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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66 / 소설. 독일 고전] 수레바퀴 아래서. 헤르만 헤세. 이은경 옮김. 아이템 비즈. (2019)

헤르만 헤세의 저서 ‘데미안’을 두세 번 정도 읽다가 포기했던 적이 있다. ‘절망 독서’, ‘시 읽는 엄마’ 등의 몇몇 책에서 헤세의 시를 인용한 구절을 만난 적이 있지만, 고전은 어려울 것 같은 부담감으로 작가의 저서 한 권 전부를 읽을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우연한 기회로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게 되었다.

1892년 신학교에서 도망쳤다가 붙잡혀 처벌을 받고 우울증을 앓는 등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자전적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는 19세기 말 독일 교육체계를 배경으로 하여 학교 비판의 맥락에서 쓰인 교육소설이다. 기숙학교에서 벌어지는 일들, 청소년 자살 등의 사회문제를 담고 있어 당시 사회상을 엿볼 수 있고, 불안한 청소년기 학생들의 마음을 담은 성장 소설이기도 하다. 책의 제목에도 등장하는 ‘수레바퀴 아래~’가 나온 구절을 3번 정도 읽었다. 수레바퀴가 어떤 의미인지 강렬하게 와 닿진 않지만, 돌아가는 바퀴 아래로 깔리지 않게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로 안타까움과 답답함이 느껴졌다.

이 책에서 특히 좋았던 점은 7장으로 나뉜 각 장의 구분이 적절하다는 점이다. 읽기 학습하기에 딱 적당한 내용으로 구분되어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1장은 배경 설명과 신학교 시험을 치르고 온 주인공, 2장은 고향에서 즐거운 한때, 3장은 수도원 생활, 4장은 위기, 5장은 고향으로 돌아온 한스, 6장은 이성에 눈뜬 한스, 7장은 사회생활을 시작한 한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각 장마다 세월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헤세(작가)의 시선인지, 한스(주인공)의 관심인지, 둘 다인지 모르지만, 독자로서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음에도 머릿속에 그려지는 묘사가 특히 좋았다. 헤세의 글에서 느껴지듯 자연과 유유자적을 사랑하던 주인공 한스 기벤트는 정체성을 찾기 이전 주위 어른들의 기대와 강압에 눌려 아름다운 꽃을 미처 피우지 못하고 꺾여버렸지만, 저자인 헤르만 헤세는 위대한 문학가로 살아남아 다행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영혼을 더럽히는 것보다는 차라리 육체를 썩히는 게 더 낫다. 너는 장차 목사가 될 사람이야. 목사가 된다는 건 참으로 힘든 일이지. 평범한 사람들과는 달라야 한다. 아마 너는 틀림없이 훌륭한 목사가 될 거야. 너를 위해 기도 하마. (77)

주인공 한스를 향한 어른들의 강요와 억압적 시선은 21세기를 사는 성인인 내가 읽는 것만으로도 답답하다.

곱씹을 거리를 만들어주는 고전의 재미를 새삼 느낄 수 있었던 읽기 어렵지 않고 적당한 무게를 지닌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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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61 / 에세이] 밥 먹는 술집을 차렸습니다. 김광연글. 박승희 그림. 지콜론북. (2019)

지인 권유였나? SNS 팔로우 계정에서 추천하는 글을 봤던가? 어떤 경로로 알게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이 책은 을지로에서 ‘광장’을 운영하는 저자 김광연의 에세이다. 밥 먹는 술집 ’광장’을 준비하게 된 계기, 광장에서 만드는 음식 이야기나 사는 이야기 등의 에피소드가 담겨있다. 비슷한 느낌의 에세이로 속초 동아서점 책’ 당신에게 말을 건다(알마,2017).’가 오버랩된다.

에세이를 쓰는 사람들은 늘어났지만, 읽기 좋은 에세이는 많지 않다. 더구나 자기 자신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일을 하는 자영업자로서 이렇게 솔직한 에세이를 쓸 수 있는 저자의 용기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나 역시 이따금 무언가를 끄적이지만, 내가 드러나는 부분에서는 당당하지 못하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공간에서의 글쓰기지만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어떤 식으로 나의 존재를 금세 알아챌 수 있다는 공포와 불안감으로 희미하게 얼버무리거나 존재를 감추곤 하는데, 저자 김광연은 날것 그대로의 자신을 오롯이 드러낸다. 그래서 더 솔직하고 매력적인 공간으로 느껴진다. 마침 오늘 책을 다 읽었고, 내일 그 공간에 방문하기로 계획했다. 첫사랑을 다시 만나는 기분? 오랫동안 보고 싶고 갖고 싶던 무언가를 만나는 기분? 치킨 남방도 먹고 싶고, 꽁치 파스타도 먹고 싶고, 카레도 먹고 싶고. 책에서 받은 그 느낌 그대로 따듯하고 안전한 공간이길 바라본다.

앞머리는 무성하고 뒷머리가 없는 벌거벗은 몸에 날개가 달린 기회의 신, 카이로스가 떠올랐다. 늘 눈에 띌 준비가 된 카이로스는 기회를 노리고 있는 사람 앞에 무성한 앞머리로 다가간다. 기다렸던 기회를 낚아채기 쉽게 하기 위함이었으리라. 하지만 가까이 다가간 카이로스가 스쳐 지나가고 알아차린들 뒷머리는 민둥머리로 잡을 곳 없이 순식간에 사라진다고 한다. (294)

저자의 신중하면서 활기차고 곧은(?) 에너지가 내게 전해졌다. 멍~~함을 깨우고 정신 번쩍 오늘 이 순간에 집중하는 시간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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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60 / 경제경영, 경제사] 50대 사건으로 보는 돈의 역사. 홍춘욱. 로크미디어. (2019)

4월 24일 초판 1쇄 발행, 5월 3일 초판 10쇄 발행. 보통 초판이 2,000권이라면 초판이 나온 지 일주일 만에 20,000권을 찍어낸, 9월 현재 대체 몇 쇄나 더 찍어냈을지 궁금한 올해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아닐까 싶은 ‘50대 사건으로 보는 돈의 역사’.

저자 홍춘욱은 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경제학과를 박사과정으로 경영학 학위를 취득하였다. 1993년 한국금융연구원을 시작으로 27년째 이코노미스트 생활을 하고 있고, 특히 2016년 조선일보와 FNguaid가 선정한 ‘가장 신뢰받는 애널리스트’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미 10여 권의 책을 출간, 번역했고, 유튜브 채널 ‘홍춘욱의 경제강의 노트’를 운영 중이다. (책날개 참고)

나만 모르고 남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유명인이었나, 초판을 찍은 지 일주일 만에 10쇄를 찍어낸 이 책의 매력이 도대체 뭘까. 역사, 경제, 경영을 전공한 본인의 전공 지식을 통해 세계사 속 큰 사건들을 경제적 측면으로 바라본 이야기 돈의 흐름과 역사를 풀어냈다. 나폴레옹이 트라팔가 해전에서 왜 패배하고 영국이 승리하였는지부터, 1997년 우리나라의 외환위기까지 총 7부로 구성된 이 책은 흔하디흔한 교양서적으로 읽어내기엔 어려움이 크다. 덧셈 뺄셈에 대한 이해 없이 두 자릿수 곱셈을 대하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세계사에 대한 어느 정도의 배경지식이 있다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저자의 유튜브 채널에 책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추가되어 있으니, 나처럼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면 유튜브를 참고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즉흥적이고 충동적이며 멍때림을 즐기는 예술가형 사고를 지닌 내가 이 책을 즐겁게 읽어내기에 한계가 있었지만, 세계사와 경제를 알면 지금 이 세상을 깊이 이해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어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설마 나 빼고 모두가 쉽게, 흥미롭게 읽은 책은 아니길.

제목을 참 잘 지은 경제사 책.
유튜브 크리에이터의 홍보용 도구 같은 책.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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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59 / 인문. 교양심리학] 나는 초민감자입니다. 주디스 올로프. 최지원 옮김. 라이팅하우스. (2019)



유난히 민감한 나 때문에 ‘나는 왜 이럴까?’, ‘나만 왜 이럴까?’ 같은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예민하지 않은 척, 당당한 척, 괜찮은 척도 해보고, 심리 관련 책도 읽고, 상담도 명상이나 요가 같은 운동도 열심히 한다. 다양한 경험 중 좋았던 건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오롯이 혼자 무언가를 하는 시간이 나를 충전하고 있음을 알기에 항상 어느 정도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하려고 노력하고, 꾸준한 운동도 필수다.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로부터 ‘늘 바쁜 사람’이라는 취급을 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내 마음가짐 유지였기에 행복하게 살기 위해 나만의 고요한 시간을 확보하려 언제나 노력한다. 가장 쉽고 빠른 도움은 책을 읽는 것이다. -1년에 2~3권은 읽는다.- ‘우울한 나를~’ ‘여성 심리학~’ 과 같은 제목의 책을 꽤 많이 읽었다. 나의 관심사가 누적되어 알려지는 게 싫어 책을 구입하거나 도서관 대출 기록으로 남기진 않는다. 오프라인 서점이나 도서관 책장 근처에 앉아 읽는다. 그렇게 읽은 심리 관련 서적 중 최근 나를 가장 위로했던 책은 ‘센서티브(다산 3.0, 2017)이다. ‘예민해도 괜찮아.’라는 이야기를 내게 건네던 이 책은 2017년 베스트셀러로 많은 마음 여린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받았다. 그러고 나서 몇 권 더 읽었고, 올해 나의 마음을 가장 위로하는 책은 바로 이 책 ‘나는 초 민감 자입니다.’이다. 센서티브가 마음을 토닥이는 글이었다면, 이 책은 좀 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근거를 기반으로 한 분석으로 왜 내가 민감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자라났는지, 민감한 사람들의 유형에 대하여, 그리고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다.




저자 주디스 올로프(judith orloff)는 정신과 전문의이자 ucla의 임상교수이며 뉴욕타임스 선정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2004년 발표한 ‘포지티브 에너지’에서 타인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빼앗는 사람을 ‘에너지 뱀파이어’라고 최초로 명명하기도 했다. 자신도 초민감자라고 칭하는 올로프 박사는 정통 의학, 심리학, 영성, 객관적 치유와 에너지 의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통합해서 hsp와 초민감자를 전문적으로 진료한다. (책날개 참고)



‘예민’ 또는 ‘민감’이라는 한 단어로 퉁치는 감정선을 다양한 유형으로 구분한다. 초민감자는 신체적, 정서적, 직관적, 텔레파시, 예지적, 꿈, 식물, 지구, 음식, 성, 동물 초민감자 등 다양하게 분류되며 여러 유형 중 하나, 혹은 그 이상에 속할 수도 있다. 각 유형의 사람들은 좀 더 예민한 부분이 있으며, 과부하 되어 폭발하지 않기 위한 준비와 노력이 필요하다. 나를 인정하고 이해하고 방어하고 대비하여 내가 가진 성격적 특징을 강점으로 승화시키기 위한 다양한 대비책을 제시한다.



어릴 적 ‘은하철도 999’나 ‘2020 우주의 원더 키디’ 같은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무서워 눈을 질끈 감곤 했던 기억이 난다. '독수리 오 형제'를 보며 눈물을 흘렸고, '베르사유의 장미' 역시 마찬가지다. 당최 눈물이 나올 장면이 아닌데 눈물을 흘리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 감정이 북받치는 상황을 일부러 피했던 적도 있다. 애니메이션도 무섭고 슬픈데 영화나 드라마는 오죽했을까. 그런 약하고 작은 내 모습이 불편했는데, 내가 초민감자였기에 타인의 감정에 쉽게 물들어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걸 알게 되니까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된다. 유난스럽게 나만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던 내가 결코 유난스러운 게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한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는 것. 이런 나를 내가 이해해야 한다는 것. 책에 나온 모든 사례가 내 이야기였고, 마음이 힘이 들고 지칠 때마다 꺼내 읽고 싶은 책이다.





어린 시절에 정서적 혹은 신체적 학대받은 경험은 성인이 된 후 민감성에 영향을 준다. 우울증, 자기애적 성격 장애가 있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자상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보다 자연스럽게 발달하는 튼튼한 보호막이 손상됐을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성장한 아이들은 일반적으로 자기가 가족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느끼며, 민감성을 중시하지 않는 더 큰 세상에 가서도 자신을 투명 인간처럼 취급한다.(24)



다른 사람들처럼 스트레스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법을 학습하지 못한다. 감각에 과부하가 걸리는 임계점이 지극히 낮기 때문에 성난 사람이나, 소음, 밝은 빛처럼 유해한 자극에 쉽게 동요된다.(25)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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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56/ 소설. 호러소설] 한밤중에 나 홀로. 전건우. 북오션. (2019)

무덥고 무기력한 여름밤엔 아무래도 호러소설이 제격이다. 2년 전 교토를 배경으로 쓰여진 야행(예담, 2017)을 읽으며 보낸 여름밤이 좋아서 올해 여름도 일부러 공포 소설을 찾았다. ‘한밤중에 나 홀로’는 냉면(안전가옥, 2019)에서 알게 된 전건우 작가의 호러 단편소설 신작이다. 호러소설은 여름과 궁합이 좋다. 긴 것보단 단편이 좋고, 직접적인 것보단 엉뚱하고 열린 결말처럼 유연한 게 좋다. 이미 가을이 성큼 다가와 있지만, 전작에 대한 믿음(?)으로 시작한 도전은 꽤 괜찮았다.

소설 자체를 즐기지 않고, 장르 소설도 익숙하지 않지만 몇 권 읽다 보니 나름의 재미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특히 이 책은 과격한 호러가 아니어서 나 같은 초보자가 읽기에 부담이 없었다. 써야 하는 독서 노트에 밀려 읽은 지 한참 지난 후의 기록이라 전반적인 내용이 가물가물하지만, 한동안 가방 속엔 늘 이 책이 있었다. 밤에 읽긴 무서워서 출퇴근길 이동 중에 한참 동안 함께 했다. 하루에 한 편씩 약 일주일 동안 이동길이 덥지 않았다.

냉면(안전가옥, 2019) 덕분에 인스타 인친이된 저자는 밝고 가벼운 무게의 로맨틱 소설 같은 걸 쓸 것 같은 꽤 편안한 인상이던데 이런 장르 소설 작가라니. 역시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평가해선 안 되는 거다. 내겐 일탈 같은 장르 문학, 저자의 다음 작품도 궁금하다. 내년 여름을 기약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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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58 / 사회과학. 여성문화] 남자아이가 아니라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박한아. 21세기북스. (2019)

한때 남자아이들만 다니는 미술학원이 이슈가 되던 시절이 있었다. 남자 선생님이 남자 어린이가 원하는 방식으로 가르친다는 그 학원은 만들기를 주로 하는 만들기 전문 미술학원이다. 관계자가 아니라 정해진 커리큘럼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즉흥적이고 돌발적인 만들기부터 전문적인 재료를 사용하여 체계적인 계획이 필요한 만들기까지 온갖 만들기를 즐길 수 있는 그 학원의 단점은 다른 미술학원보다 조금 더 비싸다는 점이다. 지점이 많지 않아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아쉬움도 있다. 아이를 키워본 적이 없지만, 미술을 전공한 어른으로서 ‘남자아이를 남자 선생님이 남자만의 방식’으로 가르친다는 게 교육철학이 될 수 있을까 궁금했다. 만들기를 좋아하는 여자아이는 그 미술학원에 갈 수 없는 건가? 만들기를 잘하는 여성 교육자는 그 학원의 교사가 될 수 없는 건가? ‘남성 전문’이라는 타이틀이 교육자 개인의 취향일 수는 있지만, 미술교육 프랜차이즈가 추구하는 브랜드의 가치가 될 수 있을까? 그만큼 깊이 있는 연구일까? 의심스러웠다. 한때 꽤 인기가 있었고 지금도 그 인기가 여전한지 잘 모르겠지만, 아이를 키워본 적이 없으니 할 말은 없다.

조카를 통해 간접 경험을 해 본 적은 있으니 아이 한 명을 키우는 데 얼마나 힘이 드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오롯이 자기 자신으로서 사고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되기까지 부모를 포함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과 상황의 영향을 받아야 하는지, 얼마나 많은 변수가 있는지를 생각하면 아찔하다. 또 그런 과정을 통해 내가 성장해온 걸 생각하면 모든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한 아이의 부모로서 어떤 생각과 무게를 지니고 아이를 키워야 할지를 생각하면 부모 되기가 무섭고 두렵기만 하다.

‘남자아이가 아니라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21세기북스, 2019)’는 그런 내 생각에 맞장구치는 책이다. 성별의 구분보다 먼저 중요한 것은 그 아이답게 키우는 것일 테고 아이를 아이답게 키우려면 먼저 부모가 자신다워야 가능할 텐데,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이야기하는 저자 박한아는 본인의 가치관 안에서 시도 가능한 것들을 아이에게 적용하고 나누고 있다. 아이를 키우며 느낀 점을 기록한 에세이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워낙 글을 잘 쓰는 사람의 글이라 아이를 키우지 않는 내가 읽기에도 흥미롭다. 아이를 사랑하는 엄마의 마음이 가득 담겨 있어서 읽는 내내 입가에 웃음이 지어졌다. 남아 전문 미술학원에 대한 생각이 담긴 부분(98)은 꽤 통쾌했다.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저자의 생각이 육아의 정석이나 정답이 아닐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유별나게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의 아이 바당이는 꽤 괜찮은 아이로 자랄 것 같다. 고민하고 흔들리고 연구하는 엄마 박한아의 아이이니까. 수년 후 사춘기를 보내고 성인을 앞둔 바당이의 모습이 궁금하다. 아이가 변한 만큼 엄마도 변해있겠지. 아니, 엄마가 성장한 만큼 아이도 성장하는 건가. 육아를 마친 후의 이야기도 궁금하다. 아니, 육아 말고 저자의 다른 글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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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57 / 인문학. 교양인문학] 산의 마음을 배우다. 권부귀. 바이북스. (2019)

몸과 마음이 지쳐 무기력에 빠져있던 작년 겨울, 우연히 다녀온 아차산에서 서울 둘레길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 아차산 등산로 초입에 빨간 우체통이 하나 있는데, 서울 둘레길을 다녀갔음을 인증하는 스탬프 찍는 공간이었다. 서울시를 둘러싸고 있는 산들을 잇는 둘레길을 돌며 정해진 위치에서 인증 도장을 찍으면 완주를 인증할 수 있는 간단하고 단순한 방법이 썩 부담스럽지 않아서 바로 다음 주부터 둘레길을 걷기 시작했다. 아차산 다음 구간인 광나루역에서 시계 방향으로 출발하여 한강을 건넜다. 체력이 좋지 않던 시기라 가이드북이 안내하는 하루 코스 중 1/3 정도만 겨우 걸을 수 있었다. 하루 동안 걸을 수 있는 거리는 3~5㎞ 정도, 시간은 3~4시간, 등산이라고 하기엔 다소 가벼운 능선을 따라 걷는 서울 둘레길은 비교적 즐거웠다. 힘들지 않게 서울 외곽 동네를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주말마다 둘레길을 돌며 가장 좋았던 건 시간과 계절의 변화를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는 점이다. 2018년 2월부터 시작된 여정이라 처음엔 칼바람에 앙상한 나무숲을 지났다.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 건조한 겨울나무에 푸릇푸릇한 새싹이 돋는 생명력, 구름과 바람과 해의 변화무쌍함, 푸르른 잎이 주는 그늘 등 지나가는 동네마다, 나무마다 변화하거나 멈춰있거나 내게 주는 무한한 에너지에 기운과 체력을 어느 정도 끌어올릴 수 있었다. 일정에 밀려 완주는 하지 못했고 20% 정도 남겨두었지만, 둘레길을 돌던 그 시간은 내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암 환자가 1,000회 등반으로 터득한 치유의 길’이라는 부제가 흥미로워 책장을 펼쳤다. 나 역시 산에서 받은 에너지를 알기에 산이 가진 무엇이 암까지 치유할 수 있을까 호기심이 생겼다. 권부귀라는 한 여성의 삶이 담긴 이 책은 표면적으로는 산을 통한 치유기이지만, 스승님 또는 부모님 세대의 여성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앞으로 우리는 어느 방향을 향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방향성을 제시해 주는 책이다. 용감하고 건강한 권부귀 님의 글을 읽으면서 김형석 할배의 백 년을 살아보니(덴스토리, 2016)도 생각나고, 돌아가신 할머니도 생각나고, 엄마도 생각난다. 일과 삶의 기준을 정하고,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 도전하고 노력하는 나의 어머니의 모습이 그려진다. ‘산에 가면 암이 회복된다.’ 같은 내용이 아니어서 더욱더 좋았던 이 책. 나의 엄마나 할머니, 할아버지의 삶이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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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54 / 에세이] 자기만의 침묵. 엘링 카게. 김민수 옮김. 민음사. (2019)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선 침묵을 지켜야 한다.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122)





'자기만의 침묵'은 극지 탐험가 엘링 카게의 침묵 체험기이다. 쫓기고 눈치 보고, 견제하느라 더욱 열심히 일에 매진하는 요즘의 내게 꼭 필요한 것이 바로 나만의 고요한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불쑥 쳐들어오는 외부의 횡포(?)에 맞설만한 나만의 무기를 챙기는 것. 적당한 거리와 방패, 여유로운 마음가짐이라는 무기를 확보해야 한다. 침입 따위 불편하지 않은 보통 사람이라면 그따위는 필요 없겠지만, 부쩍 뾰족하고 예민한 요즘의 나에게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는 것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은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다.



무더운 여름날에 찾아온 짜증과 화와 넘치는 업무에서 벗어나 나를 찾아야 할 이유를 되새김하게 해준 이 책. 작년 봄 읽었던 게으름의 즐거움(호미출판사, 2003)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골똘히 생각하기를 즐기는 엘링 카게의 에세이는 두서없고, 정돈된 느낌도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내게 ‘나만의 방식으로의 침묵’이 얼마나 필요한지 다시 한번 느끼게 한 책이라 올여름 읽은 책 중 가장 의미 있는 책이 될 것 같다.





두려움은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는 것에 대한 것이다. 그러한 두려움을 회피하려 할 때마다 나한테서 비겁한 악취가 확 풍긴다. (21)

나는 길이 바뀔 때마다 자연도 변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그렇지 않았다. 내 주변 환경은 변함 없이 그대로였다. 변한 것은 나였다. (23)

시간은 과거와 미래로 대비되지 않는다. 시간은 지나가는 경험에 더 가깝거나, 키에르케고르가 말했듯이 "소멸된 연속"에 더 가깝다. 시간은 정지되어 있다. (131)

당신이 경험하는 침묵은 다른 사람이 경험하는 침묵과 다르다는 것을 명심하라.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침묵이 있다. (137)

소리는 움직이고 있는 공기이다. (...) 당신의 뇌 활동은 음악이 이곳과 저곳을 계속 오갈 수 있는 중간 지대에 있을 때 귀 기울이고 싶어 한다. 바로 그때 당신의 뇌가 외부로 확장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146)

내가 침묵에 잠기는 이유는 어쩌면 하루도 안 빠지고 매일 무언가로부터 분리되어 있다는 느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 넘어설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은데, 예술은 내게 그러한 것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좀 더 솔직해지고,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더 몰두하면서 살고, 세상을 차단한다. 그 외에 도움이 될 만한 의견을 조금 보탠다면 나는 장거리 스키 여행으로 기진맥진할 때, 혹은 정말 맛있는 무언가를 먹거나 마실 때 느끼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그럴 때 나는 더 이상 내가 하고 있는 일에서 분리되지 않는다. (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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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2019-53 / 사회과학] 주목하지 않을 권리. 팀 우. 안진환 옮김. 알키. (2019)

우리 삶의 경험은 생이 끝나는 시점까지 선택에 의해 그랬든 무심히 그랬든 주의를 기울였던 모든 것과 동등하다. (514)

무의식적이고 습관적인 패턴으로 나의 시간을 갉아먹는 SNS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몇 개의 앱을 깔았다가 지웠다가를 반복하는 중이다. 업무상 필요한 순간도 있기 때문에 업무만 마무리하고 다시 하던 일로 돌아오면 되는데, 나의 무의식은 그곳에 머무르기를 원한다. 업무 때문에 시작한 것이 10분이 흐르고 30분이 흐르고, 한 두시간이 훌쩍 흘러간다. 돌아서면 의미 없는 인터넷 서핑이나 SNS 사람들 일상 구경, 유튜브 등을 이성적으로 그만두고 싶어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은 책이 ‘주목하지 않을 권리’(알키, 2019)이다. 시공사의 자회사(?)쯤으로 느껴지는 알키출판사의 신간. 시공사는 왠지 모를 이미지(!) 덕분에 읽기를 꺼리곤 했는데, 역시 대형 출판사여서인지 책이 야무지다. 내가 읽은 비슷한 느낌의 책으로 몇 년 전 읽은 다산초당의 혐오사회(다산초당, 2017)과 관점(와이즈베리, 2018) 등이 있다.

지금의 나를 못살게 구는 SNS를 끊어내고 싶어 읽기 시작한 이 책은 생각보다 상당한 사회과학적 지식을 담고 있다. 수 세기 전, 신문이나 방송 속 광고가 생겨나기 시작할 때부터 누군가를 ‘주목’하기 위한 목적을 담은 행위와 사건들이 일어났다. 그 목적은 단순한 관심일 수도, 금전적인 목적에 의해 생겨났을 수도 있지만, 오늘날 내게 닥친, 단편적인 SNS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 읽으며 충격으로 다가왔다.

우리의 현 상황이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한 세기 전에는 거의 존재하지도 않았던 어떤 산업이 극적이고 인상적으로 부흥하면서 오늘의 결과를 낳은 것이다. “주의력 사업”이 바로 그 산업이다. (...) 각각의 거래가 윈윈으로 보인다는 전제하에 그것들 모두는 엄청난 총량으로 인간의 살아가는 방식에 더욱 모호하면서도 심오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13)

뉴스에서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같은 방송으로, 컴퓨터에서 핸드폰으로 점점 사람들의 삶 속에 정교히 침투하는 이것들. 구글, 페이스북, 유튜브 등의 실제 목적은 우리 삶을 편리하기 위함이 아니라, ‘광고주로부터 많은 광고를 받아 수익을 창출하는 것’인데, 나는 아주 쉽게 그들의 상술에 빠져 생각과 시간을 소비하고 있었다. ‘주의력 사업가’라는 용어는 다소 생소하지만, 아무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내 삶 여러 부분을 장악하고 있는 존재의 무서움을 느꼈다. 읽기 쉽지는 않지만, 지금 우리가 어디서 무엇을 향해 살아가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일깨우게 하는 책을 읽을 수 있어 의미 있었다.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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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2019-51 / 인문학. 교양심리학] 뻘짓은 나만 하는 줄 알았어. 피터 홀린스. 서종민 옮김. 명진서가. (2019)

‘뻘짓’이라는 단어가 지닌 뉘앙스 덕분에 가벼운 공감 에세이쯤으로 생각하고 책장을 넘겼지만, 비교적 알찬 심리학적인 뒷받침이 있다. 우리의 모든 행동에 연결된 ‘자연스럽게 나타나지만 약간 바보스러워 후회하는 모든 행동’을 뻘짓이라는 용어로 다양한 상황과 예를 들어 설명한다. 가령 ‘뻘짓의 범위는 무한대’(9)이며, ‘기억에 관한 한 자신감은 결코 정확성을 보증하지 않는다.’(31) 처럼 너무도 당연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현상 들을 사례로 들며 설명한다.

더닝 크루거 효과(40)도 마찬가지이다. 더닝 크루거 효과란 특정 부문에서 평균 이하의 능력치를 가진 사람이 자기가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르는 탓에 스스로를 평균 이상이라고 평가하는 현상을 말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본능과 직관으로 아무 이야기나 지껄였던 지난 내 모습이 떠올랐고, 비슷한 사건들도 기억났다. 어쩌면 생활 속 상당히 많은 순간 나타나는 ‘뻘짓’은 나만이 가진 치부라기보다는, 우리 모두가 가진 자연스러운 현상 같이 느껴진다.

일반적으로 가장 먼저 말을 꺼낸 사람, 혹은 현재 상태를 긍정하거나 부정하는 주장을 내놓은 사람이 바로 자신의 말을 증명해야 하는 사람이다. 질문을 던진 사람에게 그 질문의 진실성을 입증하라고 요구해서는 안 된다. (90)

우리의 뇌는 가장 한정된 정보를 토대로 곧장 결론 내리기를 좋아하며, 한번 결정을 내린 뒤 돌이키는 일은 거의 없다. (181)

저자 피터 홀린스는 최근 SNS 피드에서 종종 보게 되는 베스트셀러 '혼자 있고 싶은데 외로운 건 싫어(the science of introverts)'의 저자이기도 하다. 영어 제목에 비해 한국어판 제목이 가벼워 보이지만, 덕분에 대중적 인기를 취하는 것 같기도 하다.

뇌 방귀에 맞서려면 무엇보다도 까다로운 일 한 가지를 해내야 한다. '생각'에 대하여 '생각' 해야 하기 때문이다. (225)

피터 홀린스는 꽤 다양한 뻘짓의 사례를 제시하면서 그래도 괜찮아~라며 우리를 위로한다. 나만 그러는 게 아니라 모두 가끔, 이따금 저지르곤 하는 실수라는 것. 그래서 너무 자책하지도 죄책감을 느끼지도 말라고 토닥인다. 가벼워 보이지만, 절대 가볍지 않고, 심리학의 무거움을 덜어낸 재미있는 심리학책을 원한다면 추천한다.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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