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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고 또 읽기/문학2019. 6. 21. 11:00



[완독 2019-37 / 소설. 한국소설] 2019 제10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 문학동네. (2019)

2000년대 후반, 이상문학상 작품집이던가? 젊은 작가 수상 작품집에서 처절한 가난이 담긴 김애란의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너무 강렬한 그 느낌 덕분에 젊은 작가들의 수상작품집에 손이 가질 않는다. 수상한 작품들은 좀 더 자극적인 주제나 소재가 담겨있을 거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감정의 처절한 밑바닥을 굳이 들여다보고 싶지 않아서 피해왔다.

그리고 올해 십여 년 만에 수상작품집을 읽게 되었다. 안전 가옥 앤솔로지의 냉면(안전가옥, 2018)과 문학동네에서 매해 봄에 만들어내는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문학동네, 2019) 두 권을 읽었다. 십여년 전 강렬했던 첫 기억에 비하면 비교적 괜찮았다. (덜 괴로웠다) 그동안 나이가 들었기에 감정을 인정하고 극복할 수 있게 된 걸지도, 이제 이 정도는 견딜만한 내공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내겐 백수린의 시간의 궤적이 가장 좋았지만, 가장 강렬하면서도 흡입력이 좋았던 건 박상영의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이었다. 그래서 많은 작품 중에서 대상으로 뽑히지 않았을까. 정영수의 우리들, 이미상의 하긴은 불편한 감정이 들었고, 김희선의 공의 기원과 이주란의 넌 쉽게 말했지만은 잔잔하게 흘러가서인지 푹 빠지기 어려웠다.

백수린의 소설을 가장 재미있게 읽었지만, 나머지도 나쁘지 않았다. 처음 만난 2019년 제10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은 나쁘지 않았다. 내년 11회 작품집도 기대된다.


박상영의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은 상처가 가득한 상처에서 벗어나려 노력하지만, 자의와 타의에 의해 좌절하고 다시 또 살아가는 허무한 감정을 잘 보여준다. 화자가 누구인지 헷갈려 몇번이나 앞장을 다시 넘겨보았다. 동성애 소설일 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동성애에 대해 알지 못하므로 언급하긴 어렵고, 온전하지 못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의 불완전한 감정 표현을 세 명의 등장인물 모두에게서 느낄 수 있었다. 가정에서 어머니의 책임과 무게, 소중함을 느꼈다.

백수린의 시간의 궤적을 읽으며 또 다른 내 모습을 보는 듯이 몰입했다. 주인공 언니가 무덤덤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나 같았고, 그들이 함께 살아가며 겪는 단조로운 일상이 보편적인 것들이라 더 울림을 주었다. 큰 사건은 없었지만, 시시하지도 않았다. 작가의 다음 소설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뭐랄까, 거기엔 모든 것, 그러니까 그때까지 문명이 만들어낸 나쁜 것과 좋은 것들이 온통 한데 뒤섞여 있는 느낌이었다.”(143)김희선-작가 노트

소설 속에서 ‘나’는 끝내 사과를 하지 않는데, 그것은 ‘나’가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히 더 나빠서라거나, 더 비겁해서는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받은 상처에 대해서는 호들갑을 떨며 아파하면서도 타인의 상처에는 태연한 얼굴로 손가락을 들이미는 그런 존재들이니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점점 더 참혹해져서, 안간힘을 써봤자 모든 것의 끝에는 결국 후회와 환멸, 적의나 허무만이 남을 것만 같다는 두려움을 안고 사는 존재들이니까. 하지만 시간이 드러내는 진실이 그토록 하찮은 것뿐일지라도, 우리가 서로 사랑했던 순간들, 온기를 나눴던 순간들, 타인의 입장이 되어 “그 사람, 그런 사람 아니거든요?”라고 말해주던 순간들마저 온통 거짓은 아닐 것이다. (184)백수린-작가 노트

우리의 삶은 동경하는 일의 아름다움과 그로부터 도래할 불안을 감내하고 마주하는 용기로 이루어진다. (191)선우은실

이곳에 온 다음 날, 나는 올해의 첫 매미 울음소리를 들었었다. 그렇게 6월이 갔고 7월이 가고 있다. 하루하루가 가고 있다는 것,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아주 잘 느끼고 있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숨을 쉬는 일은 재미있고 행복하다. (196)이주란-넌 쉽게 말했지만

모든 것이 끝난 뒤에 그것을 복기하는 일은 과거를 기억하거나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재해석하고 재창조하는 일이니까. 그것은 과거를 다시 경험하는 것이 아닌 과거를 새로 살아내는 것과 같은 일이니까. 그러나 읽을 사람이 아무도 없는 글을 쓰는 것은 생각보다 고독한 일이다. 그래서 어느 날 나는 글을 쓰다가 어쩌면 내가 영원히 혼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그게 문득 참을 수 없이 두려워졌다. (264)정영수-우리들

사랑에서 애걸로 되는 건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하지만 그건 과연 유의미한 변화인 것일까? 무의미한 변화는 없었던 것인가? 돌이킬 수 없는 변화만이 유의미한 것인가? 아는 것과 변하는 것은 얼마나 어떻게 다른가? 기억의 열람만이 가능할 뿐이라면 무엇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겠는가? (305)김봉곤-데이 포 나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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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2019-36 / 자기계발, 시간 관리] 디지털 미니멀리즘. 칼 뉴포트. 김태훈 옮김. 세종서적. (2019)


다른 사람과 보내는 모든 시간에 대하여 x 시간만큼 혼자 있을 필요가 있다는 일종의 직감을 항상 갖고 있습니다. X가 정확히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 상당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128)

의지와 관계없는 무의미한 행위가 싫어 블랙베리(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낮은 사양의 간단명료한 시스템의 핸드폰)만 쓰다가 엔터 버튼 하나가 망가져 아이폰을 쓰게 된 지 4~5년이 되었다. 핸드폰에 지배당하고 싶지 않아서 카카오뱅크나 가계부, 스케줄 관리 앱 같은 간편하고 편리한 앱조차도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부터는 유튜브, 팟캐스트의 시간 보내기에 중독되어 SNS도 손에서 놓질 못하는 일상을 살고 있다. 잠시도 쉬지 않고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지 않아도, 핸드폰 화면에는 늘 무언가 실행되고 있다. 핸드폰에 푹 빠진 사람들을 보면서 한심하고 안타깝다고 느꼈는데 나도 별 차이가 없었다.

변화가 필요함을 절실하게 느끼면서 읽게 된 디지털 미니멀리즘(세종서적, 2019)은 ‘딥 워크’로 널리 알려진 칼 뉴포트의 신작이다. ‘딥 워크(민음사, 2017)’를 읽지 않아 전작과 비교하긴 어렵지만, 저자가 어떤 삶을 추구하고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는 알 수 있었다. 집중력과 몰입, 디지털이 어떤 문제 상황을 만들고 있는지 문제를 제기하는 이 책. 적재적소에 필요한 책을 읽고 있음에 감사하며 고독을 즐기는 이전의 나로 다시 돌아가려 다짐했다.

우리는 원한 적이 없다. (23)
대학 생활을 시작하면서 MSN 메신져, 네이트온, 싸이월드를 알게 되었을 때 느낌은 ‘신기함과 호기심’이었다.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있지 않아도 컴퓨터만 켜면 친구들과 연결되어 비밀 이야기를 나누고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일과를 마친 후 집에 돌아와 컴퓨터를 켜야만 가능했던 즐거움이 스마트폰 같은 신기술의 발전으로 이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늘 손에 쥐고 있는 핸드폰 덕분에 언제 어디서는 뭐든지 쉽고 편리해졌다. 무의식으로 핸드폰을 뒤적이다 보면 한 두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상대방의 인정과 공감, 반응을 알아볼 수 있는 ‘좋아요’를 받기 위해 허비하는 시간이 나를 얼마나 공허하게 만드는지를 알고 있지만, 그만큼 중독되어 있기 때문에 탈출을 시도하기조차 어렵다.

저자는 왜 디지털 미니멀리즘이 필요한지 조언한다. 영혼을 충만하게 해주는 자신만의 고요한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혼자만의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법, '좋아요'를 누르지 않기, 일단 앱을 삭제하라 등 아주 간단하고 쉬운 방법을 소개한다. 실천하면 누구보다 홀가분할 것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지만, 쉽게 할 수 없는 해결책들. 그중에서 나를 중독으로 이끈 앱 몇 개를 방금 지웠다. 오늘부터 다시 시작하려 한다.


얼굴을 맞대고 나누는 대화는 가장 인간적이고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일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온전히 임하면서 듣는 법을 배운다. 우리는 대화하면서 공감 능력을 얻는다. 또 누군가가 내 말을 들어주고 이해해주는 데서 얻는 기쁨을 경험한다. (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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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2019-34 / 유아, 그림책] 게으를 때 보이는 세상. 우르슐라 팔루신스카. 이지원 옮김. 비룡소. (2018)

서울숲 갤러리아 포레 지하에 위치한 전시장(이름이 너무 길고 익숙지 않아 정확한 이름 표기를 포기함)에서 ‘그림책 Now 전시를 다녀와서 가장 흥미로웠던 애니메이션 ‘게으를 때 보이는 세상’ 그림책을 빌려왔다. 음악과 영상으로 이미 충분히 느꼈기에 책은 시시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 책장을 쉽게 넘기지 못했다. 하지만 그건 섣부른 판단이었다. 도서관 반납일을 하루 앞두고 마감에 쫓겨 읽게 된 이 책. 즐길 거리가 많은 참 좋은 책이다.

그림책이 좋은 건 쉽고 단순하다는 점이다. 책장을 덮고 다시 한번 읽으면 새로운 모습이 보이고, 또 읽으면 또 다른 이야깃거리가 보인다.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작가가 숨겨놓은 요소들을 발견하는 재미, 그게 내가 그림책을 보는 이유이다. 이 책을 처음 볼 땐 영상의 잔상이 남아있던 터라 ‘이미 봤던 그림’을 재구성하듯 빠르게 넘겼다. 다시 읽으며 글을 읽으며 글과 그림의 연관성을 찾았다. 또다시 읽으며 이상함을 찾아냈다.

주인공을 제외한 등장인물 전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

이 책의 글과 그림은 닿아있지 않다. 요즘같이 각박한 세상에 누굴 속이거나 해하는 것이 아닌 이 정도 거짓말이 대순가 싶지만, 이 책은 그 정도의 거짓말을 희화화하며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바쁘게 주위를 돌아다니는 어린아이 주인공을 제외한 모두가 무언가를 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글과 그림은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xx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들 모두는 누워서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 ‘게으를 때 보이는 세상’이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듯 주인공을 제외한 모두가 게으름을 즐기는 중이다. 그리고 오직 주인공만이 진실을 이야기한다. 난 자고 있다고.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보는 어른들의 거짓말과 주변 풍경이 귀엽고 사랑스럽다.

등장인물들이 보는 그 무언가는 일상 속 널려있는 아름다운 순간들이다. 그 찰나를 작가의 시선으로 멋지게 담아냈고, 검정과 무채색(약간 흐리거나 탁하거나 어두운) 계열의 색이 대비 또는 조화를 이루어 별거 없는 무늬와 그림이 아름답고 편안하게 느껴진다. 너무 바쁘게 사는 나에게 조금 즐겨도 된다는 이야기를 건네는 이 책. 이런 이유로 그림책을 사랑하는데, 역시 그림책이 좋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 게으름이 필요하다고 느껴질 때마다 또 읽고 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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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고 또 읽기/인문2019. 5. 22. 21:40


[완독 2019-31 / 인문, 서양문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 마이클 부스. 김경영 옮김. 글항아리. (2018)

어릴 적 먼나라 이웃나라를 적당히 읽은 게 유럽사에 대한 아는 전부이다. 고3 때 교과목이었던 세계사는 수능 과목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교과서의 존재만 아는 정도. 특히 북유럽에 대해서는 문외한 수준, 북유럽 에세이를 읽게 되었다.

유럽인이 바라본 북유럽의 시선. 수다쟁이 영국 남자의 시선이 부산스럽고 정신없게 느껴졌다. 북유럽에 대해 아는 바가 없으니 내용 전체를 파악하고 몰입할 수도 없었다. 책장을 넘기며 막연히 알던 북유럽의 평화 같은, 이방인으로서 좋아 보이던 휘게의 본모습을 알게 되었다. 막연하게 동경하던 유럽은 이책에 소개된 북유럽도 그리스 로마 같은 남부도 아닌, 영국, 프랑스 중심의 유럽이었다는 사실도. 북유럽을 구성하고 있는 덴마크, 핀란드,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다섯 나라를 나라별로 구분하여 저자의 느낌적인 정리로 소개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비슷한 느낌이 든 건 서양인이 한·중·일 세 나라를 정확히 구분하지 못하는 이유와 같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북유럽을 낯설게만 여겼는데, 생각보다 생활 가까이에 있었다. 지난주 다녀온 ‘그림책 now’ 전시회에 소개된 일러스트 작가 중 상당수가 덴마크 작가였다. 그리고 지난 2월에 ‘학교를 바꾸는 교육’ 세바시 강연으로 들었던 바니스 매카시 등의 강연자들은 핀란드 사람이었다. 이미 주변에 존재하고 있던 툭툭 끊어져 있는 정보들을 이 책에서 읽은 정보를 통해 나만의 연결고리로 연결하고 나니 조금 견고해졌다. 지난 2월 세바시 강의 때 문화가 다르기에 고민도 다를 수밖에 없다고 느꼈던 핀란드의 공교육 제도가 이해되었고, 덴마크인들의 사고방식이라면 충분히 표현될 수 있는 그림책 그림들이었다.

사람 사는 덴 다 똑같구나 싶은 만큼 외부인으로서 좋아 보이던 휘게나 얀테, 라곰을 비꼬는 저자의 시선이 통쾌했지만, 시종일관 구시렁구시렁 대는 말투가 거슬렸다. 수다가 정말 많고 정신없는 예능인 두 세 명이 정치 얘기를 늘어놓는 것 같았다. 내가 이해력이 늦은 건지-늦긴 하다.-, 번역이 서툰 건지 헷갈렸지만, 이런 도전과 시도를 한 것에 의미를 둔다. 이 글의 문투가 저자 마이클 부스 개인의 개성인지, 영국인들의 문화가 이런 방식인지 궁금하다. 혹시 내가 개인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책을 읽어서 핵심을 놓치고 더 정신없게 느낀 건 아니었을까? 각 나라에 대한 약간의 객관적 정보나 설명이 추가되었다면 어땠을까? 이렇게 개성 강한 상태로 살아도 괜찮은 북유럽에 내가 태어났다면, 그곳에서 살 수 있다면 어땠을까? 여러 생각과 아쉬움이 남는 책이었다.



덴마크인 둘 이상이 모이면 반드시 시작하며 덴마크식 저녁 만찬을 한정 없이 질질 끌게 만드는 합창이 아니었다. 중간 합의점을 향한 휘게의 압제적이고도 끈질긴 추진력, 논란이 될 만한 대화 주제는 무조건 피하려는 고집, 모든 상황을 가볍고 경쾌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 시종일관 편안하고 자기 만족적 소시민인 척 잘난 체 - 필요에 질려서였다. (135)

우리가 그런 행복도 조사에서 늘 1위를 차지하는 이유는 연초에 우리의 기대치를 묻기 때문이야. 그러고는 연말에 그 기대를 충족했는지 물어. 연초에 우리 기대치가 너무 낮아서 쉽게 채울 수 있는 거야. (155)

이런 자세는 덴마크인이 행복한 또 한 가지 비결일 수도 있다. 나는 이런 자세가 모든 종류의 장기적 행복에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참되고 깊고 지속적인 기쁨을 위해서는 대개 엄청난 부정이 필요하며, 부정은 덴마크인에게 차고 넘치는 능력이다. 물론 자기 부정 이야기가 아니다. 덴마크인의 알코올, 담배, 대마초, 설탕 소비량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덴마크인은 몇 안 되는 즐거움마저 포기한다. 가령 덴마크인으로 살아가는 데 드는 비용, 즉 세금을 내거나 가게에서 제품을 사는 데 드는 순수 비용 및 야망과 역동성의 상대적 부족 그리고 가끔은 필요한 갈등의 거부, 얀테의 법칙과 휘게로 부정되는 표현의 자유와 개성의 상실이라는 면에서 드는 정신적 비용 말이다. (159)

“사고방식과 정체성을 형성하던 시기라 핀란드 학교는 선구자가 되어 횃불을 들고 나라를 비출 교사들을 채용했고, 그런 의미에서 교사들은 그 이후로 줄곧 그 점에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스케이닌 교수가 말했다. 초기 핀란드 교육의 본질은 생존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목공부터 바느질까지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 교사들은 ‘민중의 촛불’로 불리며 핀란드가 자립으로 가는 길을 밝게 비추는 역할을 했다. (253)

어떤 사람도 공장에서 일하거나 기술자가 되고 싶어 하지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유명해지길 원하죠. (...) 사람들은 지금의 세상을 당연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무엇도 절박하지 않거든요. 내가 내일 출근할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어떻게든 굴러가니까요. 병가는 1990년대 이후로 계속 늘어났습니다. 사람들이 감기에 더 자주 걸려서가 아니라 회사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입니다. (390)

노르웨이인은 늘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 지내는 경향이 있었다. 심지어 자기네 나라 안에서도 넓게 흩어져 산다. 서로 최대한 거리를 두려는 듯이. 심지어 노르웨이 인이 엄청난 용기와 독창성을 발휘해 세계로 나가 정당하게 축하받은 탐험을 할 때도 역시나 사람이 별로 없을 만한 곳인지 아주 신중하게 고려한 뒤 탐험을 한 것 같다. (392)

나는 버터 없는 토스트를 씹는 성질 고약한 부자 노르웨이인이 되느니 차라리 버터 쿠키를 입안 가득 베어 문 매 맞는 유럽 연합의 시민이 되고 싶다. 석유를 판 돈이 넘쳐나는 작은 나라에서 국민에게 버터 같은 기본 생필품을 공급할 수 없다니 대단히 아이러니하다. (...) 노르웨이인이 모든 요리를 마가린으로 해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집에서 구운 우리 스웨덴 전통 사프란 빵이 훨씬 맛있을 것이다. (...) 사덴프로이데, 즉 남의 불행에서 기쁨을 느끼는 태도는 썩 유쾌하지 못한 일이지만, 화목해 보이는 스칸디나비아 삼두정치의 표면 아래 곪아 터지는 적나라한 분노와 질투를 잘 보여준다. (395)

아무런 위협을 받지 않는 졸음, 평화, 안정감, 고요의 느낌도 당연히 북유럽 사람들이 누리는 안전감과 삶의 질, 더 나아가 행복의 핵심이다. 하지만 안전, 기능, 합의, 중용, 사회적 결속이 삶의 전부는 아니며, 단지 수많은 욕구의 토대일 뿐이다. (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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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2019-30 / 어린이, 세계사] 동물로 보는 세계사 이야기. 1.고대. 신현배 글. 김규준 그림. 도서출판 뭉치. (2019)

어느 날 농촌을 산책하다가 어미 소와 송아지가 서로를 그리워하며 우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다. 어미 소는 자식에게 젖을 먹이려고 울고, 송아지는 어미를 그리워하며 울고. 그렇게 서로를 그리워하며 목이 쉴 때까지 운다고 한다. 그러한 뒷이야기를 알지 못했을 때는 시끄럽게만 들리던 소 울음소리가 모정을 그리워하며 울부짖는 소리라는 걸 알고 들으니 마음이 아팠다.

동물이나 곤충, 식물 등 우리 생태계는 서로를 헤치지 않으며 관계를 유지하고 사는데 오직 인간만이 함께 사는 이 공간을 망가트리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밤늦은 시간 차를 타고 시골길을 지나다 보면 도로를 가로지르는 노루나 멧돼지 같은 산짐승을 종종 보게 된다. 원래는 동물과 인간 모두 지나다니던 길목인데, 인간의 편의로 도로를 만들어 쇳덩이들이 빠르게 지나다니게 되었으니 갈 수도 안 갈 수도 없고, 얼마나 두려울까.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생태계가 아니라 인간도 함께하는 세상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있던 찰나에 ‘동물로 보는 세계사 이야기’의 첫 번째 고대 편을 읽었다. 초등 인문학 첫걸음이라는 부재를 달고 있는 이 책은 초등 중 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책이지만, 성인인 내가 보기에도 아주 흥미로웠다. 이미 알고 있던 고대 세계사 속 여러 이야기 중 동물과 관련된 이야기를 골라 읽고 있으니 우리 인간이 얼마나 동물과 끈끈한 관계를 맺고 살아왔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세계사 속에서 우리 민족의 역사가 큰 영향력이 있진 않았지만, 제주도에 사는 거인 할머니 이야기나 통일신라 경문왕 이야기, 백두산(장백산)에 사는 곰 이야기 등 우리나라와 관련 있는 이야기가 곳곳에 실려있었기에 더욱 몰입하여 읽을 수 있었다.

동물로 보는 세계사 이야기는 1. 고대, 2. 중세, 3. 근현대가 출간 예정이다. 동물에 대한 관심으로 이 책을 읽게 되었지만, 인간의 삶에 동물이 감초 역할을 해주는 게 아니라 각자가 조화롭게 살아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세계사시리즈이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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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2019- 29 / 소설, 한국소설] 냉면. 안전가옥 앤솔로지 1. 김유리. 범유진. Dcdc. 전건우. 곽재식. 안전가옥. (2019)

장르문학을 응원하고 창작자와 협업, 지원하는 안전가옥. 지인을 통해 알게 된 성수동의 핫플레이스 안전가옥은 관계자(?)를 위한 공간도 있지만, 수다 없이 고요히 책 읽기를 원하는 보통 사람들에게도 꽤 쾌적하고 아늑한 공간이다. 소나기가 내리던 지난여름 어느 날, 지붕 위에 투두둑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고즈넉한 분위기에서 책을 읽으며 낭만적인 한 때를 보낸 적이 있다. 커피 전문점이 아닌데 커피 맛도 제법 괜찮아서 많이도 찾아다녔다. 월요일을 제외한 모든 날 11시부터 11시까지 영업을 하니, 퇴근이 늦은 나도 저녁 늦게까지 즐길 수 있는 아지트가 되었다. 그런 안전 가옥 앤솔로지를 선물 받아 읽게 된다니, 영광이다.

앤솔로지는 하나의 주제로 쓰인 여러 명의 작품을 묶은 것이다. 안전가옥 스토리 공모전 수상작품 집 ‘냉면’. 단편 소설이라 두께의 부담도 적고, 작가별로 냉면이라는 소재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흥미로웠다.

김유리 작가의 ‘a, b, c, a, a, a’는 안전가옥의 냉면 앤솔로지 첫 작품으로 안성맞춤이었다. 냉면 이야기가 아닌 듯 냉면 이야기로 이어지는 이 소설은 평소 소설을 즐기지 못하는 내가 읽기에도 달달하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작가 김유리는 십수 년 전 재미나게 읽고 보았던 <옥탑방 고양이>의 저자이기도 하다. 정확히 내용인지 기억나진 않지만, 고 정다빈과 이현우의 약간 어설프고 생기발랄한 장면이 문득 생각났다. 오래전 좋아하던 친구를 우연히 만난 기분이 든다. 십수 년 동안 적당히 농익은(?) 글에 연륜이 느껴졌다.

범유진 작가의 ‘혼종의 중화냉면’은 첫 소설에 비해 읽는 진도가 더디었다. 그도 그럴 것이 원래 나라는 사람이 원체 소설을 즐기지 못하기도 하고, 첫 소설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쉽게 읽혔던 것에 비해 ‘혼종의 중화냉면’은 어떤 무게 같은 게 느껴져 술술 넘겨버리면 안 될 것 같았다. 중국식 냉면을 먹어본 적이 있다. 슴슴한 평양냉면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화려한 중국식 냉면이 과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맛도 재료도 기름진 무게도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느껴 딱 한 번 먹어보고 그 후로 도전해본 적이 없다. 작가 범유진은 중화냉면이 가진 아리송한 무게를 ‘혼종(잡종, 혼혈)’으로 풀어냈다. 섬세한 글쟁이만이 풀어낼 수 있는 비유가 멋지게 느껴졌다.

Dcdc의 ‘남극낭만담’은 냉면 앤솔로지 중 내게 가장 충격적인 소설이면서 장르문학의 개성을 확 느낄 수 있는 sf 소설이다. 평소 ‘장르문학’이 뜻하는 게 무언지 궁금했는데, 남극낭만담을 읽으며 이런 게 ‘장르’라는 걸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일반인에게 미지의 공간 남극이라는 공간 자체가 주는 낯섦과 설렘, 학문적이며 사실적인 설명과 묘사, 등장인물로 정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허구일 텐데. 살벌하지만 한 번쯤 맛보고 싶은 냉면이다.

초대작인 전건우의 목련 면옥은 수상작이 아니라 초대작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어서인지, 안전가옥 앤솔로지의 무게 중심을 담당하고 있는 듯 이전 세편의 글보다 단단하고 묵직함이 느껴졌다. 평소 밍밍하고 슴슴한 평양냉면을 즐겨 먹는다. 자극적인 맛있는 맛도 아닌데 대체 뭐가 들어있길래 많은 사람이 좋아할까 궁금하던 적이 있다.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면 누구든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초대작인 곽재식의 하와이안 파인애플 냉면은 소재가 냉면일 뿐, 흥미로운 단편소설이다. 다른 이야기도 마찬가지였지만, ‘하와이안 파인애플 냉면’은 기발하게 재미있다. 있을법한 등장인물, 있을법한 상황과 전개가 짧지만 강렬하게 느껴졌다.

더위가 시작되는 요즘 같은 시기에 적당히 즐길 거리가 필요하다면 ‘냉면’ 책을 추천한다. 단편이라 부담스럽지도 않고, 5가지 소설이 조화롭게 어울려 나의 식욕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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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2019-28 / 경제경영] 사장 교과서. 주상용. 라온북. (2019)

‘경영 멘토가 들려주는 사장의 고민에 대한 명쾌한 해법’

사장이 되고 싶어 사장이 된 게 아니라, 먹고살려다 보니 사장이 된 사람들, 사원은 대리가 알려주고, 대리는 과장이, 과장은 부장이 알려주는데 사장은 누가 알려줄까? 사장은 모든 걸 스스로 선택하고 판단해야 한다. 조력자가 있다면 좋겠지만 홀로 해결해야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사장 스스로의 역량에 따라 결정짓고, 해결해야 하는 수많은 상황을 직면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나침반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 이 책이 딱 맞다.

저자 주상용은 20여 년간 이랜드 그룹 다양한 직무로 일하며 주변 사람(사장)들의 자문과 코칭을 통해 ‘사장을 위한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자신의 경험과 상담을 바탕으로 이 책을 출간하였다. (책날개 참고)

1부에서는 사장이 왜 배워야 하는지, 사업이 아닌 경영으로 돈을 버는 사람으로서 사장이 가져야 할 매출, 수익, 그리고 핵심지표 관리 역량에 대하여 소개한다. 2부는 사장이 지시 또는 사정이 아닌 성장을 모티브로 일을 잘 시키는 방법을 생각하는 법, 조직의 생산성과 위기관리에 대하여 설명한다. 3부는 사장이 일하는 이유와 자기 정체성이 어떻게 회사의 정신과 문화를 만들고, 직원들과 사회에 어떤 영향력을 미치는지를 설명한다.

다양한 직종의 사장에게 ‘정답은 이것이니 이 책을 꼭 보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겠지만, 이제 막 창업을 계획하는 사람이나, 어쩌다 사장이 되어 어떤 것을 생각하고 준비해야 하는지 막막한 사장이라면 이 책을 추천한다. 요즘은 투잡을 가진 사람도 많고, 창업자를 위한 경제경영서도 꽤 많다. 특히 갓 창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성공한 ceo들의 조언이나 마음가짐을 다룬 책이 많다. 이 책은 ‘사장 교과서’라는 제목답게 사장이라면 한 번쯤 해야 할 고민이나 경영 마인드를 그리는 법을 알 수 있다. 특히 저자가 경영 멘토로 여러 사장과 나눈 대화와 조언은 다른 사장들의 고민이 곧 나의 고민과 닿는 부분이 있어 선택과 방향을 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

‘월급은 만족한 고객이 준다. 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사장은 그런 사실을 직시하도록 고객 관점을 가르쳐주는 사람이다. (237)


인재를 성장시키는 기술 (29)
1. 테크니컬 스킬, 사무적 기술적 능력-실무자
2. 휴먼 스킬, 사람을 다루는 능력-관리자
3. 콘셉추얼 스킬, 개념적 기술, 전체를 보는 시각.-경영자

‘사업’은 그저 돈을 많이 버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 ‘경영’은 고객 가치 창출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람을 통해 일하는 것이고 돈은 그에 따르는 결과이다. 이것이 좋은 매출이다. (38)

‘자신이 경영자라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 가장 큰 깨달음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나서는 ‘사장’이라는 제목이 들어간 신간 서적을 무조건 사서 읽기 시작했다고 했다. ‘본질적인 문제’와 ‘현상적인 문제’를 분별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그와의 인터뷰는 무척이나 즐겁고 유익한 시간이었다. (77)

직원들은 사장의 이런 고민을 알까? 직원들이 모르는 것 같지만 사실은 다 안다. 다만 내색하지 않으면서 사장이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 기다리는 경우가 다수다. 그래서 경영학에서는 사장의 인사에 대한 의사결정이 직원들의 동기부여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강력한 역할 도구라고 한다. 만약 해고를 고민할 만큼 지속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직원이 있는데 사장이 미적지근하게 반응하면 누구도 조직의 가치를 중요시하지 않게 되어 조직이 위험해진다. 조직의 정예화에 반하는 현상이 더욱 확산될 것이기 때문이다. (108)

모든 포상에는 회사에서 강조한 핵심가치 중 하나인 ‘성장’이라는 배경이 흐르고 있었다. 포상은 조직문화와 함께 가야 한다. 그러므로 보상제도를 고민하는 사장들에게 돈보다는 먼저 자신의 회사 문화에 맞는 창의적인 포상제도를 적극 개발해서 활용하기를 권한다. (167)

인재와 함께 일하려면 먼저 그런 사람들을 통해 성과를 낼 수 있는 사장이어야 한다. 사람을 기능이 아닌 투자로 볼 줄 아는 경영철학과 경영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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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2019- 27 / 어린이] 나는 매일 꿈을 꾸어요. 왕수연 글. 이은주 그림. 전성수 기획 감수. 브레멘플러스. (2019)

‘네 생각은 어때?’
(What do you think?) ‘천천히’, ‘깊게’ 읽은 독서 퍼포먼스 프로그램으로 아이들의 사고력을 키우는 창의적 생각 놀이책인 브레멘+의 하브루타 생각 놀이터의 새 책.

하브루타 교육법의 장점은 생각하기 싫어하는 요즘 어린이들에게 굳이 생각을 끌어내는 질문을 한다는 것이다. 질문의 깊이나 수준에 따라 아이들이 몰입하기도 하고, 전혀 몰입하지 않기도 하는데 희한하게도 하브루타 방식으로 제시하는 질문은 어른인 내가 보기에도 그럴듯하다. 그래서 아이들과 대화나 문답을 나눌 때 유의미한 질문을 하고 싶을 때 하브루타 교육법 서적을 참고하는 편이다.

‘나는 매일 꿈을 꾸어요’는 상당히 교육적인 책이다. 어린이의 일상, 어린이의 시선에서 보이는 소소한 이야기를 글과 그림, 하브루타 질문지로 엮었다. 다 큰 어른이 보기에 시시하고 뻔한 전개로 흘러가지만, 아이들 입장에서 행복과 불만 같은 감정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도 내가 느낀 그 느낌을 알아챌 수 있을지 궁금하다.

훌륭한 상을 받았고, 유명한 글 그림 작가가 제작했다는 외국 동화책들이 종종 소개된다. 정말 재미있는 책도 있지만, 이 책이 왜 상을 받았는지 어느 부분을 재미있게 읽어야 하는지 알쏭달쏭한 책도 종종 있다. 문화적 차이나 유행 같은 시대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책이 가진 정서를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상 받은 외국 동화책보다 이야기 전체를 100%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우리 책이 훨씬 더 사랑받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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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고 또 읽기/건강2019. 4. 23. 11:09

[완독 2019- 26 / 건강] 우아한 건강법. 김경철. 소동. (2019)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고정된 것이 아니며, 상대적인 변견이자 진짜가 아닌 허상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 우리가 접촉하는 대상도 상대적이고 내 느낌과 생각과 판단도 상대적이므로 그 모습에 집착할 이유가 없다. 이 점을 명확하게 알고 실행하면서 살아간다면 자유롭고 행복한 인생이라고 할 수 있다. (24)

오전 시간이 여유로운 직업 특성상 이 시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다양한 것들을 시도해봤다. 일찍 출근해보기도 하고, 공부나 학원도 다녀보기도, 운동, 모임 등 다양한 일로 오전 시간을 보냈지만, 그중 가장 좋은 건 따듯한 차 한잔을 마시며 책을 읽고 나의 하루를 정리하는 글을 쓰며 보낸 시간이었다. 오전을 활기차게 보내면 오후에 시작되는 업무(직업)를 에너지 넘치게 몰입할 수 없었다. 남들보다 나의 체력이 부족한 것 같아 체력을 아껴야겠다는 생각으로 보다 고요한 오전을 즐겼고, 특히 따듯한 커피와 책 읽기로 보내는 이 시간은 정말 좋았다.

운동이나 공부, 모임 역시 마찬가지이다. ‘남들처럼’ 강한 에너지를 소모하는 운동을 하거나, 강도 높은 공부나, 여러 모임에 참여하기에 나의 에너지가 부족해서 내가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운동량, 모임 참여 등 여러 생활을 조절했더니 훨씬 좋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소화기관이 약해 아무거나 먹으면 속이 불편해서 어려서부터 좋은 음식을 먹는 게 습관이 되었다. 제철 채소나 과일, 기름지지 않은 음식, 덜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렇게 남들과 다른 나를 알아가고 있고, 스스로 내 몸을 지키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우아한 건강법’은 배가 아파서 소화제를 먹고 머리가 아파서 진통제를 먹는 즉각적 처방보다 생활습관으로 건강을 지키는 전통 한의학에 기초한 양생법을 담은 실용서이다.

한의학이 강조하는 생활 양생에서 ‘양생’이란, 질병의 예방과 재활 회춘(회복)을 통해 병 없이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는 것이다. 곧, 심신을 건강하게 닦아 생활이 행복하고 자유로운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양생은 한의학 이론 중에서 가장 독특하고 실천적인 내용이다. (9)

<포박자>에서 양생을 잘 실천하는 사람은 늘 생각을 줄이고 걱정을 줄이고 욕심을 줄이고 일을 줄이고 말을 줄이고 웃음을 줄이고 근심을 줄이고 즐거움을 줄이고 기쁨을 줄이고 노여움을 줄이고 좋아하는 것을 줄이고 싫어하는 것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이 열두 가지를 줄이는 것이 양생의 총칙이다. (180)

총 7부로 구성된 이 책은 1부는 ‘양생’에 대하여 설명하고, 2부는 음식에 대하여 설명한다. 3~7부는 거처, 감정, 관계, 기후에 대하여 어떻게 수행하고, 적응하고 관리하여 건강을 지킬 수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책 후반부만 보면 자기 계발서 같은 실용서의 느낌이지만, 전체적으로 이러한 방식이 한의학이 이야기하는 건강을 지키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음공부와 인간관계는 요즘 사람들에게 중요한 이슈라고 생각했는데,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본능적인 경험의 축적이었다. 나의 기운을 인지하고 방향성을 찾아가는 내게 좋은 이정표가 될 것 같은 이 책, 곁에 두고 때때로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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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2019-24 / 과학, 물리학] 에너지 상식사전. 이찬복. 엠아이디. (2019)

‘저 사람은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야.’
‘오늘은 에너지가 부족해.’
습관처럼 종종 사용하는 ‘에너지’라는 단어. 눈에 보이지 않는 그것의 본질이 무언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책장을 넘겼다. 태양에너지, 화석연료, 재생에너지, 원자력 에너지, 지속가능한 에너지, 환경에 대하여 이야기를 이어간다. 어떤 반응이 어떤 식으로 일어나서 에너지를 만들고 사용되는지 거의 모든 에너지에 대하여 설명한다.

‘모든 움직임이나 효과를 얻기 위해 사용되는 것들은 에너지이다. 에너지는 일할 수 있고, 가열할 수 있고, 냉각할 수 있고, 통신을 할 수 있고, 이동할 수 있게 한다. (14)

이 책은 원자력공학을 전공한 저자 이찬복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쓴 첫 책이다. 복잡한 화학기호와 전문 용어로 복잡해 보이지만 읽기 힘든 정도는 아니다. 새로운 그림문자(?)와 에너지의 관계를 상상하며 읽어가니 부담스럽진 않았지만, 원자력 전문가가 에너지에 관해 설명하면서 ‘원자력 에너지도 안전하다’를 밝히기 위해 쓴 책처럼 원자력에 대한 설명이 가장 쉽고 재미있게 읽힌다.

모든 지구 생명체의 활동을 추진하는 동력은 태양이 주는 햇빛에너지이다. (76)

몇 년 전 코스모스를 읽으며 우주 속 미세먼지 같은 나를 느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비슷한 기운을 받았다. 드러나진 않는 에너지와 기운들이 존재한다는 것. 그 속에서 무엇을 취할 것인지는 내가 선택하는 거지만, 이러한 나의 선택의 방향성을 잘 잡아야 한다는 것도. 이미 잘 짜여있는 이 체계에서 내가 무얼 바꾸려고 하기보다는 그것에 맞춰가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

우주 속에 존재하는 수많은 존재와 공유하는 이 공간, 수많은 에너지를 인간이 가장 많이 남용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나만 하더라도 더 많은 책을 읽기 위해 상호대차, 여러 권 한꺼번에 대출, 구입과 책콩 서평 등 다양한 통로로 전해 받은 책을 쌓아놓고 읽는다. 이러한 에너지 과잉이 무리한 패턴을 만들어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절이 쉽지 않다. 좀 더 쉽고 빠른 에너지로 대체 가능한 지금의 삶이 편리하지만, 마음은 불편하다.

에너지에 대한 이해를 통해 어떻게 관리하고 합리적으로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저자의 견해가 궁금했고, 조목조목 설명된 이 책은 제법 괜찮았다. 저자 이찬복처럼 지식을 가진 자의 바른 생각을 담은 이런 책이 많이 출판되고 대중의 관심을 받길 바란다. 양질의 책을 출간하는 출판사 엠아이디의 다음 책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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