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함
필요악 같은 것.
뭘 하든 하지 않든 늘 나를 감싸고 있는 그것, 불안함.
지금껏 나를 키운 팔 할은 불안함이다. 불안했기에, 사소한 것까지 챙겼고 그래서 철저하게 준비하는 삶을 살아왔다. 늘 대비하고 준비하며 종종거렸던 이유는 불안감 덕분이었다.
달리기할 때만은 불안함을 느끼지 않아도 괜찮았기에 달리기하는 걸 즐겼지만, 그것도 잠시뿐, 호흡기가 좋지 않은 나에게 달리기를 하면서 숨이 차오르는 건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목이 약한 내가 목을 많이 쓰는 직업으로 살기 위해서는 일하지 않을 땐 목을 아껴야 하는데, 달리기를 취미로 하면 쉬는 순간에도 목과 폐를 많이 쓰게 되니까 결과적으로 내 몸에 쉴 틈을 주지 않는 셈.
요즘은 불안감의 폭과 깊이가 다양해져 갑자기 번개가 나를 향해 내려치진 않을지, 지금 걷고 있는 이 땅이 꺼지진 않을지 별의별 불안함에 두근거린다. 아마 이런 감정이 좀 더 심해지면 연예인들이 겪는 폐소공포증과 비슷한 감정으로 발전하겠지. 부디 그러지 않길 바라지만
오늘 새로 찾은 커피집은 시큼함과 고소함이 비엣남 로브스타와 비슷한 맛과 향이 난다. 첫 향은 시큼한데 맛은 꽃향기도 나고 고소한 맛도 느껴지고, 오묘하다. 보리차 같은 느낌은 딱 비엣남 로브스타인데 다른 향과 맛도 느껴지니까 헷갈린다. 내가 가진 정보와 다른 출력은 나를 불안하게 한다. 사실 커피도 내게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요소 중 하나.
부들부들 손 떨림은 당연하고 카페인 덕분에 뇌까지 흔들리는 느낌을 종종 받지만 그런데도 커피를 마시는 건 파블로프의 실험처럼 '커피=나만의 시간' 같은 게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에 중독될수록 몸의 맑은 기운 같은 걸 자꾸 잃어버리는 느낌이라 안타깝지만 모든 걸 다 가질 수는 없으니까. 흐르는 대로 흘러가야 하니까.
아무튼, 불안함은 나를 키워왔다. 불안하지 않으려 종종거리며 살았고, 그래서 더 대비할 수 있었으며, 언제나 나를 휘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