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독 26/ 에세이]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김동영. 아르테.
주절주절 끄적이는 걸 좋아하던 나인데 언젠가부터 읽기와 쓰기가 지루해졌다. 늘 비슷한 일상에 삶을 대하는 방식도 느슨해졌다. 읽고 쓰기 실력 향상을 위해 좀 더 밀도 높은 책을 읽어야 한다는 선배님들의 조언을 얻었지만 읽고 싶은 책들이 쌓여있으니 실천하기 어려웠다. 끌리는 제목의 신간들, 당장 눈앞에 있는 책에 끌려 책 탑을 쌓아놓고 순서대로 읽다 보면 고전 같은 양질의 도서는 늘 뒷전으로 밀리게 된다. 이책도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라는 제목에 끌려 다른 책보다 먼저 집어 들게 된 책 중 하나였다. ‘언어의 온도’(2016) 이후 에세이는 피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작가에 대해 알고 있거나, 그 사람의 생각이 궁금할 때만 펼쳐보게 되었다. 애정하는 임경선, 마스다 미리의 글 같은 건 종종 읽지만 다른 건 들여다보지 않는다. ‘나도 글 같은 걸 쓰고 있다’라는 오만한 자만심 덕분에 남들의 글이 시시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에세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고전 문학에 대해 술술 읽히기 마련인데 김동영의 신작, 이 책은 좀처럼 책장을 넘기기가 힘들었다. 허지웅의 ‘버티는 삶에 관하여’(2014)나 이석원의 ‘보통의 존재’(2009)처럼 처절하지도 않은데 며칠 동안 책상 위에 놓여있었다. 책의 내용이 어려웠다기보다는 보통 사람인 나와 닮아있어 상념에 빠져들곤 했다. 기억하지 못하는 내가 쓴 나의 이야기를 읽는 것 같았다. 살면서 한 번쯤 나도 생각해봤던 이야기들, 여행과 삶을 대하는 방식, 내 머릿속에 마구잡이로 돌아다니는 생각을 글 잘 쓰는 사람이 대신 정리해준 느낌이다. 그렇게 처절하게 감정이입하다 보니 에피소드 하나하나에 몰입하여 자꾸 나의 지난 경험을 되짚어 보느라 빠르게 책장을 넘길 수 없었다.
일상을 벗어난 명절 연휴가 시작되는 날, 잠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이 시기가 되어서야 이 책을 완독할 수 있었다. 이번 여행(?)의 동반자로 최고의 친구였다. ‘여행지의 감성이 담긴 책’이 참 많지만, 저자 김동영만의 감수성이 지친 나의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만들어 오랜만에 편안함을 채워주었다. 저자의 마음과 이 책을 내게 권한 지인의 마음, 나의 마음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지금 이 순간을 오랫동안 기억할 것이다.
(감성적인 책 표지 디자인 덕분에 앞표지가 두 장이라 가운데가 컷팅이 되어있어 책장을 넘기기가 조금 불편한 것 빼고는 모든 것이 좋았다.)
나는 자유로움이 쓸쓸한 거라고 생각한다. 내 가족, 친구,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자유롭지 않은데 혼자 자유로워봐야 의미가 없다.
사실 나는 자유롭지 않다.
그저 내 새장에는 작은 문이 열려 있고, 그곳을 통해 나갔다가 다시 새장 안으로 돌아오는 방법을 알고 있을 뿐이다.
나처럼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당신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당신의 새장은 원래부터 열려 있었고,
그 밖으로 자유를 찾아 날아가는 건 당신의 진심입니다.’ (19)
즐겁게 사는 것이 우리가 세상에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다. 무라카미 류 ‘식스티 나인’ 중에서(30)
우리는 계속 떠나야 한다. 우리에게는 두 다리가 있고, 두 눈은 앞을 향해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위로하는 방법을 여행을 통해 배우길 바란다. 그리고 여행을 통해 우리 안에 있던 더럽혀진 마음과 필요 없는 생각을 씻어내고, 그곳에 버려두고 오길 바란다. 또 그곳에서 우리에게 결핍된 무엇인가를 슬쩍 주워 품에 담아오길 바란다. 그것을 받아들여 잘 익은 사과 알처럼 탐스럽게 살아간다면 좋겠다.
계속 꿈꾸길 바란다. 그게 하룻밤의 꿈이거나 평생 말로만 떠벌리는 꿈일지라도 우리는 꿈꿔야 한다.
그리고 꿈꾸는 사람을 깨워서도 안 된다! (117)
먹먹한 마음을 담아 글을 쓴다. 내 취향의 잔잔한 일본영화 한 편을 본 것 같은 기분이다. 흠뻑 몰입하여 쏟아지는 눈물 한 방울을 겨우 참아냈다.
지금 이 기분, 따뜻하고 감사한 마음을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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