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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2019-4 / 사회과학. 비평 칼럼] 대리사회. 김민섭. 와이즈베리. (2016)

요즘 읽는 책 두 권이 묘하게 닿아있다. 한 권은 와세다 글쓰기 표현 강의(엑스북스, 2018)이고, 또 한 권은 대리사회(와이즈베리, 2016)이다. 연두색 표지색이 똑같고, 좋은 글쓰기가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닮았다. 다른 점은 한 권은 직접적인 글쓰기 방법을 알려주지만, 딱히 와닿지 않고, 다른 한 권은 르포르타주의 형식(글쓰기책이 아님)으로 대리운전자로 사는 삶을 잘 쓴 글쓰기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남을 대신하는 사회, ‘대리(代理)사회’인 줄 알았는데 ‘대리’운전에서 나온 대리였다. 하긴 대리운전도 ‘代理’이긴 하지. 훈의 시대(와이즈베리, 2018)를 읽고 김민섭의 다른 책이 궁금하여 찾아 읽게 된 대리사회는 글작가를 업으로 삼고 싶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대리운전 기사로 밥벌이를 하는 저자의 삶이 담겨있다. 직업의 귀천을 넘어서서 좋은 글이 있다는 점에서 이 책 대리사회는 월간지 ‘작은 책’과도 닮아있다. 저자처럼 나도 나의 분야에서 글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이 마구 생기는 책이었다.

어쩌면 가족은 끊임없이 서로를 위한 ‘대리’로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나는 너를 위해, 너는 나를 위해, 우리는 너를 위해, 그렇게 끊임없이 주체와 대리의 경계를 넘나든다. 나는 아직 모든 가족을 주체로 두는 방법을 잘 모른다. 하지만 아내하고든 아이하고든, 조금은 더 많이 대화하려고 한다. 기꺼이 그들을 위한 대리의 삶을 살며, 그렇게 조금은 더 주체적인 인간으로 살아가고 싶다. (105)

갑과 마주하려는 을의 앞을 막아서는 것은 또 다른 을’들’이다. 그들은 한 걸음 물러서거나 밀려난 을에게 “너는 이제 더 이상 ‘우리’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갑의 욕망을 대리하는 대리인간이면서도, 자신을 그 공간의 주체로 굳게 믿는다. 자신들이 괴물이 되었음을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분노는 주변의 을이 아닌 저 너머의 갑을 향해야 하고, 공고하게 구축된 시스템에 닿아야 한다. 모두가 돌아서서 갑과 마주하고, 대리사회의 괴물과 싸워나가야 한다. (178)

그 누구도 가르쳐준 바 없지만, 결국 우리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야 한다. 밀려나기는 쉽지만 스스로 물러서기는 어렵다. 그것은 공간의 주체만이 할 수 있는 행위이고 절대로 패배가 아니다. 그러고 나면 시스템의 균열이 보다 선명하게 보인다. 그 균열의 확장을 통해, 그동안 자신의 욕망을 대리시켜 온 대리사회의 괴물과 마주할 수 있다. 그때부터는 ‘사유하는 주체’가 된다. 여전히 행동과 언어는 통제될지라도, 정의로움을 판단하고 타인을 주체로서 일으키는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강요되는 천박한 욕망을 거부할 용기를 얻는다. 우리 모두는 경계에 있다. 다만, 한 걸음만 물러설 용기를 가지면 된다. 대리인간으로 밀려날 것인지, 스스로 물러서고 다시 나아오는 주체가 될 것인지,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252)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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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2019- 1/ 사회과학] 훈의시대. 김민섭. 와이즈베리. (2018)



학교에 몸담고 있던 시절에는 논문 읽는 걸 좋아했다. 논문이란 건 이미 모두가 알고있는 걸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하던지, 전혀 다른 두세가지를 접목시켜 새로운 틈새를 찾아내는 식으로 쓰여져 똑똑한 사람들의 생각을 엿보는 흥미로운 읽기 거리였다. 내가 직접 논문을 써야하던 시절엔 그게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 알게되었다. 남들과 다른 생각을 객관적 자료와 논리적인 전개로 글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게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양질의 논문만 존재하는 건 아니라는 것도 함께 알아버렸다.

이젠 학교를 졸업한지 한참 지났고 논문같은 건 읽지 않아도 되는 시기이지만, - 내가 생각하기에 - 논문과 비슷한 형식이나 접근 방법으로 쓰여진 책은 다른 것보다 유심히 보게 된다. 깔끔한 목차나 객관적인 분석, 남다른 시선 등 책을 내는 모든 사람들이 논문 한 편 정도는 써보려고 노력한 후 글을 썼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다양성을 존중하지만 잘쓰여진 글을 읽는 재미는 쏠쏠하니까.

‘훈의 시대’ 저자 김민섭은 확실히 논문 여러편 써본 글솜씨를 지녔다. 이미 책 두권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대리사회’를 출간했다. 정확한 학력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아마도 인문사회대 석사 이상의 학력을 보유한 저자이기에 논리적인 글쓰기와 사회 비판적 사고를 지녔을 거라 추측한다. (본문 어딘가에 문학 박사로 나옴)

80년대 국민학교 교과서에 등장할법한 영희와 철수가 그려진 표지, 그리고 다소 고리타분해 보이는 제목 덕분에 쉽게 손이 가진 않았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니 기대 이상이다. 저자는 이 사회를 둘러싸고 있는 각종 ‘훈’들을 비꼬는 이야길 책으로 담았다. ‘훈’이라는 단어가 담고있는 구속, 억압, 같은 것이 나와 이 사회를 얼마나 옥죄고 있는지 자신만의 시선으로 풀어낸다. 저자가 정의하는 ‘훈의 개념’은 다음과 같다.

​‘훈’은 1)집단에 소속된 개인을 가르치기 위한 교육의 언어이고, 2)지배계급이 생산, 해석, 유통하는 권력의 언어이고, 3)한 시대의 욕망이 집약된 욕망의 언어이다. (19)

예술가만 창의적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안다. 학창시절 나 자신이 굉장히 창의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예술 관련 학과를 졸업하고 그쪽 직업으로 살고 있지만, 다른 어떤 분야에도 창의성은 존재하고, 각 분야에 존재하는 소수의 창의적인 사람들이 발견하고 전개해나가는 세상을 나 같은 다수의 시민들이 감탄하고 모방하며 변화를 만들어간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 김민섭은 굉장히 창의적인 사람이다. 글 잘 쓰는 사람이고, 계속 좋은 글을 쓰고 강의를 했으면 하는 사람. 어느 지방대인지 모르지만 그 지방대 학생들은 복받았네.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

책장을 덮으며 대리사회를 빌려왔다. 1983년생 김민섭 작가님 당신의 새책을 응원합니다. 좋은 글 많이 써주세요.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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