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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고 또 읽기/사회 과학

[책리뷰]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이반 일리치. 허택 옮김. 느린걸음출판사. (2014)



[완독 2019-13 / 사회과학. 노동]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이반 일리치. 허택 옮김. 느린걸음출판사. (2014)

인간을 무력하게 만드는 이 신종 가난을,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 간에 벌어진 소비 격차와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날이 갈수록 인간의 기본적 필요가 상품이 되어가는 세계에서 점점 더 벌어지는 이 소비 격차는 전통적 가난이 산업사회의 방식으로 드러나는 모습이며, 기존의 계급투쟁이라는 개념으로 이 격차를 적절히 노출시키거나 줄일 수 있다. (9)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세상과 접촉하지 못한 채 지내고, 누군지 모르는 사람을 위해 일을 하고, 자신이 느끼는 것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 채 살아간다. (12)

현대화된 가난이 인간에게 끼치는 직접적이며 구체적인 결과이며, 그것을 견뎌내는 인간의 인내이며, 이 새로운 비참함에서 벗어날 가능성이다. (15)

인류 역사에서 그 시대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가늠하는 가장 정확한 척도는 먹는 음식 중 사서 먹는 음식이 차지하는 비중이다. (32)

학교라는 곳에 가본 적 없는 멕시코 오악사카주 인디언이 지금은 졸업장을 ‘따기’ 위해 학교에 끌려간다. 이들에게 졸업장이란 자신들이 도시인보다 얼마나 열등한지를 정확하게 측정해주는 증서이다. 그나마 이 종이 한 장이라도 없으면 도시에 나가 빌딩 청소부 일도 할 수 없다. 정말로 중요한 문제는 이런 것이다. ‘필요’가 현대화될 때마다 가난에는 새로운 차별이 하나씩 더 붙는다. (35)

이반 일리치에 대한 관심으로 연달아 몇 권을 빌려왔다. 그중 가장 빠르게 완독한 책. 얇지만 깊이가 있어 쉽고 빠르게 읽지 못하는 이반 일리치의 책은 나의 지적 허영심을 충족시켜주기에 참 좋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까지 나름대로 고급(?) 교육을 받은 지성인(!)이라고 불릴 수 있는 학력을 소유하고 있지만, 몇십년 전 유럽 저편에서 살던 이반 일리치 같은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한 문장 한 문장 읽다 보면 나는 그동안 무얼 배우고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 있었나 반성하게 된다. 곰곰이 곱씹으며 나는 과연 가치 있고 쓸모있는 일을 하면서 살고 있는지 나의 직업에 대하여 돌아보게 된다. 하지만 생계에는 의미보다는 책임감이 우선일 테니 일단은 먹고사는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차근히 일하는 게 우선이겠지.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마음의 눈을 키운 후 또 한 번 읽고 싶은 이반 일리치의 책. 오랫동안 곁에 두고 즐겨 읽고 싶다. 오랜만에 호감 가는 사람이 생겼다. 죽은 사람이지만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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