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완독 2019-22 / 인문, 철학]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야마구치 슈. 김윤경 옮김. 다산초당. (2019)


아티스트 웨이(경당, 2012)와 법정 스님의 일기일회(문학의 숲, 2009),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이레, 2005)을 제외하고 오랜만에 재독 하는 책

이 책이 얼마나 좋았는지에 대한 글은 지난번 리뷰에 썼으니 이번엔 다른 시선으로.

https://ahmu.tistory.com/m/258


1. 재독에 대하여
막연하게 책장을 넘기다가 첫독과 재독의 의미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지난 읽기에서 부족했거나 더 알고 싶은 부분을 곱씹어 읽는 행위’가 재독이 아닐까? 그렇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앞으로 넘겼다, 뒤로 넘기기를 반복했다. 이러한 행위는 ‘재독에 대한 나의 책임이나 무게를 내려놓는 행위’가 되었다. 뭐든지 과한 의미부여를 하는 내게 꼭 필요한 것.

2. 함께 읽기
오랜만에 한책 같이 읽기 모임에 참여했다. 2017년 12월 카프카의 변신 이후로 처음이다. 리더님이 미리 공유해준 질문에 대해 생각해본 후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닮은 건지, 비슷한 기운의 사람들이 모인 건지 모르겠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게 1시간 반을 보냈다. 시간이 모자랐고, 다음 모임도 기대된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첫독 때엔 생각지 못했던 여러 장면이 떠올랐다. ‘이래서 사람들이 철학책을 보는구나’ 싶었다. 그동안의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3. 제목에 대한 물음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모임에 참여하기 전까지는 물음표였다. 좋아하는 사람에겐 필요하지만, 모두에게 필요하진 않다고 생각했다. 모임을 마치고 이 글을 쓰는 지금은 분명 도움이 된다는 확신이 생겼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 아는 만큼 이해할 수 있고, 아는 만큼 변화할 수 있으니까.


그들은 혁신을 일으키기 위해 일을 한 것이 아니라 반드시 구체적으로 해결하고 싶은 과제가 있어서 일을 했다. (13)

창조성을 발휘하여 리스크를 무릅쓰고 나아가는 데는 당근도 채찍도 효과가 없다. 다만 자유로운 도전이 허용되는 풍토가 필요하다. 그러한 풍토 속에서 사람이 주저 없이 리스크를 무릅쓰는 것은 당근을 원해서도 채찍이 두려워서도 아니다. 그저 단순히 자신이 그렇게 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69)

자유에는 견디기 어려운 고독과 통렬한 책임이 따른다. 이 고독과 책임을 감당하고 견디면서, 더욱이 진정한 인간성의 발로라고 할 수 있는 자유를 끊임없이 갈구함으로써 비로소 인류에게 바람직한 사회가 탄생하는 법이다. (87)

사람의 일생에서 ‘우발 사건’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95)
자유롭다는 것은 사회나 조직이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가치를 손에 넣는 게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일이다. (97)

안다거나 이해한다는 것은 ‘바뀐다’는 뜻이다. (163)

내시균형(176)
1. 결코 자신이 먼저 배신하지 않는다.
2. 좋은 녀석이지만 상대가 싸움을 걸어오면 되받아친다.
3. 상대가 다시 협조로 돌아오면 협력한다.

반취약성(198)
사람을 하나의 기업으로 생각할 때, 이 사람의 대차대조표는 그 회사에서 나오는 순간 극히 취약해진다.
가능한 한 젊을 때 많은 실패를 맛보는 것, 여러 조직과 커뮤니티를 경험하면서 인적 자본과 사회 자본을 한 장소가 아닌 분리된 여러 장소에 형성하는 것. 중요한 것은 인적 자본과 사회 자본의 축적이다.

반드시 분명한 목적지가 정해져 있지 않지만 이곳은 위험할 것 같으니 일단 움직이자. (...) ‘도망친다’는 딱히 명확한 행선지가 정해져 있지 않지만, 어쨌든 이곳에서 벗어나겠다. 를 뜻한다. 이 마음 자세가 스키조프레니아형 인간의 특질이다. (241)
의지가 되는 것은 사태의 변화를 인식하는 센스, 우연에 대한 직감, 그뿐이다.
위험하다고 느끼는 안테나의 감도와, 도망칠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용기다. 사람들은 으레 착각하곤 하는데, 도망치는 것은 용기가 없기 때문이 아니다. (242)

Posted by 따듯한 꽃.개



[완독 2019-10 / 인문, 출판 편집] 동네 헌책방에서 이반 일리치를 읽다. 윤성근. 산지니. (2018)

진정한 자립이란 무얼까? 가게를 운영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버텨낸다는 것이 갖는 의미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여전히 대답은 찾아가는 중이다. 이건 마치 우주의 끝을 찾아 떠나는 여행처럼 막연할 때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알겠다. 자립이란 ‘살아남아 제 스스로 서는 것’인데 혼자 서면 의미가 없다는 깨달음이다. (...) ‘꽃 한 송이 핀 것으로 봄이 온 것은 아니다. 온갖 꽃들이 함께 피어야 비로소 봄’이라는 의미다. 자립 역시 그와 같다. 자기 혼자만 일어서는 것은 결국 제 혼자 사는 삶이다. 조금 시간이 걸리고 더디게 움직이더라도 여럿이 함께 설 수 있는 자립이 필요하다. (256)

전문가는 다름 아니라 우리들 자신이다. 적어도 자기다운 삶을 살아낼 수 있는 전문가는 우리들 속에 이미 있다. (99)

세상은 생각만 가지고 돌아가는 게 아니다. 변화하기 위해서는 행동해야 하고 평화로운 풍경을 만들기 위해선 멈춰 있으면 안 된다. 평화로운 서해바다 풍경을 보며 누구라도 이 바다가 멈춰 있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는 자연이 스스로 만들어낸 놀라운 기적이다. 사람은 다르다. 자유의지가 있기에 움직일 수도, 멈춰 있을 수도 있다. 혹은 머릿속에 생각만 가득한 채로 한세월을 보내기도 한다. 문제를 알아보고 이 상황을 역전시키기 위한 중요한 열쇠는 추리에 있지 않고 결단에 있다고 말한 일리치의 말을 다시 곱씹어본다. 평화롭기를 원한다면 우리 모두 그렇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렇게 결단하는 일이 필요하다. (105)


이반 일리치에 대한 관심으로 여러 책을 살펴보다가 알게 된 책. 이반 일리치와 좋아하는 책, 그리고 헌책방까지 곁들여져 있다니! 이건 나를 위한 맞춤 책이 아닌가!

저자 윤성근은 평범한(?)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헌책방으로 일터를 옮긴 이유와 운영 시 경험했던 에피소드, 일본 헌책방 나들이 등을 책에 담았다. 돌이켜보니 어린 시절엔 동네 헌책방에서 책도 보고, 사고팔고 놀면서 추억을 쌓았던 경험이 있는데 최근엔 시내 대형 헌책방에 중고 책을 사거나 팔아본 경험만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적 흐름과 월세를 감당하기 어려운 헌책방의 수입구조 덕분에 이제는 부산 보수동 골목에나 가야 구경할 수 있는 헌책방. 그곳을 자신만의 의지로 꽤 오랜 시간 운영하는 저자의 삶을 응원한다. 책 속에 등장한 막막한 독서 모임 ‘막독’도 참여하고 싶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의 운영자 윤성근처럼 세상 속에서 재미있게 자립하여 살아가고 싶다.




Posted by 따듯한 꽃.개



[완독 2019-8 / 인문, 철학]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야마구치 슈. 김윤경 옮김. 다산초당. (2019)

2019년에는 신간 읽기를 지양하고 고전이나 알찬 스테디셀러를 읽겠다고 다짐했지만, 다짐이 무색하게 올해 1월 21일에 출간된 따끈한 신간을 읽게 되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대만족이다. 2년 전 감명 깊게 읽었던 ‘위대한 사상가(와이즈베리, 2017)’가 생각나는 이 책은 역시 ‘다산초당’의 책답게 참 좋았다.

대학에서 철학과를 졸업하고 미학 미술사 석사과정을 수료한 저자 야마구치 슈는 조직 개발, 혁신, 인재 육성, 리더십 분야의 전문 컨설턴트로 활동 중이다. (책날개 참고) 철학을 전공한 경영 컨설턴드이기에 철학 이론이나 경제경영에 대한 원론적 입장보다는 다양한 일상 속에서 연관 지을 수 있는 철학적 사고와 사례를 다루어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는 왜 철학을 배워야만 할까?’라는 물음에 대하여 저자는 철학적 사고법의 4가지 핵심 요소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예리하게 상황을 파악하는 통찰력
-변화를 위한 비판적 사고
-정확한 어젠다 설정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는 교훈

삶의 무기로 활용 가능한 50가지 철학 사상을 4가지로 구분한다. 사람, 조직, 사회, 사고로 구분된 50가지의 철학 사상은 융의 페르소나, 뒤르켐의 아노미, 미셸 푸코의 판옵티콘 등 익숙하게 들어본 용어도 있고, 탈구축, 미래 예측 등 생소한 것도 있다. 책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깊어지고 심화하는 전개 덕분에 책장을 빠르게 넘길 수 없었지만, 철학서이면서 실용서의 모습을 가진 이 책의 매력 덕분에 조만간 재독 하고 싶다.

당장 해결책을 알려주는 실용서보다 생각의 꼬리를 물고 되새기며 상황에 따라 판단할 수 있는 인문서, 철학서의 매력을 알게 해 주는 이 책, 저자의 다른 책도 궁금하다.

———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이 상식을 의심하는 태도를 몸에 익힐 게 아니라, 그냥 넘어가도 좋은 상식과 의심해야 하는 상식을 판별할 줄 아는 안목을 갖추는 일이다. 이러한 안목을 길러 주는 것이 바로 공간 축과 시간 축에서 지식을 확산하는 일, 즉 교양을 갖추는 일이다. (14)

사고의 함정에 관한 지적은 우리가 인생 앞에서 깊은 고뇌에 빠져 있을 때 매우 유용한 길잡이가 된다. (32)

대가를 약속받으면 높은 성과물을 내려고 최대한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적은 노력으로 가장 많은 대가를 얻기 위해서 무엇이든 하게 된다는 것이다. 더불어 스스로 과제를 선택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자신의 능력과 지식을 향상시킬 수 있는 도전적인 과제가 아니라 가장 많은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과제를 선택하게 된다. (65)

인간이 이상으로 여기는 개인의 성장과 행복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분리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매사를 생각하고 느끼고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욱이 무엇보다도 꼭 필요한 것은 자신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데 용기와 강인함을 지니고 자아를 철저하게 긍정하는 일이다.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88)

안다는 것은 그로 인해 자신이 변하는 것이다. (268)




Posted by 따듯한 꽃.개



[완독 66 / 인문, 심리] 엄마와 딸 사이. 곽소현. 소울메이트출판사. (2018)



‘착한 딸이 되려고 애쓰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수용하라.’ (7)

뻔한 심리서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너무 가벼운 심리학 서적은 공감이 어렵다. 대중을 의식하여 깊이가 없는 건지 읽을수록 짜증과 스트레스를 가져와 웬만하면 심리 서적을 읽지 않는 편이다.

엄마와 딸의 관계를 다룬 ‘엄마와 딸 사이’는 심리치료 전문가로 20여 년간 일해온 곽소현 박사의 새 책이다. 엄마 없는 사람 없고, 엄마와 갈등 없는 자식(!)은 없을 것이다. 부모와의 마찰을 책으로 풀고 싶은 남성은 많지 않을 듯하니 ‘거의 모든’ 20~30 여성을 위한 책이다. 가족학 박사인 저자가 어떤 방식으로 책을 풀어가는지 궁금했다.

사람의 감정이란 것은 순서가 정해지지 않는다. 따라서 목차 같은 거로 분류할 수 없다. 이 책 전체를 공감했다기보다는 부분적으로 내 이야기 같은 것도 있고 아닌 부분도 있었다.

엄마를 아빠로 바꿔도 적용된다.

‘엄마와 딸 사이’ 모녀 관계 갈등의 실마리를 풀어내는 이 책은 엄마를 아빠로 바꾸어도 적용된다. 책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엄마라는 글귀에 아빠를 넣어 읽었다. 속상하고 화나고 슬펐던 모든 인간관계가 부모와의 관계를 해결하지 못해 벌어진 문제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당하지 못한 나 자신을 자책하며 공허함을 느끼는 요즘 부모와의 관계를 잘 풀어내지 못한 흔적이 아닐까. 이 책 한 번 읽는다고 수십 년 동안 켜켜이 쌓여있는 애증의 관계가 해결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를 한 번 토닥이면서 마음의 짐을 조금 내려놓았다.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오랜만에 많은 부분을 메모하며 읽었다.



Posted by 따듯한 꽃.개

[완독 44 / 인문학] 백 년을 살아보니. 김형석. 덴스토리.(2016)



1920년생, 일본 조치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30여 년간 연세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후임을 길렀고 현재에도 활발한 저서 활동과 강의 활동을 펼치고 있는, 우리나라 철학계의 거두, 현 99세인 김형석 교수님의 책.

저자가 살아온 인생을 바탕으로 행복론, 결혼과 가정, 우정과 종교, 돈과 성공, 명예, 노년의 삶 총 5가지 영역으로 나누어 후세들에게 전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젊은 내가 아무리 파닥거려도 알 수 없는 어른의 눈으로 보이는 넓이. 철학 교수의 지혜가 담겨있지만 어렵지 않고 친할아버지의 편지를 엿보는 것 같은 기분이다.

100년쯤 살다 보니 제자의 제자, 그 제자까지 보게 되고 자식의 손주 증손주까지 보며 제자 일생의 마감도 지켜보는 처지가 되어버린 저자는 최근 나를 감성에 빠져들게 했던 드라마 도깨비(2016)의 공유나, 흑기사(2017)의 김래원, 영화 아델라인(2015)의 아델라인 처럼 남들보다 오래 살아 해탈한(?) 인생을 보는 것 같았다. 당장 지금 눈앞에 있는 이익을 위해 씩씩거리며 살아온 나는 언젠가부터 인생이 허무했고 무의미하다는 생각 덕분에 많은 의욕을 잃어버렸다. 그러면서 건강도 정신도 흔들리게 되었다.

2018년 현재 99세를 살고 계신, 100세 어르신의 책을 읽으며 내일 당장 죽을 것처럼 사는 내가 보였다. 80세를 지나며 욕심을 내려두게 되었고, 90세를 지나며 많은 걸 잃어간다고 이야기하셨다. 그 절반도 살지 않은 내가 벌써 다 놓아버린 듯 삶을 대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방향은 비슷했지만, 초점이 틀렸다. 오늘만 살 것처럼 만족하고 행복하고 사랑해야 했는데 내일 당장 죽을 것처럼 욕심내지 않았다. 어차피 내일이면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말 것들, 애늙은이처럼 해탈한 듯 다 놓아야 한다는 듯, 그렇게 살 필요는 없었다. 적어도 지금은.

철학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지만 짧은 지식으로 많은 책을 접할 수 없었는데, 철학 교수의 인생이 녹아있는 한 권의 책 덕분에 하루하루 살아내기에 급급했던 내 삶의 이정표가 생긴 기분이다. 정신 놓치지 말고 삶의 영역으로 뛰어들어가 뭐든 치열하게 신나게 즐겨야겠다.




모든 남녀는 인생의 끝이 찾아오기 전에 후회 없는 삶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사랑이 있는 고생이다. 사랑이 없는 고생은 고통의 짐이지만, 사랑이 있는 고생은 행복을 안겨주는 것이 인생이다. (96)

인촌은 아첨하는 사람, 동료를 비방하는 사람, 편 가르기를 하는 사람을 가까이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 번 당신 밑에서 일하도록 받아들인 사람은 끝까지 돌보아주는 후덕함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점들을 배웠기 때문에 나도 그런 사람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사회생활을 이어온 셈이다. (185)

건강은 일을 하기 위해서
나는 일이 내 건강을 유지해주었다고 믿고 있다. 지금도 하루하루를 그렇게 살고 있다. 일을 하기 위해서는 건강을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운동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243)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
인간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고 성숙되어가는 과정이라고 보는 관념이 보편화되고 있다. 늙는다는 것은 꽃이 피었다가 열매를 맺고 그 열매가 익어가는 것 같은 과정이다. 그 기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지혜이다. 지혜를 갖춘 노년기와 지혜를 갖추지 못한, 흔히 말하는 어리석은 노년기의 차이는 너무나 뚜렷하다. (...) 원로가 있는 사회와 없는 사회는 다르다. 지혜로운 조부모나 부모가 있는 가정과 없는 가정이 다른 것과 비슷하다. (252)

오래 사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생각해보면 인간의 뜻과 운명은 누구도 모른다. 철없을 때 친구들은 추억마저도 사라지고 철들었을 때의 친구들은 헤어질 운명이었던 것 같다. 역사가 안겨준 짐이기도 했다. 그러나 말년에 우리들의 우정은 사회적 공감을 얻으면서 오래 남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들의 삶과 그 의미는 어떤 섭리에 따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128)


운명도 허무도 아닌
쇼펜하우어는 “젊었을 때는 모두가 자유를 외치다가도 늙으면 모든 것이 운명이었다고 인정하게 된다.”고 말한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운명론자가 된다는 뜻이다. 독일의 프리드리히 니체는 “잡스러운 범인들의 삶을 버리고 초인이 돼라.”고 외쳤다. 그러나 그 초인은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운명애의 철인이라고 말했다.
또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 하더라도 허무주의와 회의주의의 울타리를 넘어설 수가 없었다. 솔로몬은 지혜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인간 역사에 관해서는 허무주의자였다. 유신론적인 허무주의자라고 말해서 좋을지 모르겠다. 아마 우리 문화사에서 가장 훌륭한 지혜를 갖춘 사람은 독일의 괴테였을 것 같다. 역사상 가장 아이큐가 높은 사람은 괴테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 그러나 괴테는 ‘파우스트’의 주인공과 같이 회의주의자였다. 회의주의자의 결론은 허무주의로 귀착된다.
그 둘, 즉 운명과 허무가 전부라면 인간과 삶의 의미는 어떻게 되는가. 그렇다면 제3의 삶의 길은 없는가라고 묻고 싶었다. 그런데 구약과 신약의 역사를 보면 운명론도 허무주의도 아니다. 또 다른 차원의 인생관이 있다. 그것이 섭리의 길이다. 섭리를 거부할 수도 있고, 섭리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생각도 할 수 있다. (...) 섭리의 주관자는 자연과 인간을 떠난 제3의 실재이다. 구약과 신약은 그 인격적 타자를 신이라고 불렀고 또 유일신으로 믿고 살았다. 종교적 신앙을 가진 사람은 ‘나와 신’, 세계 역사와 신의 관계를 떠날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 관계를 섭리라고 본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의 삶 속에서 그 섭리에 해당하는 체험을 쌓아온 것이다. (145-146)




Posted by 따듯한 꽃.개



[완독 40 / 인문] 고전의 시선. 송혁기. 와이즈베리.

고전의 시선은 ‘우리 산문 다시 읽고 새로 쓰다’라는 소제목을 가지고 있다. 고려대 한문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 송혁기는 한문 고전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오늘의 언어로 나누는 영역으로 글쓰기를 확장하고 있다. 경향신문에 ‘송혁기의 책상물림’이라는 제목으로 3년째 칼럼 연재를 했던 글을 묶어 ‘고전의 시선’이 탄생했다. (책 소개 참고)

우리 문학과 역사에 대해 알고 싶지만, 한자 무식자인 내가 직접 읽어낼 수는 없으니 이런 연구물이 나오면 정말 반갑다. 특히 상세한 설명과 붙임 말이 더해져 이해하기 쉽게 정리된 책, 시를 읽듯 언제든 가볍게 한 두 장씩 넘기며 읽을 수 있는 책.

요즘 유행하는 고전 한정주의 ‘문장의 온도(2018)’는 이덕무의 소품문을 재해석한 글로 한 사람의 일상과 생각을 담은 시집 한 권을 보는 것 같았다면, 송혁기의 ‘고전의 시선(2018)’은 송혁기가 추천하는 우리 고전 묶음 집이다. 두 책의 공통점이라면 ‘쓰기’라는 행위에 대해 한 번 더 되새기게 된다는 것이다.

한시로 쓰인 옛글을 한글로 풀어쓴 글, 그리고 시대적 배경 없이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을 오늘날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재해석한 글까지, 하나의 주제로 쓴 여러 글을 보면서 한시를 풀어낼 수 있다는 것, 어떤 글을 쓸 수 있는가에 대해 저자의 한시를 대하는 깊이 있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주어지는 수많은 임무와 업무들로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짧아지는 요즘 같은 시기에 흐름이 짧고 전하는 바가 분명한 고전의 시선은 위안을 준다. 짧은 한시를 내가 직접 읽고 음미할 수는 없으니 전문가의 손을 빌려 이렇게 옛사람들의 생각을 나누어 받을 수도 있으니 나도 옛사람들과 함께 사색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SNS 덕분에 짧고 간단하고 단순한 신변잡기 식의 글쓰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요즘, 글의 가치를 판단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 많은 의미 없는 글들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꾸밈말과 감성을 가득 담은 글이나 유명인의 일상생활을 담은 글 등 요즘 유행하는 산문, 비문학, 에세이류의 책 말고 다른 게 궁금했다. 책을 읽는 이유와 읽는 이들이 제각각이라지만 허공을 떠도는 가벼운 느낌의 글이 싫었다. 내 글도 누군가에겐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고나서부터는 짧고 간단한 글쓰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고전을 재해석하는 시선을 가진 책 덕분에 글을 쓰고 음미하고 다시 생각하는 과정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다.


​‘공부는 책상 위에 서는 것입니다. 더 넓고 먼 곳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고 신영복 선생)(7)

어떤 허기짐을 충족하기 위해 눈과 머리로 책을 쑤셔 넣는 행위를 근 1년째 하는 중이다. 아마 더 넓고 먼 곳이 어디인지 알아가기 위함이 아닐까, 읽기와 쓰기는 멈춰있는 나를 깨어나게 해준다. 지금 하는 이 행위들이 나를 어느 곳으로 데려다줄지 기대된다.





부지런하게 살수록 바빠지기만 할 뿐이라는 게으름뱅이의 일갈은 여전히 유효하다. 쳇바퀴 도는 삶처럼 목적을 상실했다면 우리의 부지런함은 그저 그만큼의 고역일 뿐이다. 그러나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즐거움이 있다면 부지런함도 기쁨일 수 있다. 질문을 바꿀 필요가 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부지런한가? 그래서 어디로 가는가? (37)






근심과 즐거움
“군자에게도 근심이 있습니까?”
자로의 질문에 공자는 답했다.
“없다. 군자는 벼슬을 얻기 전에는 뜻을 즐기고, 얻고 나서는 다스림을 즐긴다. 그러므로 종신토록 즐거울 뿐 근심할 날이 없다. 소인은 그렇지 않다. 벼슬을 얻기 전에는 못 얻으면 어쩌나 근심하고, 얻고 나서는 잃으면 어쩌나 근심한다. 그러므로 종신토록 근심할 뿐 즐거운 날이 없다.” (52)




도둑 부자 이야기 도자설, 강희맹.
배워서 이룬 지혜는 한계가 있고 스스로 터득한 지혜라야 여유롭다. 너는 아직 멀었다. (90)



Posted by 따듯한 꽃.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