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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고 또 읽기/세계사 편력 함께 읽기

[세계사 편력 함께 읽기] 세계사 편력1 (31장~40장)





[세계사 편력 함께 읽기] 세계사 편력1. 자와할랄 네루. 곽복희 남궁원 옮김. 일빛출판사.

‘종교는 통치에 필요할 뿐만 아니라 특히 사악하다고 생각되는 종교를 지지하는 것은 통치자의 의무이다’ -군주론, 마키아벨리. (153)

사회 질서의 개혁을 주장했던 반항아 예수와 그의 신자임을 소리 높여 내세우면서 제국주의와 전쟁, 배금 사상으로 치닫는 자들을 비교해 보면 기이하다. (...) 오늘날 신자로 자처하는 수많은 유럽인들보다 간디가 훨씬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잘 따르고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데, 이는 전혀 놀랄 일도 못 된다. (158)

로마에서의 문명이란 부자들의 문명이며, 고대 그리스의 부유층과는 달리 향락만 일삼는 구린내 나고 칠칠치 못한 작자들의 문명이었다. (...) 주로 서민들에게는 무거운 세금이 떨어지고 힘든 노동은 수많은 노예들에게 맡겨졌다. 로마의 권세가들은 그들의 의료, 사색, 철학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그리스인 노예에게 맡겼던 것이다. 그들 스스로 주인 행세를 하는 세계를 탐구하고자 하는 노력이나 교육 같은 것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161)

아무도 위에 군림할 사람이 없어진 당시에 로마의 주교는 베드로의 자리를 계승한 자로서 주교 중의 우두머리로 여겨졌고, 나중에는 교황이라 일컬어지게 되었다. (167)

내 이야기의 어떤 부분이 네 이해력에 벅차더라도 일단 덮어 두고 다음으로 넘어가면 된다. 이 편지는 너에게 역사를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란다. 그저 이곳저곳을 보여 주어서 네 탐구심을 북돋을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단다. (169)

고대 그리스가 얼마 안 되는 시기동안 이루어놓은 사상적인 업적과는 매우 대조적으로 로마는 300년 정도 오랜 세월 동안 사상의 영역에서 위대한 일을 하나도 남기지 못했다. 다만 법률 부분은 유럽 법률의 적지 않은 부분에 기초를 이루었다. (173)

힌두교 및 불교 국가는 1400년 동안이나 그 섬들에서 패권을 다투고, 빼앗고, 때로는 서로 파괴하면서 존속했다. 15세기에 이르러 마지막으로 이슬람 교도가 패권을 확립했지만 이어서 포르투갈인, 스페인인, 네덜란드인, 영국인, 그리고 맨 마지막에 미국인이 왔다. 그런데 중국은 관계가 깊은 이웃 나라로서 때로는 간섭도 하고 정복도 했으나 대개는 우방으로서 선물을 교환하고 언제나 그 위대한 문화와 문명을 통해 영향을 끼쳤다. (180)

문밖이나 주위에 엄연히 빛이 있는데 우리가 눈을 감고 창문을 꼭 닫고 있다고 해서 빛이 사라졌다고 할 수 있겠느냐.. (194)

유럽이 암흑 시대를 맞이한 것은 기독교(예수교)가 아니라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정식 국교로 받아들인 이후 서양에서 번영한 ‘공인된 기독교’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 어떤 자는 기독교가 온 유럽에 암흑 시대를 가져왔다고 규탄하지만 한편 암흑 시대 내내 학예의 등불을 지켜 온 것은 기독교와 기독교의 수도사들이었다. 그들은 예술과 그림을 수호하고 귀중한 문헌을 소중하게 보존하고 필사했다. (195)

인도의 사회 체제를 공고하게 한 또 하나의 요인은 본래 형태로서의 카스트 제도 였다. (...) 그것은 몇천 년 동안 인도 생활의 요체로 되어 왔으나 그것은 변화와 생성을 억압함으로써 가능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을 포용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이었다. (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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