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일상

[일상] 반전



반전

‘키 크면 싱겁다는 옛날얘기가 맞아 맞아 정말 맞아 딱 맞아’ 이런 가사의 동요가 있다. 그 말이 딱 맞다. 적어도 나에게는. 키가 큰 만큼 어리숙하고 헛똑똑이다. 반면에 키가 작은 나의 친구들은 알차다. 야무지고 야무지다. 나름대로 지적으로 생겼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지만, 그에 비교해 속은 덜 익었다. 절친한 나의 친구들은 나를 아직도 물가에 내놓은 애 취급을 한다. 이런 내 모습이 싫지도 좋지도 않다. 나는 나니까, 그렇게 생각해왔는데 나를 잘 모르는, 가벼운 사이의 사람들은 차갑고 지적인 분위기를 지녔다고 이야기한다. 나를 잘 아는 친구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잘 알지만 이제 우리의 관계는 약간 느슨해졌다. 애 낳고 살림하랴 일하랴 바쁜 시기를 살고 있어서 연락 두절인 친구들이 태반이고, 그나마 연락을 주고받아도 아기 이야기나 사는 이야기, 경조사 이야기를 나누면 끝.

그래서 지금 내 주변엔 나이 들어서 만난, 비교적 덜 가까운 사람들만 있다. 나의 전부를 드러내지 않아도 되고, 굳이 그럴 필요도 없는 사이. 십몇 년 전 어릴 때처럼 지지고 볶고 싸우면서 끈끈해지는 사이가 아니니까 서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친근한 사이를 지키는 사이의 사람들. 서로의 진짜 모습이 어떤지 알고싶은 사이의 관계가 아니니까 굳이 끄집어 낼 필요가 없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살가움 정도가 필요할테지.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나잇값 한답시고 일 처리만은 야무지게 하고 싶어서 이것저것 챙기다 보니 흰머리가 늘었다. 원래도 많았지만 더 많아졌다. 나이가 들면서 철이 든 건지, 나이 든 사람의 가면을 쓰고 있는 건지 헷갈리지만 어쨌든 지금 이 모습도 나다.
키 크면 싱겁다는 반전 아닌 반전 이야기의 결론도 싱겁다니 요즘 쓰기의 결말은 늘 애매하구만.

반응형

'-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상] 공항  (0) 2018.03.08
[일상] 옛날  (0) 2018.03.07
[일상] 불안함  (0) 2018.03.05
[일상] 똑같은  (0) 2018.03.04
[일상] 똑같은  (0) 2018.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