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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

[일상] 오늘의 커피



오늘의 커피 : 위켄더스 커피
교토에서 사온 위켄더스 커피는 드립백 주제에 은근한 향이 좋다. 별생각 없이 구입해온 것 치고 아주 괜찮다. 기대한 것보다 향과 맛이 별로인 커피를 마실 때면 갑자기 짜증이 치솟는 것처럼 기대보다 맛 좋은 커피를 마실 때 누그러지는 기분을 느끼는 것도 꽤 괜찮다.

이 커피를 사 온 지 아직 3주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까마득하다.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고, 친할머니께서 위독하시고, 단기 프로젝트 하나를 끝냈고, 세 사람과 헤어질 준비를 하고 있고 두 사람을 맞았다. 요가와 명상이 점점 더 익숙해지고 있고, 커피 두 잔을 마셔도 몸이 반응하지 않게 되었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

하루하루 감당하기 버거운 업무와 책임이 나를 짓누르지만, 이 고요한 오전 커피 한 잔으로 보내는 시간은 내게 편안함을 가져다준다. 이 순간만큼은 아무것도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 맛과 향이 좋은 커피만 있다면.

어제는 홈스테드 커피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수년 전 이태원에서 처음 만나 내게 신세계를 경험하게 했던 홈스테드 커피이지만, 어제 만난 곳은 지하철 사랑방 같았다. 손글씨로 쓰인 ‘오미자 빙수’ 같은 계절 메뉴가 한가득에 오전 시간이었는데도 보험설계사와 노인들, 할머니들이 가득한 동네 사랑방 같은 그곳이 낯설게 느껴졌다. 더는 홈스테드에 대한 환상을 내려놓아도 될 것 같았다. 그나마 커피 맛은 기대보다 나쁘진 않아서 다행이었고.

몸의 기운을 회복하려고 나 스스로 발버둥 치는 이 시간이 감사하다. 삶을 마무리하는 노인처럼 도덕 교과서처럼 매일 똑같은 감사의 마무리로 반복하는 앵무새 같지만, 매일 커피 한 잔과 함께 넋 놓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지금이 행복하다. 행복하다라는 단어로 표현하기 부족할만큼 아주 좋다.

오늘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할머니를 그리며,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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