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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고 또 읽기/문학

[북 리뷰] 빛의 과거. 은희경. 문학과 지성사. (2019)




[2019-68 / 한국소설] 빛의 과거. 은희경. 문학과 지성사. (2019)

어느 순간 나는 그녀에게서 나의 또 다른 생의 긴 알리바이를 보았던 것이다. (13)

혼자라는 건 어떤 공간을 혼자 차지하는 게 아니라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익명으로 존재하는 시간을 뜻하는 거였다. (84)

그동안 자기 자리가 아닌 곳에 가지 않고 모르는 것에 대해 말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왔던 오현수는 모르는 것이 거의 다라는 생각을 하나 더 보태게 되었다. 그녀에게는 그것이 다른 조건을 가진 삶에 대한 존중의 한 방식이었다. (264)

그녀는 깨어 있는 것과 행동하는 것 모두 중요하다고 말한 뒤 깨어난 사람은 누구나 행동해야 할 책임이 있으며 그 책임을 회피한다면 언제까지나 주인 된 세상에 살지 못하고 남의 세상에 억지로 적응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267)

우리가 아는 자신의 삶은 실제 우리가 산 삶과는 다르며 이제까지 우리 스스로에게 들려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334)

어차피 우리는 같은 시간 안에서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들이었고 우리에게 유성우의 밤은 같은 풍경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 책에서 말하듯 과거의 진실이 현재를 움직일 수도 있다. 과거의 내가 나 자신이 알고 있던 그 사람이 아니라면 현재의 나도 다른 사람일 수밖에 없다. (335)

문학소녀(?) 가 되고 싶던 20대 후반에 열심히 챙겨보던 은희경 작가가 신간을 냈다. 마지막으로 본 게 ‘새의 선물’,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이니 꽤 오랜만이다. 한동안 소설 같은 걸 읽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사실 그런 건 나 하기 나름인데.. 사실 소설을 멀리했던 건 핑계다. 열심히 먹고사는 사람 코스프레가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아무튼 무슨 바람이 불어 은희경 작가의 신작을 만났다. 인물 심리묘사가 가득한 여성여성한 감정을 건드리는 내 기억 속 은희경 그대로다. 기숙사 같은 건 살아본 적도 없고, 70년대에 대학을 다니지도 않았지만, 작품 속 등장인물이 된 듯 소설에 푹 빠져 읽었다. 은희경 작가의 실제 이야기인지 내 이야기인지 소설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푹 빠져들었다. 등장인물 이동휘의 마음이 궁금해서 ‘좁은 문’을 읽기 시작했다. 내 취향은 제롬보단 이동휘지만.

한없이 철없고 부족하고 어쩔 수 없이 맑은 청춘 나의 이십 대 초반이 떠올랐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삶에 찌든 지금이 오버랩되었고. 건조한 가장의 무게만 가득한 내게도 여성스러운 감성이 아직 남아있다는 걸 되새기게 해준 ‘빛의 과거’, 참 좋았다. 역시 은희경. 대세 김금희보단 은희경의 연륜과 탄탄함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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