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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고 또 읽기/문학2020. 1. 21. 01:34

[2020-03 / 문학, 한국소설] 서독 이모. 박민정. 현대문학. (2020)


요즘은 수많은 근심 걱정으로 책 읽기가 쉽지 않은데, 서독 이모는 예외였다. 큰 기대 없이 책장을 넘겼다가 앉은자리에서 단숨에 끝까지 읽어버렸다. 흡입력이 좋고 재미있으면서 명쾌(!)하지만, 마냥 가볍기만 한 것도 아니라 곱씹을 거리도 있다. 서독 이모는 1985년생 작가 박민정의 소설이다. 소설에 있어 나이라는 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기준이 되어버리니 ‘나보다 어린 작가’가 되었다. 어리면서 잘 나가는 대부분 사람들의 소설은 전개가 빠르거나 소재가 자극적이어서 불편한 경험이 많았다. 도도하고 거친 느낌이 싫어서 웬만하면 피하는 편이다. 하지만 박민정의 소설은 그런 나의 선입견을 깨트렸다.


소설 속 주인공 정우정은 글을 쓰는 사람이다. 대학원을 졸업하기 위해 구질구질한 대학원 생활을 버티며 논문과 소설을 쓴다.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소재를 찾다가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인 이모와 이모부 이야기를 선택했고,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허구인지 기억나지 않을 만큼 쓴 글과 석사 논문 통과 과정인 자신의 이야기가 소설이 되었다. 흥미롭다. (이런 과정을 책 뒤편에 드라마투르기라고 표현한다.)


드라마투르기는 작품에 대한 여러 해석 중 하나의 관점을 채택하여 작품에 의미를 구체화하는 비평적 활동이다. 즉, 하나의 스토리에 대한 비평적 시선 및 연출을 위한 이론적 실천이다. (106)


너에게는 이모의 불행이 심심풀이 땅콩이니, 나는 엄마의 말을 떠올렸다. 두 번째 단락을 넘어서고 나서도 꽤 많은 분량을 단숨에 써버렸지만 더는 이 이야기를 이어 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82)


나의 쓰기도 떠올랐다. 고작 나의 경험과 내 주변 이야기를 쓰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미천한 글짓기가 부끄러웠지만, 정우정, 아니 박민정 작가처럼 나도 할 수 있다면 계속 쓰면 작가가 될 수 있으려나?!


소설 속 작가는 본인의 가족사, 서독과 동독의 통일에 엮인 비극, 정체성과 삶, 씀이라는 행위 등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결코 무겁지만 한 건 아니다. 이 소설에 재미가 더해지는 것은 통일 전후 독일과 현재 한국의 상황이 오버랩되는 점이다. 정우정이 박민정은 아닌지, 이 소설 자체가 진실인지 허구인지 궁금증을 갖고 ‘서독 이모’를 읽으며 최근 재미있게 보는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이 떠올랐다. 현실에서 일어날 것 같지 않은 통일 같은 소재를 독일 이모와 그녀의 남편 클라우드의 이야기를 통해 불쑥 차용한다는 점에서 더욱 드라마처럼 느껴졌다. 소설 속 이야기들이 너무나 거짓말 같은데 그래서 더욱 진짜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이렇게 덜컥 통일이 이루어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는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을 선정, 월간 ‘현대문학’ 지면에 선보이고 이것을 다시 단행본 발간으로 이어가는 프로젝트이다. (책날개 참고)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 선은 현재 021권까지 발행되었고, 30권까지 예정되어 있다. 어떤 출판사에서 이렇게 앙큼(!) 발랄한 책을 시리즈로 묶어놓았나 찾아보았더니 좋아하는 미래엔 출판사의 성인 단행본 브랜드 중 하나였다. 미래 엔에는 와이즈베리, 북폴리오, 현대문학이 속해 있다. 소설을 잘 알지 못할 때는 양질의 인문 서적을 출간하는 와이즈베리를 좋아했지만, ‘서독 이모’를 알게 된 이상 현대문학의 핀 시리즈에 관심 갖고 챙겨보려 한다. 다음 책은 017 이승우의 캉탕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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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고 또 읽기/인문2020. 1. 20. 23:57

[2020-02 / 인문 에세이]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강상중. 노수경 옮김. 사계절. (2017)


일에 치이던 지난 연말 ‘왜 나는 매일 일하고 있는데 매일 일에 쫓기는가’에 대한 고민이 가득할 때 이 책이 눈에 띄었다. 저자 ‘강상중’은 재일 한국인 2세대로 재일 한국인 최초로 도쿄대학 정교수가 되었고, 현재 구마모토 현립극장 관장 겸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저자의 이름이 낯익다고 생각했는데 몇 년 전 나쓰메 소세키를 소개하는 책에서 만난 적이 있는 작가였다. 자기 계발서 같은 뻔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고전, 인문과 역사 속에서 일의 의미를 스스로 찾아보라는 조언이 좋았다. 목차부터 깔끔하게 정리되어 책의 내용이 한눈에 들어오는 점도 좋았다. 비슷한 느낌의 책으로 사이토 다카시의 3으로 생각하라, 혼자 있는 시간의 힘, 유연한 지성의 단련법 등이 오버랩되었다. 일본인 특유의 분위기일 수도, 교육을 가르치는 교수님의 깊이일 수도.


바쁨과 아픔에 쫓겨 나를 잃어버렸다가 다시 정신 차리기 위해 이 책을 찾아갔다. 하지만 금세 또 일을 만들어 분주해져 버렸고, 지난 연말 동안 느꼈던 절실함은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도 이 책은 좋은 책이 분명하다. 생계유지만을 위해 주어진 업무를 적당히 때우는 식의 일을 원한다면 이 책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삶의 의미나 살아가는 이유, 일의 본질 같은 것을 고민해본 적이 있다면 꼭 한 번쯤 읽어볼 가치가 있다. 이상을 좇으며 일할 수 있는 나의 삶, 선택과 책임 같은 것을 나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내 인생에 감사한 마음이 들게 만드는 책이었다.


중압감에 짓눌리지 않기 위한 처방전 : 하나의 영역에 자신을 100% 맡기지 않겠다는 태도. 일에 임하는 자세도 그렇고, 삶의 방식도 그렇습니다. 하나의 일에 전부를 쏟아붓지 않는 것, 스스로를 궁지로 내몰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47)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움에서 창조성이 생겨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할 사람도 있겠지요.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원래 인간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있는 그대로의 타자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을 다시 있는 그대로의 타자에게서 인정받아야 합니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통해 성립되는 사회는 본래 그러해야 합니다. 있는 그대로 존재하면서 동시에 상호 자유롭게 개방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위축되었던 창조성의 문 또한 열릴 것입니다. (63)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중 : “그대에게 해로운 사람이 품은 생각과 그 사람이 그대에게 품게 하려고 하는 생각을 품지 말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물을 보라”(4장 2절) (197)


‘자연스럽게’ 사는 삶이란 내게 맞는 일이 과연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에 따라 목표를 세우고 스스로가 납득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삶입니다. 일을 통해 사회라는 공공의 장으로 ‘들어가라’고 권한다. ‘나가라’가 아니라 ‘들어가라’라는 표현을 통해 저자는 공적 영역의 ‘시코토’ 밖에 훨씬 더 넓고 다양한 가능성을 품은 일과 삶의 영역이 펼쳐져 있음을 시사한다. 폭넓게 배우고 더 큰 기회를 얻기 위해 먼저 사회로 들어가라고,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나’를 새롭게 발견하라고 말한다. (228)


-로빈슨 크루소 -나스메 소세키 ‘산시로’ -피터 드러커 매니지먼트-칼 폴라니 거대한 전환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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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76 / 경제경영. 마케팅] 아웃사이드 인사이트. 욘 리세겐. 안세민 옮김. 21세기북스. (2019)


빅데이터로 불리는 축적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하여 나에게 유의미한 정보로 활용해야만 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메세지를 주는 이 책. 내부 데이터도 중요하지만, 외부 데이터를 얼마나,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흥망성쇠가 변화하는 모습을 블랙베리와 아이폰, 코닥과 인스타그램,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등으로 제시한다. 넘쳐나는 정보망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막연했는데 저자가 제시하는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시대의 변화와 흐름을 예측하는 방법을 알 수 있다.


하루에 만 보를 걸으면 100원을 얻을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캐시 워크를 사용하지 않는 20대~40대가 있을까? 하루에 고작 100원이지만 공짜는 좋으니 핸드폰을 무한 흔들어 걸음 횟수를 올리기도 하고, 한두 걸음을 더 걷기도 한다. 그러한 데이터가 쌓여 어떻게 이용되는지는 알지 못한 채 나의 걸음걸이는 하나의 데이터 사례로 적용되어 사용되겠지. 핸드폰이나 패드, 인터넷이나 전자기기를 활용하는 모든 활동에는 자취가 남고, 그것을 통계자료로 활용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신기함이 한 해가 바뀔 때 나이 한 살 먹기 싫지만 먹을 수밖에 없듯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공포로 다가왔다. 무의미한 SNS 활동을 줄이고, 의미를 만들어가는 활동을 쌓아가야겠다. 이용당할 수밖에 없다면 역이용하는 선택을 해보는 것도 좋을 테니까.


기업 경영은 복잡한 활동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언제나 당신과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 있다. 그들이 갖는 자신감, 열정, 신념이 미래의 사업 성과에서 언제나 가장 중요하다. (62)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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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고 또 읽기/문학2019. 12. 30. 23:19

[2019-77 / 기타] 맛의 기억. 권여선 외. 대한출판문화협회.(2019)



어릴 적 엄마가 해주신 음식 중 가장 기억나는 건 정어리 찌개이다. 맛이 좋고 나쁨을 떠나서 꽤 자주 먹었던 기억이 난다. 정어리 통조림을 꽁치찌개처럼 끓인 정어리 찌개는 통조림 생선 특유의 식감, 생선 가시를 혀로 살살 녹이는 맛이 좋았다. 그 시절 우리 집 식단은 맞벌이 부모가 손쉽게 끼니를 때울 수 있는 김치찌개, 카레, 곰탕 등이 전부였다. 손이 많이 가는 김밥 같은 건 언감생심. 김밥보다 손쉬운 유부초밥도 먹어본 적이 없다. 그저 엄마가 익숙하고 빠르게 준비할 수 있는 것들을 먹곤 했다.


엄마의 퇴근이 늦은 날엔 가까운 곳에 사는 이모 댁에 일부러 찾아가 저녁을 먹었다. 이모 댁에서 먹는 밥은 늘 맛이 좋았다. 정말, 밥부터 맛이 달랐다. 뛰어난 음식 솜씨 따위 필요치 않은 그저 밥에 불과한데도, 우리 집에서 매일 먹던 그것과 차이가 커서 이모네에서 식사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너무 오래 끓여 배춧잎이 흐물거리는 우리 집 김치찌개와는 비교할 수 없는 맛. 이모네에서 먹던 음식이 특별한 요리는 아니었다. 흔히 말하는 집밥, 그 정도다. 갓 지은 따끈한 밥과 엿기름이 섞여 달곰하고 고소한, 깔끔하게 똥을 발라낸 매콤한 멸치볶음, 퍽퍽한 목살 같은 돼지고기와 감자 등을 넣고 은근하게 끓여낸 고추장찌개, 갓 구워낸 고등어나 꽁치구이, 슴슴하고 부들부들한 무나물, 김과 김치. 밥과 찌개에 3~4개 정도의 정갈한 반찬, 그리고 식탁 앞에서 내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나를 지켜봐 주셨던 이모. 그 시절 그 순간에는 맛있는 음식과 이모가 있었다. 이모는 늘 내가 밥 먹는 모습을 지켜보셨다. 그러면서 사는 이야기나 동네 사람들 이야길 하셨다. 501호 누구는 어쩌고, 이모 동창 누구 딸이 어쩌고. 지금은 전혀 기억나지도 않고 기억할 수도 없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다 보면 이내 머리가 아파져 왔다. 가끔은 그런 행위들이 이모께서 차려주신 밥을 먹고 지불해야 하는 비용처럼 느껴져 습관적 맞장구가 피곤할 때도 있었지만, 아직도 여전히 엄마밥보다 이모밥이 그립다.


C와 함께할 땐 거의 맛집을 찾아다녔다. 내가 찾았다기보다는 그쪽에서 늘 데이트 코스를 준비해왔다. 스파게티나 피자, 커피숍 등 ‘데이트’라고 불릴만한 메뉴가 대부분이었고 그와 함께 다녔던 곳은 다 맛이 좋았다. 그는 맛뿐 아니라 멋에도 관심이 있었다. 우리는 취향도 잘 맞았다. 음악회를 다녔고, 미술관을 다녔다. 그는 첫 연애였고 나도 그와 다를 바 없었다. 우리는 영혼의 단짝인 줄 알고 열렬하게 사랑했지만, 열정적으로 타오르던 불씨는 금세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C와 함께했던 맛집을 더는 찾아다니지 않는다.


B와 함께할 땐 늘 고기를 먹었다. 함께한 시간 동안 다른 메뉴를 먹은 기억이 거의 없다. 고기와 커피, 그게 전부다. 회, 주꾸미, 소고기, 삼겹살 등 다양한 고기류를 섭렵했고, 그중에 제일은 삼겹살이다. 삼겹살을 유난히도 부르짖던 그 사람, 우리의 마지막 식사도 삼겹살이었다.


N과 함께 식사를 ‘즐기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365일 언제나 다이어트를 하고 있었기에 어떤 음식이든 개미 눈곱만큼 먹었고, 배부르다며 절반 이상 남기곤 했다. 남겨진 음식이 보기 싫었던 나는 언제나 찬반 처리반이 되었다. N과 함께 식사하면 종종 배부른 불쾌감이 들곤 했다. 이럴 거면 차만 마시고 헤어질걸. 어떤 메뉴든 가리지 않고 먹질 않았기에 맛있는 음식을 먹는 즐거움 같은 걸 느껴본 기억이 없다. SNS에 공유된 N의 데이트 사진에는 언제나 맛있게 먹었고, 배부르다는 글이 남겨있지만, 그가 정말 맛있게 배부르게 먹었을지, 뭔가 먹긴 하는 건지 늘 궁금하다.


사람과 맥주를 좋아하는 J 덕분에 수제 흑맥주의 맛을 알아버렸다. 이전에도 기네스나 코젤 다크 같은 진한 흑맥주를 좋아하는 나의 취향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J 덕분에 흑맥주의 스펙트럼이 넓어졌다. 스타우트에는 브라우니와 올리브가 참 잘 어울렸다. 속상할 때 꿀꺽꿀꺽 마시는 술 말고 기분 좋게 홀짝이는 맥주의 맛을 알게 되었다. J와 자주 만나지 않는 요즘은 맥주 따위와 멀어진 지 오래다.


K가 소개하는 곳은 전부 기념할만하다. 음식점이나 예쁜 공간, 전시회 등 영감을 받을만한 핫플레이스를 상당히 구체적으로 분류하여 정리하고 있고, 이따금씩 소개해준다. 가장 좋았던 곳은 이디야 커피랩이다. 보급형(?) 프랜차이즈 커피 본사가 뭐 얼마나 하겠나 싶은 마음으로 방문했지만, 그 후 다른 지인과 세 번을 더 방문했다. 맛과 멋 분위기 모두 굉장한 공간이었다. K가 소개하는 곳은 무조건 좋다. 공간이나 음식 맛이 주는 매력도 상당하지만, 사실 K와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좋다.


평소 간단하게 때우는 식사를 하는 편이다. 어릴 적부터 길들여진 식습관 덕분에 삼시 세끼 같은 음식을 먹어도 상관이 없다. 한솥 가득 끓인 청국장에 밥 말아먹고, 두부나 고기류를 넣어 한 번 또 끓이고, 남은 국물에 라면을 넣어 또 먹는다. 내게 식사란 배고프지 않기 위해 먹는 것이지만, 사람이 더해지면 의미가 달라진다. 맛이 우선순위인 상대방과 함께라면 나도 맛 좋은 음식을 먹게 된다. 역시 내겐 맛보다는 ‘함께’가 먼저다. 좋은 것을 함께하고 싶은 마음, ‘너와 내가 함께한 시간이 만족스럽다.’가 ‘맛있다’로 기억된다. 이런 걸 푼크툼이라고 칭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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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서울 국제도서전의 ‘리미티드 에디션’ 맛의 기억은 권여선, 김봉곤, 박찬일, 성석제, 안희연, 오은, 이승우, 이용재, 이해림, 정은지 이상 10명의 작가가 ‘맛’을 모티브로 쓴 글을 엮었다. 각양각색 작가들의 글을 읽다 보니 ‘나의 맛의 기억’도 기록하고 싶어 졌다. 그런 의미에서 참 재미있는 책이다. 그중 이승우라는 작가에게 관심이 갔고 조만간 이승우의 소설을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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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19. 12. 29. 14:26

[2019-75 / 에세이] 소설가의 일. 김연수. 문학동네. (2014)

소설가 김연수에 대하여 알고 있지만 읽은 책은 에세이 한 권이 전부이다. ‘지지 않는다는 말(마음의 숲, 2012)’을 읽으며 한국인 하루키처럼 느껴졌지만 하루키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으므로 김연수의 소설도 읽고 싶단 생각을 하지 않았다. 독서 모임에서 함께 읽는 도서로 선정되어 별 기대 없이 읽어낸 이 책은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김영사, 2002)’도 생각나고, 예전엔 까칠한 연예인 같았지만 이제는 옆집 아저씨 수더분하고 푸근하게 느껴지는 성시경도 생각났다. 김연수 아재의 수다스러움, 유쾌함 같은 게 느껴져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소설가의 삶이 궁금하지도 않았고 소설을 쓰고 싶은 마음도 없지만, 책을 읽으면서 작가와 함께 대화를 나누고 싶고 친해지고 싶고 글을 쓰고 싶어졌다. 할 말 많지만, 내 글을 쓰고 싶어졌으니까 아껴야겠다. 연륜과 글발, 내공이 전해지는 소설가의 에세이. 역시 글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나도 계속 쓸 것이다.)
오랜만에 꽤 많은 발췌를 남겼다. 다 기억할 수 없으니 기록을 열심히 해야겠다. 김연수 작가님처럼 잘 쓸 수 없을 테니 자꾸 자주 오래 궁둥이를 붙여야겠다.


훌륭한 소설가가 되려면 원숭이보다 지혜로워서는 안 된다. (39)

무기력은 현대인의 기본적 소양이다. (53)

이 삶이 멋진 이야기가 되려면 우리는 무기력에 젖은 세상에 맞서 그렇지 않다고 말해야만 한다. 불안을 떠안고 타자를 견디고 실패를 감수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지금 초고를 쓰기 위해 책상에 앉은 소설가에게 필요한 말은 더 많은 실패를 경험하자는 것이다. (54)

소설은 허구이지만, 소설에 푹 빠진 독자가 느끼는 감정은 허구가 아니다. 그게 다 핍진한 문장이 받쳐주기 때문이다. 어떻게 캐릭터를 만들고 플롯을 짜는가가 모두 이 핍진성에 기초한다. 여기까지가 이해됐으면 이제 소설가의 일은 서론이 끝난 셈이다. (84)

서사적으로 말해서 우리는 인생을 두 번 산다. 처음에는 그냥 닥치는 대로 살고, 그다음에 결말에 맞춰서 두 번의 플롯 포인트를 찾아내 이야기를 3막 구조로 재배치하는 식으로 한번 더 산다. (91)

흔한 인생을 살아가더라도 흔치 않은 사람이 되자. 미문을 쓰겠다면 먼저 미문의 인생을 살자. (174)

그렇지만 삶이 변하기 때문에 친구들과 헤어질 수밖에 없어요. 우리가 삶이 변하고 감정이 변하면 사랑했던 사람과도 헤어지잖아요. 같이 갈 수 없는 연인도 있고 친구도 있고 독자들도 있고요. 그 대신 다른 사랑과 다른 우정이 시작되는 거잖아요? 예술가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인정과 사랑에 얽매이면 안 되는 거죠. (201)

30초 안에 소설을 잘 쓰는 법을 가르쳐드리죠. 봄에 대해서 쓰고 싶다면, 이번 봄에 어떤 생각을 했는지 쓰지 말고, 무엇을 보고 듣고 맛보고 느꼈는지를 쓰세요. 사랑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쓰지 마시고, 연인과 함께 걸었던 길, 먹었던 음식, 봤던 영화에 대해서 아주 세세하게 쓰세요. 다시 한번 더 걷고, 먹고, 보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은 언어로는 직접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우리가 언어로 전달할 수 있는 건 오직 감각적인 것들뿐이에요. 이 사실이 이해된다면, 앞으로 봄이 되면 무조건 시간을 내어 좋아하는 사람과 특정한 꽃을 보러 다니고, 잊지 못할 음식을 먹고, 그날의 날씨와 눈에 띈 일들을 일기장에 적어놓으세요. 우리 인생은 그런 것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그렇다면 소설도 마찬가지예요. 이상 강의 끝. (218)


내게 노래는 추억 저장고와 같다. 가사나 멜로디도 좋지만, 내겐 그보다 더한 의미가 나를 휘감는다. 노래와 함께한 그때 그 시절 나의 이야기들이 함께 묶여 옛 생각에 머무르게 한다. 성시경의 ‘거리에서’도 그중 하나다. 2006년인가 2007년 가을~겨울 때쯤, 함께 걷던 홍대 뒷골목, 계란 하나를 톡 깨어 넣어 먹었던 순두부찌개, 함께 좋아하던 초겨울의 정동길, 첫눈을 맞으며 설레었던 기억. 그런 소소한 추억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따라라라란 따라라란~ 네가 없는 거리에는....’ 전주와 첫 소절만 들려와도 그때 그 사람 생각이 난다. 벌써 10년이 훌쩍 지나버렸다. 그 사람은 이제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 살고 있겠지. 나를 기억하려나.

요즘은 성시경의 ‘태양계’를 즐겨 듣는다. 무한반복 재생으로 흘러가는 나의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한다. 이제는 감성 따위에 치우치지 않는 치열한 중년을 살아내야 하는 나이지만, 뭐 어떠랴. 주어진 순간을 치열하게 사는 게 각자의 인생일 테니. 이게 내 인생이니까 노래로 추억을 기록한다.


성시경 - 태양계

나의 사랑이 멀어지네
나의 어제는 사라지네
태양을 따라 도는 저 별들처럼 난
돌고 돌고 돌고
그대를 향한 나의 이 어리석은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머물지 못하는 내 두 눈에 고인 눈물이 흐르네

나의 사랑은 떠나갔네
나의 어제는 사라졌네
지구를 따라 도는 저 달 속에 비친
너의 얼굴 얼굴
그 얼굴 위로 흐르던 너의 미소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머물지 못하는 내 두 눈에 고인 눈물이 흐르네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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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74 / 에세이] 서점의 온도. 류얼시. 김택규 옮김. 유유 출판사. (2019)


책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던 시기에 만난 두 책이 묘하게 닮아있다. ‘서점의 온도(유유 출판사, 2019)’와 ‘만 권의 기억 데이터에서 너에게 어울리는 딱 한 권을 추천해줄게(21세기 북스, 2019)’가 그것이다. ‘서점의 온도’는 중국 광저우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저자의 에피소드를 담고 있고, ‘만 권의 기억 데이터에서 너에게 어울리는 딱 한 권을 추천해줄게’는 일본 서점에 근무하는 저자의 소설 같은 에세이이다. 일본 서적 번역본은 종류와 장르가 다양해서 그들의 사고방식이나 내용 구성 등이 낯설지 않았고, 흥미로웠다면 중국 서점의 에피소드를 담은 ‘서점의 온도’는 낯설어서 관심이 갔다. 몇 년 전 와이즈베리 출판사 서포터즈를 하며 출판사 관계자님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일본 번역서는 많이 접할 수 있는데, 중국을 포함한 다른 동아시아 지역의 서적을 볼 수 없으니 많이 번역해달라고 건의(?)한 적이 있었다. 그 후로 중국 번역서를 종종 만나왔지만, 그들의 문화 자체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인지 재미있게 읽은 건 몇 권 안 되는 것 같다.


서점의 온도는 나의 중국에 대한 특별한 로망을 해소해주는 책이었다. 중국 광저우에서 24시간 운영하는 독특한 서점 1200북숍의 이야기이다. 중국과 우리나라의 생활 문화 자체가 달라서 에피소드도 상상 이상의 경험이었다. 저자의 이야기가 중국 내 보편적으로 겪을 수 있는 이야기인지, 저자만의 특별한 경험인지 알 수 없지만,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로 동경하던 중국에 대해 조금 더 알 수 있어 즐거웠다.


한동안 유유 출판사의 책을 기피해왔다. 요즘은 공부하듯 읽는 책이 끌리지 않았기 때문인데, 오랜만에 만난 유유 출판사의 발랄함이 좋았다. 다시 책에 대한 관심을 한 발짝 나아가게 해 준 것 같아 반가운 책. 광저우의 1200북숍을 꼭 한번 가보고 싶다. 중국 서점원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추천·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취업 자리를 제공하고 그들이 자아실현을 하도록 돕는 것, 이것이 타이완인이 지닌 인간미이자 내가 타이완에서 감동을 받은 점이었다. (126)


이것은 아마도 운명이겠죠. 하늘은 시련을 내려 인생이 좀 더 공평해지게 하니까요. (142)

 

운명은 누구도 편애하지 않는다. (164)


큰일이 눈앞에 닥쳐도 계속 살아가야 하고 어떻게든 방법은 있게 마련이다. (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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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73 / 어린이. 동시] 매미가 고장 났다고? 푸른 동시 놀이터 엔솔러지 제3집. 강나래 그림. 푸른 책들. (2019)


환경, 평등, 교육, 인성 등 의미 있는 어린이 책을 출간하는 푸른 책들 보물창고 출판사에서 동시 농사(?)를 정리하는 푸른 동시 놀이터 엔솔러지 제3집을 출간했다. 2018년 1월부터 2019년 8월까지 ‘푸른 동시 놀이터’ 블로그에 38명의 기성 시인들이 신작 동시로 모였고, 5명의 새로운 시인들이 신인 추천작으로 함께하여 100편에 가까운 동시 모음집이 만들어졌다.

 


어른의 시선으로 동시를 읽으며 요즘 작가들이 바라보는 아이들의 감성과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환경, 입시(공부) 같은 내가 어릴 적에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주제들의 동시도 있어서 과연 우리가 사는 공간이 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시는 어렵지만, 동시는 좋다. 정확하게는 동시조를 좋아한다. 이해하기 쉽고, 맑고, 함축적인 의미까지 담겨있어 가볍지만 깊이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기대하고 넘긴 이 책은 동시 작가들을 위한 결과보고서 같다. 좋은 음식도 한꺼번에 많이 먹으면 탈이 난다. 작가 소개나 그 동시를 쓴 이유 같은 걸 알지 못 한 체 마냥 읽고 있다 보니 동시 작가들이 서로를 격려하기 위해 만든 출판물 같은 느낌도 든다.

 


어린 시절 내게 동시란 일기 쓰기 숙제를 하기 싫을 때 때우는(?) 용도였다. 일주일에 3~4번씩 써야 하는 일기를 쓰기 싫을 때 짧고 쉽고 감정을 요약하는 글을 쓰는 희열이 있었나 보다. 일기장 속에 등장하는 동시가 제법 많았다. 동시라고 이야기하기 부끄러울 만큼 내용은 유치하고 오글거리지만, 그 시절 나도 동시를 즐겼던 것 같다. 요즘 아이들이 동시를 대하는 방식은 나의 어린 시절과 다른 것 같다. 요즘은 일기 쓰기 숙제 자체가 많지 않다. 더 다양한 할 일과 과제들로 요즘 어린이들은 바쁜 하루를 보낸다. 그리고 나선 핸드폰이나 패드 속 영상에 심취하여 새로운 세상을 탐험한다. 어린 시절 내게 동시 쓰기란 그 시절 내가 즐기던 상상 놀이터였다. 동시를 즐기는 즐거움을 아는 어린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읽을거리를 찾아 읽고 싶고, 무겁고 두꺼운 건 싫을 때 한 두 편씩 읽으면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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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고 또 읽기/문학2019. 12. 17. 13:31

[2019-72 / 고전] 좁은 문. 앙드레 지드. 조정훈 옮김. 더클래식. (2017)


은희경의 ‘빛의 과거(민음사, 2019)’에서 등장인물 이동휘가 주인공 김유경에게 했던 말 중에서 자신은 사실 ‘브론스키보단 제롬에 가까웠다’는 말에 꽂혀 제롬이 주인공인 소설을 검색하였고, ‘좁은 문’을 읽게 되었다. 브론스키가 화려하고 열정적인 사랑을 좇는 사람이라면 제롬은 지고지순하고 끈질긴 인물일까 싶은 단순하고 단편적인 생각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좁은 문은 가벼운 연애 소설이 결코 아니었다) 청소년 권장 도서라는데 어느 부분이 청소년이 꼭 읽고 이해하고 넘어갈 부분인지, 주의해서 알아채야 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어렵고 버거웠다. 재미있는 소설을 읽을 때 느낄 수 있었던 긴장감 같은 것은 하나 없고, 고구마처럼 답답해서 책장을 넘기기 어려웠다. 이것은 마치 얼마 전 읽었던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나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읽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한 사람 특히 여성의 자유로운 연애 같은 건 보장되지 않은 100년 전의 생활 모습이 느껴졌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크고 넓은 길은 멸망으로 인도하나니 그리로 가는 자가 많음이라. 하지만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과 길은 좁으니 그것을 찾는 자가 적음이라. (25)


내가 행하는 모든 미덕이 모두 그를 기쁘게 하기 위한 것이지만 그의 곁에 서면 나의 미덕이 파괴되는 느낌이 든다. (178)


2019년을 사는 나는 절대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150년 전의 삶. 불만에 가득 차 있는 시기를 보내고 있는 요즘이지만, 이 역시 100년 전 어떤 여성도 누리지 못한 여유와 자유였으리라. 지금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어려운 책 한 권을 읽어냈다. 불과 100년 전 소설과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를 돌아보며 지금의 우리를 이해할 수 없는 100년 후 사람들의 모습이 문득 그려졌다. 100년 전 소설 속에 등장하는 모습들이 옳지 않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어떤 기준으로 지금이 옳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과연 잘 가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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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70 / 에세이] 만 권의 기억 데이터에서 너에게 어울리는 딱 한 권을 추천해줄게. 하나다 나나코. 구수영 옮김. 21세기북스. (2019)


책을 소개하는 책 읽기를 나름 즐겼었나 보다. 기억하는 첫 책은 ‘서재 결혼시키기(지호, 2002)’이다. 한 연인이 결혼을 앞두고 서로의 책을 어떤 방식으로 정리할 것인가를 다룬 이야기이다. 겹치는 책을 버릴 것인지 놔둘 것인지, 어떤 기준으로 정리할 것인지 서로 다른 두 사람의 책장을 합치는 과정에서 벌어진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엿보는 소소한 재미가 있었다. 그 책에 등장하는 책은 한 권도 읽어본 적도 없고 이젠 기억나지도 않지만, ‘남들은 책을 대하는 방식’ 같은 것이 궁금했고 나와 비슷한 점과 차이점을 알아가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만 권의 기억 데이터에서 너에게 어울리는 딱 한 권을 추천해줄게’는 독특한 제목에 끌려 읽게 되었다. 읽어보진 않았지만, 익히 들어본 긴 이름의 제목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책 세상, 2005)’처럼 제목이 주는 아우라에 끌렸다. 이 책은 -기업 문화가 있는 조금 특별한- 서점에서 일하던 한 여성이 만남 사이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책을 추천하는 경험을 쌓아가며 세상과 사람, 자신을 대하는 방법을 알아가며 용기 내고 도전하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이다. 당시 이혼 조정 중이던 저자는 현실도피의 수단으로 자신을 알지 못하는 타인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위안을 얻었던 것 같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행위를 통해 세상과 관계하는 방법을 알아가고 용기를 내고, 새로운 직장을 찾아가며 전남편과 이혼하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는 것으로 책이 마무리된다.

사람들에게 책을 소개하는 특별할 것 없는 내용인데 책을 읽는 내내 뭉클하고 울컥했다. 그녀가 문제의 상황에 직면하지 못 한 체 타인에게 책을 소개하며 갖는 생각들이 지금의 내 모습 같았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 역시 중요한 게 뭔지 알지 못 한 체 주변만 방황하고 있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끝이 없는 쳇바퀴를 돌고 있는 기분이다. 그래서 그녀가 차근히 해결해가는 과정에 마음이 놓였다. 이 이야기는 소설이 아니고 에세이니까 그녀의 삶이 앞으로 어떻게 흘러가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책의 내용이 끝나는 즈음 한 단계 넘어섰음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책을 읽는다고 해서 당장 내 삶에 해결될 건 없지만, 저자의 삶에 감정 이입되었다. 그녀가 도전하고 해낸 것처럼 내 삶도 한 걸음 나아가게 되길.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할 때는 자유로운 삶의 방식을 고르렴. (...) 할아버지의 경야에 참석하지 않는 선택을 할 수 있다면, 그보다 못한 선택지가 내 앞에 놓일 때 망설이지 않고 자유로운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으리라. (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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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고 또 읽기/문학2019. 11. 23. 21:34




[2019-68 / 한국소설] 빛의 과거. 은희경. 문학과 지성사. (2019)

어느 순간 나는 그녀에게서 나의 또 다른 생의 긴 알리바이를 보았던 것이다. (13)

혼자라는 건 어떤 공간을 혼자 차지하는 게 아니라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익명으로 존재하는 시간을 뜻하는 거였다. (84)

그동안 자기 자리가 아닌 곳에 가지 않고 모르는 것에 대해 말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왔던 오현수는 모르는 것이 거의 다라는 생각을 하나 더 보태게 되었다. 그녀에게는 그것이 다른 조건을 가진 삶에 대한 존중의 한 방식이었다. (264)

그녀는 깨어 있는 것과 행동하는 것 모두 중요하다고 말한 뒤 깨어난 사람은 누구나 행동해야 할 책임이 있으며 그 책임을 회피한다면 언제까지나 주인 된 세상에 살지 못하고 남의 세상에 억지로 적응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267)

우리가 아는 자신의 삶은 실제 우리가 산 삶과는 다르며 이제까지 우리 스스로에게 들려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334)

어차피 우리는 같은 시간 안에서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들이었고 우리에게 유성우의 밤은 같은 풍경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 책에서 말하듯 과거의 진실이 현재를 움직일 수도 있다. 과거의 내가 나 자신이 알고 있던 그 사람이 아니라면 현재의 나도 다른 사람일 수밖에 없다. (335)

문학소녀(?) 가 되고 싶던 20대 후반에 열심히 챙겨보던 은희경 작가가 신간을 냈다. 마지막으로 본 게 ‘새의 선물’,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이니 꽤 오랜만이다. 한동안 소설 같은 걸 읽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사실 그런 건 나 하기 나름인데.. 사실 소설을 멀리했던 건 핑계다. 열심히 먹고사는 사람 코스프레가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아무튼 무슨 바람이 불어 은희경 작가의 신작을 만났다. 인물 심리묘사가 가득한 여성여성한 감정을 건드리는 내 기억 속 은희경 그대로다. 기숙사 같은 건 살아본 적도 없고, 70년대에 대학을 다니지도 않았지만, 작품 속 등장인물이 된 듯 소설에 푹 빠져 읽었다. 은희경 작가의 실제 이야기인지 내 이야기인지 소설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푹 빠져들었다. 등장인물 이동휘의 마음이 궁금해서 ‘좁은 문’을 읽기 시작했다. 내 취향은 제롬보단 이동휘지만.

한없이 철없고 부족하고 어쩔 수 없이 맑은 청춘 나의 이십 대 초반이 떠올랐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삶에 찌든 지금이 오버랩되었고. 건조한 가장의 무게만 가득한 내게도 여성스러운 감성이 아직 남아있다는 걸 되새기게 해준 ‘빛의 과거’, 참 좋았다. 역시 은희경. 대세 김금희보단 은희경의 연륜과 탄탄함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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