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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고 또 읽기/문학

[북 리뷰] 좁은 문. 앙드레 지드. 조정훈 옮김. 더클래식. (2017)

[2019-72 / 고전] 좁은 문. 앙드레 지드. 조정훈 옮김. 더클래식. (2017)


은희경의 ‘빛의 과거(민음사, 2019)’에서 등장인물 이동휘가 주인공 김유경에게 했던 말 중에서 자신은 사실 ‘브론스키보단 제롬에 가까웠다’는 말에 꽂혀 제롬이 주인공인 소설을 검색하였고, ‘좁은 문’을 읽게 되었다. 브론스키가 화려하고 열정적인 사랑을 좇는 사람이라면 제롬은 지고지순하고 끈질긴 인물일까 싶은 단순하고 단편적인 생각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좁은 문은 가벼운 연애 소설이 결코 아니었다) 청소년 권장 도서라는데 어느 부분이 청소년이 꼭 읽고 이해하고 넘어갈 부분인지, 주의해서 알아채야 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어렵고 버거웠다. 재미있는 소설을 읽을 때 느낄 수 있었던 긴장감 같은 것은 하나 없고, 고구마처럼 답답해서 책장을 넘기기 어려웠다. 이것은 마치 얼마 전 읽었던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나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읽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한 사람 특히 여성의 자유로운 연애 같은 건 보장되지 않은 100년 전의 생활 모습이 느껴졌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크고 넓은 길은 멸망으로 인도하나니 그리로 가는 자가 많음이라. 하지만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과 길은 좁으니 그것을 찾는 자가 적음이라. (25)


내가 행하는 모든 미덕이 모두 그를 기쁘게 하기 위한 것이지만 그의 곁에 서면 나의 미덕이 파괴되는 느낌이 든다. (178)


2019년을 사는 나는 절대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150년 전의 삶. 불만에 가득 차 있는 시기를 보내고 있는 요즘이지만, 이 역시 100년 전 어떤 여성도 누리지 못한 여유와 자유였으리라. 지금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어려운 책 한 권을 읽어냈다. 불과 100년 전 소설과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를 돌아보며 지금의 우리를 이해할 수 없는 100년 후 사람들의 모습이 문득 그려졌다. 100년 전 소설 속에 등장하는 모습들이 옳지 않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어떤 기준으로 지금이 옳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과연 잘 가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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