017년 최인아 책방에서 이루어진 VC 시니어 4명의 대담, ‘한국 벤처캐피탈리즘’을 정리한 것으로, 이 책이 탄생한 계기가 되었다.

사업과 경영 특히 투자에 문외한인 내가 읽기에 다소 뜬구름 같은 내용의 책이었지만, 시니어 VC 4인과의 대화가 담긴 4, 6, 7장은 생동감이 느껴졌다. 학부 한 학기 분량의 과목처럼 깊이감과 전문성, 무게감이 느껴지는 이 책은 그동안 본 적 없는 새로운 분야를 다룬 책이다. 이런 책은 많은 사람에게 읽히지 않겠지만, 새로운 분야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고 다양한 주제의 책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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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고 또 읽기/인문2018. 10. 24. 11:02



[완독 120 / 인문, 심리] 담백하게 산다는 것. 양창순. 다산북스. (2018)

인간의 삶은 이진법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결정을 내리고 선택함에 있어서, 내가 선택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 완전히 미련을 버리는 것. 둘 중 하나만 취하면 이진법의 담백함을 취할 수 있다.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모든 것을 포용하는 마음’ 이 바로 담백한 삶의 기술이 아닐까. (13)

요즘은 책을 읽기 전 이 책이 어떤 장르에 속하는지 찾아본다. 읽으며 알 수 있는 책도 있지만 헷갈리는 것도 있기에 인터넷 서점에 구분된 장르 구분을 따르는 편이다. 처음엔 편식 같은 편독을 줄이기 위해 시작된 행위였는데 인문, 사회과학, 자기계발, 등 책이 속한 장르를 구분하면서 내가 읽은 책들을 나만의 책 분류로 구분해가는 과정이 즐거워 나만의 사이버 책장을 만든 기분이 든다.

‘담백하게 산다는 것’은 정신건강의학과, 신경과 전문의 양창순 박사의 신간이다. 인간관계 심리학의 바이블인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로 이미 베스트셀러 작가 대열에 오른 양창순의 신작이라 설렘으로 책장을 넘겼다. 나긋나긋한 말투가 연상되는 문장 덕분에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학문적 깊이나 글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담백함’을 주제로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쓴 에세이로 구분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인문, 심리’로 구분되어 있었다. 얼마 전 읽은 ‘마흔에게(다산초당, 2018)’는 자기계발에 속해있었다. 책 장르에 대한 편견은 없지만, ‘마흔에게’는 자기계발이라는 실용적인 책보다는 인문이나 심리 치유 쪽에 가깝게 느끼며 읽었기에 왠지 아리송했다.

담백하게 살자고 이야기하는 이 책이 권위와 위엄(?)을 상징하는 양장본의 모습을 하고 있어 의아한 기분도 들었다. 부담 없이 읽기 시작했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지만, 출판사와 저자, 편집자, 서점이 한 권의 책을 만들어 세상에 선보이기까지 어떤 순간들이 얽혀있는지를 함께 생각해볼 수 있었던 책이었다.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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