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독21 / 예술] 소프트 파워에서 굿즈까지. 고동연. 다할미디어.
전후 미술사와 영화이론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국내외 아트 레지던시의 멘토 및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 고동연의 신간, ‘소프트파워에서 굿즈까지’는 동아시아 현대 미술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풍경을 그리고 있다. 중국, 일본, 우리나라 미술의 동향을 심도 있게 다루기에 미술 월간 잡지 특집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책은 총 6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일본의 로컬 미술, 일본식 대안공간, 중국의 실험예술, 중국의 오브제와 공간, 한국의 특별한 ‘종로’라는 공간, 한국의 2세대 대안공간 등 동아시아 현대미술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프트 파워’라는 단어가 정부 주도의 위로부터 아래로 퍼져가는 정책방향성을 상징한다면, ‘굿즈’라는 단어는 아래로부터 순수 예술계의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경제적인 자립의 문제가 대두된 역사적 배경을 가리킨다. (20)
저자는 1990년대 이후 현대미술의 정의할 수 없는 광범위함을 ‘소프트파워’와 ‘굿즈’로 표현하며, 여러 미술계 현상에 대해 ‘기사’처럼 설명하고 있다.
나는 자라(zara)에서 종종 옷을 산다. 내가 자라를 즐겨 찾는 이유는 다양한 스타일의 옷이 생산되기 때문이다. 브랜드마다 고유한 특징이 있기 마련인데 자라는 spa 브랜드로 다양한 스타일의 옷이 빠르게 생산되고 진열되기에 쇼핑을 하려고 마음먹을 때에는 자라 쇼핑을 즐긴다. 그렇게 다양한 옷을 입어보지만 정작 내가 선택하고 쇼핑한 옷의 스타일은 비슷하다. 나는 ‘내 옷’ 같은 것을 사 온다. 그래서 아무리 자라에 다양한 스타일의 옷이 있더라도 내가 선택한 옷은 비슷한 특징을 보인다.
이 책은 자라 매장에서 내 옷 같은 것을 선택하는 ‘나’ 같다. 책 한 권으로 현대 미술의 모든 것을 알 수 없지만, 저자 고동연이라는 사람의 관심사는 알 수 있었다. 내 옷장에서 나라는 사람의 개성을 느낄 수 있듯이, 이 책도 현대 미술계를 대하는 저자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따라서 저자만의 비판적 시각으로 동아시아 현대 미술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 설명한 점은 흥미로웠지만 이것은 저자 고동연의 시선일 뿐, 이것이 현대미술의 전부는 아니어서 전반적인 현대미술의 동향을 알고 싶었던 나의 호기심을 완전히 충족시켜주진 않았다. 그 점이 조금 아쉽다.
하지만 중국의 실험 예술, 중국이 어떻게 포스트모더니즘을 받아들이고 작가들이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점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알지 못했을 중국의 동향들을 알게 되어 유익했지만 그것은 단지 몇 가지 현상과 사건, 몇몇 작가들의 동향일 뿐 중국, 동아시아 전체를 알 수는 없었다.
일본 비평가 사와라기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예술과 상품에 대한 철학적이고 개념적인 차이로부터 유래한 것인지, 순수미술의 기반이 약한 비서구권 미술계에서 보다 실질적인 경제적, 사회적 필요에 의해 생성된 것인지, 아니면 일본과 한국에서 백화점이 서구와는 다른 독특한 복합문화공간으로서 역할을 한 것인지, 그 정확한 요인을 단정하기란 쉽지 않다. (116)
동아시아 현대미술에 대한 비평서는 결코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비평서가 나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좀 더 많은 미술비평가들의 책을 읽다 보면, 각자가 해석한 현대미술을 들여다보면 퍼즐 맞추듯 전체를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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