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독 123 / 에세이] 홍차와 장미의 나날. 모리 마리. 이지수 옮김. 다산 책방. (2018)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이 무엇인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삶을 결코 진흙탕으로 만들지 않는다. (9)
나쓰메 소세키와 더불어 일본 근대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 모리 오가이의 장녀인 모리 마리는 유명한 아버지의 자식으로 자라났지만, 생활력 같은 건 없는 저자는 객관적으로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았지만 자신만의 행복 포인트를 찾아 삶을 살아냈다.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 자신의 삶 속 이야기들을 짧은 글로 써 삶을 이어갔고, 그 기록을 묶어 이 책이 탄생하였다. 매력적인 표지와 삽화, 제목 덕에 제2의 사노 요코를 기대하며 읽어갔지만, 여러 에피소드를 묶은 책이어서 반복된 구절이 많아 읽을수록 흥미가 떨어졌다.
책날개에서 소개하는 작가 배경 이야기를 알지 못했다면 관심 갖지 않았을 이 책은 작가 소개와 배경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준다.
확고한 책임의식이나 정신력 없이 삶을 살아가는 한량 같고 무기력하게 느껴져 읽는 내내 에너지가 빨리는 기분이었지만, 저자가 애정하고 자부심 갖고 있는 프랑스풍의 분위기와 요리, 아버지와의 추억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만큼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프랑스나 요리를 좋아하고 동경하는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모리 마리식의 ‘호화로운 가난의 미학’이 멋스럽게 느껴지기보다는 ‘정신은 어린아이인 채로 몸만 어른이 된 사람’으로 느껴져 읽는 내내 안타깝고 힘들었다. 나처럼 ‘삶의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지 못하는 안타까운 예술가’에 대한 편견이 없는 사람이라면 가볍고 즐겁고 재미있게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며 나의 상처와 편견과 맞닥뜨리게 되어 힘들게 읽었지만, 좋아하는 사노 요코가 사랑한 작가 모리 마리, 그녀가 부디 행복하게 살다 갔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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