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읽고 또 읽기/문학

[책 리뷰] 시월의 저택. 레이 브래드버리.



[완독 24/ 소설] 시월의 저택. 레이 브래드버리. 조호근 옮김. 폴라북스.

특이한 등장인물, 짧고 빠른 전개에서 느껴지는 긴장감과 속도감에 몰입하여 술술 읽어나갔지만, 많은 등장인물과 빠른 전개로 다음 장으로 넘어갈 때 새로운 장면과 앞뒤의 인과관계가 이해되지 않아 몇 번이나 다시 읽기를 반복했다.

굉장히 유명한 작가의 신작으로 알고 있는데 나의 ‘소설 공포증’ 덕분에 경직되어 리뷰와 작가 이력을 먼저 살펴보게 되었다. 평소의 나라면 책을 다 읽고 곱씹을 거리를 되새김질하면서 보는 것인데, 도대체 이해하기가 어려워 작가 이력을 먼저 살펴보게 되었다.

저자 레이 브래드버리(1920~2011)는 70여 년 간 약 300여 편의 단편 소설을 쓴 ‘단편의 제왕’이라고 불리는 미국 작가이다. 서정적 과학소설의 대가로 SF의 음유시인으로 40년대부터 활동을 시작했고, 1949년 전미 판타지 최우수 과학 소설 작가로 뽑히기도 했다. 화성과 목성 사이에는 그의 이름을 딴 ‘9766 브래드버리’라는 소행성도 존재할 만큼 SF 문학을 주류 문학으로 끌어올린 전설의 거장이다. (책 소개, 네이버 인명사전 참고)

빠르게 많이 쓴 저자의 이력에 비하면 ‘시월의 저택’은 1945년 처음 집필에 착수하여 2000년 작업을 끝낸 아주 오랜 시간이 담긴 소설이다. 어린 시절 고모와 삼촌, 조부모와 보낸 핼러윈의 경험을 책으로 남기겠다 생각하여 20대 초반부터 ‘기이하고 이상한, 흡혈귀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는 가족’이라는 착상으로 집필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출판사와의 관계 등 여러 문제로 출간될 수 없었고, 2000년에 드디어 세상에 선보이게 되었다. (작가의 말 참고)

저자의 이력과 책이 쓰여진 배경을 알고나니 책 내용 자체에 몰입하여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마음으로 느껴야 할 소설을 ‘분석적 읽기’로 읽으며 어렵게 느끼고 있었다. 경직된 긴장을 내려놓으니 너무나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글의 마술사처럼 술술 흘러감이 신기하여, 저자에 대한 호기심이 생길 정도였다.

좀 더 어릴 적, 좀 더 머릿속이 말랑말랑할 때 이런 부류의 책을 읽었더라면 책 읽기와 소설에 대한 흥미를 키울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지만 이제라도 재미있는 분야의 책을 알게 되어 다행이다. 쉽고 가볍게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레이 브래드버리의 책을 종종 읽고 싶다. 영어를 잘 안다면 번역본이 아닌 원서도 도전해보고 싶다.







“태어난 후로 나는 한 번도 죽지 않았다네. 위태롭기는 해도 죽지는 않았지. 온 세상 문의 경첩에 기름칠을 하더라도, 언제나 기름칠 되지 않은 문 하나, 경첩 하나만은 남아 있었으니까. 나는 그런 곳에서 하룻밤, 1년, 또는 한 사람의 일생 동안 잠들어 있곤 했지. 이런 식으로 나는 자신만의 언어를, 지식의 보고를 지닌 채 대륙을 건너 자네들과 함께 쉴 수 있게 된 거라네. 이 넓은 세상의 모든 열리고 닫히는 존재들의 대표로서 말이야. 내가 쉬는 장소에는 버터도, 윤활유도, 베이컨 껍데기 기름도 바르지 말게나.”
부드러운 웃음이 뒤를 이었고, 모두 그 웃음에 동참했다.
“우리가 할아버지를 어떻게 적어야 할까요?” 티모시가 물었다.
“바람도 공기도 필요로 하지 않은 이야기꾼의 종족이라고 적어라. 한낮에도 스스로의 힘으로 밤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이라고.”
“다시 말씀해주세요.”
“천국의 문에 들어가기 위해 도착한 죽은 이들에게, ‘살아 있는 동안 그대는 열정을 알았는가?’라고 질문을 던지는 작은 목소리라고 적어라. 만약 답이 ‘그렇다’라면 그는 천상에 들어갈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고 답하면 지옥에서 불타오르게 될 것이니.”
“여쭈어볼 때마다 답이 길어지는 것 같은데요.”
“그러면 ‘테베의 목소리’라고 적어라.”
티모시는 끄적이다 말고 물었다.
“‘테베’는 철자가 어떻게 되죠?” (171)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