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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111 / 에세이] 크리슈나무르티와 함께한 1001번의 점심식사. 마이클 크로닌. 강도은 옮김. 열림원. (2018)


웃음은 진지함의 일부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29)




나는 탐욕스럽지 않습니다. 단지 전부를 원할 뿐입니다. (123)




나는 채식주의에는 관심이 없고,채식주의 신봉자가 아닙니다. (...) 무슨 주의-ism 같은 것은 없습니다. 이곳은 어떤 주의, 어떤 도그마, 어떤 이데올로기를 위한 곳이 아닙니다. 나는 단순이 죽이지 않을 뿐입니다. 죽이는 일은 잘못이니까요. 그게 전부입니다. (403)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에서 태어나 유대인 학살에 대한 슬픔과 죽음, 공포, 죄의식, 허무를 겪으며 청소년기를 보내고 삶을 향한 여정을 떠난 저자, 마이클 크로닌의 이야기이다. 1970년대 초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던 중 저자는 크리슈나무르티를 만나게 되었다. 당시에 크리슈나무르티는 깨달음을 추구하거나 새로운 문화를 추구하는 많은 이들이 정신적 스승으로 모셨던 유명한 인물이었다. 유명하지 않은 한 젊은이가 크리슈나무르티라는 인물을 만나 요리사로 지내며 겪은 소소한 이야기를 담은 ‘마이클 크로닌이 바라본 크리슈나무르티’ 이야기로 한 젊은이의 순수한 애정과 관심을 느낄 수 있었다. 비슷한 느낌의 책으로 ‘죽음의 수용소에서(청아출판사, 2005)’가 오버랩되었다.

이런 책의 공통점은 생각의 폭이 좁은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허공을 맴도는 말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가끔가끔씩 이런 종류의 책을 읽는 이유는 내 마음이 공허하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에 대한 불만과 불안으로 편안하다고 느끼지 못해서 옛사람의 이야기에 기대어 쉬운 길을 찾고 싶어서. 내가 책에 집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법정 스님을 참 좋아했다. 그리 오랫동안 좋아했던 건 아니지만 돌아가시기 한 두 해 전부터 지금까지 가장 좋아하는 스님은 법정 스님이다. 법륜 스님처럼 친근한 옆집 할아버지처럼 잔소리 많고(!) 따뜻한 분도 좋지만 법정 스님처럼 고요하고 날카로운 카리스마를 지닌 분이 나는 더 좋다. 아무튼 깨달음을 얻은 분들에게 풍기는 아우라가 있다. 그 아우라를 경험하고 그분 뜻을 따르기 위해 함께하는 보살님들이 많이 있음을 알고 있다.

이 책의 저자 마이클 크로닌도 그런 사람 중 하나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독일인으로서, 1970년대에 20대를 보냈던 젊은이로서 베트남 전쟁과 대안 문화가 팽배하던 시절에 정신적 스승으로 떠오른 크리슈나무르티를 사랑으로 모셨고, 그가 사망한 1986년으로부터 10년이 지난 후 옛 기억을 떠올리며 이 책을 썼다. 책을 읽으며 가장 가까이에서 성인과 호흡하고 나누며 깨달음을 가진 저자의 순수한 애정을 간접 체험할 수 있었다.

좋은 외국 서적은 좋은 번역자를 만나야 깊이가 더해진다. 옮긴 이(강도은) 덕분에 시대 배경과 저자, 크리슈나무르티에 대한 설명으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요즘은 어떤 이유로 책도 글도 다른 그 무엇도 집중할 수가 없다. 관계에 대한 불신과 흔들림 때문인데 그 또한 오롯이 나의 문제다. 그러한 불안감이 나를 이 책으로 끌어당겼나 보다.

내가 살아가는 시간이 모여 내가 된다. 나의 하루를 위해 매일 보내는 시간을 다듬어야 한다. 자유롭게 흘러가지만 아무렇게나 보내진 않도록.
모든 순간에 의미를 담아 무거워질 필욘 없지만 대충 보내진 않도록.

Posted by 따듯한 꽃.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