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독 125 / 과학,환경공학,도시계획.설계] 도시계획가란? 황지욱. 씨아이알. (2018)
도시재생은 긴 여행이다. 단순히 한두 개의 나무를 보고 그 나무만 고치는 것이 아니라 숲을 먼저 보고 그 숲의 전체적 맥락 속에서 나무를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 나무도 단순히 건물이나 시설물이 아니라 바로 사람이며, 이 사람 간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임을, 그리고 지금 우리가 가치 없이 버려두고 있는 농촌의 가치를 회복하는 것임을. (197)
10여 년 전 미국 뉴욕을 여행할 때 경험했던 맨해튼의 풍경을 잊지 못한다. 그림 같은 스카이라인과 섬 가운데 거대한 크기의 공원, 높고 작은 건물이 뒤엉킨 남쪽, 낮고 낡고 작은 건물들이 있던 북쪽, 다닥다닥 붙어있던 예쁜 건물이 인상적인 동쪽, 동, 남, 북의 중간쯤으로 느껴지던 서쪽. 복잡한 버스 노선과 더러웠지만 나름 합리적으로 느껴지던 지하철 등 다양한 것들이 뒤엉켜있었지만 나름의 조화를 풍기던 그 도시는 약 100여 년 전부터 계획된 도시였고, 스카이라인을 방해하는 건물을 지을 수 없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화려한 건물 따위라기보다는 전체적인 어울림, 조화였다. 좁디좁은 땅덩어리에 화려하고 높은 건물 옆에는 낮고 작고 허름한 공간이 조화를 이루고 있던 그 모습이 신기했고, 이런 게 도시계획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젠트리피케이션이 한창인 동네에 살고 있다. 1~2층이 전부였던 허름하고 낡은 공장은 허물어지고 높은 빌딩이 세워졌다. 스카이라인 따위는 없었다. 네모나고 거대한 건물이 들어서면서 좁은 골목에는 바람길이 생겼다. 작은 우산 정도는 쉽게 날려버릴 만큼 강한 바람이 수시로 불어온다. 주거공간 바로 옆에 새로 짓는 높은 업무시설 덕분에 시야가 막혔고 그늘이 생겼다. 땅 주인이나 건물주는 임대료 같은 거로 돈 좀 벌었겠지만, 이 동네에 20년째 사는 나는 이 변화의 흐름이 달갑지 않다.
우리나라에도 도시계획 같은 게 존재하는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도시계획에 속하는 건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책장을 넘겼다. 대학교 건축과 학생들의 전공 교재 같은 깊이를 지닌 이 책 전부를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한 대학에서 건축과 학생들을 가르치며 느꼈던 문제의식을 한 책에 담은 저자의 열정은 알 수 있었다.
내가 이 책에 담긴 전부를 이해하거나 공감, 함께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는 없었지만, 3장을 읽으며 저자가 의도하는 방향은 알 수 있었다. 계획이나 기획에서 끝나지 않고 실행된 결과물도 언젠가 알 수 있게 되길.
커다란 비움이 어렵다면 작은 비움으로부터 출발하자. 아니, 왜 비워야 하는지 그 이유부터 스스로 깨닫자. 그것은 도시에 살아가며 도시를 이용하는 모든 이용계층을 위한 도시계획자의 배려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도 여기서 잠깐 왜 비워야 할지 스스로 깨닫기 위해서라도 한 번쯤 우리의 생각을 털어내고 깨끗이 비워보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76)
저자는 도시계획에서의 비움을 이야기했지만,
이 구절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스스로 비워내야 채울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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