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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고 또 읽기/사회 과학

[북 리뷰] 나는 질 때마다 이기는 법을 배웠다. 김민식. 푸른 숲 출판사. (2020)

[2020-15/사회과학, 칼럼] 나는 질 때마다 이기는 법을 배웠다. 김민식. 푸른 숲 출판사. (2020)

2월 초 도서관이 휴관한 후부터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없다는 답답함으로 평소답지 않게 충동적으로 책 4권을 주문했다.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하면 도서관에 희망 도서로 주문한 후 목차와 내용을 훑고, 읽을만하면 대여해서 읽고, 너무 좋으면 구매.’하는 나만의 책 탐색기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사들인 4권 중 가장 먼저 완독 한 이 책, ‘나는 질 때마다 이기는 법을 배웠다.’는 ‘미생’ 같은 드라마에서나 본 적이 있는, 평범한 나의 일상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거친 날것의 세상을 간접 경험하는 기분이었다.

나와 직접적으로 연관 있는 일이 아니니까 방송국에서 벌어진 일에 대하여 잘 알지 못했다. 큰 관심이 없었고, 몇몇 아나운서나 피디가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방송국에서 권력을 쟁취하고 지켜내기 위해, 옳은 선택을 하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김민식 PD에 대한 기본 배경지식 없이 코로나로부터 이겨내고 싶어 단순하게 제목만 보고 산 이 책은 내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었다.

살면서 부당한 대우를 받아본 적이 거의 없다. 한두 번 정도? 학부 시절 우리 학교와 자매결연을 맺은 러시아의 한 대학교에 여름방학 동안 교환 학생으로 갈 기회가 있었다. 성적순으로 선착순 접수를 받았고, 마감 하루 전날 늦은 시각 접수한 나는 당연히 갈 수 있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록 결과 통보도 받지 못해 다시 확인해보니 접수 마감 다음 날 한 전공 교수님께서 힘을 써서 본인이 지도하는 학생들에게 기회를 몰아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넌 2학년이니까 3학년에게 기회를 양보하고 내년에 다시 신청하라.’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하지만 교환학생 프로그램은 그 해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고, 내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석 달째 수입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작년에 너무 열심히 일했고, 은퇴하신 부모님의 집에 얹혀살고 있기에 재난 수당도 받지 못한다. 기업이나 단체가 나를 보호해야 할 의무나 소속이 없는 자영업자이니까 이 불안감을 오롯이 내가 감당해야 하겠지.

내가 경험한 이런 불편함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진실을 밝혀야 하는 거창한 수준이 아니라는 점에서 저자의 경험과 비교하기에 한계가 있다. 하지만, 고통의 크기 따위가 뭐 그리 중요할까? 지금 내게 닥친 내 일을 어떻게 대응할지가 가장 중한 일이지. 저자는 불의에 맞서서 방송국의 피디로서 해야 할 의무를 다하는 삶을 글로 남겼고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처절해서 밟히고 밟혀도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생명력이 강한 잡초처럼 느껴진다.

코로나에 대입시켜 글을 읽었다. 명쾌한 해답이 보이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묘하게 들어맞는 부분도 있었다. 재미있게 단숨에 읽히는 책은 아니었지만, 이런 책을 출간해도 괜찮은 세상이 되어가고 있음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김민식 피디님처럼 똑똑하지 않아도 글을 쓰고 책을 내고 싶다. 괜찮을까요?

“형, 그냥 사요. 하고 싶은 일이 있잖아? 그냥 지금 해요. 인생에 나중은 없어요.” (12)

힘든 시기가 계속될지라도 웃음을 잃지 말자고 다짐한다. 힘들 때일수록 웃음의 힘으로 버텨야 하니까.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때는 일단 웃고 보련다. 코미디 피디는 우리 시대의 광대다. 광대가 웃음을 잃어버리면, 희망은 어디에 있겠는가. (147)

공공재가 무너져도 신자유주의 세상에서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대체하는 더 멋진 자본재가 있으니까. 그것이 종편이든 케이블이든 유튜브든 팟캐스트든. (168)

즐겁게 일하는 사람이 싸울 때도 즐겁게 싸울 수 있다. 운동이란 결국 나를 확장해 더 나은 세계로 나아가는 일이다. 나의 신념을 어떻게 확장할 것인가. 관건은 내가 하는 일이 재미있어야 다른 사람도 보고 함께한다는 것이다. (206)

절도 있는 응징을 위한 네 가지 조건 : 우선 상대가 협력하는 한 거기에 맞춰 협력하고 불필요한 갈등을 일으키지 말 것. 둘째, 상대의 예상치 않은 배반에 응징할 수 있을 것. 셋째, 상대의 도발을 응징한 후에는 용서할 것. 넷째, 상대가 나의 행동 패턴에 적응할 수 있도록 행동을 명확하게 할 것. -로버트 액설로드, (협력의 진화)(216)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