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58 / 사회과학. 여성문화] 남자아이가 아니라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박한아. 21세기북스. (2019)
한때 남자아이들만 다니는 미술학원이 이슈가 되던 시절이 있었다. 남자 선생님이 남자 어린이가 원하는 방식으로 가르친다는 그 학원은 만들기를 주로 하는 만들기 전문 미술학원이다. 관계자가 아니라 정해진 커리큘럼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즉흥적이고 돌발적인 만들기부터 전문적인 재료를 사용하여 체계적인 계획이 필요한 만들기까지 온갖 만들기를 즐길 수 있는 그 학원의 단점은 다른 미술학원보다 조금 더 비싸다는 점이다. 지점이 많지 않아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아쉬움도 있다. 아이를 키워본 적이 없지만, 미술을 전공한 어른으로서 ‘남자아이를 남자 선생님이 남자만의 방식’으로 가르친다는 게 교육철학이 될 수 있을까 궁금했다. 만들기를 좋아하는 여자아이는 그 미술학원에 갈 수 없는 건가? 만들기를 잘하는 여성 교육자는 그 학원의 교사가 될 수 없는 건가? ‘남성 전문’이라는 타이틀이 교육자 개인의 취향일 수는 있지만, 미술교육 프랜차이즈가 추구하는 브랜드의 가치가 될 수 있을까? 그만큼 깊이 있는 연구일까? 의심스러웠다. 한때 꽤 인기가 있었고 지금도 그 인기가 여전한지 잘 모르겠지만, 아이를 키워본 적이 없으니 할 말은 없다.
조카를 통해 간접 경험을 해 본 적은 있으니 아이 한 명을 키우는 데 얼마나 힘이 드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오롯이 자기 자신으로서 사고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되기까지 부모를 포함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과 상황의 영향을 받아야 하는지, 얼마나 많은 변수가 있는지를 생각하면 아찔하다. 또 그런 과정을 통해 내가 성장해온 걸 생각하면 모든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한 아이의 부모로서 어떤 생각과 무게를 지니고 아이를 키워야 할지를 생각하면 부모 되기가 무섭고 두렵기만 하다.
‘남자아이가 아니라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21세기북스, 2019)’는 그런 내 생각에 맞장구치는 책이다. 성별의 구분보다 먼저 중요한 것은 그 아이답게 키우는 것일 테고 아이를 아이답게 키우려면 먼저 부모가 자신다워야 가능할 텐데,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이야기하는 저자 박한아는 본인의 가치관 안에서 시도 가능한 것들을 아이에게 적용하고 나누고 있다. 아이를 키우며 느낀 점을 기록한 에세이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워낙 글을 잘 쓰는 사람의 글이라 아이를 키우지 않는 내가 읽기에도 흥미롭다. 아이를 사랑하는 엄마의 마음이 가득 담겨 있어서 읽는 내내 입가에 웃음이 지어졌다. 남아 전문 미술학원에 대한 생각이 담긴 부분(98)은 꽤 통쾌했다.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저자의 생각이 육아의 정석이나 정답이 아닐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유별나게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의 아이 바당이는 꽤 괜찮은 아이로 자랄 것 같다. 고민하고 흔들리고 연구하는 엄마 박한아의 아이이니까. 수년 후 사춘기를 보내고 성인을 앞둔 바당이의 모습이 궁금하다. 아이가 변한 만큼 엄마도 변해있겠지. 아니, 엄마가 성장한 만큼 아이도 성장하는 건가. 육아를 마친 후의 이야기도 궁금하다. 아니, 육아 말고 저자의 다른 글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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