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6/소설, 영국 문학] 리어왕. 윌리엄 셰익스피어. 한우리 옮김. 더 클래식. (2020)
책 읽기를 즐기지만, 문학 작품 읽기는 부담스럽다. 특히 ‘세계 문학 컬렉션’ 같은 건 더욱더 어렵다. 독서 모임을 통해 고전 읽기를 도전했다가 포기했던 적이 있다. ‘데미안’과 ‘1984’인데 몇 페이지 못 보고 책장을 덮은 경험 덕분에 고전 문학을 대할 때면 두려움이 앞서는 편이다.
그 후로 몇 권을 다소 힘겹지 않게 완독 했고, 안나 카레니나를 읽으며 고전문학에 대한 약간의 흥미를 느낄 수 있었다. 안나 카레니나는 총 3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어쩌다 보니 여러 출판사로 읽게 되었다. 그중 ‘더 클래식 세계문학 컬렉션’을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책의 두께나 크기, 글씨체와 종이의 느낌, 특히 번역체가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것들에 비해 편안하게 느껴졌다.
더 클래식 출판사에 대한 약간의 호감으로 리어왕에 도전했다. 리어왕은 더 클래식 세계문학 컬렉션 25번으로 올해의 신간(?)은 아니다. 2020년 3월에 개정판 1쇄를 찍으며 1608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 디자인과 같은 양장본으로도 함께 출간하였다. 더 클래식 출판사의 개정판 ‘리어왕’이 컬렉션과 양장본, 총 두 가지의 표지 디자인으로 출간된 셈이다. 책 소장을 즐기는 사람들의 구미를 당길만한, 아니 책 읽기를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도 인테리어용(?)으로 솔깃할 만한 예쁜 책 한 권이 나타났다.
영국인이라면 누구나 읽는다는 그 셰익스피어의 책을 나는 단 한 권도 읽어본 적이 없다. 그나마 20여 년 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등장하는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을 본 게 전부이다. 그 영화 속에서 배우들이 ‘왜 저렇게 어색하고 불편한 말투로 연기를 하는가.’ 궁금했는데 책을 읽으며 궁금증이 풀렸다. 그건 셰익스피어 소설 속의 말투였다. 1600년대 소설의 특징일지도 모르겠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가장 숭고한 작품이라는 ‘리어왕’은 작가나 제목의 유명세로 첫인상은 다소 부담스러웠지만, 내용은 생각만큼 어렵지 않았고, 쉽고 재미있었다. 죽음, 변절, 배신과 신념, 의지 등 요즘 세상 사람들에게 흥미를 끌 만한 소재나 주제가 아니었지만, 이해하기 부담스럽지 않은 줄거리와 풍자와 비판을 담긴 글을 읽으며 과연 ‘권장 도서’라 부를 만 하구나 싶었다.
언젠가부터 외국 소설을 읽을 때면 관계도를 그리곤 한다. 헷갈리는 사람들의 이름만 정리되어도 훨씬 이해가 쉽기 때문이다. ‘리어왕’은 처음부터 연극 무대용으로 쓰인 글인지는 몰라도 등장인물이 많지 않고, 인물의 성격도 파악하기 쉽게 구성되어 있어 관계도 하나만 있어도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총 5막으로 구성되어 있고, 장마다 주제나 암시 등이 명확해서 나처럼 고전 초보자가 도전하기에 어렵지 않았다.
1600년대 시대적 배경을 알고 있다면 더 깊이 있게 즐길 수 있었겠지만, 배경지식이 없는 체 읽는 리어왕도 괜찮았다. 작품 해설에 나오는 ‘nothing can come of nothing.’ 문구가 마음에 남는다. 영어에 능숙하진 않지만, 원어로 읽고 이해하면 더욱 깊이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더 클래식 출판사는 영문판도 함께 제작하여 증정한다. 언젠가 영문판도 술술 읽어보고 싶다.
잘 들어봐요, 아저씨.
가진 것을 다 보여 주지 말고
아는 것을 다 말하지 말고
가진 것을 다 빌려 주지 말고
걷는 것보다는 말을 타며
듣는 말은 다 믿지 말고
내기에는 다 걸지 말며
술과 계집은 뒤로하고
집 안에만 머무르면
열의 두 곱인 스물이 넘는
이득을 볼 수 있을 거야.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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