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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고 또 읽기/문학2020. 3. 18. 15:00

[2020-09/소설, 독일문학] 개가 인간과 통하는데 꼭 필요한 대화 사전. 오셀로. 이형진 그림. 선우미정 옮김. 율리 체 받아 적음. 들녘. (2008)

 

2020년 초, 율리 체의 '새해'를 읽고 작가의 전작을 살펴보고 싶다는 호기심으로 도전한 책인데 저자명에 '오셀로'라고 쓰여있다. 율리 체와 오셀로는 어떤 관계지?

 

이 글을 쓴 오셀로는 여류작가의 개다. 작가를 주인으로 둔 덕에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관찰할 수 있었다. 그는 마침내 견공들이 인간의 언어를 정확히 이해하면 할수록 오해의 소지가 줄어들며, 견공과 호모사피엔스의 공생도 훨씬 수월해지고 행복해질 거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오셀로는 '개가 인간과 통하는 데 꼭 필요한 대화 사전'을 통해 견공의 시각에서 본 인간의 세계를 유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율리 체 받아 적음.

 

 

이 책은 소설가 율리 체의 독특한 발상과 시선이 담긴 '반려견 생활 탐구 백과사전'이다. '오셀로'라는 개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사를 ㄱ부터 ㅎ까지 사전의 형식으로 설명한다. 그림작가 이형진의 자유로운 그림체와 찰떡궁합을 이루고 있다.

저자는 오셀로의 마음속에 들어가 본 적이 있는 듯 개의 시선으로 본 인간 세상을 위트 있게 표현한다. 한국에서만 살아본, 한국인의 정서로 읽다 보니 공감할 수 없는 유럽? 독일식 유머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이건 그저 허구일 뿐. 부담 갖지 않고 그저 소설처럼 느끼는 대로 읽으면 된다.

반려견과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보시라. 율리 체라는 작가에게 매력을 느낄 것이다. 난해한 편집 덕분에 가독성이 좋지 않지만 이 차도 저자 오셀로의 의도일 수 있으니 받아들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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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고 또 읽기/문학2020. 2. 28. 23:34

[2020-08 / 소설] 새해. 율리 체. 이기숙 옮김. 그러나 출판사. (2019)


슈피겔 종합 1위, 16개월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소설, ‘새해’
휴양지의 호텔 같은 예쁜 일러스트를 표지에 이끌려 읽게 된 ‘새해’는 독일 작가 율리 체의 2019년 신간이다. 율리 체(1974~)는 독일의 본에서 태어나 파사우와 라이프치히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미국의 뉴욕과 폴란드의 크라쿠프에서 장기간 체류하며 데뷔작 ‘독수리와 천사’(2001)가 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두었으며, 기타 소설들도 35개국 언어로 번역되었다. 2002년 라우리스 문학상부터 여러 차례 문학상을 받은 작가이다. (책날개 참고)

법학을 전공하고 유럽법과 국제법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 쓴 소설이라니. 연결고리가 독특하다고 생각하며 책장을 넘겼다. 깔끔한 표지와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과 내용 구성 등에서 자신감이 느껴졌는데, 역시나였다.

주인공 헤닝이 자전거를 타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자전거로 언덕길을 올라가는 한 사람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질 만큼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보통 글에서 생각을 담을 때 ‘작은따옴표’를 사용하고, 대화를 담을 때 “큰따옴표”를 사용하곤 하는데 그런 구분 없이 사실 묘사와 주인공의 생각을 넘나들며 왔다 갔다 한다. 그 부분이 어렵거나 헷갈린다기보다는 좀 어지러웠다. 마치 힘든 자전거로 오르막길을 올라갈 때 숨이 차고 머리가 띵해지는 그런 기분. 아마도 ‘그것’의 정체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작가의 의도가 아니었나 싶다.

소설의 초반부에 시점의 이동인지, 상상인지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파악하느라 이해하는 시간이 필요했다면 중반부 이후부터는 순식간이다. ‘그것’의 실마리를 찾아내고, 결말까지 너무 빠르게 훅 지나와버린 기분이다. 자신의 글에 확신을 가진 작가의 자신감이 느껴졌다. 공포나 호러 소설은 아니지만, 더한 고통스러움이 있다. 주인공 헤닝과 같은 경험을 해본 적이 없지만, 누구든 그런 상황을 직면하게 된다면 누구든 갖게 될 공포. 그래서 더 섬뜩하게 느껴졌다.

어린 시절의 아픈 경험이 한 사람에게 얼마나 강한 트라우마로 남게 되는지, 그것을 극복하기까지 얼마나 큰 노력이 필요한지가 담겨있어 책장을 덮은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그 여운이 남아있다. 이해하기 어렵지 않으면서 괜찮은 소설 한 권을 읽었다.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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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5/에세이] 마흔의 서재. 장석주. 프시케의 숲. (2020)


<마흔의 서재>는 물안개 자욱한 새벽 마당을 가로질러 서재로 나가 써 내려간 그 시절의 조촐한 마음을 담은 책이다. 그때 찾아 읽은 책과 나를 품었던 서재는 나의 피난처이자 은신처였다. 갈매나무 한 그루 품지 못한 채 마흔에 불시착한 이들에게 나침반 같은 책이기를 바랐다. 살아온 날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다가올 날의 꿈을 기획하는 이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랐다. 미망과 의혹을 뚫고 앞으로 나아가기. 깨어 있을 땐 숨결을 가지런하게 하고 밤에는 작은 꿈들을 꾸며 고요하게 살기. (7)-작가 서문 중에서


2012년 한빛비즈에서 출간한 동명의 책 ‘마흔의 서재’가 출판 계약의 법적 시한을 다 채운 2020년 1월 프시케의 숲 출판사에서 다시 출간되었다. 저자 장석주가 마흔이던 시절 읽고 쓰고 느낀 것들을 엮은 이 책은 어떠한 울림을 주었길래 8년 만에 또다시 나오게 되었을까. 출간된 지 이제 한 달이 지났을 뿐인데 벌써 베스트셀러에 속해있다.


‘마흔의 서재’는 장석주가 마흔을 맞이하며 읽은 책을 소개하고 본인의 생각을 덧붙이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책 속 소개되는 저자가 읽어낸 수많은 훌륭한 책 보다 저자의 생각에 더 공감하고 감동받았다.

-목차-

제2장 삶의 갈림길마다 책이 있다.
제3장 이전과는 다른 생이 기다린다.
제4장 넓어지지 말고, 깊어지는 삶을


성인으로 불리는 나이가 되면 좋은 스승님을 만나기가 어렵다. 물론 학창 시절에도 좋은 스승님 만나기는 하늘에 별따기지만, 교육기관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면 더하다. 생계를 살다 보면 그저 살아가기에도 급급하고, 점점 여유가 없어지는데 마흔이 아마 그 중턱쯔음 되나 보다. 열심히 일하며 성실하게 살아왔는데 이룬 건 없고, 돈을 좇으며 살아온 건 아니니까 적은 게 당연한데 남과 비교하게 되고, 방향을 잃으니 더욱 혼란스러운 시기가 바로 마흔인가 보다. 나의 마흔은 남들과는 다를 줄 알았는데. 무엇을 위해 이토록 열심히 살아왔나 허무해진다. 뭐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으로 더욱 열심히 살아보지만, 그동안 마음먹은 대로 살아왔던 건 내 인생의 축복이었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무튼 마흔이라는 새로운 성장통을 맞이하게 되어 힘겨운 사람들에게 나침반 같은 스승님이 되어줄 책이다.


저자는 마흔 시절에 이 책을 쓸 만큼 단단하고 야무진 사람인데 나의 마흔은 여전히 아직도 어설프다. 마흔쯤이 되면 남들처럼 어른처럼 살 줄 알았는데 나의 마흔은 그렇지 못하다. 얄궂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덕분에 업무가 휘청거려 책에 집중하기가 어려웠지만, 다시금 정신을 붙잡고 나아가야겠다.

——

자발적으로 선택한 고독은 일상의 분주함에서 벗어나 “심리적 피난처”를 찾는 일이다. 대개 작가나 예술가들이 창작을 위해 스스로 고립의 환경을 찾아내 고독을 추구한다. 이때 고독은 “위안과 새로운 활력, 내적 평온”이라는 선물을 준다. 명상, 휴식, 기도와 같은 활동도 고독을 동반한다. 이때 고독은 일상의 번잡함에 매여 지친 영혼을 달래고 내적인 여유와 평화를 가져다준다. (74)

대부분의 갈매기들은 비상의 가장 단순한 사실-즉 먹이를 찾아 해안을 떠났다 다시 돌아오는 방법 이상의 것을 배우려고 마음 쓰지 않는다. 대부분의 갈매기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나는 것이 아니라 먹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갈매기에게 중요한 것은 먹는 것이 아니라 나는 것이었다. 어떤 것보다 조나단 리빙스턴은 나는 것을 사랑했다. -리처드 바크, <갈매기의 꿈>(129)

비가 내리는 풍경에 무심한 눈길을 주고 있는 이 순간, 그 순간들이 바로 삶이라는 꽃이 피어 있는 순간이다. ‘나’란 존재는 바로 이 순간의 순수의식 그 자체이다. 이 순간밖에 없는 삶은 없다. 산다는 것은 바로 이 순간에 온전히 집중해야 하는 일이다. (178)

나는 삶을 소유할 수 없다. 삶 그 자체가 바로 나이고 나일 것이기 때문이다. (180)


——
장석주와 연관된 책을 5권이나 읽었다. 옛 기록을 찾아보니 내가 만난 장석주의 책은 모두 좋았다. ‘마흔’이라는 제목에 끌려 손이 간 줄 알았는데 역시 장석주의 글이어서 더욱 마음이 기울었나 보다.

1. 은유의 힘. 장석주. 다산책방. (2017)
2. 내 아침 인사 대신 읽어보오. 장석주. 박연준. 난다 출판사.(2018)
3. 게으름의 즐거움. 피에르 쌍소 외 지음. 함유선 옮김. 호미 출판사. (2003)
이토록 멋진 문장이라면. 장석주 쓰고 엮음. 추수밭 출판사. (2015)
5. 정원으로 가는 길. 질 클레망. 이재형 옮김. 홍시 출판사. (2012)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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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고 또 읽기/문학2020. 1. 27. 16:42

[2020-04 / 문학, 한국소설] 사랑의 생애. 이승우. 예담. (2017)

사랑은 모든 사랑하는 이들을 사랑하게 하는 근거이다. 사랑의 근거이고 사랑의 깊이이고 사랑 자체이다. 세상의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 근거이고 깊이이며 사랑 자체인 사랑 없이는 사랑할 수 없다. 사랑은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을 품고 있다.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은 사랑 안에 포섭되어 있다. 사랑 자체인 이 사랑이 두 사람 사이로 들어와 자기 생애를 시작한다. 그 생애가 연애의 기간이다. 어떤 생에는 짧고 어떤 생애는 길다. 어떤 생애는 죽음 후에 부활하고, 어떤 생애는 영원하다. (167)


2019서울 국제 도서전 기념품(?)이었던 '맛의 기억(다양한 분야의 작가들이 맛에 대한 이야기를 엮은 소책자)'을 통해 이승우라는 소설가를 알게 되었다. 언어를 가지고 노는(!) 저자 특유의 필력에 반해 이승우의 여러 책을 담아왔고, 그중 첫 번째로 완독한 책이다. 작가는 저자의 말을 통해 '떠오르는 대로 순간의 단상들을 적어둔 여러 개의 메모들을 여러 권의 몰스킨 수첩을 거쳐 스마트폰의 메모장으로 옮겨 왔다가 책으로 만들었다.'라고 소개한다. 저마다 다르지만 비슷하고 비슷하면서도 다른, 사랑이라는 경험의 신비를 담은 책이다.


'사랑의 생애'는 등장인물 형배, 선희, 영석, 그리고 준호의 사랑 이야기가 우연하게 얽혀있다. 각자 자신만의 어쩔 수 없는, 치열하고 못나빠진 날것의 사랑 이야기를 전하고 있지만, 저마다의 사정에 공감되는 것은 작가 이승우의 솜씨 덕분일 것이다. 글을 읽는 내내 때로는 형배에게, 때로는 선희에게, 영석, 그리고 준호에게 감정이입하여 내가 그 사람인 듯 몰입하여 읽을 수 있었다. 한 사람의 감성, 심리 묘사가 너무나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표현되어 있어 한때 즐겨 읽던 알랭 드 보통이나 김형경의 소설을 떠오르게 한다. 내 감정을 들킨 것만 같은 이런 묘사는 마음이 바쁠 때에는 잘 읽히지 않다가 여유가 있고, 한가한 시기에 후루룩 읽게 된다.

어떤 방식이 더 좋거나 괜찮다고 말할 수 없는 각자 사랑에 대한 경험, 사랑의 생애는 작가의 말마따나 사랑 그 한가운데 빠져 있는 자에게는 관심 밖의 일이다. '진정으로 살지 않는 자가 삶이 무엇인지 묻는다.'라는 글귀가 마음에 남는다. 책을 읽으며 사랑이 하고 싶어졌고, 삶이 궁금해졌다.

분명하고 알아듣기 쉽게 고백하기가 쉽지 않다. 사랑하는 자의 말은 불가피하게 우회하는 말이다. 사랑의 말은 직선을 모른다. 아니, 모르지는 않지만 쓰지 못한다. 쓰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두근거림과 조심스러움, 즉 수줍음이 쓰지 못하게 한다. 직선의 언어는 빠르지만 날카로워서 발화자든 청자든 누군가를 다치게 하기 쉽다. 자기든 남이든 다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사랑이 시작되는 현장에서 직선의 언어는 여간해서는 채택되지 않는다. (48)

가치를 부여하는 일은 사람마다 다르다. 이 사람이 가치를 부여하는 일이라고 저 사람도 반드시 그래야 하는 법은 없다. 이 사람에게 대단한 일이 저 사람에게는 대단하지 않거나, 저 사람에게 하찮은 일이 이 사람에게는 엄청나게 중요한 일인 경우는 허다하다. 기쁨과 보람을 느끼며 하는 일에 우리는 가치를 부여한다. (...) 우리는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하는 대단한 일을 하며 살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 순간을 기다리면서, 기쁨과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일을 견딘다. 그 대단한 일을 하기 위해, 혹은 그 일을 하기를 갈망하며 이 대단하지 않은 일을 한다. 이 일을 소홀히 하지 않는 건 그 일 때문이다. 그 일에 대한 기대가 이 일을 감당하게 한다. (53)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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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고 또 읽기/문학2020. 1. 21. 01:34

[2020-03 / 문학, 한국소설] 서독 이모. 박민정. 현대문학. (2020)


요즘은 수많은 근심 걱정으로 책 읽기가 쉽지 않은데, 서독 이모는 예외였다. 큰 기대 없이 책장을 넘겼다가 앉은자리에서 단숨에 끝까지 읽어버렸다. 흡입력이 좋고 재미있으면서 명쾌(!)하지만, 마냥 가볍기만 한 것도 아니라 곱씹을 거리도 있다. 서독 이모는 1985년생 작가 박민정의 소설이다. 소설에 있어 나이라는 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기준이 되어버리니 ‘나보다 어린 작가’가 되었다. 어리면서 잘 나가는 대부분 사람들의 소설은 전개가 빠르거나 소재가 자극적이어서 불편한 경험이 많았다. 도도하고 거친 느낌이 싫어서 웬만하면 피하는 편이다. 하지만 박민정의 소설은 그런 나의 선입견을 깨트렸다.


소설 속 주인공 정우정은 글을 쓰는 사람이다. 대학원을 졸업하기 위해 구질구질한 대학원 생활을 버티며 논문과 소설을 쓴다.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소재를 찾다가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인 이모와 이모부 이야기를 선택했고,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허구인지 기억나지 않을 만큼 쓴 글과 석사 논문 통과 과정인 자신의 이야기가 소설이 되었다. 흥미롭다. (이런 과정을 책 뒤편에 드라마투르기라고 표현한다.)


드라마투르기는 작품에 대한 여러 해석 중 하나의 관점을 채택하여 작품에 의미를 구체화하는 비평적 활동이다. 즉, 하나의 스토리에 대한 비평적 시선 및 연출을 위한 이론적 실천이다. (106)


너에게는 이모의 불행이 심심풀이 땅콩이니, 나는 엄마의 말을 떠올렸다. 두 번째 단락을 넘어서고 나서도 꽤 많은 분량을 단숨에 써버렸지만 더는 이 이야기를 이어 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82)


나의 쓰기도 떠올랐다. 고작 나의 경험과 내 주변 이야기를 쓰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미천한 글짓기가 부끄러웠지만, 정우정, 아니 박민정 작가처럼 나도 할 수 있다면 계속 쓰면 작가가 될 수 있으려나?!


소설 속 작가는 본인의 가족사, 서독과 동독의 통일에 엮인 비극, 정체성과 삶, 씀이라는 행위 등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결코 무겁지만 한 건 아니다. 이 소설에 재미가 더해지는 것은 통일 전후 독일과 현재 한국의 상황이 오버랩되는 점이다. 정우정이 박민정은 아닌지, 이 소설 자체가 진실인지 허구인지 궁금증을 갖고 ‘서독 이모’를 읽으며 최근 재미있게 보는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이 떠올랐다. 현실에서 일어날 것 같지 않은 통일 같은 소재를 독일 이모와 그녀의 남편 클라우드의 이야기를 통해 불쑥 차용한다는 점에서 더욱 드라마처럼 느껴졌다. 소설 속 이야기들이 너무나 거짓말 같은데 그래서 더욱 진짜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이렇게 덜컥 통일이 이루어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는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을 선정, 월간 ‘현대문학’ 지면에 선보이고 이것을 다시 단행본 발간으로 이어가는 프로젝트이다. (책날개 참고)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 선은 현재 021권까지 발행되었고, 30권까지 예정되어 있다. 어떤 출판사에서 이렇게 앙큼(!) 발랄한 책을 시리즈로 묶어놓았나 찾아보았더니 좋아하는 미래엔 출판사의 성인 단행본 브랜드 중 하나였다. 미래 엔에는 와이즈베리, 북폴리오, 현대문학이 속해 있다. 소설을 잘 알지 못할 때는 양질의 인문 서적을 출간하는 와이즈베리를 좋아했지만, ‘서독 이모’를 알게 된 이상 현대문학의 핀 시리즈에 관심 갖고 챙겨보려 한다. 다음 책은 017 이승우의 캉탕을 읽어야겠다.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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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고 또 읽기/인문2020. 1. 20. 23:57

[2020-02 / 인문 에세이]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강상중. 노수경 옮김. 사계절. (2017)


일에 치이던 지난 연말 ‘왜 나는 매일 일하고 있는데 매일 일에 쫓기는가’에 대한 고민이 가득할 때 이 책이 눈에 띄었다. 저자 ‘강상중’은 재일 한국인 2세대로 재일 한국인 최초로 도쿄대학 정교수가 되었고, 현재 구마모토 현립극장 관장 겸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저자의 이름이 낯익다고 생각했는데 몇 년 전 나쓰메 소세키를 소개하는 책에서 만난 적이 있는 작가였다. 자기 계발서 같은 뻔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고전, 인문과 역사 속에서 일의 의미를 스스로 찾아보라는 조언이 좋았다. 목차부터 깔끔하게 정리되어 책의 내용이 한눈에 들어오는 점도 좋았다. 비슷한 느낌의 책으로 사이토 다카시의 3으로 생각하라, 혼자 있는 시간의 힘, 유연한 지성의 단련법 등이 오버랩되었다. 일본인 특유의 분위기일 수도, 교육을 가르치는 교수님의 깊이일 수도.


바쁨과 아픔에 쫓겨 나를 잃어버렸다가 다시 정신 차리기 위해 이 책을 찾아갔다. 하지만 금세 또 일을 만들어 분주해져 버렸고, 지난 연말 동안 느꼈던 절실함은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도 이 책은 좋은 책이 분명하다. 생계유지만을 위해 주어진 업무를 적당히 때우는 식의 일을 원한다면 이 책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삶의 의미나 살아가는 이유, 일의 본질 같은 것을 고민해본 적이 있다면 꼭 한 번쯤 읽어볼 가치가 있다. 이상을 좇으며 일할 수 있는 나의 삶, 선택과 책임 같은 것을 나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내 인생에 감사한 마음이 들게 만드는 책이었다.


중압감에 짓눌리지 않기 위한 처방전 : 하나의 영역에 자신을 100% 맡기지 않겠다는 태도. 일에 임하는 자세도 그렇고, 삶의 방식도 그렇습니다. 하나의 일에 전부를 쏟아붓지 않는 것, 스스로를 궁지로 내몰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47)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움에서 창조성이 생겨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할 사람도 있겠지요.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원래 인간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있는 그대로의 타자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을 다시 있는 그대로의 타자에게서 인정받아야 합니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통해 성립되는 사회는 본래 그러해야 합니다. 있는 그대로 존재하면서 동시에 상호 자유롭게 개방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위축되었던 창조성의 문 또한 열릴 것입니다. (63)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중 : “그대에게 해로운 사람이 품은 생각과 그 사람이 그대에게 품게 하려고 하는 생각을 품지 말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물을 보라”(4장 2절) (197)


‘자연스럽게’ 사는 삶이란 내게 맞는 일이 과연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에 따라 목표를 세우고 스스로가 납득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삶입니다. 일을 통해 사회라는 공공의 장으로 ‘들어가라’고 권한다. ‘나가라’가 아니라 ‘들어가라’라는 표현을 통해 저자는 공적 영역의 ‘시코토’ 밖에 훨씬 더 넓고 다양한 가능성을 품은 일과 삶의 영역이 펼쳐져 있음을 시사한다. 폭넓게 배우고 더 큰 기회를 얻기 위해 먼저 사회로 들어가라고,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나’를 새롭게 발견하라고 말한다. (228)


-로빈슨 크루소 -나스메 소세키 ‘산시로’ -피터 드러커 매니지먼트-칼 폴라니 거대한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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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76 / 경제경영. 마케팅] 아웃사이드 인사이트. 욘 리세겐. 안세민 옮김. 21세기북스. (2019)


빅데이터로 불리는 축적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하여 나에게 유의미한 정보로 활용해야만 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메세지를 주는 이 책. 내부 데이터도 중요하지만, 외부 데이터를 얼마나,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흥망성쇠가 변화하는 모습을 블랙베리와 아이폰, 코닥과 인스타그램,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등으로 제시한다. 넘쳐나는 정보망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막연했는데 저자가 제시하는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시대의 변화와 흐름을 예측하는 방법을 알 수 있다.


하루에 만 보를 걸으면 100원을 얻을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캐시 워크를 사용하지 않는 20대~40대가 있을까? 하루에 고작 100원이지만 공짜는 좋으니 핸드폰을 무한 흔들어 걸음 횟수를 올리기도 하고, 한두 걸음을 더 걷기도 한다. 그러한 데이터가 쌓여 어떻게 이용되는지는 알지 못한 채 나의 걸음걸이는 하나의 데이터 사례로 적용되어 사용되겠지. 핸드폰이나 패드, 인터넷이나 전자기기를 활용하는 모든 활동에는 자취가 남고, 그것을 통계자료로 활용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신기함이 한 해가 바뀔 때 나이 한 살 먹기 싫지만 먹을 수밖에 없듯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공포로 다가왔다. 무의미한 SNS 활동을 줄이고, 의미를 만들어가는 활동을 쌓아가야겠다. 이용당할 수밖에 없다면 역이용하는 선택을 해보는 것도 좋을 테니까.


기업 경영은 복잡한 활동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언제나 당신과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 있다. 그들이 갖는 자신감, 열정, 신념이 미래의 사업 성과에서 언제나 가장 중요하다. (62)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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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고 또 읽기/문학2019. 12. 30. 23:19

[2019-77 / 기타] 맛의 기억. 권여선 외. 대한출판문화협회.(2019)



어릴 적 엄마가 해주신 음식 중 가장 기억나는 건 정어리 찌개이다. 맛이 좋고 나쁨을 떠나서 꽤 자주 먹었던 기억이 난다. 정어리 통조림을 꽁치찌개처럼 끓인 정어리 찌개는 통조림 생선 특유의 식감, 생선 가시를 혀로 살살 녹이는 맛이 좋았다. 그 시절 우리 집 식단은 맞벌이 부모가 손쉽게 끼니를 때울 수 있는 김치찌개, 카레, 곰탕 등이 전부였다. 손이 많이 가는 김밥 같은 건 언감생심. 김밥보다 손쉬운 유부초밥도 먹어본 적이 없다. 그저 엄마가 익숙하고 빠르게 준비할 수 있는 것들을 먹곤 했다.


엄마의 퇴근이 늦은 날엔 가까운 곳에 사는 이모 댁에 일부러 찾아가 저녁을 먹었다. 이모 댁에서 먹는 밥은 늘 맛이 좋았다. 정말, 밥부터 맛이 달랐다. 뛰어난 음식 솜씨 따위 필요치 않은 그저 밥에 불과한데도, 우리 집에서 매일 먹던 그것과 차이가 커서 이모네에서 식사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너무 오래 끓여 배춧잎이 흐물거리는 우리 집 김치찌개와는 비교할 수 없는 맛. 이모네에서 먹던 음식이 특별한 요리는 아니었다. 흔히 말하는 집밥, 그 정도다. 갓 지은 따끈한 밥과 엿기름이 섞여 달곰하고 고소한, 깔끔하게 똥을 발라낸 매콤한 멸치볶음, 퍽퍽한 목살 같은 돼지고기와 감자 등을 넣고 은근하게 끓여낸 고추장찌개, 갓 구워낸 고등어나 꽁치구이, 슴슴하고 부들부들한 무나물, 김과 김치. 밥과 찌개에 3~4개 정도의 정갈한 반찬, 그리고 식탁 앞에서 내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나를 지켜봐 주셨던 이모. 그 시절 그 순간에는 맛있는 음식과 이모가 있었다. 이모는 늘 내가 밥 먹는 모습을 지켜보셨다. 그러면서 사는 이야기나 동네 사람들 이야길 하셨다. 501호 누구는 어쩌고, 이모 동창 누구 딸이 어쩌고. 지금은 전혀 기억나지도 않고 기억할 수도 없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다 보면 이내 머리가 아파져 왔다. 가끔은 그런 행위들이 이모께서 차려주신 밥을 먹고 지불해야 하는 비용처럼 느껴져 습관적 맞장구가 피곤할 때도 있었지만, 아직도 여전히 엄마밥보다 이모밥이 그립다.


C와 함께할 땐 거의 맛집을 찾아다녔다. 내가 찾았다기보다는 그쪽에서 늘 데이트 코스를 준비해왔다. 스파게티나 피자, 커피숍 등 ‘데이트’라고 불릴만한 메뉴가 대부분이었고 그와 함께 다녔던 곳은 다 맛이 좋았다. 그는 맛뿐 아니라 멋에도 관심이 있었다. 우리는 취향도 잘 맞았다. 음악회를 다녔고, 미술관을 다녔다. 그는 첫 연애였고 나도 그와 다를 바 없었다. 우리는 영혼의 단짝인 줄 알고 열렬하게 사랑했지만, 열정적으로 타오르던 불씨는 금세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C와 함께했던 맛집을 더는 찾아다니지 않는다.


B와 함께할 땐 늘 고기를 먹었다. 함께한 시간 동안 다른 메뉴를 먹은 기억이 거의 없다. 고기와 커피, 그게 전부다. 회, 주꾸미, 소고기, 삼겹살 등 다양한 고기류를 섭렵했고, 그중에 제일은 삼겹살이다. 삼겹살을 유난히도 부르짖던 그 사람, 우리의 마지막 식사도 삼겹살이었다.


N과 함께 식사를 ‘즐기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365일 언제나 다이어트를 하고 있었기에 어떤 음식이든 개미 눈곱만큼 먹었고, 배부르다며 절반 이상 남기곤 했다. 남겨진 음식이 보기 싫었던 나는 언제나 찬반 처리반이 되었다. N과 함께 식사하면 종종 배부른 불쾌감이 들곤 했다. 이럴 거면 차만 마시고 헤어질걸. 어떤 메뉴든 가리지 않고 먹질 않았기에 맛있는 음식을 먹는 즐거움 같은 걸 느껴본 기억이 없다. SNS에 공유된 N의 데이트 사진에는 언제나 맛있게 먹었고, 배부르다는 글이 남겨있지만, 그가 정말 맛있게 배부르게 먹었을지, 뭔가 먹긴 하는 건지 늘 궁금하다.


사람과 맥주를 좋아하는 J 덕분에 수제 흑맥주의 맛을 알아버렸다. 이전에도 기네스나 코젤 다크 같은 진한 흑맥주를 좋아하는 나의 취향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J 덕분에 흑맥주의 스펙트럼이 넓어졌다. 스타우트에는 브라우니와 올리브가 참 잘 어울렸다. 속상할 때 꿀꺽꿀꺽 마시는 술 말고 기분 좋게 홀짝이는 맥주의 맛을 알게 되었다. J와 자주 만나지 않는 요즘은 맥주 따위와 멀어진 지 오래다.


K가 소개하는 곳은 전부 기념할만하다. 음식점이나 예쁜 공간, 전시회 등 영감을 받을만한 핫플레이스를 상당히 구체적으로 분류하여 정리하고 있고, 이따금씩 소개해준다. 가장 좋았던 곳은 이디야 커피랩이다. 보급형(?) 프랜차이즈 커피 본사가 뭐 얼마나 하겠나 싶은 마음으로 방문했지만, 그 후 다른 지인과 세 번을 더 방문했다. 맛과 멋 분위기 모두 굉장한 공간이었다. K가 소개하는 곳은 무조건 좋다. 공간이나 음식 맛이 주는 매력도 상당하지만, 사실 K와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좋다.


평소 간단하게 때우는 식사를 하는 편이다. 어릴 적부터 길들여진 식습관 덕분에 삼시 세끼 같은 음식을 먹어도 상관이 없다. 한솥 가득 끓인 청국장에 밥 말아먹고, 두부나 고기류를 넣어 한 번 또 끓이고, 남은 국물에 라면을 넣어 또 먹는다. 내게 식사란 배고프지 않기 위해 먹는 것이지만, 사람이 더해지면 의미가 달라진다. 맛이 우선순위인 상대방과 함께라면 나도 맛 좋은 음식을 먹게 된다. 역시 내겐 맛보다는 ‘함께’가 먼저다. 좋은 것을 함께하고 싶은 마음, ‘너와 내가 함께한 시간이 만족스럽다.’가 ‘맛있다’로 기억된다. 이런 걸 푼크툼이라고 칭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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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서울 국제도서전의 ‘리미티드 에디션’ 맛의 기억은 권여선, 김봉곤, 박찬일, 성석제, 안희연, 오은, 이승우, 이용재, 이해림, 정은지 이상 10명의 작가가 ‘맛’을 모티브로 쓴 글을 엮었다. 각양각색 작가들의 글을 읽다 보니 ‘나의 맛의 기억’도 기록하고 싶어 졌다. 그런 의미에서 참 재미있는 책이다. 그중 이승우라는 작가에게 관심이 갔고 조만간 이승우의 소설을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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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74 / 에세이] 서점의 온도. 류얼시. 김택규 옮김. 유유 출판사. (2019)


책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던 시기에 만난 두 책이 묘하게 닮아있다. ‘서점의 온도(유유 출판사, 2019)’와 ‘만 권의 기억 데이터에서 너에게 어울리는 딱 한 권을 추천해줄게(21세기 북스, 2019)’가 그것이다. ‘서점의 온도’는 중국 광저우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저자의 에피소드를 담고 있고, ‘만 권의 기억 데이터에서 너에게 어울리는 딱 한 권을 추천해줄게’는 일본 서점에 근무하는 저자의 소설 같은 에세이이다. 일본 서적 번역본은 종류와 장르가 다양해서 그들의 사고방식이나 내용 구성 등이 낯설지 않았고, 흥미로웠다면 중국 서점의 에피소드를 담은 ‘서점의 온도’는 낯설어서 관심이 갔다. 몇 년 전 와이즈베리 출판사 서포터즈를 하며 출판사 관계자님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일본 번역서는 많이 접할 수 있는데, 중국을 포함한 다른 동아시아 지역의 서적을 볼 수 없으니 많이 번역해달라고 건의(?)한 적이 있었다. 그 후로 중국 번역서를 종종 만나왔지만, 그들의 문화 자체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인지 재미있게 읽은 건 몇 권 안 되는 것 같다.


서점의 온도는 나의 중국에 대한 특별한 로망을 해소해주는 책이었다. 중국 광저우에서 24시간 운영하는 독특한 서점 1200북숍의 이야기이다. 중국과 우리나라의 생활 문화 자체가 달라서 에피소드도 상상 이상의 경험이었다. 저자의 이야기가 중국 내 보편적으로 겪을 수 있는 이야기인지, 저자만의 특별한 경험인지 알 수 없지만,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로 동경하던 중국에 대해 조금 더 알 수 있어 즐거웠다.


한동안 유유 출판사의 책을 기피해왔다. 요즘은 공부하듯 읽는 책이 끌리지 않았기 때문인데, 오랜만에 만난 유유 출판사의 발랄함이 좋았다. 다시 책에 대한 관심을 한 발짝 나아가게 해 준 것 같아 반가운 책. 광저우의 1200북숍을 꼭 한번 가보고 싶다. 중국 서점원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추천·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취업 자리를 제공하고 그들이 자아실현을 하도록 돕는 것, 이것이 타이완인이 지닌 인간미이자 내가 타이완에서 감동을 받은 점이었다. (126)


이것은 아마도 운명이겠죠. 하늘은 시련을 내려 인생이 좀 더 공평해지게 하니까요. (142)

 

운명은 누구도 편애하지 않는다. (164)


큰일이 눈앞에 닥쳐도 계속 살아가야 하고 어떻게든 방법은 있게 마련이다. (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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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73 / 어린이. 동시] 매미가 고장 났다고? 푸른 동시 놀이터 엔솔러지 제3집. 강나래 그림. 푸른 책들. (2019)


환경, 평등, 교육, 인성 등 의미 있는 어린이 책을 출간하는 푸른 책들 보물창고 출판사에서 동시 농사(?)를 정리하는 푸른 동시 놀이터 엔솔러지 제3집을 출간했다. 2018년 1월부터 2019년 8월까지 ‘푸른 동시 놀이터’ 블로그에 38명의 기성 시인들이 신작 동시로 모였고, 5명의 새로운 시인들이 신인 추천작으로 함께하여 100편에 가까운 동시 모음집이 만들어졌다.

 


어른의 시선으로 동시를 읽으며 요즘 작가들이 바라보는 아이들의 감성과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환경, 입시(공부) 같은 내가 어릴 적에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주제들의 동시도 있어서 과연 우리가 사는 공간이 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시는 어렵지만, 동시는 좋다. 정확하게는 동시조를 좋아한다. 이해하기 쉽고, 맑고, 함축적인 의미까지 담겨있어 가볍지만 깊이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기대하고 넘긴 이 책은 동시 작가들을 위한 결과보고서 같다. 좋은 음식도 한꺼번에 많이 먹으면 탈이 난다. 작가 소개나 그 동시를 쓴 이유 같은 걸 알지 못 한 체 마냥 읽고 있다 보니 동시 작가들이 서로를 격려하기 위해 만든 출판물 같은 느낌도 든다.

 


어린 시절 내게 동시란 일기 쓰기 숙제를 하기 싫을 때 때우는(?) 용도였다. 일주일에 3~4번씩 써야 하는 일기를 쓰기 싫을 때 짧고 쉽고 감정을 요약하는 글을 쓰는 희열이 있었나 보다. 일기장 속에 등장하는 동시가 제법 많았다. 동시라고 이야기하기 부끄러울 만큼 내용은 유치하고 오글거리지만, 그 시절 나도 동시를 즐겼던 것 같다. 요즘 아이들이 동시를 대하는 방식은 나의 어린 시절과 다른 것 같다. 요즘은 일기 쓰기 숙제 자체가 많지 않다. 더 다양한 할 일과 과제들로 요즘 어린이들은 바쁜 하루를 보낸다. 그리고 나선 핸드폰이나 패드 속 영상에 심취하여 새로운 세상을 탐험한다. 어린 시절 내게 동시 쓰기란 그 시절 내가 즐기던 상상 놀이터였다. 동시를 즐기는 즐거움을 아는 어린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읽을거리를 찾아 읽고 싶고, 무겁고 두꺼운 건 싫을 때 한 두 편씩 읽으면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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