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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2019-5 / 소설, 중남미소설] 백 년의 고독 2. 가르시아 마르케스. 조구호 옮김. 민음사. (2000)

두 번째로 읽은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이자, 두 번째로 읽은 노벨 문학상 수상작이자, 두 번째로 읽은 라틴아메리카 작가의 책이다. (첫 번째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은 안나 카레니나(민음사, 2009)였고, 첫 번째로 읽은 노벨 문학상 수상작은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있는 나날’(민음사, 2010)이며, 첫 번째 라틴아메리카 작가의 책은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다산책방, 2017)’이다. -Tmi)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1927년 콜롬비아의 아라까따까에서 태어나 콜롬비아 대학에서 법률 공부를 하다가 정치적 혼란 속에서 대학을 중퇴하고, 기자 생활을 한다. 1954년 특파원으로 파견된 로마에서 본국의 정치적 부패와 혼란을 비판하는 칼럼을 쓴 계기로 파리, 뉴욕, 바르셀로나, 멕시코 등지로 떠돌며 유배 아닌 유배 생활을 했다. 그 사이 여러 책을 발표했고 1982년 ‘백 년의 고독’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 라틴아메리카 대륙이 겪어야 했던 역사의 ‘리얼리티’와 원시 토착 신화의 마술 같은 ‘상상력’을 결합하여 새로운 소설 미학을 일구어낸 작가에게 세계의 문인들은 ‘마술적 리얼리즘의 창시자’라는 헌사를 바쳤다. ‘백 년의 고독’은 시한부 선고를 받은 소설이란 장르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으며, 문학이 21세기에 다시 소생하는 것을 예비하는 작품이다. (책날개 참고)

비교적 빠른 시간 동안 읽었던 1권(약 2주)에 비해 책장을 넘기기가 힘들었던 2권(2주, 기간은 같지만 몰입한 시간의 깊이가 달랐다). 알 수 없이 반복되는 부엔디아 집안사람들의 무기력과 허무함, 무모함 때문이었다. 불편한 마음이 드는 부분도 많았지만, 책 마무리에 ‘마꼰도와 라틴 아메리카의 고독에 대한 탐구’를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힘겹게 넘겼던 책장을 덮을 수 있었다. 여러 시간대를 넘나드는 작가의 서술방식 덕분에 집중하지 않으면 이야기의 흐름을 놓치기 쉬워 책 맨 앞에 있던 가계도를 따로 적어두고 틈틈이 살펴보았다. 마지막 20장을 읽을 때 몰입도는 첫 장을 넘길 때와 비슷한 에너지였고, 왜 그렇게 시대를 넘나드는 복잡한 서술 구조를 사용하였는지 이해가 되면서 소름이 돋았다.

지금 이 시대를 사는 내가 이해하기 힘든 근친상간과 엄청난 성욕(?)을 지닌 부엔디아 가문의 남자들, 생존을 위한 능력치를 지닌 여자들, 그들에게 일어난 허무맹랑한 이야기들. 작가와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 책의 깊이를 좀 더 느낄 수 있으려나. 이 책을 다 읽은 누군가와 대화하고 싶어졌다. 이런 마음 덕분에 수많은 책모임이 만들어지고 유지되고 있나 보다.



아우렐리아노 세군도는 마꼰도를 건설하기 위해 산맥을 넘었던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의 엄청난 과단성, 무익한 전쟁을 이끌어 갔던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의 맹목적인 자존심, 가문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한 우르술라의 무분별한 집요함을 지닌 채, 그렇게 단 한순간도 낙심하지 않고 페르난다를 찾아다녔다. (16)

그러나, 기적소리와 거친 숨소리로 인한 혼란으로부터 안정을 되찾은 주민들은 모두 길로 쏟아져 나와 기관차 위에서 손을 흔드는 아우렐리아노 뜨리스떼를 보았고, 예정보다 여덟 달이나 뒤늦게 마을에 처음으로 도착한, 꽃으로 장식된 기차를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많은 불안과 확신을, 많은 즐거움과 고난을, 많은 변화를, 재난을, 향수를 마꼰노에 실어날라야 했던 그 아무것도 모르는 노란 기차를. (36)

꿈을 꾸신 게 틀림없습니다. 마꼰도에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현재도 일어나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도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여긴 살기 좋은 마을입니다. (157)

그리고 어느 곳에 있든지 과거는 거짓이고, 추억은 되돌아오지 않는 것이고, 지난봄은 다시 찾을 수 없고, 아무리 격정적이고 집요한 사랑도 어찌 되었든 잠시의 진실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할 것을. (286)

가르시아 마르케스 자신이 ‘작가보다 마술사가 되고 싶었다’라고 했던 말은 그가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표현하기 위한 기재로 차용한 마술적 사실주의와 연관이 있을 법도 하다. 마술사처럼 하는 것, 즉 현실을 무한히 확대하고, 현실을 재해석하려는 그의 시도는 ‘백 년의 고독’에서 충분히 탐지되는데, 이 허구적 세계는 마치 창조주가 실제로 눈에 보이지 않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마술에 의해, 마술 속에서, 마술로부터 생성되고 파괴되고 있다. (313)





Posted by 따듯한 꽃.개



[완독 2019- 2 / 소설, 중남미소설] 백 년의 고독 1. 가르시아 마르케스. 조구호 옮김. 민음사. (2000)

읽기의 깊이를 넓혀야겠다고 생각하던 중 지인에게 고전 몇 권을 추천받았다. 그중 덜 부담스러울 것 같은 책을 골랐는데, 가장 난해한 작품을 골랐다는 이야기를 듣고 긴장하며 책장을 넘겼다. 하지만 재미있게 책장을 넘길 수 있었던 이 책, 백 년의 고독. 아직 1권을 읽었을 뿐이지만 이 책에서 느껴지는 특징은 시간이다. 부엔디아 가문에서 100년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 같은 이 책은 시간의 흐름이 왔다 갔다, 복잡한 가족사 전개도 왔다 갔다 하는 와중에 반복되는 강렬한 느낌은 어떠한 상황에도 가정을 지키려 무한으로 노력하는 강인한 여성, 전쟁이나 다른 무엇에 빠진 남성, 되풀이되는 이야기들이 어떠한 상징성을 지니는지, 콜롬비아에서 벌어졌거나 작가의 어떤 경험에서 나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뒷 내용이 궁금해 책장을 덮기 어려웠으니 재미있는 소설임은 분명하다. 소설이 힘든 내게 의미 있고 재미까지 있는 책을 권해준 지인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2권을 펼쳐야겠다.

저자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1927년 콜롬비아의 아라까따까에서 태어나 콜롬비아 대학에서 법률 공부를 하다가 정치적 혼란 속에서 대학을 중퇴하고, 기자 생활을 한다. 1954년 특파원으로 파견된 로마에서 본국의 정치적 부패와 혼란을 비판하는 칼럼을 쓴 계기로 파리, 뉴욕, 바르셀로나, 멕시코 등지로 떠돌며 유배 아닌 유배 생활을 했다. 그 사이 여러 책을 발표했고 1982년 ‘백 년의 고독’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 라틴아메리카 대륙이 겪어야 했던 역사의 ‘리얼리티’와 원시 토착 신화의 마술 같은 ‘상상력’을 결합하여 새로운 소설 미학을 일구어낸 작가에게 세계의 문인들은 ‘마술적 리얼리즘의 창시자’라는 헌사를 바쳤다. ‘백 년의 고독’은 시한부 선고를 받은 소설이란 장르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으며, 문학이 21세기에 다시 소생하는 것을 예비하는 작품이다. (책날개 참고)




“친구, 한 가지만 얘기해 주게, 자넨 왜 전쟁을 하고 있는가?”
“왜라니, 친구. 위대한 자유당을 위해서지” 헤리넬도 마르께스 대령이 대답했다.
“그걸 알다니 자넨 행복한 사람이군. 난 말이야, 자존심 때문에 싸우고 있다는 걸 이제야 겨우 깨닫게 되었네” 그가 말했다.
“그것 참 안됐군” 헤리넬도 마르께스 대령이 말했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친구의 놀란 표정이 재미있었다. “그래. 하지만 어찌 됐든, 왜 싸우는지도 모르는 것보다야 더 낫지”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 말했다. 그는 친구를 쳐다보다가 미소를 머금으며 덧붙였다.
“또 말이야, 자네처럼 그 누구에게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그 무엇을 위해 싸우는 것보단 더 낫지” (205)

Posted by 따듯한 꽃.개




[완독 80 / 고전, 문학] 안나 카레니나3. 레프 톨스토이. 연진희 옮김. 민음사(2009)

약 한 달 이라는 기간 동안 이 책을 읽었다. 성인이 된 후 읽은 가장 긴 소설.

고전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읽고 싶다는 생각으로 함께한 사람과 호흡을 놓치기 않기 위한 노력으로 시작했지만, 흡입력있는 내용 전개 덕분에 어느 순간 몰입하여 며칠 밤 잠을 설쳐가면서 생각한 기간보다 빠르게 완독하였다. 수많은 등장인물과 길고 긴 이름, 몇가지의 별명 등 집중을 방해하는 요소들 덕분에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끝까지 놓치지 않았던 이유는 ‘레빈’의 생각과 삶의 전개가 궁금해서이다.

3권의 6,7,8부는 안나와 레빈의 심경변화에 집중되어 있다. 귀족이지만(아닐지도 모른다) 농부의 삶을 존중하고 솔직하고 현명하려고 노력하며 끊임없는 자기분석과 비판을 통해 삶의 무게를 조금 덜어낸 레빈과 아름다운 사람이지만 여성으로서 감정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해 스스로 비극적 결말을 가져온 안나. 전혀 다른 두 삶이 오버랩된다. 레빈이 가장 멋진 인간상으로 나타나있는 8부까지 다 읽고나니 이 소설의 제목이 왜 ‘안나’인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1권, 2권, 3권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성장하는 레빈을 보면서 닮고 싶다고 생각했다. 몇해 전 노자를 읽으며 노자같은 사람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얼마나 멋질까 상상하고 이야기나누곤 했는데, 레빈이 실존인물이라면? 그렇게 모범적이고 바른 사람이 이 사회에 존재할 수있을까.

더 다양한 생각들이 머리를 맴돌고있지만 이쯤에서 마무리하려 한다. 언젠가 시간이 된다면 한 번 쯤 더 읽고 싶다. 최근 읽었던 고전 ‘남아있는 나날’도 생각난다. 소설 속 인물들로 내 생각과 삶을 통찰할 수 있다는 게 고전의 매력일까? 다음 고전은 어떤 매력을 내게 선사할지 기대된다.




손님들을 배웅한 후, 안나는 자리에 앉지 않고 방 안을 이리저리 서성이기 시작했다. 저녁 내내 무의식적으로(최근 그녀가 모든 젊은 남자들에 대해 행동해 왔던 것처럼) 레빈의 마음속에 자신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고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긴 했지만, 자신이 성실한 유부남에 대하여 저녁나절에 할 수 있는 만큼은 그것을 성취했다는 것을 알긴 했지만, 그를 몹시 마음에 들어 하긴 했지만(남자들의 시각에서 보면 브론스키와 레빈 사이에 큰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그녀는 여자의 눈으로 그들에게서 공통점을 발견했다. 키티가 브론스키도 사랑하고 레빈도 사랑했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가 방에서 나가자마자 그녀는 그에 대해 더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323)

지금 이 순간 그는 알았다. 자신의 모든 의심뿐 아니라 자신이 내면에서 인식하고 있던 불가능성, 즉 이성을 통해서는 믿는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생각까지도 자신이 신에게 호소하는 것을 결코 방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 모든 것들은 이제 그의 영혼 속에서 먼지처럼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그 자신을, 자신의 영혼을, 자신의 사랑을 손아귀에 움켜쥐고 있는 듯한 그 존재에 호소하지 않는다면, 과연 누구에게 호소해야 한단 말인가? (334)

두 사람 중 어느 누구도 자신이 화난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상대방이 잘못한 것이라 생각하여 구실이 생길 때마다 상대방에게 그것을 입증해 보이려 애썼다. (397)

어머, 아이를 데리고 있는 거지 아낙이 있네. 저 여자는 자기가 동정받아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우리 모두는 단지 서로를 증오하고 자신과 남을 괴롭히기 위해 세상에 던져진 게 아닐까? (447)

그녀가 웃은 것은, 비록 자신이 아기가 아가피야 미하일로브나를 알아볼 리 없다고 말하긴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아기가 그녀를 알아볼 뿐 아니라 이미 모든 것을 인식하고 이해하며 아무도 모르는 많은 것들, 심지어 어머니인 자신조차 그 아이 덕분에 비로소 깨닫고 이해하기 시작한 것까지 이미 인식하고 이해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가피야 미하일로브나에게, 보모에게, 할아버지에게, 심지어 아버지에게조차, 미챠는 단지 물질적인 보살핌만을 요구하는 생물에 불과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 있어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녀와 정신적 관계의 완전한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정신적 존재였다. (492)

무엇보다 그를 놀라게 하고 실망시킨 점은, 그가 속한 사회의 많은 동년배들이 자기처럼 예전의 믿음을 자신이 가진 것과 똑같은 새로운 신념으로 바꾼 후에도 그 속에서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않은 채 완전한 만족과 평온 속에서 살고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중요한 문제 외에 다른 문제들까지 레빈을 괴롭히게 되었다. 저 사람들이 과연 진실한 걸까? 그들이 거짓 행세를 하는 건 아닐까? 아니면 그를 사로잡는 질문에 대해 과학이 제시하는 해답을 저들이 나보다 더 잘 이해하고 있거나 달리 이해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그는 그 사람들의 견해와 그 해답을 표명한 책들을 열심히 파고들었다. (499)

나는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를 생각할 때면, 레빈은 해답을 찾지 못해 절망에 빠지곤 했다. 하지만 그 문제에 대해 자문하기를 멈추는 순간에는 자신이 무엇인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알 것만 같았다. 왜냐하면 그는 확고하고 분명하게 행동하고 살아갔기 때문이다. 심지어 요즘 같은 때에도 그는 예전보다 훨씬 더 확고하고 분명하게 생활했다. (505)

그는 자기가 잘 처신하는 건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는 지금 그것을 굳이 입증하려 들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그것에 대해 말하거나 생각하는 것도 피하려 했다.
추론은 그를 의심으로 이끌었고 그로 하여금 무엇을 해야할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깨닫지 못하게 방해했다. 그러나 생각하지 않고 살아갈 때, 그는 자신의 정신 속에서 두 가지 가능한 행위 가운데 어느 것이 좋은지 어느 것이 나쁜지 판단하는 완전무결한 재판관의 존재를 계속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마땅히 해야 할 바를 하지 않으면 그 즉시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무엇인지, 자기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위해 사는지 인식할 가능성을 전혀 깨닫지도 보지도 못하면서, 그러한 무지 때문에 자살을 두려워할 정도로 괴로워하면서, 그와 동시에 인생에서 자신만의 고유하고 일정한 길을 굳건하게 개척해 가면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509)




불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그건 귀족들의 일이 아니에요. 우리 귀족들의 일이 이루어지는 곳은 이곳 선거장이 아니라 저기 각자의 사는 곳입니다. 또한 사람들에겐 저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계급적 본능이 있습니다. 난 때때로 농부들을 관찰하는데, 그들도 똑같습니다. 건실한 농부들은 할 수 있는 한 많은 땅을 빌립니다. 땅이 아무리 척박해도, 그들은 계속 갱기질을 합니다. 그들도 이득 없이 그렇게 합니다. 손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 말이죠. (226)



우리도 그와 똑같은 짓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나 역시 이성으로 자연력의 중요성과 인생의 의미를 찾는답시고 똑같은 짓을 했던 건 아닐까?
철학의 이론들은 인간에게 부자연스럽고 기이한 사유 방법을 통해 인간이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것, 그것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을 만큼 너무나 분명하게 알고 있는 것에 대한 깨달음으로 인간은 이끈다 하면서, 사실은 아이들과 똑같은 짓을 했던 게 아닐까? 각 철학자들의 이론 발전을 보면 그들이 농부 표도르 만큼이나 분명히, 아니 표도르보다 더 분명 할 것도 없이 이미 삶의 중요한 의미를 알고 있으면서, 그저 미심쩍은 사유 방식을 거쳐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것으로 되돌아 가려는 것이 분명하게 보이지 않느냐 말이야? (523)

우리는 그저 파괴만 할 뿐이야. 왜냐하면 우리는 정신적인 포만감에 젖어 있으니까. 아이들과 똑같아.
내가 그 농부와 공통으로 가진 그 즐거운 깨달음은, 내기 유일하게 영혼의 평안을 주는 그 깨달음은 어디에서 온 걸까? 나는 그것을 어디에서 얻었던 걸까? (524)

심판은 나의 것, 너는 오직 살지어다. (583)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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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71 / 고전, 문학] 안나 카레니나1. 레프 톨스토이. 베스트트랜스 옮김. 더클래식(2013)

고전문학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도전한 이 책, 3권이라는 두께의 압박과 어려운 등장인물의 러시아 이름 덕분에 첫장을 넘기기가 쉽지 않았지만 일단 한 장 넘기고 보니 상상했던 것만큼 두렵거나 무겁지 않았다.

등장인물들의 배경 소개, 사건 전개 등이 나타난 1권에서 가장 흡입력 있게 느낀 부분은 경마 경주였다. 경주자인 브론스키와 관람자 관점에서 지켜보는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와 안나의 시선은 같은 공간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경주를 대하는 모습이 너무 달랐다. 그래서 주인공의 성격과 상황의 차이를 더욱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브론스키가 말과 경주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둘 사이의 호흡이 얼마나 중요한지 긴장감 넘치게 몰입해서 단숨에 읽어낸 반면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와 안나가 사교계에서 무언가를 위해 관계 맺는 방법들은 역겹게 느껴졌다. 세상과 타협하지 못하는 나도 보였고.

이래서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를 이야기하는 건가, 술술 읽었는데 머릿 속에 머무는 장면들이 제법 남았다. 간만에 연애감정이 드러나는 소설책을 읽다 보니 어젯밤 꿈에 첫사랑 그 아이가 나왔다. 벌써 수년 전에 결혼했는데 잘 살고 있으려나.

아무튼 키티와 레빈의 앞으로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여자들은 못생기고 평범한 남자를 좋아하기도 한다고들 하지만 그는 그런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입장을 바꾸어 봐도 자신이라면 키티 같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여자를 선택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46)

‘나를 공적으로 용서하지 마시고 자비로 용서하소서.’ 내 유일한 위안이기도 하지. 그녀가 나를 용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고 말이야. (75)

사람은 자신의 재산에는 불만족하지만 자신의 지능에는 불만을 가지지 않는다. (250)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올해만큼 업무에 치인 적이 없다고 생각했고, 자주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올해에 일거리를 사서 만들었다는 것,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시간을 끌수록 더 큰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368)

‘저렇게 될 때 까지 무얼 했을까? 어째서 저런 꼴이 벌어지도록 놔두었을까? 왜 문제를 해겨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런 재앙을 현실에서 경험한 지금, 그의 마음속에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해결해야 할지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또한 굳이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해 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 이유는 그것이 너무나 두렵고 꺼려졌기 때문이었다. (369)


Posted by 따듯한 꽃.개



[완독 50 / 인문학] 강상중과 함께 읽는 나쓰메 소세키. 강상중. 김수희옮김. Ak커뮤니케이션즈. (2016)

문학이란 그 자체에서 해답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학은 독자들에게 수수께끼를 내는 것입니다. 어째서 이런 이야기를 쓰는지, 어떠한 의도가 있는지를 생각함으로써 다양하고 풍요로운 해석이 가능해집니다. (60)

올재클래식스를 닮은 이와나미문고. 아니, 이와나미문고처럼 올재클래식스를 만든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가볍고, 저렴하고, 유익한 책, 거품을 빼고 실속만 담은 이런 책이 좋다.

재일한국인 2세이자 1972년 한국을 처음 방문한 뒤 일본 이름 ‘나가노 데쓰오’를 버리고 ‘강상중’이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는 저자는 재일한국인 최초로 도쿄대 정교수가 되었다. 박학다식과 논리적 말솜씨를 갖춘 명사이지만 우리에게는 ‘고민하는 힘’(사계절)으로 더 유명하다. (한국일보 2017.12.16 기사)

일본의 대표 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 나쓰메 소세키의 대표작 3가지를 곱씹어 쉽게 풀어쓴 ‘강상중과 함께 읽는 나쓰메 소세키’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중고등학교 문학 참고서처럼 쉽고 친절한 설명으로 문학을 두려워하는 내가 읽기 버겁지 않고 재미있었다. 소설 속 이야기에 푹 빠져 다른 저자의 의도나 다른 생각은 할 수 없었는데 강상중이 콕 찍어준 설명으로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을 좀 더 친근하게 경험할 수 있었다.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중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하나밖에 읽지 않아 이 책 전부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문학에 대한 부담감을 놓을 수 있고 새로운 소설도 도전하고 싶은 의욕이 생겼으니 강상중과 이와나미문고 책의 도움을 받은 셈이다.

소설 읽기가 두려운 사람이라면,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을 이제 막 입문하여 좀 더 가까이에서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강상중의 나쓰메 소세키를 향한 시선을 느끼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그리고 덩달아 강상중에 대해 궁금해져 그의 책을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Posted by 따듯한 꽃.개



[완독 29/ 소설] 한 시간만 그 방에. 요나스 칼손. 윤미연 옮김. 푸른숲출판사.

소설이 어려운 내게 등장인물이 많이 나오는 소설은 시작부터 긴장하게 된다. 어릴 적엔 책읽기를 참 좋아했던 것 같은데 왜 소설을 두려워하게 되었을까 생각해보니 대학을 진학하기 위해, 그리고 진학하고 나서 ‘취업’을 해야한다는 부담감으로 책읽는 걸 사치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자기계발책이나, 전공서적만 읽느라 감을 잃었고, 전공공부하기 위해 읽은 전공 관련 책은 분석적으로 읽어야했기에 소설은 두려운 분야였다.

얼마 전 부터 책읽기에 부담과 무게를 줄이고자 다양한 장르의 책읽기를 도전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소설에 대한 무거움을 내려놓는 중이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읽게된 이 책, ‘한 시간만 그 방에’는 제목과 책 소개가 흥미로웠기에 이 책이라면 나도 도전해볼만 할 것 같다는 자신감과 용기가 생겼다. 그런 알 수 없는 긍정적 마음가짐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저자 요나스 칼손은 스웨덴 대표 배우이자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한 시간만 그 방에>는 그의 첫 번째 장편 소설로 영국, 미국,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중국 등 세계 12개국에 번역, 출간되었다. (책 소개 참고)
이 책은 완벽주의자처럼 보이지만 사회성이 조금 부족하고, 약간 야망도 있는 관공서에서 근무하는 비에른이 상사의 권유로 이직을 하면서 벌어진 이야기이다. 55분 일하기, 5분 휴식이라는 자신만의 업무 규칙으로 새로운 공간에 빠르게 적응하고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 노력하지만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애매한 관계로 지내던 주인공의 사회생활 이야기.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오묘한 기운이 가득한 회사에 다니는 등장인물들이 주인공 비에른을 경계하는 느낌만은 분명하다. 그 ‘공간덕분에’ 사람들과 좀처럼 어울리지 못하던 그가 그 ‘공간덕분에’ 어울릴 수 있게 된다. 그 ‘공간’은 과연 존재하는 곳인가? 주인공의 환상 속에서 존재하는 곳인가.



‘당신들은 절대로 여기 있는 나를 찾아내지 못할 거야’




책을 다 읽고 줄거리를 생각해보니 저자가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쓴 건지 결말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주인공의 행동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걸까? 허무하게 방어를 하는 주인공 비에른을 나는 이해할 수 없지만, 소설이니까 문학적 관점으로 이해하려 들자면 실존주의와 허무주의를 잘 드러내는 공간과 인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렇게 방어할 수밖에 없는 작은 한 사람과 그와 다를 바 없는 우리들. 소외된 주인공의 모습에서 나도 보이고 우리도 보인다.

한 번 더 읽으면 저자의 숨은 뜻을 알 수 있을까?




Posted by 따듯한 꽃.개



[완독 24/ 소설] 시월의 저택. 레이 브래드버리. 조호근 옮김. 폴라북스.

특이한 등장인물, 짧고 빠른 전개에서 느껴지는 긴장감과 속도감에 몰입하여 술술 읽어나갔지만, 많은 등장인물과 빠른 전개로 다음 장으로 넘어갈 때 새로운 장면과 앞뒤의 인과관계가 이해되지 않아 몇 번이나 다시 읽기를 반복했다.

굉장히 유명한 작가의 신작으로 알고 있는데 나의 ‘소설 공포증’ 덕분에 경직되어 리뷰와 작가 이력을 먼저 살펴보게 되었다. 평소의 나라면 책을 다 읽고 곱씹을 거리를 되새김질하면서 보는 것인데, 도대체 이해하기가 어려워 작가 이력을 먼저 살펴보게 되었다.

저자 레이 브래드버리(1920~2011)는 70여 년 간 약 300여 편의 단편 소설을 쓴 ‘단편의 제왕’이라고 불리는 미국 작가이다. 서정적 과학소설의 대가로 SF의 음유시인으로 40년대부터 활동을 시작했고, 1949년 전미 판타지 최우수 과학 소설 작가로 뽑히기도 했다. 화성과 목성 사이에는 그의 이름을 딴 ‘9766 브래드버리’라는 소행성도 존재할 만큼 SF 문학을 주류 문학으로 끌어올린 전설의 거장이다. (책 소개, 네이버 인명사전 참고)

빠르게 많이 쓴 저자의 이력에 비하면 ‘시월의 저택’은 1945년 처음 집필에 착수하여 2000년 작업을 끝낸 아주 오랜 시간이 담긴 소설이다. 어린 시절 고모와 삼촌, 조부모와 보낸 핼러윈의 경험을 책으로 남기겠다 생각하여 20대 초반부터 ‘기이하고 이상한, 흡혈귀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는 가족’이라는 착상으로 집필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출판사와의 관계 등 여러 문제로 출간될 수 없었고, 2000년에 드디어 세상에 선보이게 되었다. (작가의 말 참고)

저자의 이력과 책이 쓰여진 배경을 알고나니 책 내용 자체에 몰입하여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마음으로 느껴야 할 소설을 ‘분석적 읽기’로 읽으며 어렵게 느끼고 있었다. 경직된 긴장을 내려놓으니 너무나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글의 마술사처럼 술술 흘러감이 신기하여, 저자에 대한 호기심이 생길 정도였다.

좀 더 어릴 적, 좀 더 머릿속이 말랑말랑할 때 이런 부류의 책을 읽었더라면 책 읽기와 소설에 대한 흥미를 키울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지만 이제라도 재미있는 분야의 책을 알게 되어 다행이다. 쉽고 가볍게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레이 브래드버리의 책을 종종 읽고 싶다. 영어를 잘 안다면 번역본이 아닌 원서도 도전해보고 싶다.







“태어난 후로 나는 한 번도 죽지 않았다네. 위태롭기는 해도 죽지는 않았지. 온 세상 문의 경첩에 기름칠을 하더라도, 언제나 기름칠 되지 않은 문 하나, 경첩 하나만은 남아 있었으니까. 나는 그런 곳에서 하룻밤, 1년, 또는 한 사람의 일생 동안 잠들어 있곤 했지. 이런 식으로 나는 자신만의 언어를, 지식의 보고를 지닌 채 대륙을 건너 자네들과 함께 쉴 수 있게 된 거라네. 이 넓은 세상의 모든 열리고 닫히는 존재들의 대표로서 말이야. 내가 쉬는 장소에는 버터도, 윤활유도, 베이컨 껍데기 기름도 바르지 말게나.”
부드러운 웃음이 뒤를 이었고, 모두 그 웃음에 동참했다.
“우리가 할아버지를 어떻게 적어야 할까요?” 티모시가 물었다.
“바람도 공기도 필요로 하지 않은 이야기꾼의 종족이라고 적어라. 한낮에도 스스로의 힘으로 밤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이라고.”
“다시 말씀해주세요.”
“천국의 문에 들어가기 위해 도착한 죽은 이들에게, ‘살아 있는 동안 그대는 열정을 알았는가?’라고 질문을 던지는 작은 목소리라고 적어라. 만약 답이 ‘그렇다’라면 그는 천상에 들어갈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고 답하면 지옥에서 불타오르게 될 것이니.”
“여쭈어볼 때마다 답이 길어지는 것 같은데요.”
“그러면 ‘테베의 목소리’라고 적어라.”
티모시는 끄적이다 말고 물었다.
“‘테베’는 철자가 어떻게 되죠?” (171)





Posted by 따듯한 꽃.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