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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66 / 소설. 독일 고전] 수레바퀴 아래서. 헤르만 헤세. 이은경 옮김. 아이템 비즈. (2019)

헤르만 헤세의 저서 ‘데미안’을 두세 번 정도 읽다가 포기했던 적이 있다. ‘절망 독서’, ‘시 읽는 엄마’ 등의 몇몇 책에서 헤세의 시를 인용한 구절을 만난 적이 있지만, 고전은 어려울 것 같은 부담감으로 작가의 저서 한 권 전부를 읽을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우연한 기회로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게 되었다.

1892년 신학교에서 도망쳤다가 붙잡혀 처벌을 받고 우울증을 앓는 등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자전적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는 19세기 말 독일 교육체계를 배경으로 하여 학교 비판의 맥락에서 쓰인 교육소설이다. 기숙학교에서 벌어지는 일들, 청소년 자살 등의 사회문제를 담고 있어 당시 사회상을 엿볼 수 있고, 불안한 청소년기 학생들의 마음을 담은 성장 소설이기도 하다. 책의 제목에도 등장하는 ‘수레바퀴 아래~’가 나온 구절을 3번 정도 읽었다. 수레바퀴가 어떤 의미인지 강렬하게 와 닿진 않지만, 돌아가는 바퀴 아래로 깔리지 않게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로 안타까움과 답답함이 느껴졌다.

이 책에서 특히 좋았던 점은 7장으로 나뉜 각 장의 구분이 적절하다는 점이다. 읽기 학습하기에 딱 적당한 내용으로 구분되어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1장은 배경 설명과 신학교 시험을 치르고 온 주인공, 2장은 고향에서 즐거운 한때, 3장은 수도원 생활, 4장은 위기, 5장은 고향으로 돌아온 한스, 6장은 이성에 눈뜬 한스, 7장은 사회생활을 시작한 한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각 장마다 세월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헤세(작가)의 시선인지, 한스(주인공)의 관심인지, 둘 다인지 모르지만, 독자로서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음에도 머릿속에 그려지는 묘사가 특히 좋았다. 헤세의 글에서 느껴지듯 자연과 유유자적을 사랑하던 주인공 한스 기벤트는 정체성을 찾기 이전 주위 어른들의 기대와 강압에 눌려 아름다운 꽃을 미처 피우지 못하고 꺾여버렸지만, 저자인 헤르만 헤세는 위대한 문학가로 살아남아 다행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영혼을 더럽히는 것보다는 차라리 육체를 썩히는 게 더 낫다. 너는 장차 목사가 될 사람이야. 목사가 된다는 건 참으로 힘든 일이지. 평범한 사람들과는 달라야 한다. 아마 너는 틀림없이 훌륭한 목사가 될 거야. 너를 위해 기도 하마. (77)

주인공 한스를 향한 어른들의 강요와 억압적 시선은 21세기를 사는 성인인 내가 읽는 것만으로도 답답하다.

곱씹을 거리를 만들어주는 고전의 재미를 새삼 느낄 수 있었던 읽기 어렵지 않고 적당한 무게를 지닌 소설이다.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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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65 / 소설. 한국소설] 오직 한 사람의 차지. 김금희. 문학동네. (2019)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붙드는 일, 삶에서 우리가 마음이 상해가며 할 일은 오직 그뿐이다.

“오직 한 사람의 차지, 작가의 말” 중에서


금희 님 금희 언니 등등 더욱 친근한 호칭으로 김금희 작가를 유난스럽게 좋아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 적이 있다. 요즘 책 좀 읽는 사람들 사이에서 김금희를 모르면 간첩(?)일 정도로 절대 모를 수가 없는 김금희. 대체 김금희 표 소설의 매력이 무엇이길래 아이돌 가수를 좋아하는 여고생처럼 강렬한 팬층이 형성되어 있는지 궁금했지만, 굳이 일부러 찾아보고 싶진 않았다. 모두가 좋아하는 걸 나까지 관심 가져야 하나 싶은 생각에 소설, 영화, 드라마 등 남들이 보편적으로 좋아하는 건 피하는 평범치 않은 취향 덕분이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김금희 작가의 단편 소설집을 읽게 되었고 나쁘지 않았다. 어떤 매력 덕분에 광팬이 생겨났는지, 왜들 그렇게 좋아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속을 파헤치거나 날카롭지 않은 적당한 깊이의 섬세한 묘사가 특히 좋았다. 작가는 나만 알고 있는 우리 가정의 문제점을 알고 있었다. 자료조사를 한 건지, 작가만의 관찰력인지, 김금희 작가도 가정사에 소소한 문제를 겪은 건지 우리 집 안 사람들 소통의 한계로 느꼈던 일상 속 소소한 이야기들을 작가의 언어로 매끄럽게 정리된 글을 읽으니 비단 우리 가족만의 상처가 아님을 알게 되면서 가벼워졌다.

요즘 유행하듯 인기를 얻고 있는 소설 중에는 자극적인 소재나 주제를 다룬 글이 종종 있는데 나는 그쪽은 영 별로라 쥐어짜는 식의 글은 피하곤 한다. 삶도 팍팍한데 일부러 힘듦을 찾아다니기 싫기 때문이다. 김금희의 글은 그렇게 힘겹지도 거북하지도 않으면서 적당한 노련미가 느껴진다. 감당할 수 있는 감정선 언저리에 왔다 갔다 해서 좋았다. 하지만 끝이 나지 않는 길고 긴 문장은 조금 불편했다. 끝도 없는 미사여구를 붙여도 어색하지 않은 문맥을 만들 수 있는 작가의 노련미가 느껴지는 부분이지만, 어렵고 버겁고 숨이 찼다. 그런 부분들은 스킵하고 지나가면 그뿐이니까 소설 한 편 읽는 데엔 큰 지장이 없지만, 나 말고 대부분의 사람(특히 감수성이 섬세한 여성 독자)에게는 큰 강점으로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청년이 그렇게 물었을 때 K는 비닐봉지를 들고 올랐던 아파트의 그 경사진 언덕과 엄마가 야무지게 싸매어놓았던 그 일용할 음식들과 엄마는 그것이 습관이 되어 요즘도 장을 볼 때 그렇게 꽁꽁 묶어, 바코드를 찍어야 하는 캐셔가 다시 그것을 하나하나 풀 게 되는데 열한 살의 어느 날 그가 정문을 빠져나갈 때 마지막까지 그렇게 최선을 다해 작은 몸을 흔들었던 한 아이와, 자기가 픽션으로 쓰지 않았던 죽음, 견디고 살아내지 못했던 그 불행한 가족의 얼굴을 아주 오랜만에 어떤 공포도 거부감도 없이 다만 안타까움을 느끼며 떠올렸으나 실제로 귀 기울인 것은 아직 술꾼들이 다 떠나지 않은 야간시장의 포장마차에서 들려오는 둠둠바, 둠둠바, 하는 디스코 음악이었다.

“오직 한 사람의 차지, 쇼퍼, 미스터리, 픽션” 중에서


‘오직 한 사람의 차지’는 2016~2018년까지 2년 동안 쓴 단편 소설을 묶어 발간한 책이다. 나처럼 김금희를 처음 만나는 사람이나 소설에 익숙지 않은 사람도 부담스럽지 않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과한 건 부담스럽고 적당한 재미난 걸 읽고 싶다면 추천.

인생이란 열기구와 같아서 감상을 얼마나 재빨리 버리느냐에 따라 안정된 기류를 탈 수 있다고.

송은 희극배우가 확실히 나쁘다고 생각했다. 왜 나쁘냐면 지운 흔적이 없기 때문이다. 뭔가 옛일을 완전히 매듭짓고 끝내고 다음의 날들로 옮겨온 흔적이 없었다. 그의 날들은 그냥 과거와 과거가 이어져서 과거의 나쁨이 오늘의 나쁨으로 이어지고 그 나쁨이 계속되고 계속되는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그는 어떤 선택을 하든지 어차피 나빠질 운명인 것이다. 선택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 실패가 선택되는 것이다.

“오직 한 사람의 차지, 문상” 중에서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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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2019-47 / 소설, 스릴러 소설] 죽여 마땅한 사람들. 피터 스완슨. 노진선 옮김. 푸른 숲. (2016)

모임 도서여서 읽기 시작한 책. 이런 장르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아 나의 의지로는 거들떠보지도 않을 종류의 책을 읽는다는 건 한편으론 스트레스지만, 읽고 나면 색다른 뿌듯함이 있다.

우연히 비행기 옆자리에서 만난 사람과의 대화로 시작되는 ‘죽여 마땅한 사람들’을 읽으며 예전에 읽었던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청미래, 2002)가 문득 오버랩되었다. 비행기 옆좌석 사람과 살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이게 무슨 헛소리? 말도 안 되는 이야기 자체가 흥미롭지 않았고, 화자의 시선이 바뀔 때마다 전환되는 시점과 이야기의 변화도 정신없었다.

하지만, 첫인상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는 법. 이 책도 마찬가지다. 1/2 정도 책장을 넘기니 왜 이렇게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가 엉켜있는지, 왜 그렇게 정신없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야기를 풀어나갔는지, 남은 절반은 다음 장이 궁금해서 앉은자리에서 곧바로 읽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진짜로 이런 일이 존재할 수 있을까? 무엇이 그들을 본인이 다른 누군가를 ‘죽여’ 마땅하다고 생각하도록 만들었을까? 소설 ‘안나 카레니나’(문학동네, 2009)의 안나를 보는 것 같았다. 자기 의지로 절망 속으로 인생을 몰아가는 주인공들이 안타까웠고, 그렇게 살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너무나도 도덕적이며 정석적인- 나는 절대 저지를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소설이 짜릿했다. 무더운 여름날 아찔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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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2019- 2 / 소설, 중남미소설] 백 년의 고독 1. 가르시아 마르케스. 조구호 옮김. 민음사. (2000)

읽기의 깊이를 넓혀야겠다고 생각하던 중 지인에게 고전 몇 권을 추천받았다. 그중 덜 부담스러울 것 같은 책을 골랐는데, 가장 난해한 작품을 골랐다는 이야기를 듣고 긴장하며 책장을 넘겼다. 하지만 재미있게 책장을 넘길 수 있었던 이 책, 백 년의 고독. 아직 1권을 읽었을 뿐이지만 이 책에서 느껴지는 특징은 시간이다. 부엔디아 가문에서 100년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 같은 이 책은 시간의 흐름이 왔다 갔다, 복잡한 가족사 전개도 왔다 갔다 하는 와중에 반복되는 강렬한 느낌은 어떠한 상황에도 가정을 지키려 무한으로 노력하는 강인한 여성, 전쟁이나 다른 무엇에 빠진 남성, 되풀이되는 이야기들이 어떠한 상징성을 지니는지, 콜롬비아에서 벌어졌거나 작가의 어떤 경험에서 나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뒷 내용이 궁금해 책장을 덮기 어려웠으니 재미있는 소설임은 분명하다. 소설이 힘든 내게 의미 있고 재미까지 있는 책을 권해준 지인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2권을 펼쳐야겠다.

저자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1927년 콜롬비아의 아라까따까에서 태어나 콜롬비아 대학에서 법률 공부를 하다가 정치적 혼란 속에서 대학을 중퇴하고, 기자 생활을 한다. 1954년 특파원으로 파견된 로마에서 본국의 정치적 부패와 혼란을 비판하는 칼럼을 쓴 계기로 파리, 뉴욕, 바르셀로나, 멕시코 등지로 떠돌며 유배 아닌 유배 생활을 했다. 그 사이 여러 책을 발표했고 1982년 ‘백 년의 고독’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 라틴아메리카 대륙이 겪어야 했던 역사의 ‘리얼리티’와 원시 토착 신화의 마술 같은 ‘상상력’을 결합하여 새로운 소설 미학을 일구어낸 작가에게 세계의 문인들은 ‘마술적 리얼리즘의 창시자’라는 헌사를 바쳤다. ‘백 년의 고독’은 시한부 선고를 받은 소설이란 장르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으며, 문학이 21세기에 다시 소생하는 것을 예비하는 작품이다. (책날개 참고)




“친구, 한 가지만 얘기해 주게, 자넨 왜 전쟁을 하고 있는가?”
“왜라니, 친구. 위대한 자유당을 위해서지” 헤리넬도 마르께스 대령이 대답했다.
“그걸 알다니 자넨 행복한 사람이군. 난 말이야, 자존심 때문에 싸우고 있다는 걸 이제야 겨우 깨닫게 되었네” 그가 말했다.
“그것 참 안됐군” 헤리넬도 마르께스 대령이 말했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친구의 놀란 표정이 재미있었다. “그래. 하지만 어찌 됐든, 왜 싸우는지도 모르는 것보다야 더 낫지”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 말했다. 그는 친구를 쳐다보다가 미소를 머금으며 덧붙였다.
“또 말이야, 자네처럼 그 누구에게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그 무엇을 위해 싸우는 것보단 더 낫지” (205)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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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134 / 소설. 영미 근대문학] 이성과 감성. 제인 오스틴. 김순영 옮김. 펭귄 클래식 코리아. (2015)





연애소설 같은 건 한가한 시간이 많은 사람의 놀잇거리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소설보다는 인문학이나 실용서를 즐겨왔다. 지금도 여전히. 학창시절 여고생이라면 한 번쯤 읽어봤을 법한 하이틴 로맨스 같은 책도 읽은 기억이 없다. 최근 쓰기와 읽기에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던 중,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제주도 서귀포 한경면에 위치한 무명서점에서 의미 있는 책 한 권을 샀다. 펭귄북스의 수석 북 디자이너인 코럴리 빅포드 스미스의 디자인으로 새롭게(!) 2015년에 선보인 ‘이성과 감성’은 책 등과 표지 디자인만으로도 ‘이거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영화 ‘비커밍 제인(2007)’을 통해 이 소설의 저자 제인 오스틴이 멋진 여성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정작 그녀의 소설을 읽은 적은 없다. 명성은 익히 들어왔기에 호감이었고, 표지는 당연하고 두께에 비해 가벼운 무게도 마음에 들었다. 2018년의 마지막 책으로 함께하기에 손색없을 것 같아 바로 읽기 시작한 이 책의 느낌은 ‘역시’이다.

이성적인 언니 엘리너와 감성적인 동생 메리엔을 둘러싼 연애 이야기. 작가는 이성과 감성 중 어느 편에 손을 들어줄지 궁금했다. 소설을 쉬이 읽지 못했던 지난 경험을 떠올려 등장인물의 관계도를 그려가면서 읽었더니 이해하기 쉬웠다. 지명을 종종 언급하는데, 영국 시골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어 지도를 검색하며 지역적 거리감이나 특성을 파악하려는 노력을 더 했더니 공감각적 이해가 더해졌다. 뒤로 갈수록 반전과 빠른 전개 덕분에 긴장을 놓을 수 없었고, 그래서 책을 덮는 순간까지 여운과 감탄을 담을 수 있었다.

작가는 이성과 감성 어느 한쪽에 편을 들어주었다기보다는 두 감정이 어떻게 조화롭게 연결되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 인과응보 권선징악을 좋아하는 내게도 불편함이 아닌 안정감을 주었다. 이 소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분위기는 가족 간의 사랑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서로를 위해 그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듯하게 풀어냈다. 대시우드 모녀, 특히 엘리너와 메리엔의 관계는 정말 이상적이다. 그렇게 다른데 서로를 이해하고 품어주는 관계가 과연 현실에도 존재할지 궁금할 정도이다. 다만 여주인공들의 나이가 10대 후반인데, 사춘기~청춘에 겪는 경험들을 10대가 훨씬 지난 나도 공감할 수 있었다는 점이 웃프다. 하지만 인간사가 다 그런 거니까, 10대에만 사랑하고 이별하는 감정을 경험하는 건 아니니까.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문제 상황을 어떻게 풀어가는지를 통해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책 속 등장인물들처럼 정답대로 나의 경험과 감정이 술술 풀리진 않겠지만, 각자의 사연을 알고 이해하면서 사람 사이의 거미줄 같은 관계의 깊이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18세기에 살던 여성의 책이 21세기에 사는 많은 사람에게 아직도 사랑을 받는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았다. 이렇게 양질의 소설을 읽다 보면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려나?

나의 2018년과 2019년을 이어준 ‘이성과 감성’. 시작과 끝이 좋다.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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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132 / 소설, 중국문학] 풍선인간. 찬호께이. 강초아 옮김. 한스미디어. (2018)

홍콩 여행을 준비하던 작년 이맘때 찬호께이의 ‘13.67(한스미디어, 2015)’에 대하여 알게 되었고 읽어보고 싶었지만, 소설에 대한 두려움과 책의 두께 덕분에 도전하지 못한 적이 있다. 지난주 산란하고 바쁜 시기에 우연히 도서관에 들러, 신간 코너에서 발견한 찬호께이의 ‘풍선인간’은 비교적 얇은 두께와 익숙한 이름 덕분에 선택되었다. 흡입력이 있는 짧고 쉬운 소설이어서 거부감 없이 몇 시간 만에 후딱 읽어버렸다. 평소 공포나 추리 같은 건 즐기지 않는 편인데 찬호께이의 ‘풍선인간’만큼은 잔인하거나 징그럽거나 부담스럽지 않았다. 왜냐하면, 주인공의 행위에 엄청난 악의가 담겨있거나 사회 이슈나 비판을 포함하지 않았고 비교적 가벼운(?) 짓이었기 때문이다. 작가가 말하는 ‘길티 플레저’, 잘못된 일인 줄 알면서도 즐거움을 느끼는 것, 잘못된 일이기에 나는 할 수 없지만, 간접경험 함으로써 쾌감을 느끼는 것. 요즘 관심 갖고 있는 영국 현대미술작가 아니 낙서쟁이 뱅크시의 행보를 응원하는 사람들도 같은 맥락이겠지.

‘나는 할 수 없지만, 너는 마음껏 해다 오. 내가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도록.’


올해에는 130여 권의 책을 읽었지만 기억에 남거나 감동적인 책이 딱히 없다. 시간과 마감에 쫓겨 읽은 책이 절반 이상이기도 하고 업무나 다른 일에 쫓기기도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의미 있는 독서의 기억을 떠올리자면 소설이나 고전에 대한 두려움을 줄이고 호기심을 키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내년엔 고전과 소설에 좀 더 도전해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만 2년 동안 여러 출판사의 서평단으로 활동하면서 다양한 장르의 책을 많이도 읽었다. 책을 통해 상식과 지식을 쌓을 수 있던 것은 좋았지만, 읽기 싫은 책을 억지로 읽느라 형식적인 읽기와 쓰기에 그친 적도 많았다. 내년 독서는 올해보다 발전된 방향으로 진화할 수 있기를. 내년엔 어떤 책과 만나 어떤 생각의 깊이를 키울 수 있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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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의 작가 모리미 도미히코의 신작, 거룩한 게으름뱅이의 모험. 자칭인지 타칭인지 모르지만, 작가는 분명 ‘교토’라는 지명 덕을 톡톡히 보고 있을 것이다. 작년 이맘때 읽었던 ‘야행(2017)’, 그리고 이 책’ 거룩한 게으름뱅이의 모험(2018)’도 내 취향의 소설은 아니었지만 ‘교토’라는 지명에 이끌려 책장을 넘겼다. 모리미 도미히코는 의도적으로 교토의 지명과 풍습, 축제 등을 이야기 곳곳에 등장시켜 교토를 그리워하는 이들에게 소설을 읽으며 대리만족할 수 있게 돕는다. 소설 속 주인공이 교토 시내 곳곳을 누빌 때마다 나도 알고 있는 그곳을 떠올린다.

으스스하고 몽롱했던 전작과 달리 이번 소설은 톡톡 튀는 말투 덕분에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빨랐다. 피식 웃음 지으며 술술 읽을 수 있었다. 역시 작가는 작가인가 보다. 말재주, 글솜씨가 일품이었다.

세계는 지루함으로 충만하다. (179)

‘지금도 쉬고 있지만 좀 더 격렬하게 쉬고 싶다.’ 식의 문구가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좀 더 지루하게 느긋하며 더욱 게으르게 표현되었다면 좋았을 것을. 지루함의 강도가 약했던 것이 굳이 찾아낸 아쉬움이다.

부담 없이 술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여름밤과 잘 어울리는 소설이다.




소소한 모험을 비웃는 자는 소소한 모험에 운다. (42)

잘 들어. 우리에게는 모험이 필요해. 막연히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건 안 돼. 인생이란 그저 성실하게 일한다고 보상받을 수 있는게 아니라 이 말씀이야.
한 치 앞은 어둠입니다.
돌아가도 괜찮아.
나아가도 괜찮죠. (57)

남의 망상을 방해하는 자는 말에 차여 죽는다고 합니다. (97)

지루함의 바닥까지 느껴져야 진정한 여름휴가지. (...) 나는 이제 의미 있는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야. 주인공이니까 노력해야 한다고 대체 누가 정했어?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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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84/ 소설, 한국소설] 나의 아로니아 공화국. 김대현. 다산책방. (2018)





부조리가 가득한 대한민국을 비판하며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세워진 아로니아 공화국.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오가는 탓에 노무현이며 박정희며 중앙정보부며 들어봄 직한 역사적 인물과 함께 들어본 적 없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등장해 이게 사실인지, 작가가 만들어낸 세상 속 이야기인지 헷갈리며 소설의 흐름을 쫓아가면서 조금은 엉뚱하고 재미있는 작가의 상상력 덕에 재미있는 세상을 구경했다.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처럼 정교하게 만들어진 판타지 세상과 비교할 순 없지만 진짜인 듯 아닌 듯 딱 10년 후 미래의 모습을 그린 공화국에 사는 사람들은 행복할까?

언제나 살았고 어디서나 살았던 사람은 국가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산다. 세상의 사람은 영원하고, 사람이 만든 국가는 영원하지 않았다. 지나온 세상의 역사가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영원하지도 않을 국가를 영원하다고 믿는 것은 헛되고 터무니없는 아집이다. 사람과 사람이 즐겁고 행복하다면 추잡하고 초라하고 조잡스러우며 너절하고 파렴치하고 무능력한 국가가 왜 필요한가? (412)


돌이켜보면 다짐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순간의 감정에 사로잡혀서 죽는 날까지 무르거나 되돌릴 수 없는 맹세는 결코 하는 것이 아니다.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다고 무조건 해서는 결단코 안 된다. 멍청하게도 그날 나는 다짐과 맹세의 엄중한 의미를 정말로 몰랐다.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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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80 / 고전, 문학] 안나 카레니나3. 레프 톨스토이. 연진희 옮김. 민음사(2009)

약 한 달 이라는 기간 동안 이 책을 읽었다. 성인이 된 후 읽은 가장 긴 소설.

고전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읽고 싶다는 생각으로 함께한 사람과 호흡을 놓치기 않기 위한 노력으로 시작했지만, 흡입력있는 내용 전개 덕분에 어느 순간 몰입하여 며칠 밤 잠을 설쳐가면서 생각한 기간보다 빠르게 완독하였다. 수많은 등장인물과 길고 긴 이름, 몇가지의 별명 등 집중을 방해하는 요소들 덕분에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끝까지 놓치지 않았던 이유는 ‘레빈’의 생각과 삶의 전개가 궁금해서이다.

3권의 6,7,8부는 안나와 레빈의 심경변화에 집중되어 있다. 귀족이지만(아닐지도 모른다) 농부의 삶을 존중하고 솔직하고 현명하려고 노력하며 끊임없는 자기분석과 비판을 통해 삶의 무게를 조금 덜어낸 레빈과 아름다운 사람이지만 여성으로서 감정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해 스스로 비극적 결말을 가져온 안나. 전혀 다른 두 삶이 오버랩된다. 레빈이 가장 멋진 인간상으로 나타나있는 8부까지 다 읽고나니 이 소설의 제목이 왜 ‘안나’인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1권, 2권, 3권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성장하는 레빈을 보면서 닮고 싶다고 생각했다. 몇해 전 노자를 읽으며 노자같은 사람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얼마나 멋질까 상상하고 이야기나누곤 했는데, 레빈이 실존인물이라면? 그렇게 모범적이고 바른 사람이 이 사회에 존재할 수있을까.

더 다양한 생각들이 머리를 맴돌고있지만 이쯤에서 마무리하려 한다. 언젠가 시간이 된다면 한 번 쯤 더 읽고 싶다. 최근 읽었던 고전 ‘남아있는 나날’도 생각난다. 소설 속 인물들로 내 생각과 삶을 통찰할 수 있다는 게 고전의 매력일까? 다음 고전은 어떤 매력을 내게 선사할지 기대된다.




손님들을 배웅한 후, 안나는 자리에 앉지 않고 방 안을 이리저리 서성이기 시작했다. 저녁 내내 무의식적으로(최근 그녀가 모든 젊은 남자들에 대해 행동해 왔던 것처럼) 레빈의 마음속에 자신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고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긴 했지만, 자신이 성실한 유부남에 대하여 저녁나절에 할 수 있는 만큼은 그것을 성취했다는 것을 알긴 했지만, 그를 몹시 마음에 들어 하긴 했지만(남자들의 시각에서 보면 브론스키와 레빈 사이에 큰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그녀는 여자의 눈으로 그들에게서 공통점을 발견했다. 키티가 브론스키도 사랑하고 레빈도 사랑했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가 방에서 나가자마자 그녀는 그에 대해 더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323)

지금 이 순간 그는 알았다. 자신의 모든 의심뿐 아니라 자신이 내면에서 인식하고 있던 불가능성, 즉 이성을 통해서는 믿는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생각까지도 자신이 신에게 호소하는 것을 결코 방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 모든 것들은 이제 그의 영혼 속에서 먼지처럼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그 자신을, 자신의 영혼을, 자신의 사랑을 손아귀에 움켜쥐고 있는 듯한 그 존재에 호소하지 않는다면, 과연 누구에게 호소해야 한단 말인가? (334)

두 사람 중 어느 누구도 자신이 화난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상대방이 잘못한 것이라 생각하여 구실이 생길 때마다 상대방에게 그것을 입증해 보이려 애썼다. (397)

어머, 아이를 데리고 있는 거지 아낙이 있네. 저 여자는 자기가 동정받아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우리 모두는 단지 서로를 증오하고 자신과 남을 괴롭히기 위해 세상에 던져진 게 아닐까? (447)

그녀가 웃은 것은, 비록 자신이 아기가 아가피야 미하일로브나를 알아볼 리 없다고 말하긴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아기가 그녀를 알아볼 뿐 아니라 이미 모든 것을 인식하고 이해하며 아무도 모르는 많은 것들, 심지어 어머니인 자신조차 그 아이 덕분에 비로소 깨닫고 이해하기 시작한 것까지 이미 인식하고 이해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가피야 미하일로브나에게, 보모에게, 할아버지에게, 심지어 아버지에게조차, 미챠는 단지 물질적인 보살핌만을 요구하는 생물에 불과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 있어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녀와 정신적 관계의 완전한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정신적 존재였다. (492)

무엇보다 그를 놀라게 하고 실망시킨 점은, 그가 속한 사회의 많은 동년배들이 자기처럼 예전의 믿음을 자신이 가진 것과 똑같은 새로운 신념으로 바꾼 후에도 그 속에서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않은 채 완전한 만족과 평온 속에서 살고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중요한 문제 외에 다른 문제들까지 레빈을 괴롭히게 되었다. 저 사람들이 과연 진실한 걸까? 그들이 거짓 행세를 하는 건 아닐까? 아니면 그를 사로잡는 질문에 대해 과학이 제시하는 해답을 저들이 나보다 더 잘 이해하고 있거나 달리 이해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그는 그 사람들의 견해와 그 해답을 표명한 책들을 열심히 파고들었다. (499)

나는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를 생각할 때면, 레빈은 해답을 찾지 못해 절망에 빠지곤 했다. 하지만 그 문제에 대해 자문하기를 멈추는 순간에는 자신이 무엇인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알 것만 같았다. 왜냐하면 그는 확고하고 분명하게 행동하고 살아갔기 때문이다. 심지어 요즘 같은 때에도 그는 예전보다 훨씬 더 확고하고 분명하게 생활했다. (505)

그는 자기가 잘 처신하는 건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는 지금 그것을 굳이 입증하려 들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그것에 대해 말하거나 생각하는 것도 피하려 했다.
추론은 그를 의심으로 이끌었고 그로 하여금 무엇을 해야할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깨닫지 못하게 방해했다. 그러나 생각하지 않고 살아갈 때, 그는 자신의 정신 속에서 두 가지 가능한 행위 가운데 어느 것이 좋은지 어느 것이 나쁜지 판단하는 완전무결한 재판관의 존재를 계속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마땅히 해야 할 바를 하지 않으면 그 즉시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무엇인지, 자기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위해 사는지 인식할 가능성을 전혀 깨닫지도 보지도 못하면서, 그러한 무지 때문에 자살을 두려워할 정도로 괴로워하면서, 그와 동시에 인생에서 자신만의 고유하고 일정한 길을 굳건하게 개척해 가면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509)




불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그건 귀족들의 일이 아니에요. 우리 귀족들의 일이 이루어지는 곳은 이곳 선거장이 아니라 저기 각자의 사는 곳입니다. 또한 사람들에겐 저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계급적 본능이 있습니다. 난 때때로 농부들을 관찰하는데, 그들도 똑같습니다. 건실한 농부들은 할 수 있는 한 많은 땅을 빌립니다. 땅이 아무리 척박해도, 그들은 계속 갱기질을 합니다. 그들도 이득 없이 그렇게 합니다. 손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 말이죠. (226)



우리도 그와 똑같은 짓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나 역시 이성으로 자연력의 중요성과 인생의 의미를 찾는답시고 똑같은 짓을 했던 건 아닐까?
철학의 이론들은 인간에게 부자연스럽고 기이한 사유 방법을 통해 인간이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것, 그것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을 만큼 너무나 분명하게 알고 있는 것에 대한 깨달음으로 인간은 이끈다 하면서, 사실은 아이들과 똑같은 짓을 했던 게 아닐까? 각 철학자들의 이론 발전을 보면 그들이 농부 표도르 만큼이나 분명히, 아니 표도르보다 더 분명 할 것도 없이 이미 삶의 중요한 의미를 알고 있으면서, 그저 미심쩍은 사유 방식을 거쳐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것으로 되돌아 가려는 것이 분명하게 보이지 않느냐 말이야? (523)

우리는 그저 파괴만 할 뿐이야. 왜냐하면 우리는 정신적인 포만감에 젖어 있으니까. 아이들과 똑같아.
내가 그 농부와 공통으로 가진 그 즐거운 깨달음은, 내기 유일하게 영혼의 평안을 주는 그 깨달음은 어디에서 온 걸까? 나는 그것을 어디에서 얻었던 걸까? (524)

심판은 나의 것, 너는 오직 살지어다. (583)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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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34 / 소설] 펫숍 보이즈. 다케요시 유스케. 최윤영 옮김. 놀.

일상에 쫓겨 이제서야 읽을 수 있었던 게 아쉬울 만큼 아름답고 따뜻한 소설이다. ‘카모메 식당’이나, ‘하나와 앨리스’, ‘웰컴 투 맥도나르도’처럼 잔잔하고 소소한 일상 이야기. 몰리스 펫숍처럼 반려동물과 생활용품도 함께 파는 펫숍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이야기.


‘이곳은 펫숍. 언제나 사건으로 가득한 내 직장이다.’

일본 드라마를 본 적은 없지만 이런 나레이션이 에피소드 사이사이에 나올 것 같은 독백체의 문구가 등장한다.


띠지에 대한 선입견이 있다. 책 자체에 자신이 없어 포장한, 쓸모없는 광고 용품으로 여겨 책을 펼치면서 바로 버리곤 하는데, 이 책은 띠지가 신의 한 수다. 귀여운 동물 스티커도 좋았지만 띠지 안쪽에 등장인물의 이름과 성격을 엿볼 수 있는 간단한 스케치(책 표지에도 나와 있는 인물 스케치) 덕분에 등장인물 헷갈릴 염려 없이 편하게 읽었다. 너무 귀여운 소설과 덩달아 귀여운 띠지였다. 덕분에 버려지지 않을 유일한 띠지가 될지도.

삭막하고 단순 반복적인 나의 업무에도 이 소설처럼 찰나의 행복과 즐거움이 공존할 것이다. 밥벌이의 무거움 덕분에 소소한 행복을 놓치고 있었다. 아름다운 소설 덕분에 업무를 맞이하는 하루의 시작이 즐겁다. 모두 ‘펫숍보이즈’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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