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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4/에세이] 책 대 담배. 조지 오웰. 강문순 옮김. 민음사. (2020)

3년 전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를 읽다가 포기한 적이 있다. 난해했고, 재미없었다. 일 년에 한두 번씩 고전이나 스테디셀러 문학 작품을 도전하곤 하지만 쉽지가 않다. 읽기 어려운 그때마다 사정이 생기기 때문이다.

코로나로부터 정상적인 업무 생활을 하지 못하게 된 지 8주째이다. 처음엔 두려웠고, 점점 줄어드는 통장 잔고로 스트레스받았지만, 지금은 견딜만하다. 돈만 없을 뿐 내 생활 리듬은 그럭저럭 적응되어 괜찮다. 이 시기에 우연히 ‘책 대 담배’ 신간 소식을 접했다. 제목부터 끌림이 느껴졌다. 몇 번을 도전했다가 포기한 경험이 있는 조지 오웰의 에세이라니, 시간적 여유가 있는 이 시기에 도전해볼 만한 가치를 느껴 동네 서점에 입고를 부탁해서 사 왔다.

‘동물농장’이나 ‘1984’등 조지 오웰이 쓴 몇 가지 소설이 크게 알려져 소설가로 불리지만, 사실 에세이를 더 많이 남겼다고 한다. 그중 9가지의 이야기를 엮은 ‘책 대 담배’는 얼마 전 읽은 이승우의 ‘소설을 살다(민음사, 2019)’와 비슷한 결을 느낄 수 있었다. 이승우는 우리나라 사람이라 감정의 결을 이해하며 읽을 수 있었지만, 조지 오웰은 남의 나라 사람이라 종잡을 수 없고 독특하다고 느꼈다.

저자는 인도에서 태어났지만,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며 살았고 2차 세계 대전을 겪으며 ‘동물 농장’을 발표했다. 아내를 잃고, 지병이었던 폐결핵이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했다. 병상에서도 집필활동을 이어가며 ‘1984’를 발표했고, 47세에 생을 마감했다.’ (책 소개 참고)

‘책 대 담배’는 이 책에 수록된 첫 번째 에세이의 제목이다. 책과 담배를 비유하는 설명이 일반인인 나의 생각과도 비슷해서 피식거리며 읽었다. ‘어느 서평가의 고백’은 서평단에 속해 책을 읽는 사람으로서 찔림과 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작가로서 책과 서평, 글 쓰는 행위, 책방 등 책과 관련된 생각을 엿볼 수 있어 좋았다. 글을 통해 느끼는 저자는 매력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보통 요정도 느낌과 무게를 지닌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보는 편인데 석 달째 도서관이 휴관 중이라 보고 싶은 것은 사게 된다. 다시 읽게 되진 않을 것 같은데, 여러 상황이 아쉽기만 하다. 어서 도서관에 가고 싶다.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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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고 또 읽기/인문2020. 3. 29. 21:57

[2020-12/인문학, 글쓰기] 소설을 살다. 이승우. 마음산책. (2019)

왜 나는 내 고향이 떳떳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내가 떳떳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떳떳하지 않았을까. 아, 나는 죄를 지었다. 존재의 기반을 폐하고자 하는 나의 낡고 오만한 자의식은 시간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시간이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고향과의 거리가 반대로 좁혀지는 것을 느낀다. 나는 조금씩 조금씩 나의 문학이 고향을 향해 나아가는 낌새를 챈다. 고향이 어찌 한낱 산천이겠는가? 고향은, 말하자면 위대한 서사의 공간이다. 나무 나무마다에 기억이 잠자고 있고, 길모퉁이마다에 이야기가 숨 쉬고 있다. 고향이 어찌 한낱 자연이겠는가? 고향은 기억의 근원인 것을, 존재의 밭인 것을. 문학이 그것을 어떻게 외면하겠는가. (29)

자유가 사랑으로 행해지고 사랑이 자유로 행해져서, 서로가 서로 속으로 깃들면서 행해질 수만 있다면야 사랑이고 자유고 굳이 나눠 따질 일이 없겠지만, 이 섬에서 일어난 일들로 해서는, 자유라는 것 속에 사랑이 깃들기는 어려웠어도 사랑으로 행하는 길에 자유는 함께 행해질 수가 있다는 조짐을 보였거든. -이청준, ‘당신들의 천국’, 문학과 지성사, 1976 (40)

모든 소설은 자전적이다. 그리고 모든 자전적인 소설들은 가면을 쓰고 있다. 물론 그 가면은 춤을 추기 위한 가면이다. 춤을 추기 위해서 가면을 쓴다. 가면을 벗으라는 요구는 따라서 부당하다. 춤을 끝낼 때가 아니고는 가면을 벗지 않는 법이다. 나는 내 소설의 마지막에 이렇게 써두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의 글쓰기는 감춰진 것의 드러내기이다. 그 드러내기는 그러나 감추기보다 더 교묘하다. 그것은 전략적인 드러냄이다. 말을 바꾸면 그는 감추기 위해서 드러낸다. - 이승우, ‘생의 이면’, 문이당, 1995 (84)

여러 가지 생각으로 머리가 산만하고 상상력이 동굴처럼 캄캄해질 때면 물을 보러 간다. 강변 둑을 걷거나 강이 잘 내려다보이는 커피 집에 앉아 통유리를 통해 물을 바라보곤 한다. 물은 그냥 바라보기만 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만지거나 그 안으로 들어가면 금방 형체를 무너뜨려버린다. 그것은 물이 간섭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곳은 구상의 공간이 아니다. 자연은 생각 자체를 지워 없앰으로써 자연 안에 들어온 자를 강복한다. 강물 속에 문학을 담그고 나는 내 문학에게 세례를 베푼다. 물속에 잠김으로써 옛 문학은 죽고 새 문학이 태어나리라.....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세례의 일회성을 믿지 못하는 엉터리 사제다. 세계는 거듭거듭 끝없건만 문학은 낡은 채로 그냥 있다. (95)

저자 이승우는 1959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서울신학대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에서 공부했다. 1981년 ‘에리직톤의 초상’으로 <한국문학> 신인상에 당선되어 작가로서 등단했다. 여러 소설, 산문집을 내었다.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 현대문학상, 동서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다수의 작품이 독일어, 프랑스어, 일본어 등으로 번역되었다. 결혼했고 남양주에 산 적이 있으며 현재는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책날개 참고)

‘맛의 기억’이라는 제목의 단행본, 2019서울국제도서전의 기념품 같은 책 속의 짧은 글에 반해 연초부터 몇 권을 연달아 읽고 있다. 처절하게 사랑할 줄 아는 젊은이인 줄 알았는데 부모님뻘 아저씨였다. ‘소설을 살다’는 소설가로 살아온 작가의 일상과 소설에 관한 생각을 담은 산문집인데 이 또한 소설 같다. 단편이거나 연작처럼 느껴진다. 3월 초에 읽었는데 리뷰를 빨리 쓰고 싶지가 않았다. 이 책을 빨리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다.

멋쟁이 소설가 이승우님의 새 책을 또 읽고 싶다. 나 같은 보통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이런 글을 쓸 수 없겠지. 전부를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이 책을 읽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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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5/에세이] 마흔의 서재. 장석주. 프시케의 숲. (2020)


<마흔의 서재>는 물안개 자욱한 새벽 마당을 가로질러 서재로 나가 써 내려간 그 시절의 조촐한 마음을 담은 책이다. 그때 찾아 읽은 책과 나를 품었던 서재는 나의 피난처이자 은신처였다. 갈매나무 한 그루 품지 못한 채 마흔에 불시착한 이들에게 나침반 같은 책이기를 바랐다. 살아온 날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다가올 날의 꿈을 기획하는 이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랐다. 미망과 의혹을 뚫고 앞으로 나아가기. 깨어 있을 땐 숨결을 가지런하게 하고 밤에는 작은 꿈들을 꾸며 고요하게 살기. (7)-작가 서문 중에서


2012년 한빛비즈에서 출간한 동명의 책 ‘마흔의 서재’가 출판 계약의 법적 시한을 다 채운 2020년 1월 프시케의 숲 출판사에서 다시 출간되었다. 저자 장석주가 마흔이던 시절 읽고 쓰고 느낀 것들을 엮은 이 책은 어떠한 울림을 주었길래 8년 만에 또다시 나오게 되었을까. 출간된 지 이제 한 달이 지났을 뿐인데 벌써 베스트셀러에 속해있다.


‘마흔의 서재’는 장석주가 마흔을 맞이하며 읽은 책을 소개하고 본인의 생각을 덧붙이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책 속 소개되는 저자가 읽어낸 수많은 훌륭한 책 보다 저자의 생각에 더 공감하고 감동받았다.

-목차-

제2장 삶의 갈림길마다 책이 있다.
제3장 이전과는 다른 생이 기다린다.
제4장 넓어지지 말고, 깊어지는 삶을


성인으로 불리는 나이가 되면 좋은 스승님을 만나기가 어렵다. 물론 학창 시절에도 좋은 스승님 만나기는 하늘에 별따기지만, 교육기관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면 더하다. 생계를 살다 보면 그저 살아가기에도 급급하고, 점점 여유가 없어지는데 마흔이 아마 그 중턱쯔음 되나 보다. 열심히 일하며 성실하게 살아왔는데 이룬 건 없고, 돈을 좇으며 살아온 건 아니니까 적은 게 당연한데 남과 비교하게 되고, 방향을 잃으니 더욱 혼란스러운 시기가 바로 마흔인가 보다. 나의 마흔은 남들과는 다를 줄 알았는데. 무엇을 위해 이토록 열심히 살아왔나 허무해진다. 뭐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으로 더욱 열심히 살아보지만, 그동안 마음먹은 대로 살아왔던 건 내 인생의 축복이었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무튼 마흔이라는 새로운 성장통을 맞이하게 되어 힘겨운 사람들에게 나침반 같은 스승님이 되어줄 책이다.


저자는 마흔 시절에 이 책을 쓸 만큼 단단하고 야무진 사람인데 나의 마흔은 여전히 아직도 어설프다. 마흔쯤이 되면 남들처럼 어른처럼 살 줄 알았는데 나의 마흔은 그렇지 못하다. 얄궂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덕분에 업무가 휘청거려 책에 집중하기가 어려웠지만, 다시금 정신을 붙잡고 나아가야겠다.

——

자발적으로 선택한 고독은 일상의 분주함에서 벗어나 “심리적 피난처”를 찾는 일이다. 대개 작가나 예술가들이 창작을 위해 스스로 고립의 환경을 찾아내 고독을 추구한다. 이때 고독은 “위안과 새로운 활력, 내적 평온”이라는 선물을 준다. 명상, 휴식, 기도와 같은 활동도 고독을 동반한다. 이때 고독은 일상의 번잡함에 매여 지친 영혼을 달래고 내적인 여유와 평화를 가져다준다. (74)

대부분의 갈매기들은 비상의 가장 단순한 사실-즉 먹이를 찾아 해안을 떠났다 다시 돌아오는 방법 이상의 것을 배우려고 마음 쓰지 않는다. 대부분의 갈매기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나는 것이 아니라 먹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갈매기에게 중요한 것은 먹는 것이 아니라 나는 것이었다. 어떤 것보다 조나단 리빙스턴은 나는 것을 사랑했다. -리처드 바크, <갈매기의 꿈>(129)

비가 내리는 풍경에 무심한 눈길을 주고 있는 이 순간, 그 순간들이 바로 삶이라는 꽃이 피어 있는 순간이다. ‘나’란 존재는 바로 이 순간의 순수의식 그 자체이다. 이 순간밖에 없는 삶은 없다. 산다는 것은 바로 이 순간에 온전히 집중해야 하는 일이다. (178)

나는 삶을 소유할 수 없다. 삶 그 자체가 바로 나이고 나일 것이기 때문이다. (180)


——
장석주와 연관된 책을 5권이나 읽었다. 옛 기록을 찾아보니 내가 만난 장석주의 책은 모두 좋았다. ‘마흔’이라는 제목에 끌려 손이 간 줄 알았는데 역시 장석주의 글이어서 더욱 마음이 기울었나 보다.

1. 은유의 힘. 장석주. 다산책방. (2017)
2. 내 아침 인사 대신 읽어보오. 장석주. 박연준. 난다 출판사.(2018)
3. 게으름의 즐거움. 피에르 쌍소 외 지음. 함유선 옮김. 호미 출판사. (2003)
이토록 멋진 문장이라면. 장석주 쓰고 엮음. 추수밭 출판사. (2015)
5. 정원으로 가는 길. 질 클레망. 이재형 옮김. 홍시 출판사. (2012)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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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19. 12. 29. 14:26

[2019-75 / 에세이] 소설가의 일. 김연수. 문학동네. (2014)

소설가 김연수에 대하여 알고 있지만 읽은 책은 에세이 한 권이 전부이다. ‘지지 않는다는 말(마음의 숲, 2012)’을 읽으며 한국인 하루키처럼 느껴졌지만 하루키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으므로 김연수의 소설도 읽고 싶단 생각을 하지 않았다. 독서 모임에서 함께 읽는 도서로 선정되어 별 기대 없이 읽어낸 이 책은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김영사, 2002)’도 생각나고, 예전엔 까칠한 연예인 같았지만 이제는 옆집 아저씨 수더분하고 푸근하게 느껴지는 성시경도 생각났다. 김연수 아재의 수다스러움, 유쾌함 같은 게 느껴져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소설가의 삶이 궁금하지도 않았고 소설을 쓰고 싶은 마음도 없지만, 책을 읽으면서 작가와 함께 대화를 나누고 싶고 친해지고 싶고 글을 쓰고 싶어졌다. 할 말 많지만, 내 글을 쓰고 싶어졌으니까 아껴야겠다. 연륜과 글발, 내공이 전해지는 소설가의 에세이. 역시 글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나도 계속 쓸 것이다.)
오랜만에 꽤 많은 발췌를 남겼다. 다 기억할 수 없으니 기록을 열심히 해야겠다. 김연수 작가님처럼 잘 쓸 수 없을 테니 자꾸 자주 오래 궁둥이를 붙여야겠다.


훌륭한 소설가가 되려면 원숭이보다 지혜로워서는 안 된다. (39)

무기력은 현대인의 기본적 소양이다. (53)

이 삶이 멋진 이야기가 되려면 우리는 무기력에 젖은 세상에 맞서 그렇지 않다고 말해야만 한다. 불안을 떠안고 타자를 견디고 실패를 감수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지금 초고를 쓰기 위해 책상에 앉은 소설가에게 필요한 말은 더 많은 실패를 경험하자는 것이다. (54)

소설은 허구이지만, 소설에 푹 빠진 독자가 느끼는 감정은 허구가 아니다. 그게 다 핍진한 문장이 받쳐주기 때문이다. 어떻게 캐릭터를 만들고 플롯을 짜는가가 모두 이 핍진성에 기초한다. 여기까지가 이해됐으면 이제 소설가의 일은 서론이 끝난 셈이다. (84)

서사적으로 말해서 우리는 인생을 두 번 산다. 처음에는 그냥 닥치는 대로 살고, 그다음에 결말에 맞춰서 두 번의 플롯 포인트를 찾아내 이야기를 3막 구조로 재배치하는 식으로 한번 더 산다. (91)

흔한 인생을 살아가더라도 흔치 않은 사람이 되자. 미문을 쓰겠다면 먼저 미문의 인생을 살자. (174)

그렇지만 삶이 변하기 때문에 친구들과 헤어질 수밖에 없어요. 우리가 삶이 변하고 감정이 변하면 사랑했던 사람과도 헤어지잖아요. 같이 갈 수 없는 연인도 있고 친구도 있고 독자들도 있고요. 그 대신 다른 사랑과 다른 우정이 시작되는 거잖아요? 예술가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인정과 사랑에 얽매이면 안 되는 거죠. (201)

30초 안에 소설을 잘 쓰는 법을 가르쳐드리죠. 봄에 대해서 쓰고 싶다면, 이번 봄에 어떤 생각을 했는지 쓰지 말고, 무엇을 보고 듣고 맛보고 느꼈는지를 쓰세요. 사랑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쓰지 마시고, 연인과 함께 걸었던 길, 먹었던 음식, 봤던 영화에 대해서 아주 세세하게 쓰세요. 다시 한번 더 걷고, 먹고, 보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은 언어로는 직접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우리가 언어로 전달할 수 있는 건 오직 감각적인 것들뿐이에요. 이 사실이 이해된다면, 앞으로 봄이 되면 무조건 시간을 내어 좋아하는 사람과 특정한 꽃을 보러 다니고, 잊지 못할 음식을 먹고, 그날의 날씨와 눈에 띈 일들을 일기장에 적어놓으세요. 우리 인생은 그런 것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그렇다면 소설도 마찬가지예요. 이상 강의 끝. (218)


내게 노래는 추억 저장고와 같다. 가사나 멜로디도 좋지만, 내겐 그보다 더한 의미가 나를 휘감는다. 노래와 함께한 그때 그 시절 나의 이야기들이 함께 묶여 옛 생각에 머무르게 한다. 성시경의 ‘거리에서’도 그중 하나다. 2006년인가 2007년 가을~겨울 때쯤, 함께 걷던 홍대 뒷골목, 계란 하나를 톡 깨어 넣어 먹었던 순두부찌개, 함께 좋아하던 초겨울의 정동길, 첫눈을 맞으며 설레었던 기억. 그런 소소한 추억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따라라라란 따라라란~ 네가 없는 거리에는....’ 전주와 첫 소절만 들려와도 그때 그 사람 생각이 난다. 벌써 10년이 훌쩍 지나버렸다. 그 사람은 이제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 살고 있겠지. 나를 기억하려나.

요즘은 성시경의 ‘태양계’를 즐겨 듣는다. 무한반복 재생으로 흘러가는 나의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한다. 이제는 감성 따위에 치우치지 않는 치열한 중년을 살아내야 하는 나이지만, 뭐 어떠랴. 주어진 순간을 치열하게 사는 게 각자의 인생일 테니. 이게 내 인생이니까 노래로 추억을 기록한다.


성시경 - 태양계

나의 사랑이 멀어지네
나의 어제는 사라지네
태양을 따라 도는 저 별들처럼 난
돌고 돌고 돌고
그대를 향한 나의 이 어리석은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머물지 못하는 내 두 눈에 고인 눈물이 흐르네

나의 사랑은 떠나갔네
나의 어제는 사라졌네
지구를 따라 도는 저 달 속에 비친
너의 얼굴 얼굴
그 얼굴 위로 흐르던 너의 미소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머물지 못하는 내 두 눈에 고인 눈물이 흐르네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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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70 / 에세이] 만 권의 기억 데이터에서 너에게 어울리는 딱 한 권을 추천해줄게. 하나다 나나코. 구수영 옮김. 21세기북스. (2019)


책을 소개하는 책 읽기를 나름 즐겼었나 보다. 기억하는 첫 책은 ‘서재 결혼시키기(지호, 2002)’이다. 한 연인이 결혼을 앞두고 서로의 책을 어떤 방식으로 정리할 것인가를 다룬 이야기이다. 겹치는 책을 버릴 것인지 놔둘 것인지, 어떤 기준으로 정리할 것인지 서로 다른 두 사람의 책장을 합치는 과정에서 벌어진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엿보는 소소한 재미가 있었다. 그 책에 등장하는 책은 한 권도 읽어본 적도 없고 이젠 기억나지도 않지만, ‘남들은 책을 대하는 방식’ 같은 것이 궁금했고 나와 비슷한 점과 차이점을 알아가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만 권의 기억 데이터에서 너에게 어울리는 딱 한 권을 추천해줄게’는 독특한 제목에 끌려 읽게 되었다. 읽어보진 않았지만, 익히 들어본 긴 이름의 제목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책 세상, 2005)’처럼 제목이 주는 아우라에 끌렸다. 이 책은 -기업 문화가 있는 조금 특별한- 서점에서 일하던 한 여성이 만남 사이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책을 추천하는 경험을 쌓아가며 세상과 사람, 자신을 대하는 방법을 알아가며 용기 내고 도전하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이다. 당시 이혼 조정 중이던 저자는 현실도피의 수단으로 자신을 알지 못하는 타인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위안을 얻었던 것 같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행위를 통해 세상과 관계하는 방법을 알아가고 용기를 내고, 새로운 직장을 찾아가며 전남편과 이혼하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는 것으로 책이 마무리된다.

사람들에게 책을 소개하는 특별할 것 없는 내용인데 책을 읽는 내내 뭉클하고 울컥했다. 그녀가 문제의 상황에 직면하지 못 한 체 타인에게 책을 소개하며 갖는 생각들이 지금의 내 모습 같았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 역시 중요한 게 뭔지 알지 못 한 체 주변만 방황하고 있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끝이 없는 쳇바퀴를 돌고 있는 기분이다. 그래서 그녀가 차근히 해결해가는 과정에 마음이 놓였다. 이 이야기는 소설이 아니고 에세이니까 그녀의 삶이 앞으로 어떻게 흘러가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책의 내용이 끝나는 즈음 한 단계 넘어섰음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책을 읽는다고 해서 당장 내 삶에 해결될 건 없지만, 저자의 삶에 감정 이입되었다. 그녀가 도전하고 해낸 것처럼 내 삶도 한 걸음 나아가게 되길.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할 때는 자유로운 삶의 방식을 고르렴. (...) 할아버지의 경야에 참석하지 않는 선택을 할 수 있다면, 그보다 못한 선택지가 내 앞에 놓일 때 망설이지 않고 자유로운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으리라. (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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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61 / 에세이] 밥 먹는 술집을 차렸습니다. 김광연글. 박승희 그림. 지콜론북. (2019)

지인 권유였나? SNS 팔로우 계정에서 추천하는 글을 봤던가? 어떤 경로로 알게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이 책은 을지로에서 ‘광장’을 운영하는 저자 김광연의 에세이다. 밥 먹는 술집 ’광장’을 준비하게 된 계기, 광장에서 만드는 음식 이야기나 사는 이야기 등의 에피소드가 담겨있다. 비슷한 느낌의 에세이로 속초 동아서점 책’ 당신에게 말을 건다(알마,2017).’가 오버랩된다.

에세이를 쓰는 사람들은 늘어났지만, 읽기 좋은 에세이는 많지 않다. 더구나 자기 자신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일을 하는 자영업자로서 이렇게 솔직한 에세이를 쓸 수 있는 저자의 용기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나 역시 이따금 무언가를 끄적이지만, 내가 드러나는 부분에서는 당당하지 못하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공간에서의 글쓰기지만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어떤 식으로 나의 존재를 금세 알아챌 수 있다는 공포와 불안감으로 희미하게 얼버무리거나 존재를 감추곤 하는데, 저자 김광연은 날것 그대로의 자신을 오롯이 드러낸다. 그래서 더 솔직하고 매력적인 공간으로 느껴진다. 마침 오늘 책을 다 읽었고, 내일 그 공간에 방문하기로 계획했다. 첫사랑을 다시 만나는 기분? 오랫동안 보고 싶고 갖고 싶던 무언가를 만나는 기분? 치킨 남방도 먹고 싶고, 꽁치 파스타도 먹고 싶고, 카레도 먹고 싶고. 책에서 받은 그 느낌 그대로 따듯하고 안전한 공간이길 바라본다.

앞머리는 무성하고 뒷머리가 없는 벌거벗은 몸에 날개가 달린 기회의 신, 카이로스가 떠올랐다. 늘 눈에 띌 준비가 된 카이로스는 기회를 노리고 있는 사람 앞에 무성한 앞머리로 다가간다. 기다렸던 기회를 낚아채기 쉽게 하기 위함이었으리라. 하지만 가까이 다가간 카이로스가 스쳐 지나가고 알아차린들 뒷머리는 민둥머리로 잡을 곳 없이 순식간에 사라진다고 한다. (294)

저자의 신중하면서 활기차고 곧은(?) 에너지가 내게 전해졌다. 멍~~함을 깨우고 정신 번쩍 오늘 이 순간에 집중하는 시간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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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54 / 에세이] 자기만의 침묵. 엘링 카게. 김민수 옮김. 민음사. (2019)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선 침묵을 지켜야 한다.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122)





'자기만의 침묵'은 극지 탐험가 엘링 카게의 침묵 체험기이다. 쫓기고 눈치 보고, 견제하느라 더욱 열심히 일에 매진하는 요즘의 내게 꼭 필요한 것이 바로 나만의 고요한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불쑥 쳐들어오는 외부의 횡포(?)에 맞설만한 나만의 무기를 챙기는 것. 적당한 거리와 방패, 여유로운 마음가짐이라는 무기를 확보해야 한다. 침입 따위 불편하지 않은 보통 사람이라면 그따위는 필요 없겠지만, 부쩍 뾰족하고 예민한 요즘의 나에게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는 것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은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다.



무더운 여름날에 찾아온 짜증과 화와 넘치는 업무에서 벗어나 나를 찾아야 할 이유를 되새김하게 해준 이 책. 작년 봄 읽었던 게으름의 즐거움(호미출판사, 2003)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골똘히 생각하기를 즐기는 엘링 카게의 에세이는 두서없고, 정돈된 느낌도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내게 ‘나만의 방식으로의 침묵’이 얼마나 필요한지 다시 한번 느끼게 한 책이라 올여름 읽은 책 중 가장 의미 있는 책이 될 것 같다.





두려움은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는 것에 대한 것이다. 그러한 두려움을 회피하려 할 때마다 나한테서 비겁한 악취가 확 풍긴다. (21)

나는 길이 바뀔 때마다 자연도 변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그렇지 않았다. 내 주변 환경은 변함 없이 그대로였다. 변한 것은 나였다. (23)

시간은 과거와 미래로 대비되지 않는다. 시간은 지나가는 경험에 더 가깝거나, 키에르케고르가 말했듯이 "소멸된 연속"에 더 가깝다. 시간은 정지되어 있다. (131)

당신이 경험하는 침묵은 다른 사람이 경험하는 침묵과 다르다는 것을 명심하라.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침묵이 있다. (137)

소리는 움직이고 있는 공기이다. (...) 당신의 뇌 활동은 음악이 이곳과 저곳을 계속 오갈 수 있는 중간 지대에 있을 때 귀 기울이고 싶어 한다. 바로 그때 당신의 뇌가 외부로 확장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146)

내가 침묵에 잠기는 이유는 어쩌면 하루도 안 빠지고 매일 무언가로부터 분리되어 있다는 느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 넘어설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은데, 예술은 내게 그러한 것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좀 더 솔직해지고,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더 몰두하면서 살고, 세상을 차단한다. 그 외에 도움이 될 만한 의견을 조금 보탠다면 나는 장거리 스키 여행으로 기진맥진할 때, 혹은 정말 맛있는 무언가를 먹거나 마실 때 느끼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그럴 때 나는 더 이상 내가 하고 있는 일에서 분리되지 않는다. (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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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 예술, 에세이]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고레에다 히로카즈. 이지수 옮김. 바다출판사. (2017)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은 비일상이 아니라 사소한 일상 속에 존재한다. (387)


한때는 내가 예술가인 줄 알았다. 미대를 다녔으니까. 동기들과 사색에 쩔어 한량 같은 대학 생활을 했지만, 졸업과 삶이 주는 무게를 감당하기는 쉽지 않았다. 학교에 다니면서 2학년 때부터 취업 준비를 했고, 4학년 겨울방학 때 바로 취업. 그리고 지금은 짜여진 스케줄을 소화해야 하는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한동안 의식하지 못하고 지냈는데 이 책을 읽으며 옛 생각이 났다. 예술가로 살았다면 나도 잘할 수 있었을까? 자신감과 협동능력이 부족한, 창의적이지도 못한 내가 그런 삶을 지속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도망치듯 책임감에 눌려 지금 이렇게 살고 있지만 싫지는 않지만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동경은 갖고 있다.

삶을 대하는 ‘왜’라는 물음은 나를 지탱하는 힘이다. 그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 답을 찾으려 노력하는 과정, 삶 자체가 학부 시절 작업 하나를 완성하려 고민하던 과정이 녹아있다. 빠릿빠릿하게 행동하진 못했지만, 많은 작업량을 가지진 못했지만, 다작은 아니지만 띵작을 작업했던 나라는 사람. 나도 그랬는데 아이들을 시간에 쫓겨 가르치려 하다니. 참 앞뒤가 안 맞는 행동이다.


-예전에 써놓은 글을 정리하다가. 2018년 여름~가을 무렵에 쓴 글을 옮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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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2019-7 / 고전, 서양 현대고전]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이미애 옮김. 민음사. (2016)

책장을 덮으며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후련함이다. 꽤나 힘겹게 완독 한 이 책은 ‘로맹 가리(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과 늘 헷갈리던 제목, -그리고 이젠 헷갈리지 않을-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다. 얇은 두께인데도 쉽지 않았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 깊게 공감하지 못했다. 수년 전 읽었던 ‘서재 결혼시키기(지호, 2002)’가 생각났다. 좋은 책인 것은 분명한데 저자가 이야기하는 작가와 책에 대한 나의 배경지식이 부족했다. 문맥상 어떠하리라 추측할 수 있었지만, 진정으로 공감할 수는 없었다. 수박 겉핥기에 그쳐 깊게 몰입할 수 없었다. 나의 독서력을 조금 쌓은 후에 다시 보면 다르게 느끼려나.

둘째,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 책 읽는 시기가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요즘은 책 읽기도 쓰기도 다른 무엇도 깊게 몰입하질 못한다. 그래서 자꾸 멈추고, 다시 책장을 열고 반복되는 시간이 쌓이며 재미도 시들해졌다.

셋째, 페미니즘적 사고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나는 그저 개인주의적 사람이었다. 중성적 사고방식을 가진 조금 다른 사람일 뿐이었다. 페미니즘을 논하기엔 나의 지식이 적다. 21세기에 내가 누리는 것은 이전 시대의 여성들은 결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들이다. 이전 시대 성역할이나 평등 같은 건 나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단지 내가 누려야 할 성평등에 관심 있었을 뿐.

나의 무지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좋은 책이다. 2019년에 살면서 적절한 수입과 나만의 방을 가진 지금 이 시간에 감사함을 느낀다. 모든 여성에게 자기만의 방과 연간 500파운드가 보장되기를.


저녁식사를 잘하지 못하면 사색을 잘할 수 없고 사랑도 잘할 수 없으며 잠도 잘 오지 않습니다. (38)

16세기에 시적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여성은 스스로에 대한 투쟁을 벌여야 하는 불행한 여성이었을 겁니다. 그녀의 삶의 모든 조건과 그녀의 모든 본능은, 두뇌에 간과된 그 무엇이든 자유롭게 풀어놓기 위해 필요한 마음 상태에 적대적이었을 겁니다.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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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123 / 에세이] 홍차와 장미의 나날. 모리 마리. 이지수 옮김. 다산 책방. (2018)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이 무엇인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삶을 결코 진흙탕으로 만들지 않는다. (9)

나쓰메 소세키와 더불어 일본 근대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 모리 오가이의 장녀인 모리 마리는 유명한 아버지의 자식으로 자라났지만, 생활력 같은 건 없는 저자는 객관적으로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았지만 자신만의 행복 포인트를 찾아 삶을 살아냈다.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 자신의 삶 속 이야기들을 짧은 글로 써 삶을 이어갔고, 그 기록을 묶어 이 책이 탄생하였다. 매력적인 표지와 삽화, 제목 덕에 제2의 사노 요코를 기대하며 읽어갔지만, 여러 에피소드를 묶은 책이어서 반복된 구절이 많아 읽을수록 흥미가 떨어졌다.

책날개에서 소개하는 작가 배경 이야기를 알지 못했다면 관심 갖지 않았을 이 책은 작가 소개와 배경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준다.

확고한 책임의식이나 정신력 없이 삶을 살아가는 한량 같고 무기력하게 느껴져 읽는 내내 에너지가 빨리는 기분이었지만, 저자가 애정하고 자부심 갖고 있는 프랑스풍의 분위기와 요리, 아버지와의 추억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만큼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프랑스나 요리를 좋아하고 동경하는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모리 마리식의 ‘호화로운 가난의 미학’이 멋스럽게 느껴지기보다는 ‘정신은 어린아이인 채로 몸만 어른이 된 사람’으로 느껴져 읽는 내내 안타깝고 힘들었다. 나처럼 ‘삶의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지 못하는 안타까운 예술가’에 대한 편견이 없는 사람이라면 가볍고 즐겁고 재미있게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며 나의 상처와 편견과 맞닥뜨리게 되어 힘들게 읽었지만, 좋아하는 사노 요코가 사랑한 작가 모리 마리, 그녀가 부디 행복하게 살다 갔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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