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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고 또 읽기/문학

[책 리뷰] 2019 제10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 문학동네. (2019)



[완독 2019-37 / 소설. 한국소설] 2019 제10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 문학동네. (2019)

2000년대 후반, 이상문학상 작품집이던가? 젊은 작가 수상 작품집에서 처절한 가난이 담긴 김애란의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너무 강렬한 그 느낌 덕분에 젊은 작가들의 수상작품집에 손이 가질 않는다. 수상한 작품들은 좀 더 자극적인 주제나 소재가 담겨있을 거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감정의 처절한 밑바닥을 굳이 들여다보고 싶지 않아서 피해왔다.

그리고 올해 십여 년 만에 수상작품집을 읽게 되었다. 안전 가옥 앤솔로지의 냉면(안전가옥, 2018)과 문학동네에서 매해 봄에 만들어내는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문학동네, 2019) 두 권을 읽었다. 십여년 전 강렬했던 첫 기억에 비하면 비교적 괜찮았다. (덜 괴로웠다) 그동안 나이가 들었기에 감정을 인정하고 극복할 수 있게 된 걸지도, 이제 이 정도는 견딜만한 내공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내겐 백수린의 시간의 궤적이 가장 좋았지만, 가장 강렬하면서도 흡입력이 좋았던 건 박상영의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이었다. 그래서 많은 작품 중에서 대상으로 뽑히지 않았을까. 정영수의 우리들, 이미상의 하긴은 불편한 감정이 들었고, 김희선의 공의 기원과 이주란의 넌 쉽게 말했지만은 잔잔하게 흘러가서인지 푹 빠지기 어려웠다.

백수린의 소설을 가장 재미있게 읽었지만, 나머지도 나쁘지 않았다. 처음 만난 2019년 제10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은 나쁘지 않았다. 내년 11회 작품집도 기대된다.


박상영의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은 상처가 가득한 상처에서 벗어나려 노력하지만, 자의와 타의에 의해 좌절하고 다시 또 살아가는 허무한 감정을 잘 보여준다. 화자가 누구인지 헷갈려 몇번이나 앞장을 다시 넘겨보았다. 동성애 소설일 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동성애에 대해 알지 못하므로 언급하긴 어렵고, 온전하지 못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의 불완전한 감정 표현을 세 명의 등장인물 모두에게서 느낄 수 있었다. 가정에서 어머니의 책임과 무게, 소중함을 느꼈다.

백수린의 시간의 궤적을 읽으며 또 다른 내 모습을 보는 듯이 몰입했다. 주인공 언니가 무덤덤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나 같았고, 그들이 함께 살아가며 겪는 단조로운 일상이 보편적인 것들이라 더 울림을 주었다. 큰 사건은 없었지만, 시시하지도 않았다. 작가의 다음 소설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뭐랄까, 거기엔 모든 것, 그러니까 그때까지 문명이 만들어낸 나쁜 것과 좋은 것들이 온통 한데 뒤섞여 있는 느낌이었다.”(143)김희선-작가 노트

소설 속에서 ‘나’는 끝내 사과를 하지 않는데, 그것은 ‘나’가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히 더 나빠서라거나, 더 비겁해서는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받은 상처에 대해서는 호들갑을 떨며 아파하면서도 타인의 상처에는 태연한 얼굴로 손가락을 들이미는 그런 존재들이니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점점 더 참혹해져서, 안간힘을 써봤자 모든 것의 끝에는 결국 후회와 환멸, 적의나 허무만이 남을 것만 같다는 두려움을 안고 사는 존재들이니까. 하지만 시간이 드러내는 진실이 그토록 하찮은 것뿐일지라도, 우리가 서로 사랑했던 순간들, 온기를 나눴던 순간들, 타인의 입장이 되어 “그 사람, 그런 사람 아니거든요?”라고 말해주던 순간들마저 온통 거짓은 아닐 것이다. (184)백수린-작가 노트

우리의 삶은 동경하는 일의 아름다움과 그로부터 도래할 불안을 감내하고 마주하는 용기로 이루어진다. (191)선우은실

이곳에 온 다음 날, 나는 올해의 첫 매미 울음소리를 들었었다. 그렇게 6월이 갔고 7월이 가고 있다. 하루하루가 가고 있다는 것,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아주 잘 느끼고 있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숨을 쉬는 일은 재미있고 행복하다. (196)이주란-넌 쉽게 말했지만

모든 것이 끝난 뒤에 그것을 복기하는 일은 과거를 기억하거나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재해석하고 재창조하는 일이니까. 그것은 과거를 다시 경험하는 것이 아닌 과거를 새로 살아내는 것과 같은 일이니까. 그러나 읽을 사람이 아무도 없는 글을 쓰는 것은 생각보다 고독한 일이다. 그래서 어느 날 나는 글을 쓰다가 어쩌면 내가 영원히 혼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그게 문득 참을 수 없이 두려워졌다. (264)정영수-우리들

사랑에서 애걸로 되는 건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하지만 그건 과연 유의미한 변화인 것일까? 무의미한 변화는 없었던 것인가? 돌이킬 수 없는 변화만이 유의미한 것인가? 아는 것과 변하는 것은 얼마나 어떻게 다른가? 기억의 열람만이 가능할 뿐이라면 무엇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겠는가? (305)김봉곤-데이 포 나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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