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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

[일상] 커피 한 잔

2년 전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커피를 마시는 행위에 대해 의미 부여를 하면서부터 커피맛을 가려낼 수 있게 되었다. 크레마가 무엇인지, 산미는 무엇인지, 싱싱한 원두를 바로 갈고 내리면 얼마나 맛이 좋은지 알게 되면서 스타벅스나 카누, 맥심 같은 국민 커피와 멀어지게 되었다. 한 잔을 마시더라도 정말 좋은 걸 마시고 싶어서 비싸도 커피 자부심이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무슨 커피 비평가인 양 커피 맛을 평가하고 순위 매기며 ‘더 맛 좋은’ 커피를 찾아다녔다, 그랬던 적이 있었다. 이제는 과거 이야기이다.

몸이 많이 상했다가 다시 기운차리고 있는 요즘, 한동안 저만치에 치워두었던 커피를 다시 꺼내어 조금씩 마시는 중인데 불과 한두 달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맛없게 느껴졌던, 개성 없이 쓴맛이 싸구려처럼 느껴지던 카누와 맥심이 거슬리지 않았다. 향과 신선도가 느껴지지 않던, 지인에게서 선물 받은 이름 모를 회사의 커피 드립백이 그럭저럭 마실만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매일 아침 원두를 꺼내어 핸드밀에 갈고 핸드드립으로 내리던 그 과정이 귀찮아졌다. 매일 원두를 가는 그 일을 즐겼고, 행복감을 많이 느꼈는데 지금은 전혀 그립지가 않다.

집착

아마도 나는 커피에 집착이란 걸 더하고 있었나 보다. 교토 여행에서 마셨던 그 기분을 꼭 붙들고 놓지 못하고 있었다. 내 감각이 옳다는 집착과 내 돈으로 내가 사 마신다는 이유로 다른 것들을 평가하고 있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2년 전 그 맛과 기분이 정답인듯 그리워하고 있었다.


한 달 동안 머릿속 많은 것들이 지워지면서 커피도 사라졌다. 감사하게도 커피에 대한 집착도 조금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그저 따듯한 물 한 잔 이라도 소중한 사람과 함께 하는 나의 공간에서 마신다면 그게 소중한 것이라는 걸 이제 알게 되었다. 아무 의미를 부여하지 않던 그 사소한 순간들에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었는데 그러질 못했다. 적어도 커피에 대해서는. 1도 모르면서 나 혼자 다 아는 척 평가하고 심판했던 모습이 우습지만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다. 나의 천성이 어땠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후천적으로 미식가는 아니다. 커피 역시 그랬다. 분위기와 습관으로 마시는 것이지 엄청난 의미 부여를 할 필요는 없었다.

나이가 들수록 삐딱하던 내 모습을 알아가는 게 좋다. 이렇게 조금씩 꼰대가 되고 늙어가는 내 모습이 나쁘지 않다. 아직 한참이나 부족하지만 해야 할 것이 그만큼 남아있다는 것도 좋고.

오늘 아침도 커피 한 잔으로 한가득 딴 생각을 풀어낼 수 있어서 이 소중한 시간이 참 좋다. 딱 그만큼이다.

내게 커피는 딱 그만큼 감사한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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