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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

[일상] 첫 만남



첫 만남

2008년 8월 비 오는 주말 오후, 아마 셋째 주쯤 종각역 스타벅스.
두세 시쯤이었나, 커피숍에서 만나 커피를 마시다 자리를 옮겼는지 무얼 먹었었는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그 커피숍에 혼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던 사람이 몇 있었던 건 기억이 난다. '저 사람은 아니길, 저 사람이면 좋겠다' 둘 다 맞지 않았지만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던 그저 그랬던 그 날. 수많은 첫 만남 중에서 굳이 그날 그 사람과 첫 만남이 생각나는 이유는 10년이란 시간이 지나버려서일까. 기억을 손에 쥐지 않고 사는 요즘은 뭐든 기억해내기가 쉽지 않은데 그 사람에 대한 그리움은 여전히 남아있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람이라서일까, 만나지 못할 사람은 그 말고도 많은데 새삼 그를 다시 떠올리며 나라는 사람의 미련함에 헛웃음이 나온다.

요즘은 처음 누군가를 만나는 행위를 한 지 오래다.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사람과도 겨우 연락만 유지하는 정도. 이조차도 버거워 노력하며 살고 있는데 돌이켜보면 나는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하는 들뜨는 분위기를 즐겼던 사람이었다. 집은 그저 잠을 자는 곳에 불과했던 시절도 있었으니까. 지금 내 모습으로는 상상되지 않는 그런 삶을 살던 적이 있었다. 누구랑 만났는지 그때의 내가 즐거웠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사람들의 중심에 있고 싶어 노력했던 내 모습은 기억난다. 그 시절 나는 노력한 만큼 즐거웠던가.

살다 보니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게 아니라 살아지는 대로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살다 보니 주어진 삶에 충실히 하고자 애쓰는 내가 보인다. 나쁘진 않지만 좋지도 않다. 오늘처럼 마음 놓고 잠에 취해 주말 따위 보내도 큰 문제 될 것이 없는 정도를 살고 있어 다행인 인생이다.

어제 처음 만난 하이볼은 고독한 언니의 마실 거리처럼 같았다. 동그란 얼음에 멋짐을 담고 무겁고 씁쓸하며 시원하던 한 모금을 마시며 오랜만에 무언가와 첫 만남을 갖게 됨을 기록한다. 한참 아프고 난 후 내 몸은 술을 원하지 않는 몸이 되어버렸지만 어차피 마시지 못할 술이라면 하이볼과 친해져야겠다. 다시 만나게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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