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5 / 종교. 법문]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 법정. 문학의 숲. (2009)
2022년의 절반이 지나갔다. 올해 가장 잘 한 일은 법정 스님의 책을 만난 것이다. 불면증으로 시달리던 1월 첫날 새벽, 꿈인지 무의식인지 알 수 없는 끌림으로 평소 나라면 하지 않을 충동적 소비를 했다. 알라딘 중고시장에서 법정 스님의 책 몇 권을 골라 담았다. 아마도 그 시기의 나는 절실하게 동아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살고 싶었나 보다. 법정 스님의 말씀을 곱씹으며 힘을 얻고 싶었나 보다.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은 법정 스님의 두 번째 법문집으로, 일기일회가 1편이라면 2편에 해당된다. 올해 읽은 스님의 책 9권 중 마지막 책으로 법정 스님의 책 중 기억 남는 것을 고르라면, 무소유, 일기일회 그리고 이 책이다. 스님의 일상의 소소한 사건들이 담긴 책도 좋고, 부처님의 설화가 담긴 책, 류시화 시인이 엮은 책도 좋았지만, 법정 스님께서 대중에게 설법하려고 정리하신 법문이 주는 울림이 가장 크게 다가왔다.
작년에도 그 이전에도 법정 스님의 책 몇 권을 읽은 적이 있다. 스님의 글은 무겁지 않지만 술술 읽을 수는 없다. 특히 요즘의 내게는 더욱 그렇다. 후회와 미련이 가득한 못난 지금의 나는 스님의 말 한마디가 소중해서 한 문장을 외우고 적고 생각하느라 책장이 쉬이 넘어가지가 않는다. 책을 읽는다고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된다는 보장도 없다. 그럼에도 스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통해 조금이나마 마음을 정리하고, 좀 더 바르고 맑은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언제까지나 곁에 두고 읽어야 할 것 같다.
세상에 좋은 책이 많고, 날마다 새롭고 흥미로운 책이 다양한 방식으로 출간되고 있지만, 유행이나 시류를 쫓기보다는 원래부터 알고 있던 맑고 향기로운 기운을 더욱 내 곁에 오래 두고 싶다. 적어도 지금의 나는 그런 마음이다.
부처님은 묵빈대처하라고 가르칩니다. 침묵으로써 물리쳐 대처하라는 것입니다. 그럼 스스로 사라질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인간관계에서도 그렇습니다. 어떤 갈등이 있을 때 굳이 대응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월이 가면 다 풀립니다. 무슨 말을 들었다고 해서 즉각 대응할 것이 아니라, 내가 남의 얘기를 많이 했기 때문에 그 과보로 남한테 또 이렇게 궂은 소리를 듣는 모양이구나 하고 스스로 한 생각 돌이키면 시간이 다 해결해 줍니다. (…) 이 우주 질서 앞에 내가 떳떳하면 됩니다. 그러면 내가 사는 이 세상이 훨씬 조용해집니다. 특히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일반인과 다른 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마음을 거듭 안으로 돌이키는 것, 늘 평정을 유지하는 것, 그런 과정을 통해서 본래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신앙생활이고 종교 생활입니다. (16-17)
소욕지족 소병노뇌(적은 것으로써 넉넉할 줄 알며, 적게 앓고 적게 걱정하라.) 적은 것으로써 만족할 줄 알면 늘 건강하다. (19-20)
맑은 가난은 남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에 만족할 줄 아는 것입니다. 맑은 가난은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고,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갖고자 하는 욕망을 스스로 억제하기 때문에 더 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21)
진리를 배우는 사람은 먼저 가난해야 한다. 가진 것이 많으면 반드시 그 뜻을 잃는다. 진정한 수행자는 한 벌의 가사와 바리때 외에는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 거처에 집착하지 않고 옷에 마음 쓰지 않기 때문에 오로지 진리에만 전념할 수 있다. (85)
도에 이르는 길은 어렵지 않다
오로지 머뭇거리는 것을 쉬라
미워하고 사랑하는 마음만 멈춘다면
앞뒤다 툭툭 트여서 어디에도 거리낄 것이 없다. (112)
의미 있는 것을 의미 있게 바라보고 의미 없는 것을 의미 없게 바라봄으로써 진정한 이해의 눈을 갖는다. (211)
전생 일이 궁금하다면 현재 내가 받는 것을 보라. 그리고 내가 현재 짓는 것을 통해서 다음 생을 미루어 알 수 있다. (214)
이 마음이 곧 부처요
부처가 이 마음이다
생각 생각이 부처의 마음이니
부처의 마음이 부처를 생각한다. (266)
스승은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앞에 나타납니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스승이 앞에 나타나더라도 만날 수가 없습니다. (268-269)
과거를 따라가지 말고 미래를 기대하지 말라.
한번 지나간 것은 이미 버려진 것,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다만 현재의 일을 자세히 살펴,
잘 알고 익히라.
누가 내일의 죽음을 알 수 있으랴. (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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