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2019-54 / 에세이] 자기만의 침묵. 엘링 카게. 김민수 옮김. 민음사. (2019)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선 침묵을 지켜야 한다.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122)





'자기만의 침묵'은 극지 탐험가 엘링 카게의 침묵 체험기이다. 쫓기고 눈치 보고, 견제하느라 더욱 열심히 일에 매진하는 요즘의 내게 꼭 필요한 것이 바로 나만의 고요한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불쑥 쳐들어오는 외부의 횡포(?)에 맞설만한 나만의 무기를 챙기는 것. 적당한 거리와 방패, 여유로운 마음가짐이라는 무기를 확보해야 한다. 침입 따위 불편하지 않은 보통 사람이라면 그따위는 필요 없겠지만, 부쩍 뾰족하고 예민한 요즘의 나에게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는 것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은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다.



무더운 여름날에 찾아온 짜증과 화와 넘치는 업무에서 벗어나 나를 찾아야 할 이유를 되새김하게 해준 이 책. 작년 봄 읽었던 게으름의 즐거움(호미출판사, 2003)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골똘히 생각하기를 즐기는 엘링 카게의 에세이는 두서없고, 정돈된 느낌도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내게 ‘나만의 방식으로의 침묵’이 얼마나 필요한지 다시 한번 느끼게 한 책이라 올여름 읽은 책 중 가장 의미 있는 책이 될 것 같다.





두려움은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는 것에 대한 것이다. 그러한 두려움을 회피하려 할 때마다 나한테서 비겁한 악취가 확 풍긴다. (21)

나는 길이 바뀔 때마다 자연도 변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그렇지 않았다. 내 주변 환경은 변함 없이 그대로였다. 변한 것은 나였다. (23)

시간은 과거와 미래로 대비되지 않는다. 시간은 지나가는 경험에 더 가깝거나, 키에르케고르가 말했듯이 "소멸된 연속"에 더 가깝다. 시간은 정지되어 있다. (131)

당신이 경험하는 침묵은 다른 사람이 경험하는 침묵과 다르다는 것을 명심하라.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침묵이 있다. (137)

소리는 움직이고 있는 공기이다. (...) 당신의 뇌 활동은 음악이 이곳과 저곳을 계속 오갈 수 있는 중간 지대에 있을 때 귀 기울이고 싶어 한다. 바로 그때 당신의 뇌가 외부로 확장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146)

내가 침묵에 잠기는 이유는 어쩌면 하루도 안 빠지고 매일 무언가로부터 분리되어 있다는 느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 넘어설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은데, 예술은 내게 그러한 것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좀 더 솔직해지고,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더 몰두하면서 살고, 세상을 차단한다. 그 외에 도움이 될 만한 의견을 조금 보탠다면 나는 장거리 스키 여행으로 기진맥진할 때, 혹은 정말 맛있는 무언가를 먹거나 마실 때 느끼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그럴 때 나는 더 이상 내가 하고 있는 일에서 분리되지 않는다. (150)

Posted by 따듯한 꽃.개

댓글을 달아 주세요



[완독 2019-7 / 고전, 서양 현대고전]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이미애 옮김. 민음사. (2016)

책장을 덮으며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후련함이다. 꽤나 힘겹게 완독 한 이 책은 ‘로맹 가리(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과 늘 헷갈리던 제목, -그리고 이젠 헷갈리지 않을-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다. 얇은 두께인데도 쉽지 않았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 깊게 공감하지 못했다. 수년 전 읽었던 ‘서재 결혼시키기(지호, 2002)’가 생각났다. 좋은 책인 것은 분명한데 저자가 이야기하는 작가와 책에 대한 나의 배경지식이 부족했다. 문맥상 어떠하리라 추측할 수 있었지만, 진정으로 공감할 수는 없었다. 수박 겉핥기에 그쳐 깊게 몰입할 수 없었다. 나의 독서력을 조금 쌓은 후에 다시 보면 다르게 느끼려나.

둘째,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 책 읽는 시기가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요즘은 책 읽기도 쓰기도 다른 무엇도 깊게 몰입하질 못한다. 그래서 자꾸 멈추고, 다시 책장을 열고 반복되는 시간이 쌓이며 재미도 시들해졌다.

셋째, 페미니즘적 사고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나는 그저 개인주의적 사람이었다. 중성적 사고방식을 가진 조금 다른 사람일 뿐이었다. 페미니즘을 논하기엔 나의 지식이 적다. 21세기에 내가 누리는 것은 이전 시대의 여성들은 결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들이다. 이전 시대 성역할이나 평등 같은 건 나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단지 내가 누려야 할 성평등에 관심 있었을 뿐.

나의 무지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좋은 책이다. 2019년에 살면서 적절한 수입과 나만의 방을 가진 지금 이 시간에 감사함을 느낀다. 모든 여성에게 자기만의 방과 연간 500파운드가 보장되기를.


저녁식사를 잘하지 못하면 사색을 잘할 수 없고 사랑도 잘할 수 없으며 잠도 잘 오지 않습니다. (38)

16세기에 시적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여성은 스스로에 대한 투쟁을 벌여야 하는 불행한 여성이었을 겁니다. 그녀의 삶의 모든 조건과 그녀의 모든 본능은, 두뇌에 간과된 그 무엇이든 자유롭게 풀어놓기 위해 필요한 마음 상태에 적대적이었을 겁니다. (82)

Posted by 따듯한 꽃.개

댓글을 달아 주세요


[완독 2019-5 / 소설, 중남미소설] 백 년의 고독 2. 가르시아 마르케스. 조구호 옮김. 민음사. (2000)

두 번째로 읽은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이자, 두 번째로 읽은 노벨 문학상 수상작이자, 두 번째로 읽은 라틴아메리카 작가의 책이다. (첫 번째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은 안나 카레니나(민음사, 2009)였고, 첫 번째로 읽은 노벨 문학상 수상작은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있는 나날’(민음사, 2010)이며, 첫 번째 라틴아메리카 작가의 책은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다산책방, 2017)’이다. -Tmi)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1927년 콜롬비아의 아라까따까에서 태어나 콜롬비아 대학에서 법률 공부를 하다가 정치적 혼란 속에서 대학을 중퇴하고, 기자 생활을 한다. 1954년 특파원으로 파견된 로마에서 본국의 정치적 부패와 혼란을 비판하는 칼럼을 쓴 계기로 파리, 뉴욕, 바르셀로나, 멕시코 등지로 떠돌며 유배 아닌 유배 생활을 했다. 그 사이 여러 책을 발표했고 1982년 ‘백 년의 고독’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 라틴아메리카 대륙이 겪어야 했던 역사의 ‘리얼리티’와 원시 토착 신화의 마술 같은 ‘상상력’을 결합하여 새로운 소설 미학을 일구어낸 작가에게 세계의 문인들은 ‘마술적 리얼리즘의 창시자’라는 헌사를 바쳤다. ‘백 년의 고독’은 시한부 선고를 받은 소설이란 장르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으며, 문학이 21세기에 다시 소생하는 것을 예비하는 작품이다. (책날개 참고)

비교적 빠른 시간 동안 읽었던 1권(약 2주)에 비해 책장을 넘기기가 힘들었던 2권(2주, 기간은 같지만 몰입한 시간의 깊이가 달랐다). 알 수 없이 반복되는 부엔디아 집안사람들의 무기력과 허무함, 무모함 때문이었다. 불편한 마음이 드는 부분도 많았지만, 책 마무리에 ‘마꼰도와 라틴 아메리카의 고독에 대한 탐구’를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힘겹게 넘겼던 책장을 덮을 수 있었다. 여러 시간대를 넘나드는 작가의 서술방식 덕분에 집중하지 않으면 이야기의 흐름을 놓치기 쉬워 책 맨 앞에 있던 가계도를 따로 적어두고 틈틈이 살펴보았다. 마지막 20장을 읽을 때 몰입도는 첫 장을 넘길 때와 비슷한 에너지였고, 왜 그렇게 시대를 넘나드는 복잡한 서술 구조를 사용하였는지 이해가 되면서 소름이 돋았다.

지금 이 시대를 사는 내가 이해하기 힘든 근친상간과 엄청난 성욕(?)을 지닌 부엔디아 가문의 남자들, 생존을 위한 능력치를 지닌 여자들, 그들에게 일어난 허무맹랑한 이야기들. 작가와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 책의 깊이를 좀 더 느낄 수 있으려나. 이 책을 다 읽은 누군가와 대화하고 싶어졌다. 이런 마음 덕분에 수많은 책모임이 만들어지고 유지되고 있나 보다.



아우렐리아노 세군도는 마꼰도를 건설하기 위해 산맥을 넘었던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의 엄청난 과단성, 무익한 전쟁을 이끌어 갔던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의 맹목적인 자존심, 가문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한 우르술라의 무분별한 집요함을 지닌 채, 그렇게 단 한순간도 낙심하지 않고 페르난다를 찾아다녔다. (16)

그러나, 기적소리와 거친 숨소리로 인한 혼란으로부터 안정을 되찾은 주민들은 모두 길로 쏟아져 나와 기관차 위에서 손을 흔드는 아우렐리아노 뜨리스떼를 보았고, 예정보다 여덟 달이나 뒤늦게 마을에 처음으로 도착한, 꽃으로 장식된 기차를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많은 불안과 확신을, 많은 즐거움과 고난을, 많은 변화를, 재난을, 향수를 마꼰노에 실어날라야 했던 그 아무것도 모르는 노란 기차를. (36)

꿈을 꾸신 게 틀림없습니다. 마꼰도에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현재도 일어나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도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여긴 살기 좋은 마을입니다. (157)

그리고 어느 곳에 있든지 과거는 거짓이고, 추억은 되돌아오지 않는 것이고, 지난봄은 다시 찾을 수 없고, 아무리 격정적이고 집요한 사랑도 어찌 되었든 잠시의 진실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할 것을. (286)

가르시아 마르케스 자신이 ‘작가보다 마술사가 되고 싶었다’라고 했던 말은 그가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표현하기 위한 기재로 차용한 마술적 사실주의와 연관이 있을 법도 하다. 마술사처럼 하는 것, 즉 현실을 무한히 확대하고, 현실을 재해석하려는 그의 시도는 ‘백 년의 고독’에서 충분히 탐지되는데, 이 허구적 세계는 마치 창조주가 실제로 눈에 보이지 않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마술에 의해, 마술 속에서, 마술로부터 생성되고 파괴되고 있다. (313)





Posted by 따듯한 꽃.개

댓글을 달아 주세요



[완독 2019- 2 / 소설, 중남미소설] 백 년의 고독 1. 가르시아 마르케스. 조구호 옮김. 민음사. (2000)

읽기의 깊이를 넓혀야겠다고 생각하던 중 지인에게 고전 몇 권을 추천받았다. 그중 덜 부담스러울 것 같은 책을 골랐는데, 가장 난해한 작품을 골랐다는 이야기를 듣고 긴장하며 책장을 넘겼다. 하지만 재미있게 책장을 넘길 수 있었던 이 책, 백 년의 고독. 아직 1권을 읽었을 뿐이지만 이 책에서 느껴지는 특징은 시간이다. 부엔디아 가문에서 100년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 같은 이 책은 시간의 흐름이 왔다 갔다, 복잡한 가족사 전개도 왔다 갔다 하는 와중에 반복되는 강렬한 느낌은 어떠한 상황에도 가정을 지키려 무한으로 노력하는 강인한 여성, 전쟁이나 다른 무엇에 빠진 남성, 되풀이되는 이야기들이 어떠한 상징성을 지니는지, 콜롬비아에서 벌어졌거나 작가의 어떤 경험에서 나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뒷 내용이 궁금해 책장을 덮기 어려웠으니 재미있는 소설임은 분명하다. 소설이 힘든 내게 의미 있고 재미까지 있는 책을 권해준 지인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2권을 펼쳐야겠다.

저자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1927년 콜롬비아의 아라까따까에서 태어나 콜롬비아 대학에서 법률 공부를 하다가 정치적 혼란 속에서 대학을 중퇴하고, 기자 생활을 한다. 1954년 특파원으로 파견된 로마에서 본국의 정치적 부패와 혼란을 비판하는 칼럼을 쓴 계기로 파리, 뉴욕, 바르셀로나, 멕시코 등지로 떠돌며 유배 아닌 유배 생활을 했다. 그 사이 여러 책을 발표했고 1982년 ‘백 년의 고독’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 라틴아메리카 대륙이 겪어야 했던 역사의 ‘리얼리티’와 원시 토착 신화의 마술 같은 ‘상상력’을 결합하여 새로운 소설 미학을 일구어낸 작가에게 세계의 문인들은 ‘마술적 리얼리즘의 창시자’라는 헌사를 바쳤다. ‘백 년의 고독’은 시한부 선고를 받은 소설이란 장르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으며, 문학이 21세기에 다시 소생하는 것을 예비하는 작품이다. (책날개 참고)




“친구, 한 가지만 얘기해 주게, 자넨 왜 전쟁을 하고 있는가?”
“왜라니, 친구. 위대한 자유당을 위해서지” 헤리넬도 마르께스 대령이 대답했다.
“그걸 알다니 자넨 행복한 사람이군. 난 말이야, 자존심 때문에 싸우고 있다는 걸 이제야 겨우 깨닫게 되었네” 그가 말했다.
“그것 참 안됐군” 헤리넬도 마르께스 대령이 말했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친구의 놀란 표정이 재미있었다. “그래. 하지만 어찌 됐든, 왜 싸우는지도 모르는 것보다야 더 낫지”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 말했다. 그는 친구를 쳐다보다가 미소를 머금으며 덧붙였다.
“또 말이야, 자네처럼 그 누구에게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그 무엇을 위해 싸우는 것보단 더 낫지” (205)

Posted by 따듯한 꽃.개

댓글을 달아 주세요



[완독 112 / 에세이]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김혼비. 민음사. (2018)

축구 자체가 어차피 오해와 오해가 촘촘하게 엮여 만들어지는 운동인 게 사실이다. 앞서 아웃사이드 드리블의 최고 강점으로 말했던 “공을 이쪽으로 몰고 갈 것처럼 몸을 기울이는” 것으로, 그러니까 1956년 발롱도르의 첫 수상자이자 드리블로 세계 축구를 평정한 스탠리 매튜스의 말대로 “왼쪽으로 살짝 속이고 오른쪽으로 가는” 페인트들이 피치 위 여기저기서 다양한 형태로 일어나는 게 축구다. 이쪽으로 갈 것처럼 오해하게 만들고는 저쪽으로 도망가고, 이쪽으로 패스하는 척하다가 저쪽으로 패스하고, 골대 왼쪽으로 차는 척하다가 오른쪽으로 차서 골인시키는, 누군가의 오해를 이용해서 원하는 것을 얻는 게임. (75)

에세이는 매력적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책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축구에 전혀 관심 없지만, 호기심 반으로 읽기 시작했다가 최근 읽은 책 중 가장 재밌게 읽은 책이 되었다. 격렬하고 치열한 몸싸움 덕에 남성 중심의 스포츠 같은 축구를 사랑하는 여성들이 아마추어 축구단에 소속되어 벌어지는 이야기. 글 속 상황에 빠져 함께 웃고 울고 안타까워하며 몰입하였다.

‘축구하고 글 쓰고 축구 보고 글 읽는 삶을 살고 싶다’는 저자 김혼비의 글을 계속 읽고 싶다.

Posted by 따듯한 꽃.개

댓글을 달아 주세요




지인에게 추천받아 교토 여행을 계획하며 여행하며 읽으려 고른 책. 무더운 날씨와 꼬이는 일정 등 각종 돌발상황 덕분에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몇십 쪽을 읽고 일상 속에서 읽는 이 책은 처음 생각했던 ‘여행지에서 읽을 가벼운 책’이 아니었다. ‘안목의 성장’의 저자 이내옥은 한국 미술사 연구와 박물관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인 최초로 미국 아시아파운데이션 아시아미술 펠로우십을 수상한, 34년간 국립박물관에서 근무한 우리나라 박물관 발전에 이바지한 상당히 유명한 분이었다. (책날개 참고)

이 책은 백제 역사나 윤두서, 정약용 등의 학문적 가치나 예술성을 알리는 책이라기보다는 ‘박물관에서 반평생을 보낸 사람 이내옥의 이야기’책이다. 비슷한 아우라를 가진 책으로 ‘문장의 온도(다산초당, 이덕무, 2018)’와, ‘내가 사랑한 백제(다산초당, 이병호, 2017)’가 있다. 책 세 권의 느낌이 비슷하지만 이내옥의 책에서 가장 깊은 울림을 받았다. 역사와 미술을 사랑하는 한 사람의 깊이, 우리 것의 아름다움이 짧은 글 하나에도 느껴져 이런 사람들이 지키는 박물관이라면 믿을만하겠다 싶은 마음도 들었다.

교토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읽었더라면 좀 더 깊은 감흥을 느낄 수 있었겠지만 다녀와서 읽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여행하는 동안은 그 순간에 집중하느라 이내옥의 글을 깊이 공감하며 읽지 못했을 것이다. 문장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느끼는 기분, 이 순간이 좋다. 우리 것을 지키는 사람의 소중한 마음과 미래의 내 모습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던 울림이 있는 책이었다.


나는 무엇 하나에 열정을 다해 본 적이 있던가? 먼 훗날 내가 생각하고 추구하는 것들을 쌓아 어떠한 지위나 위치에 올랐을 때, 나보다 어린 세대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춰질까?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회한만 남고, 앞으로 다가올 날을 바라보면 두려움만 가득한 것이 우리의 삶이다. (6)

무담시, ‘괜히’ 또는 ‘아무런 이유 없이’라는 뜻.
다산과 교유하던 백련사 혜장 스님이 마흔의 나이로 숨을 거둘 때, ‘무담시 무담시’를 되뇌며 유언 아닌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알고 난 이후부터 나의 뇌리에는 뜻하지 않을 때 이 무담시란 말이 괜히 떠오르곤 했다. 무담시, 무담시...... (29)

이렇게 소박하고 검소하며 집착 없는 고요함을 추구하는 일본 다도에서 배운 것도 없는 천한 조선 장인이 오랜 숙련과 무심한 마음으로 만든 결과물이 최고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비록 조선 장인들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수행은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61)


우리 모두는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고귀한 존재이다. 그렇기에 진정으로 가치와 품위를 가지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이를 생각하며, 흔적도 없이 사라진 조선의 아름다운 유풍을 그리워한다. (76)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자신의 느낌과 정서, 생각이다. 그런 점에서 결국 예술이란 인간적이고 인간을 지향한다. (157)

인생이란 뿌리도 꼭지도 없이 바람에 떠도는 티끌과 같다. 도연명의 말이니, 우리네 일생 오는 데도 없고 가는 데도 없이 이리저리 날리다가 떨어지는 곳에 하룻밤을 청하는 신세이다. (248)

일본 중세의 승려 요시다 겐코는 굶주리지 않고, 헐벗지 않고, 비바람 맞지 않고 한가롭게 사는 것이 인생의 즐거움이라고 했다. 여기에 병의 고통을 참기 어려우므로 약을 포함하여 이 네 가지가 부족함을 가난이라 하고, 네 가지가 부족하지 않음을 부유하다고 하며, 네 가지 이외의 것을 얻으려 함을 사치라고 했다. (250)

다치하라 마사아키, '겨울의 유산'
이 세상 모든 것은 물거품이요 그림자여라.
나, 오늘 이 육신을 벗고 텅 빈 무로 돌아가노라.
옛 부처의 집 앞에는 달이 밝은데,
다만 원적으로 돌아가지 못함을 한할뿐이로다.

우리는 자유 의지와 상관없이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이니, 우리 생의 본질은 능동적일 수 없으며 타락적이다. 그저 주어진 삶을 살아가다가 생명이 다하면 먼지로 돌아갈 뿐이다. (272)



Posted by 따듯한 꽃.개

댓글을 달아 주세요




[완독 80 / 고전, 문학] 안나 카레니나3. 레프 톨스토이. 연진희 옮김. 민음사(2009)

약 한 달 이라는 기간 동안 이 책을 읽었다. 성인이 된 후 읽은 가장 긴 소설.

고전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읽고 싶다는 생각으로 함께한 사람과 호흡을 놓치기 않기 위한 노력으로 시작했지만, 흡입력있는 내용 전개 덕분에 어느 순간 몰입하여 며칠 밤 잠을 설쳐가면서 생각한 기간보다 빠르게 완독하였다. 수많은 등장인물과 길고 긴 이름, 몇가지의 별명 등 집중을 방해하는 요소들 덕분에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끝까지 놓치지 않았던 이유는 ‘레빈’의 생각과 삶의 전개가 궁금해서이다.

3권의 6,7,8부는 안나와 레빈의 심경변화에 집중되어 있다. 귀족이지만(아닐지도 모른다) 농부의 삶을 존중하고 솔직하고 현명하려고 노력하며 끊임없는 자기분석과 비판을 통해 삶의 무게를 조금 덜어낸 레빈과 아름다운 사람이지만 여성으로서 감정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해 스스로 비극적 결말을 가져온 안나. 전혀 다른 두 삶이 오버랩된다. 레빈이 가장 멋진 인간상으로 나타나있는 8부까지 다 읽고나니 이 소설의 제목이 왜 ‘안나’인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1권, 2권, 3권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성장하는 레빈을 보면서 닮고 싶다고 생각했다. 몇해 전 노자를 읽으며 노자같은 사람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얼마나 멋질까 상상하고 이야기나누곤 했는데, 레빈이 실존인물이라면? 그렇게 모범적이고 바른 사람이 이 사회에 존재할 수있을까.

더 다양한 생각들이 머리를 맴돌고있지만 이쯤에서 마무리하려 한다. 언젠가 시간이 된다면 한 번 쯤 더 읽고 싶다. 최근 읽었던 고전 ‘남아있는 나날’도 생각난다. 소설 속 인물들로 내 생각과 삶을 통찰할 수 있다는 게 고전의 매력일까? 다음 고전은 어떤 매력을 내게 선사할지 기대된다.




손님들을 배웅한 후, 안나는 자리에 앉지 않고 방 안을 이리저리 서성이기 시작했다. 저녁 내내 무의식적으로(최근 그녀가 모든 젊은 남자들에 대해 행동해 왔던 것처럼) 레빈의 마음속에 자신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고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긴 했지만, 자신이 성실한 유부남에 대하여 저녁나절에 할 수 있는 만큼은 그것을 성취했다는 것을 알긴 했지만, 그를 몹시 마음에 들어 하긴 했지만(남자들의 시각에서 보면 브론스키와 레빈 사이에 큰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그녀는 여자의 눈으로 그들에게서 공통점을 발견했다. 키티가 브론스키도 사랑하고 레빈도 사랑했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가 방에서 나가자마자 그녀는 그에 대해 더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323)

지금 이 순간 그는 알았다. 자신의 모든 의심뿐 아니라 자신이 내면에서 인식하고 있던 불가능성, 즉 이성을 통해서는 믿는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생각까지도 자신이 신에게 호소하는 것을 결코 방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 모든 것들은 이제 그의 영혼 속에서 먼지처럼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그 자신을, 자신의 영혼을, 자신의 사랑을 손아귀에 움켜쥐고 있는 듯한 그 존재에 호소하지 않는다면, 과연 누구에게 호소해야 한단 말인가? (334)

두 사람 중 어느 누구도 자신이 화난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상대방이 잘못한 것이라 생각하여 구실이 생길 때마다 상대방에게 그것을 입증해 보이려 애썼다. (397)

어머, 아이를 데리고 있는 거지 아낙이 있네. 저 여자는 자기가 동정받아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우리 모두는 단지 서로를 증오하고 자신과 남을 괴롭히기 위해 세상에 던져진 게 아닐까? (447)

그녀가 웃은 것은, 비록 자신이 아기가 아가피야 미하일로브나를 알아볼 리 없다고 말하긴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아기가 그녀를 알아볼 뿐 아니라 이미 모든 것을 인식하고 이해하며 아무도 모르는 많은 것들, 심지어 어머니인 자신조차 그 아이 덕분에 비로소 깨닫고 이해하기 시작한 것까지 이미 인식하고 이해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가피야 미하일로브나에게, 보모에게, 할아버지에게, 심지어 아버지에게조차, 미챠는 단지 물질적인 보살핌만을 요구하는 생물에 불과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 있어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녀와 정신적 관계의 완전한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정신적 존재였다. (492)

무엇보다 그를 놀라게 하고 실망시킨 점은, 그가 속한 사회의 많은 동년배들이 자기처럼 예전의 믿음을 자신이 가진 것과 똑같은 새로운 신념으로 바꾼 후에도 그 속에서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않은 채 완전한 만족과 평온 속에서 살고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중요한 문제 외에 다른 문제들까지 레빈을 괴롭히게 되었다. 저 사람들이 과연 진실한 걸까? 그들이 거짓 행세를 하는 건 아닐까? 아니면 그를 사로잡는 질문에 대해 과학이 제시하는 해답을 저들이 나보다 더 잘 이해하고 있거나 달리 이해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그는 그 사람들의 견해와 그 해답을 표명한 책들을 열심히 파고들었다. (499)

나는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를 생각할 때면, 레빈은 해답을 찾지 못해 절망에 빠지곤 했다. 하지만 그 문제에 대해 자문하기를 멈추는 순간에는 자신이 무엇인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알 것만 같았다. 왜냐하면 그는 확고하고 분명하게 행동하고 살아갔기 때문이다. 심지어 요즘 같은 때에도 그는 예전보다 훨씬 더 확고하고 분명하게 생활했다. (505)

그는 자기가 잘 처신하는 건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는 지금 그것을 굳이 입증하려 들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그것에 대해 말하거나 생각하는 것도 피하려 했다.
추론은 그를 의심으로 이끌었고 그로 하여금 무엇을 해야할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깨닫지 못하게 방해했다. 그러나 생각하지 않고 살아갈 때, 그는 자신의 정신 속에서 두 가지 가능한 행위 가운데 어느 것이 좋은지 어느 것이 나쁜지 판단하는 완전무결한 재판관의 존재를 계속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마땅히 해야 할 바를 하지 않으면 그 즉시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무엇인지, 자기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위해 사는지 인식할 가능성을 전혀 깨닫지도 보지도 못하면서, 그러한 무지 때문에 자살을 두려워할 정도로 괴로워하면서, 그와 동시에 인생에서 자신만의 고유하고 일정한 길을 굳건하게 개척해 가면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509)




불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그건 귀족들의 일이 아니에요. 우리 귀족들의 일이 이루어지는 곳은 이곳 선거장이 아니라 저기 각자의 사는 곳입니다. 또한 사람들에겐 저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계급적 본능이 있습니다. 난 때때로 농부들을 관찰하는데, 그들도 똑같습니다. 건실한 농부들은 할 수 있는 한 많은 땅을 빌립니다. 땅이 아무리 척박해도, 그들은 계속 갱기질을 합니다. 그들도 이득 없이 그렇게 합니다. 손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 말이죠. (226)



우리도 그와 똑같은 짓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나 역시 이성으로 자연력의 중요성과 인생의 의미를 찾는답시고 똑같은 짓을 했던 건 아닐까?
철학의 이론들은 인간에게 부자연스럽고 기이한 사유 방법을 통해 인간이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것, 그것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을 만큼 너무나 분명하게 알고 있는 것에 대한 깨달음으로 인간은 이끈다 하면서, 사실은 아이들과 똑같은 짓을 했던 게 아닐까? 각 철학자들의 이론 발전을 보면 그들이 농부 표도르 만큼이나 분명히, 아니 표도르보다 더 분명 할 것도 없이 이미 삶의 중요한 의미를 알고 있으면서, 그저 미심쩍은 사유 방식을 거쳐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것으로 되돌아 가려는 것이 분명하게 보이지 않느냐 말이야? (523)

우리는 그저 파괴만 할 뿐이야. 왜냐하면 우리는 정신적인 포만감에 젖어 있으니까. 아이들과 똑같아.
내가 그 농부와 공통으로 가진 그 즐거운 깨달음은, 내기 유일하게 영혼의 평안을 주는 그 깨달음은 어디에서 온 걸까? 나는 그것을 어디에서 얻었던 걸까? (524)

심판은 나의 것, 너는 오직 살지어다. (583)

Posted by 따듯한 꽃.개

댓글을 달아 주세요



[완독 28/ 소설] 남아 있는 나날. 가즈오 이시구로. 송은경 옮김. 민음사.

소설을 잘 읽지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소설을 피하고, 즐겁게 읽지 못하는 이유는 ‘몰입’에 있었나 보다. 등장인물과 소설 속 이야기에 너무나 쉽게 몰입하여 그 이야기에 담긴 이야기나,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를 골
똘히 생각하는 시간이 두려웠을까? 언젠가부터 소설보다는 인문 사회 문화 관련 책만 책장에 한가득 꽂혀있다. 그렇게 소설을 회피하다가 올해 나의 목표 덕에 꾸역꾸역 읽고 있는 이 소설, 작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일본 태생의 영국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대표작, ‘남아있는 나날’을 읽었다.

노년의 영국 집사 스티븐스가 갑작스레 주어진 여유 시간(여행)을 통해 본인의 삶을 되돌아보는 이야기이다. 초반부의 줄거리 - 현재와 과거를 왔다 갔다 하는 부분과 과거 본인이 업무(집사의 일)을 얼마나 노련하게 처리하였는지 설명하는 부분 - 덕분에 헷갈리고 재미없어 같은 구절을 여러 번 읽어나갔다. 소설이 쉽지 않은 내겐 이 책이 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대표작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1/2을 읽고 잠깐 쉬고, 쉽고 유쾌한 소설 ‘시월의 저택’을 읽으며 소설을 대할 때 마음가짐을 다잡을 수 있었고, 마음의 여유를 갖고 나머지 1/2을 도전했는데, 한나절 만에 전부 읽을 만큼 몰입해버렸다.

‘위대한 집사란 무엇인가?’

집사라는 직업이 주는 책임감과 희생,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모습 등은 요즘 즐겨보는 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에서 남자 주인공 최도경네 집의 집사인 ‘민 부장’과 비교해볼 수 있다. 눈에 띄지 않게 집안일 모든 것을 파악하고 대소사를 관리하는 일. 모든 일이 주인의 뜻대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관리 감독하는 일. 드라마 속 집사와 소설 속 집사는 비슷한 듯 다르지만, 도대체 무엇이 그들의 삶을 그렇게 만들었는지 이해할 수 없어 답답했다. (민 부장도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답답한 짓을 하고 있다. 스티븐스도 마찬가지)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데 익숙해져 자신의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인지하지 못한 채, 자기 생각이나 생활 따위 없이 그저 주인을 위해 일하며 주인의 만족에 보람을 느끼는 한 사람. 무식하리만치 묵묵한 주인공 스티븐스는 내가 아는 누군가를 닮았기에 어쩔 수 없는 그의 인생이 안타까웠다. 자신의 삶에 소극적인가 싶다가도 자신과 부친의 삶이 그러했듯,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그저 순응할 수밖에 없었던 충직한 사람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그와 대비되는 인물 켄턴 양과 새 주인 패러데이와 애매하게 관계 맺는 모습을 통해 세상과 타협하지 못하는 내가 보여 부끄러웠다.

노년에 주어진 그 여행을 통해 그는 무언가를 느꼈을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데, 다시 본인만의 삶으로 돌아가겠지. 그저 그 모습이 안타까울 뿐이다.
저녁은 과연 아름다운가?


소설과 내 삶을 비유하여 끈적거리는 무언가를 스스로 느끼게 되기에 명작을 읽는 건가. 겉으로 드러난 쉽고 재미있는 책을 즐겨 읽던 내 독서 습관을 반성하는 의미 있는 책이 된,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 고전이나 문학을 좀 더 관심 갖고 들여다봐야겠다는 마음이 드는 책.




Posted by 따듯한 꽃.개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