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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 예술, 에세이]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고레에다 히로카즈. 이지수 옮김. 바다출판사. (2017)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은 비일상이 아니라 사소한 일상 속에 존재한다. (387)


한때는 내가 예술가인 줄 알았다. 미대를 다녔으니까. 동기들과 사색에 쩔어 한량 같은 대학 생활을 했지만, 졸업과 삶이 주는 무게를 감당하기는 쉽지 않았다. 학교에 다니면서 2학년 때부터 취업 준비를 했고, 4학년 겨울방학 때 바로 취업. 그리고 지금은 짜여진 스케줄을 소화해야 하는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한동안 의식하지 못하고 지냈는데 이 책을 읽으며 옛 생각이 났다. 예술가로 살았다면 나도 잘할 수 있었을까? 자신감과 협동능력이 부족한, 창의적이지도 못한 내가 그런 삶을 지속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도망치듯 책임감에 눌려 지금 이렇게 살고 있지만 싫지는 않지만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동경은 갖고 있다.

삶을 대하는 ‘왜’라는 물음은 나를 지탱하는 힘이다. 그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 답을 찾으려 노력하는 과정, 삶 자체가 학부 시절 작업 하나를 완성하려 고민하던 과정이 녹아있다. 빠릿빠릿하게 행동하진 못했지만, 많은 작업량을 가지진 못했지만, 다작은 아니지만 띵작을 작업했던 나라는 사람. 나도 그랬는데 아이들을 시간에 쫓겨 가르치려 하다니. 참 앞뒤가 안 맞는 행동이다.


-예전에 써놓은 글을 정리하다가. 2018년 여름~가을 무렵에 쓴 글을 옮겨둔다.-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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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에게 추천받아 교토 여행을 계획하며 여행하며 읽으려 고른 책. 무더운 날씨와 꼬이는 일정 등 각종 돌발상황 덕분에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몇십 쪽을 읽고 일상 속에서 읽는 이 책은 처음 생각했던 ‘여행지에서 읽을 가벼운 책’이 아니었다. ‘안목의 성장’의 저자 이내옥은 한국 미술사 연구와 박물관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인 최초로 미국 아시아파운데이션 아시아미술 펠로우십을 수상한, 34년간 국립박물관에서 근무한 우리나라 박물관 발전에 이바지한 상당히 유명한 분이었다. (책날개 참고)

이 책은 백제 역사나 윤두서, 정약용 등의 학문적 가치나 예술성을 알리는 책이라기보다는 ‘박물관에서 반평생을 보낸 사람 이내옥의 이야기’책이다. 비슷한 아우라를 가진 책으로 ‘문장의 온도(다산초당, 이덕무, 2018)’와, ‘내가 사랑한 백제(다산초당, 이병호, 2017)’가 있다. 책 세 권의 느낌이 비슷하지만 이내옥의 책에서 가장 깊은 울림을 받았다. 역사와 미술을 사랑하는 한 사람의 깊이, 우리 것의 아름다움이 짧은 글 하나에도 느껴져 이런 사람들이 지키는 박물관이라면 믿을만하겠다 싶은 마음도 들었다.

교토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읽었더라면 좀 더 깊은 감흥을 느낄 수 있었겠지만 다녀와서 읽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여행하는 동안은 그 순간에 집중하느라 이내옥의 글을 깊이 공감하며 읽지 못했을 것이다. 문장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느끼는 기분, 이 순간이 좋다. 우리 것을 지키는 사람의 소중한 마음과 미래의 내 모습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던 울림이 있는 책이었다.


나는 무엇 하나에 열정을 다해 본 적이 있던가? 먼 훗날 내가 생각하고 추구하는 것들을 쌓아 어떠한 지위나 위치에 올랐을 때, 나보다 어린 세대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춰질까?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회한만 남고, 앞으로 다가올 날을 바라보면 두려움만 가득한 것이 우리의 삶이다. (6)

무담시, ‘괜히’ 또는 ‘아무런 이유 없이’라는 뜻.
다산과 교유하던 백련사 혜장 스님이 마흔의 나이로 숨을 거둘 때, ‘무담시 무담시’를 되뇌며 유언 아닌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알고 난 이후부터 나의 뇌리에는 뜻하지 않을 때 이 무담시란 말이 괜히 떠오르곤 했다. 무담시, 무담시...... (29)

이렇게 소박하고 검소하며 집착 없는 고요함을 추구하는 일본 다도에서 배운 것도 없는 천한 조선 장인이 오랜 숙련과 무심한 마음으로 만든 결과물이 최고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비록 조선 장인들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수행은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61)


우리 모두는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고귀한 존재이다. 그렇기에 진정으로 가치와 품위를 가지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이를 생각하며, 흔적도 없이 사라진 조선의 아름다운 유풍을 그리워한다. (76)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자신의 느낌과 정서, 생각이다. 그런 점에서 결국 예술이란 인간적이고 인간을 지향한다. (157)

인생이란 뿌리도 꼭지도 없이 바람에 떠도는 티끌과 같다. 도연명의 말이니, 우리네 일생 오는 데도 없고 가는 데도 없이 이리저리 날리다가 떨어지는 곳에 하룻밤을 청하는 신세이다. (248)

일본 중세의 승려 요시다 겐코는 굶주리지 않고, 헐벗지 않고, 비바람 맞지 않고 한가롭게 사는 것이 인생의 즐거움이라고 했다. 여기에 병의 고통을 참기 어려우므로 약을 포함하여 이 네 가지가 부족함을 가난이라 하고, 네 가지가 부족하지 않음을 부유하다고 하며, 네 가지 이외의 것을 얻으려 함을 사치라고 했다. (250)

다치하라 마사아키, '겨울의 유산'
이 세상 모든 것은 물거품이요 그림자여라.
나, 오늘 이 육신을 벗고 텅 빈 무로 돌아가노라.
옛 부처의 집 앞에는 달이 밝은데,
다만 원적으로 돌아가지 못함을 한할뿐이로다.

우리는 자유 의지와 상관없이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이니, 우리 생의 본질은 능동적일 수 없으며 타락적이다. 그저 주어진 삶을 살아가다가 생명이 다하면 먼지로 돌아갈 뿐이다. (272)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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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21 / 예술] 소프트 파워에서 굿즈까지. 고동연. 다할미디어.

전후 미술사와 영화이론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국내외 아트 레지던시의 멘토 및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 고동연의 신간, ‘소프트파워에서 굿즈까지’는 동아시아 현대 미술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풍경을 그리고 있다. 중국, 일본, 우리나라 미술의 동향을 심도 있게 다루기에 미술 월간 잡지 특집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책은 총 6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일본의 로컬 미술, 일본식 대안공간, 중국의 실험예술, 중국의 오브제와 공간, 한국의 특별한 ‘종로’라는 공간, 한국의 2세대 대안공간 등 동아시아 현대미술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프트 파워’라는 단어가 정부 주도의 위로부터 아래로 퍼져가는 정책방향성을 상징한다면, ‘굿즈’라는 단어는 아래로부터 순수 예술계의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경제적인 자립의 문제가 대두된 역사적 배경을 가리킨다. (20)

저자는 1990년대 이후 현대미술의 정의할 수 없는 광범위함을 ‘소프트파워’와 ‘굿즈’로 표현하며, 여러 미술계 현상에 대해 ‘기사’처럼 설명하고 있다.


나는 자라(zara)에서 종종 옷을 산다. 내가 자라를 즐겨 찾는 이유는 다양한 스타일의 옷이 생산되기 때문이다. 브랜드마다 고유한 특징이 있기 마련인데 자라는 spa 브랜드로 다양한 스타일의 옷이 빠르게 생산되고 진열되기에 쇼핑을 하려고 마음먹을 때에는 자라 쇼핑을 즐긴다. 그렇게 다양한 옷을 입어보지만 정작 내가 선택하고 쇼핑한 옷의 스타일은 비슷하다. 나는 ‘내 옷’ 같은 것을 사 온다. 그래서 아무리 자라에 다양한 스타일의 옷이 있더라도 내가 선택한 옷은 비슷한 특징을 보인다.

이 책은 자라 매장에서 내 옷 같은 것을 선택하는 ‘나’ 같다. 책 한 권으로 현대 미술의 모든 것을 알 수 없지만, 저자 고동연이라는 사람의 관심사는 알 수 있었다. 내 옷장에서 나라는 사람의 개성을 느낄 수 있듯이, 이 책도 현대 미술계를 대하는 저자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따라서 저자만의 비판적 시각으로 동아시아 현대 미술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 설명한 점은 흥미로웠지만 이것은 저자 고동연의 시선일 뿐, 이것이 현대미술의 전부는 아니어서 전반적인 현대미술의 동향을 알고 싶었던 나의 호기심을 완전히 충족시켜주진 않았다. 그 점이 조금 아쉽다.

하지만 중국의 실험 예술, 중국이 어떻게 포스트모더니즘을 받아들이고 작가들이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점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알지 못했을 중국의 동향들을 알게 되어 유익했지만 그것은 단지 몇 가지 현상과 사건, 몇몇 작가들의 동향일 뿐 중국, 동아시아 전체를 알 수는 없었다.

일본 비평가 사와라기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예술과 상품에 대한 철학적이고 개념적인 차이로부터 유래한 것인지, 순수미술의 기반이 약한 비서구권 미술계에서 보다 실질적인 경제적, 사회적 필요에 의해 생성된 것인지, 아니면 일본과 한국에서 백화점이 서구와는 다른 독특한 복합문화공간으로서 역할을 한 것인지, 그 정확한 요인을 단정하기란 쉽지 않다. (116)

동아시아 현대미술에 대한 비평서는 결코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비평서가 나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좀 더 많은 미술비평가들의 책을 읽다 보면, 각자가 해석한 현대미술을 들여다보면 퍼즐 맞추듯 전체를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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