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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52 / 에세이] 게으름의 즐거움. 피에르 쌍소 외 지음. 함유선 옮김. 호미출판사. (2003)

최근 읽은 책 중 가장 강하게 내 마음을 사로잡은 책. 얇지만 한 장 한 장 내 이야기가 아닌 부분이 없어 책장을 넘길 때마다 즐거웠다. 누군가 내 마음이나 기분을 섬세하게 들여다보고 멋진 말로 풀어쓴 글 같달까.

2003년에 출판되어 ‘당연히’ 절판된 이 책은 프랑스 향기를 가득 채운 열 명의 사람들이 느림과 멈춤이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지에 대해 쓴 글을 엮었다. 정원 설계사, 기자, 물리학자, 작가 등 각양각색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의 개성을 가득 담고 있어 각 장마다 풍기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사색을 즐기는 사람이지만 한동안 이런 책을 읽을 수도 공감할 수도 없었다. 그런 여유 부림은 지금처럼 먹고살기 노력해야 하는 시기에는 절대 해서는 안 될 일로 스스로를 억제하곤 했다. 하지만 생긴 대로 사는 게 인간이니까, 이 책 곳곳에 나온 구절들은 내 머릿속을 헤집어 놓은 것 마냥 ‘나’ 그 자체였다.

경매테크, 미니멀리즘, 제4차 산업혁명 등 쓸모와 실용이 대세인 요즘 같은 시기에 유행하는 책은 분명히 아니기에 최근 읽었던 신작들과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역시 책은 그 시대를 반영한다. 그리고 자칭 옛사람인 나는, 늙은 사고방식을 가졌기에 이미 오래전 절판된 이 책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200여 쪽의 얇은 페이지를 넘기는 동안 행복했다. 허무함과 쓸쓸함, 게으름을 주제로 이만큼 정성 들여 쓴 책이 또 있을까, 감히 올해 읽은 책 중 최고라고 말하고 싶다.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가득 찬 그것들을 파헤치고 거기서 만족을 느낄 수 있는 법을 알게 해 준 책.

이 책을 알게 해준 장석주님과 박연준님, 그들의 책 ‘내 아침 인사 대신 읽어보오’(2017)를 출판한 난다 출판사, 번역자 함유선님께 감사드리며, 모든 프랑스 사람들의 일상과 글이 이렇다면 프랑스에서 살고 싶다.
(당장 프랑스에 간다고 마냥 행복해지진 않겠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더욱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무를 위한 그 시간에 가치를 누가 어떻게 정할까? 즐거움에는 정확하게 매겨진 값이 없다. 마찬가지로, 무를 위한 시간의 가치는 다른 것과 견줄 수도 없고, 바꿀 수도 없다. 그 가치는 선물처럼 주어지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시간을 버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얻는 것이다. 스스로를 얻는다는 것은 시간을 잡는 것이다. 사람은 스스로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통제할 수 없는 시간을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통제하는 게 필요하다. (23)

고독한 명상에 따라붙는 느낌의 권태와는 다른 권태가 있다. 한결 기름진 느낌의 권태다. 이를테면 미리 놓여 있는 권태, 할 일 앞에서 몸과 마음을 빼면서 슬금슬금 일어나는 권태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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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바로 이 사실을 일러 준 화가가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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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작업실을 정리하면서 늑장을 부려요.” 그는 할 일이 엄철나게 많을 것이다. 화가의 작업실은 그야말로 뒤죽박죽일 때가 많다. 어쨌거나 작업실에 들어서면 화가의 눈에는 그렇게 보일 때가 많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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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천천히 작업복을 입죠. 그러고는 붓을 씻습니다. 설사 그 붓들이 깨끗하다고 해도 말입니다. 다음에는 그림의 제재가 될 만한 물건들을 가지런히 놓습니다. 그런 식으로 작업실 안을 슬슬 돌아다니죠. 걸레로 탁자를 훔치고, 벽에 기대어 놓은 그림들을 다시 세우다가, 따로 어떤 그림을 뚫어지게 보기도 합니다. 나는 라디오도 갖다 놓습니다. 라디오에서 곤충 얘기를 하는 걸 듣기도 하고, 해설이 없는 파르티타의 몇 소절을 듣기도 하죠. 아니면 차라리 그 모든 걸 다 놓치기도 합니다. 내가 지표를 세우고 조금씩 일을 하고 싶은 욕구를 되찾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런 작은 의식을 막연하게 치르는 동안이라고 해야 할 거예요.” (104-105)

평일에는 내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다. 사람들이 모두 다 나에게 그렇게 이야기한다. 사회에서, 직업 세계에서 내 자리는 바로 나에게 그 점을 일러 준다. 그렇지만 일요일에 나의 자리는?
(...)
그리하여 일요일은, 휴식의 시간인 일요일은, 사람과 사람이 새롭게 맺어지는, 관계가 다시 창조되는 시간인 것이다. (123-129)

사랑은 우리에게 힘을 가져다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패배만을 안겨 주지요. 우리를 위로해 주러 오지도 않습니다. 사랑은 와서 우리에게서 이윽고 삶의 생생함을 앗아 갑니다. 이처럼 안다면 우리는 사랑을 기다리지 않게 될지도 모릅니다. 굳이 그러한 재난이 닥치기를 바랄 건 없겠지요. (134)

글쓰기란 문학과는 다른 것입니다. 사랑이 사랑 속으로 날아갈 때, 아름다움이 아름다움 속에서 밝아질 때, 그게 바로 삶입니다. (141)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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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35 / 에세이] 마음이 콩받에 가 있습니다. 최명기. 놀.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들. 늘 다양한 생각 거리 덕분에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사람들.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게 많으니까 산만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이 책은 ADHD 라고 불리던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한, ‘산만해도 괜찮아’ 버전의 책이다. 저자 최명기는 정신과 전문의로 심리센터 연구소장 등 정신건강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한꺼번에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처리해야 하는 업무 덕분에 후천적 산만함(?)을 갖게 된 나는 전체를 이해하고 끄덕일 수 없었지만 어느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었다. 사람들의 성격과 개성은 천차만별이고 각자 처한 상황과 환경도 모두 다를 테니까.

남들보다 활동적인 사람들이 순간순간 겪는 일상 속 어려움을 해결하고 위로 받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활동적이지 않지만 산만한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머릿속에 물음표를 그리다 마지막 챕터 ‘모든 개인의 성향들은 독립 변수로 작용한다. (175)’ 부분을 읽으며 물음표를 내려놓았다. 모든 이에게 딱 맞는 책일 수는 없을 테니까.

귀여운 일러스트와 비교적 가벼운 깊이로 쓰인 예쁜 책, 이 책에 공감하기에 나는 너무 늙어버렸나 보다.




​살다 보면 좋은 것과 나쁜 것 사이에서 결정해야 하는 순간보다 나쁜 것과 더 나쁜 것 사이에서 결정해야 할 순간이 더 자주 찾아온다. 좋은 것과 나쁜 것 중에서 골라야 할 때는 고민할 필요가 없지만, 나쁜 것과 더 나쁜 것 사이에서는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 이때는 내가 아니라 상황이 나를 결정하게 된다. (34)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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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26/ 에세이]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김동영. 아르테.

주절주절 끄적이는 걸 좋아하던 나인데 언젠가부터 읽기와 쓰기가 지루해졌다. 늘 비슷한 일상에 삶을 대하는 방식도 느슨해졌다. 읽고 쓰기 실력 향상을 위해 좀 더 밀도 높은 책을 읽어야 한다는 선배님들의 조언을 얻었지만 읽고 싶은 책들이 쌓여있으니 실천하기 어려웠다. 끌리는 제목의 신간들, 당장 눈앞에 있는 책에 끌려 책 탑을 쌓아놓고 순서대로 읽다 보면 고전 같은 양질의 도서는 늘 뒷전으로 밀리게 된다. 이책도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라는 제목에 끌려 다른 책보다 먼저 집어 들게 된 책 중 하나였다. ‘언어의 온도’(2016) 이후 에세이는 피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작가에 대해 알고 있거나, 그 사람의 생각이 궁금할 때만 펼쳐보게 되었다. 애정하는 임경선, 마스다 미리의 글 같은 건 종종 읽지만 다른 건 들여다보지 않는다. ‘나도 글 같은 걸 쓰고 있다’라는 오만한 자만심 덕분에 남들의 글이 시시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에세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고전 문학에 대해 술술 읽히기 마련인데 김동영의 신작, 이 책은 좀처럼 책장을 넘기기가 힘들었다. 허지웅의 ‘버티는 삶에 관하여’(2014)나 이석원의 ‘보통의 존재’(2009)처럼 처절하지도 않은데 며칠 동안 책상 위에 놓여있었다. 책의 내용이 어려웠다기보다는 보통 사람인 나와 닮아있어 상념에 빠져들곤 했다. 기억하지 못하는 내가 쓴 나의 이야기를 읽는 것 같았다. 살면서 한 번쯤 나도 생각해봤던 이야기들, 여행과 삶을 대하는 방식, 내 머릿속에 마구잡이로 돌아다니는 생각을 글 잘 쓰는 사람이 대신 정리해준 느낌이다. 그렇게 처절하게 감정이입하다 보니 에피소드 하나하나에 몰입하여 자꾸 나의 지난 경험을 되짚어 보느라 빠르게 책장을 넘길 수 없었다.

일상을 벗어난 명절 연휴가 시작되는 날, 잠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이 시기가 되어서야 이 책을 완독할 수 있었다. 이번 여행(?)의 동반자로 최고의 친구였다. ‘여행지의 감성이 담긴 책’이 참 많지만, 저자 김동영만의 감수성이 지친 나의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만들어 오랜만에 편안함을 채워주었다. 저자의 마음과 이 책을 내게 권한 지인의 마음, 나의 마음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지금 이 순간을 오랫동안 기억할 것이다.

(감성적인 책 표지 디자인 덕분에 앞표지가 두 장이라 가운데가 컷팅이 되어있어 책장을 넘기기가 조금 불편한 것 빼고는 모든 것이 좋았다.)









​​나는 자유로움이 쓸쓸한 거라고 생각한다. 내 가족, 친구,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자유롭지 않은데 혼자 자유로워봐야 의미가 없다.
사실 나는 자유롭지 않다.
그저 내 새장에는 작은 문이 열려 있고, 그곳을 통해 나갔다가 다시 새장 안으로 돌아오는 방법을 알고 있을 뿐이다.
나처럼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당신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당신의 새장은 원래부터 열려 있었고,
그 밖으로 자유를 찾아 날아가는 건 당신의 진심입니다.’ (19)





​​즐겁게 사는 것이 우리가 세상에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다. 무라카미 류 ‘식스티 나인’ 중에서(30)




​​우리는 계속 떠나야 한다. 우리에게는 두 다리가 있고, 두 눈은 앞을 향해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위로하는 방법을 여행을 통해 배우길 바란다. 그리고 여행을 통해 우리 안에 있던 더럽혀진 마음과 필요 없는 생각을 씻어내고, 그곳에 버려두고 오길 바란다. 또 그곳에서 우리에게 결핍된 무엇인가를 슬쩍 주워 품에 담아오길 바란다. 그것을 받아들여 잘 익은 사과 알처럼 탐스럽게 살아간다면 좋겠다.
계속 꿈꾸길 바란다. 그게 하룻밤의 꿈이거나 평생 말로만 떠벌리는 꿈일지라도 우리는 꿈꿔야 한다.
그리고 꿈꾸는 사람을 깨워서도 안 된다! (117)







먹먹한 마음을 담아 글을 쓴다. 내 취향의 잔잔한 일본영화 한 편을 본 것 같은 기분이다. 흠뻑 몰입하여 쏟아지는 눈물 한 방울을 겨우 참아냈다.
지금 이 기분, 따뜻하고 감사한 마음을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기를.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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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25/ 에세이] 이렇게 책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나이즈미 렌. 최미혜 옮김. 애플북스.

몇 년 전 미우라 시온의 ‘배를 엮다’(2013, 은행나무)라는 책이 ‘행복한 사전’(2014)이라는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책을 사랑하는 순박하고 성실한, 출판사에서 일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그 영화. - 영화보단 책의 깊이가 좀 더 좋았다. - 상영 기간이 짧았던 걸 보면 출판과 관계된 이야기 같은 건 사람들의 주된 관심사는 아니었나 보다.

‘서재 결혼시키기’(2002, 지호)는 한 남녀가 오랜 시간 연애를 하고 드디어 결혼하여 부부가 되면서 ‘책’ 때문에 생긴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책의 취향과 배치 정리 등 두 사람이 함께 조화로운 삶을 위해 책이라는 매개체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었다. ‘서재’의 ‘결혼’이라는 소재가 흥미로웠지만, 그 책에 나온 ‘책 속의 책’들을 많이 알지 못해 공감의 깊이가 덜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책’을 소재로 다룬 책이 종종 나온다. 책을 즐기는 사람이 10명 중 2~3명 정도인데, 그들 중 1명 정도만 겨우 읽는 책을 다룬 책들. 인기가 없는 게 당연하다. 책을 읽는 인구가 적으니까 책 속의 책 따위 관심이 없을 수밖에.

‘이렇게 책으로 살고 있습니다’라는 제목에서 말해주듯 ‘책과 함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을 쓰는 작가의 글쓰기
다른 나라의 책을 소개하는 에이전트
교정과 교열
서체
디자인
종이
활판인쇄와 활자
제본, 제본 문화

책과 관련된 모든 일과 모든 순간에 장인정신이 깃들어 있었다. 쌓여가는 전통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느낄 수 있는 것들은 책을 만드는 과정과 참 잘 어울린다. 기술의 발전으로 책과 관계된 많은 직종이 사라졌다. 이제는 사람 손을 거치지 않고 기계로 많은 부분을 해결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종이책의 시대는 끝났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새로운 책이 출간되고 있다. 장인의 손으로 낱자 글자를 새기고, 교정하고 정교한 교열을 보진 않지만 그래서 예전보다 더욱 간편하고 쉽고 빠르게 생산된다. 그래서 양질의 글을 담는 것이 더욱 중요해졌다.

책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제는 사라져버린 책을 만들었던 그들의 노고를 기억하고 싶다. 책 한 권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의 노력이 담겨있는지, 읽는 내내 행복했다. 책을 좋아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적은 부수라도 누군가에게 특별한 한 권, 그 사람에게 무엇과도 대신할 수 없는 소중한 한 권을 만들려고 할 때 제본 기술이 잊혀진다면 책을 둘러싼 소중한 세계는 사라져버릴 겁니다. 거기에는 아직 심오하고 우리 마음에 호소하는 뭔가가 있다고 저는 믿고 싶습니다. (266)

인간은 풍부한 상상력을 펼치고 자신이 좋아하는 걸 발견한 후에는 꾸준히 계속하려 하지요. 좋아하는 일을 소중히 여기고 그것을 자신의 인생에서 마음껏 살리려고 궁리합니다. 저는 그런 세계를 대단히 중요하다고 여기려고 해요. 제가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써온 것도 그러한 생각 때문이에요. 그리고 그렇게 계속 써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그게 그 사람의 마법이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38)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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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책이라니 굉장히 흥미롭네요 ~ 나중에 한번 읽어봐야겠어요!

    2018.03.30 02:3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