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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84/ 소설, 한국소설] 나의 아로니아 공화국. 김대현. 다산책방. (2018)





부조리가 가득한 대한민국을 비판하며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세워진 아로니아 공화국.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오가는 탓에 노무현이며 박정희며 중앙정보부며 들어봄 직한 역사적 인물과 함께 들어본 적 없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등장해 이게 사실인지, 작가가 만들어낸 세상 속 이야기인지 헷갈리며 소설의 흐름을 쫓아가면서 조금은 엉뚱하고 재미있는 작가의 상상력 덕에 재미있는 세상을 구경했다.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처럼 정교하게 만들어진 판타지 세상과 비교할 순 없지만 진짜인 듯 아닌 듯 딱 10년 후 미래의 모습을 그린 공화국에 사는 사람들은 행복할까?

언제나 살았고 어디서나 살았던 사람은 국가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산다. 세상의 사람은 영원하고, 사람이 만든 국가는 영원하지 않았다. 지나온 세상의 역사가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영원하지도 않을 국가를 영원하다고 믿는 것은 헛되고 터무니없는 아집이다. 사람과 사람이 즐겁고 행복하다면 추잡하고 초라하고 조잡스러우며 너절하고 파렴치하고 무능력한 국가가 왜 필요한가? (412)


돌이켜보면 다짐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순간의 감정에 사로잡혀서 죽는 날까지 무르거나 되돌릴 수 없는 맹세는 결코 하는 것이 아니다.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다고 무조건 해서는 결단코 안 된다. 멍청하게도 그날 나는 다짐과 맹세의 엄중한 의미를 정말로 몰랐다. (74)

Posted by 따듯한 꽃.개


[완독 83 / 인문학, 서양철학] 자기를 위한 인간. 에리히 프롬. 강주헌 옮김. 나무생각. (2018)

십 년 전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읽고 공감하고 사색하던 시절이 있었다. 실체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던 몽롱한 그 글귀들을 읽고 감동하고 친구들에게 권할 만큼 그 책의 기운이 좋았다. 그리고 올해 에리히 프롬의 신작을 반갑게 맞이했다.


우리 시대의 도덕적 문제는 자신에 대한 무관심이다. (357)


내가 나로서 존재하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는 ‘자기를 위한 인간’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의 후속작(본능과 신과 권위로부터 더욱 독립적이고 자발적으로 자유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이다. 심리학, 윤리학, 철학, 사회학 등 여러 학문이 골고루 섞여 있어 이 책의 장르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명쾌하게 대답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저 ‘인문학’책이라는 것.

학창시절 ‘윤리’ 과목은 수많은 학자의 이름과 비슷한 사상을 그저 외워야 했던 괴로운 과목이었다. 에리히 프롬에 대한 애정 덕분인지 ‘자기를 위한 인간’ 속 등장하는 스피노자, 스토아학파, 니체, 괴테 등 수많은 학자가 반가웠고 좋았다.

철학자들이 이야기하는 것들은 모두 그럴듯하지만 알쏭달쏭한 부분이 있다. 현실의 문제나 고민거리를 인간의 삶으로 해결하려는 방식과 논리적 생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식, 이 두 가지는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서 레빈과 그의 둘째 형의 갈등처럼 내 삶의 주된 관심사이기도 하다.

수학이나 과학처럼 객관적인 수치로 분석적으로 정리할 수 없으니 명확하게 ‘이것이다’라고 정의할 순 없지만, 그래서 더욱 다양한 함의를 지니고 있고 더욱 다양한 생각거리를 제공하는 철학책이자 윤리, 정신분석, 사회학을 담은 이 책이 좋았다.

나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인간이어서가 아니라 나의 존재와 가치를 돌이켜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보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Posted by 따듯한 꽃.개



[완독 82 / 인문학, 서양철학] 내 안에서 행복을 만드는 것들. 하노 벡, 알로이스 프린츠. 배명자 옮김. 다산초당. (2018)

경제학자가 논하는 행복이라니, 왠지 끌리지 않았지만 궁금했다. 경제와 행복을 연관 지어 ‘부자가 되는 법’ 따위를 이야기하진 않을까? 부와 행복의 연결고리를 찾으며 책장을 넘겼다.

한 분야에서 10년 이상 연구한 전문가에게서 풍기는 아우라가 느껴졌다. 경제학자로 살아오는 동안 경제학자의 눈으로 분석한 인간의 삶
행복한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자신의 전공이 아닌, 관심 있는 분야를 전공 분야를 연구하는 방식으로 파헤치는 방식이 흥미로웠다. 경제학자로서 경제 현상을 분석하듯 행복을 만드는 요소들을 객관적이고 다양한 사례를 다루며 분석하고 연관 지었다.

행복은 한 가지 방법과 정답이 있는 게 아니라는 다소 뻔한 결론으로 마무리 지었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는 방식이 재미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에우다이모니아 그러니까 삶의 만족감을 얻으려면 우리는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만의 특별함, 바로 이성을 완성해야 한다. 행복하려면 마티유 리카르처럼 정신을 훈련해야 한다. 우리는 밤낮으로 정신을 훈련하고 난 다음에야 오로지 바르게 살 때만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을 수 있다. (27)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은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이다. (60)

함께 식탁에 앉아 있을 시간을 내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식을 나누는 기쁨을 누려라. 식사는 사회적 활동이다. 그것을 즐겨라. (139)

행복에 도움이 되는 소비와 지출방법을 배워야 한다. 돈을 쓰는 것도 기술이다. 우리가 지출하는 모든 돈이, 우리가 간절히 소망하는 행복감을 주는 건 아니다. (153)

중년의 위기는 의미를 묻는 질문, 스트레스, 공허감,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새 옷, 새 배우자, 새 직장, 새 종교 무엇으로든 인생은 변하고 의미를 묻는 질문에 새로운 답을 찾는다. 중년의 위기는 확실히 존재한다. 인생의 중간쯤인 약 40세와 50세 사이에 행복감이 추락한다. 전 세계적으로 이런 추세는 거의 변함이 없고, 한 국가의 경제발달수준이나 문화와 무관하다. 예를 들어 미국 자료에서 38만 명 이상이 중년의 위기 증상을 보였다. 이때 분노, 슬픔, 스트레스, 근심 같은 감정도 포함하여 분석했다. (210)


삶에 초연해지는 6단계 (237)
1단계 : 숨을 크게 들이쉬어라. 조용히 앉아 차를 마셔라.
2단계 : 말은 말일뿐 현실이 아님을 늘 명심하자. 애석하게도 사람들은 실제 내용보다 이야기된 방식을 더 중시한다. 그러니 싸우지 말고 도발을 그냥 무시해버려라. 원하든 원치 않든, 어차피 새로운 현실에 적응해야 한다.
3단계 :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기둥의 힘을 믿자.
4단계 : 가치관 리셋하기.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무엇이 되고자 하는가? 초연해지는 길은 과도한 흥분이 아니라 냉정함에 있다.
5단계 : 자기 자리로 돌아가 자신에게 중요한 일을 하자.
6단계 : 다른 사람의 지지를 찾아라. 생각이 같은 사람들과 함께 있고 서로 지지해 주면 웬만한 불행은 다 이겨낼 수 있다.



Posted by 따듯한 꽃.개



[완독 81 / 어린이, 철학] 나를 키우는 생각, 생각을 키우는 동화. 희망철학연구소. 김우선 그림. 현암주니어. (2018)

희망철학연구소는 희망의 공부방 사업에 기반을 두고 소외 계층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해 일해 온 희망네트워크에서 활동하던 철학 선생님들이 철학을 통한 사회 변화와 발전을 도모하고자 만든 연구소이다. ‘쓸모없어도 괜찮아’, ‘삐뚤빼뚤 질문해도 괜찮아’ 등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책 소개 참고)

‘나를 키우는 생각, 생각을 키우는 동화는 희망철학연구소 선생님들이 마음을 채우고 생각을 키울 수 있는 16가지의 이야기를 엮은 책이다.

2018 서울국제도서전 현암사 부스에서 받아온 현암사 도서목록 책자를 보다가 알게 된 책. ‘희망철학연구소’라는 곳에 대한 궁금증과 서울국제도서전 현암사 부스에 전시되어 있던 어린이 책, 성인 책, 그림책 모두 흥미로워 현암사에 대한 믿음으로 책장을 넘겼다.

이미 신체적 성장을 넘어서서, 어느 부분은 노화가 진행되고 있는 다 큰 성인이지만 가끔 어린이 책을 들춰보는 이유는 어린이 책을 읽을 때 느껴지는 순수함이 좋아서이다. 베베 꼬여있지 않은 글 표면과 얕은 내면에 베여 있는 순수함과 깨끗함을 읽으면 내 마음도 맑아지는 것 같다.

책의 두께나 구성을 보면 초등학교 중학년이 읽는 책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16편의 동화는 2~3장 정도로 이야기가 짧고 어려운 함축을 담고 있지 않아 저학년도 쉽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다. 각 이야기 끝머리에는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몇 가지 질문이 담겨있어 지은이들이 어떤 의도로 이러한 동화를 만들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어른으로서 어린이 책을 읽었기에 책에 실린 모든 동화를 100% 공감할 순 없었지만 몇몇 이야기는 예쁜 그림과 함께 더 어린아이들이 읽는 그림책으로 나와도 좋을 만큼 짜임새를 가지고 있었다.

영상 같은 빠른 전개에 익숙한 요즘 어린이들에게 글과 그림을 함께 읽으며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거리를 내어주는 이런 동화가 많아지길, 한 번 읽고 잊혀지는 그런 그림 동화책 말고 여러 번 읽고 곱씹는 여운이 남는 동화가 많이 탄생하기를.

Posted by 따듯한 꽃.개




[완독 80 / 고전, 문학] 안나 카레니나3. 레프 톨스토이. 연진희 옮김. 민음사(2009)

약 한 달 이라는 기간 동안 이 책을 읽었다. 성인이 된 후 읽은 가장 긴 소설.

고전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읽고 싶다는 생각으로 함께한 사람과 호흡을 놓치기 않기 위한 노력으로 시작했지만, 흡입력있는 내용 전개 덕분에 어느 순간 몰입하여 며칠 밤 잠을 설쳐가면서 생각한 기간보다 빠르게 완독하였다. 수많은 등장인물과 길고 긴 이름, 몇가지의 별명 등 집중을 방해하는 요소들 덕분에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끝까지 놓치지 않았던 이유는 ‘레빈’의 생각과 삶의 전개가 궁금해서이다.

3권의 6,7,8부는 안나와 레빈의 심경변화에 집중되어 있다. 귀족이지만(아닐지도 모른다) 농부의 삶을 존중하고 솔직하고 현명하려고 노력하며 끊임없는 자기분석과 비판을 통해 삶의 무게를 조금 덜어낸 레빈과 아름다운 사람이지만 여성으로서 감정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해 스스로 비극적 결말을 가져온 안나. 전혀 다른 두 삶이 오버랩된다. 레빈이 가장 멋진 인간상으로 나타나있는 8부까지 다 읽고나니 이 소설의 제목이 왜 ‘안나’인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1권, 2권, 3권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성장하는 레빈을 보면서 닮고 싶다고 생각했다. 몇해 전 노자를 읽으며 노자같은 사람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얼마나 멋질까 상상하고 이야기나누곤 했는데, 레빈이 실존인물이라면? 그렇게 모범적이고 바른 사람이 이 사회에 존재할 수있을까.

더 다양한 생각들이 머리를 맴돌고있지만 이쯤에서 마무리하려 한다. 언젠가 시간이 된다면 한 번 쯤 더 읽고 싶다. 최근 읽었던 고전 ‘남아있는 나날’도 생각난다. 소설 속 인물들로 내 생각과 삶을 통찰할 수 있다는 게 고전의 매력일까? 다음 고전은 어떤 매력을 내게 선사할지 기대된다.




손님들을 배웅한 후, 안나는 자리에 앉지 않고 방 안을 이리저리 서성이기 시작했다. 저녁 내내 무의식적으로(최근 그녀가 모든 젊은 남자들에 대해 행동해 왔던 것처럼) 레빈의 마음속에 자신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고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긴 했지만, 자신이 성실한 유부남에 대하여 저녁나절에 할 수 있는 만큼은 그것을 성취했다는 것을 알긴 했지만, 그를 몹시 마음에 들어 하긴 했지만(남자들의 시각에서 보면 브론스키와 레빈 사이에 큰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그녀는 여자의 눈으로 그들에게서 공통점을 발견했다. 키티가 브론스키도 사랑하고 레빈도 사랑했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가 방에서 나가자마자 그녀는 그에 대해 더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323)

지금 이 순간 그는 알았다. 자신의 모든 의심뿐 아니라 자신이 내면에서 인식하고 있던 불가능성, 즉 이성을 통해서는 믿는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생각까지도 자신이 신에게 호소하는 것을 결코 방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 모든 것들은 이제 그의 영혼 속에서 먼지처럼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그 자신을, 자신의 영혼을, 자신의 사랑을 손아귀에 움켜쥐고 있는 듯한 그 존재에 호소하지 않는다면, 과연 누구에게 호소해야 한단 말인가? (334)

두 사람 중 어느 누구도 자신이 화난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상대방이 잘못한 것이라 생각하여 구실이 생길 때마다 상대방에게 그것을 입증해 보이려 애썼다. (397)

어머, 아이를 데리고 있는 거지 아낙이 있네. 저 여자는 자기가 동정받아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우리 모두는 단지 서로를 증오하고 자신과 남을 괴롭히기 위해 세상에 던져진 게 아닐까? (447)

그녀가 웃은 것은, 비록 자신이 아기가 아가피야 미하일로브나를 알아볼 리 없다고 말하긴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아기가 그녀를 알아볼 뿐 아니라 이미 모든 것을 인식하고 이해하며 아무도 모르는 많은 것들, 심지어 어머니인 자신조차 그 아이 덕분에 비로소 깨닫고 이해하기 시작한 것까지 이미 인식하고 이해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가피야 미하일로브나에게, 보모에게, 할아버지에게, 심지어 아버지에게조차, 미챠는 단지 물질적인 보살핌만을 요구하는 생물에 불과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 있어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녀와 정신적 관계의 완전한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정신적 존재였다. (492)

무엇보다 그를 놀라게 하고 실망시킨 점은, 그가 속한 사회의 많은 동년배들이 자기처럼 예전의 믿음을 자신이 가진 것과 똑같은 새로운 신념으로 바꾼 후에도 그 속에서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않은 채 완전한 만족과 평온 속에서 살고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중요한 문제 외에 다른 문제들까지 레빈을 괴롭히게 되었다. 저 사람들이 과연 진실한 걸까? 그들이 거짓 행세를 하는 건 아닐까? 아니면 그를 사로잡는 질문에 대해 과학이 제시하는 해답을 저들이 나보다 더 잘 이해하고 있거나 달리 이해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그는 그 사람들의 견해와 그 해답을 표명한 책들을 열심히 파고들었다. (499)

나는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를 생각할 때면, 레빈은 해답을 찾지 못해 절망에 빠지곤 했다. 하지만 그 문제에 대해 자문하기를 멈추는 순간에는 자신이 무엇인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알 것만 같았다. 왜냐하면 그는 확고하고 분명하게 행동하고 살아갔기 때문이다. 심지어 요즘 같은 때에도 그는 예전보다 훨씬 더 확고하고 분명하게 생활했다. (505)

그는 자기가 잘 처신하는 건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는 지금 그것을 굳이 입증하려 들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그것에 대해 말하거나 생각하는 것도 피하려 했다.
추론은 그를 의심으로 이끌었고 그로 하여금 무엇을 해야할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깨닫지 못하게 방해했다. 그러나 생각하지 않고 살아갈 때, 그는 자신의 정신 속에서 두 가지 가능한 행위 가운데 어느 것이 좋은지 어느 것이 나쁜지 판단하는 완전무결한 재판관의 존재를 계속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마땅히 해야 할 바를 하지 않으면 그 즉시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무엇인지, 자기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위해 사는지 인식할 가능성을 전혀 깨닫지도 보지도 못하면서, 그러한 무지 때문에 자살을 두려워할 정도로 괴로워하면서, 그와 동시에 인생에서 자신만의 고유하고 일정한 길을 굳건하게 개척해 가면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509)




불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그건 귀족들의 일이 아니에요. 우리 귀족들의 일이 이루어지는 곳은 이곳 선거장이 아니라 저기 각자의 사는 곳입니다. 또한 사람들에겐 저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계급적 본능이 있습니다. 난 때때로 농부들을 관찰하는데, 그들도 똑같습니다. 건실한 농부들은 할 수 있는 한 많은 땅을 빌립니다. 땅이 아무리 척박해도, 그들은 계속 갱기질을 합니다. 그들도 이득 없이 그렇게 합니다. 손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 말이죠. (226)



우리도 그와 똑같은 짓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나 역시 이성으로 자연력의 중요성과 인생의 의미를 찾는답시고 똑같은 짓을 했던 건 아닐까?
철학의 이론들은 인간에게 부자연스럽고 기이한 사유 방법을 통해 인간이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것, 그것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을 만큼 너무나 분명하게 알고 있는 것에 대한 깨달음으로 인간은 이끈다 하면서, 사실은 아이들과 똑같은 짓을 했던 게 아닐까? 각 철학자들의 이론 발전을 보면 그들이 농부 표도르 만큼이나 분명히, 아니 표도르보다 더 분명 할 것도 없이 이미 삶의 중요한 의미를 알고 있으면서, 그저 미심쩍은 사유 방식을 거쳐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것으로 되돌아 가려는 것이 분명하게 보이지 않느냐 말이야? (523)

우리는 그저 파괴만 할 뿐이야. 왜냐하면 우리는 정신적인 포만감에 젖어 있으니까. 아이들과 똑같아.
내가 그 농부와 공통으로 가진 그 즐거운 깨달음은, 내기 유일하게 영혼의 평안을 주는 그 깨달음은 어디에서 온 걸까? 나는 그것을 어디에서 얻었던 걸까? (524)

심판은 나의 것, 너는 오직 살지어다. (583)

Posted by 따듯한 꽃.개



[완독 66 / 인문, 심리] 엄마와 딸 사이. 곽소현. 소울메이트출판사. (2018)



‘착한 딸이 되려고 애쓰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수용하라.’ (7)

뻔한 심리서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너무 가벼운 심리학 서적은 공감이 어렵다. 대중을 의식하여 깊이가 없는 건지 읽을수록 짜증과 스트레스를 가져와 웬만하면 심리 서적을 읽지 않는 편이다.

엄마와 딸의 관계를 다룬 ‘엄마와 딸 사이’는 심리치료 전문가로 20여 년간 일해온 곽소현 박사의 새 책이다. 엄마 없는 사람 없고, 엄마와 갈등 없는 자식(!)은 없을 것이다. 부모와의 마찰을 책으로 풀고 싶은 남성은 많지 않을 듯하니 ‘거의 모든’ 20~30 여성을 위한 책이다. 가족학 박사인 저자가 어떤 방식으로 책을 풀어가는지 궁금했다.

사람의 감정이란 것은 순서가 정해지지 않는다. 따라서 목차 같은 거로 분류할 수 없다. 이 책 전체를 공감했다기보다는 부분적으로 내 이야기 같은 것도 있고 아닌 부분도 있었다.

엄마를 아빠로 바꿔도 적용된다.

‘엄마와 딸 사이’ 모녀 관계 갈등의 실마리를 풀어내는 이 책은 엄마를 아빠로 바꾸어도 적용된다. 책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엄마라는 글귀에 아빠를 넣어 읽었다. 속상하고 화나고 슬펐던 모든 인간관계가 부모와의 관계를 해결하지 못해 벌어진 문제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당하지 못한 나 자신을 자책하며 공허함을 느끼는 요즘 부모와의 관계를 잘 풀어내지 못한 흔적이 아닐까. 이 책 한 번 읽는다고 수십 년 동안 켜켜이 쌓여있는 애증의 관계가 해결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를 한 번 토닥이면서 마음의 짐을 조금 내려놓았다.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오랜만에 많은 부분을 메모하며 읽었다.



Posted by 따듯한 꽃.개



[완독 63 / 에세이] 이토록 멋진 문장이라면. 장석주 쓰고 엮음. 추수밭출판사. (2015)

장석주 님의 3번째 책.
짧고 간단한 글모음 집에 대한 리뷰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다른 바쁜 일에 쫓겨 잊고 있었다. 지금 읽고 있는 책 몇 권(휴식, 게으름의 즐거움)은 이 책에서 그 존재를 알고, 마음에 들어 다시 찾아 읽게 된 거니, 내게 긍정의 영향을 끼친 책이기도 하기에 한두 달 지난 지금에서야 리뷰를 쓴다.

평소 머리를 ‘아주’ 많이 굴리는 ‘정신과 감정 노동자’로서 단순하게 손으로만 읽는 이런 책을 편안하게 읽곤 하지만 가끔은 이 책처럼 마음을 울리는 책도 좋다.


장석주 님이 고른 ‘필사하기 좋은 멋진 문장’을 읽으며 장석주라는 사람이 보였다. 편안하고 따뜻한 감성이 느껴진다.

나에 대한 부정으로 가득 찼던 이십 대 시절, 후끈한 감성을 가진 이들을 철이 없다고 여겼다. 합리적이고 냉철한 사람들을 동경했다. 나의 존재를 인정하고 살아야 함을 알아가는 요즘, 나의 세상이 다시 보인다. 한없이 부정하던 그들의 감성과 생활을 인정하게 되었고, 철이 없던 작은 내가 보인다.

이성과 감정의 어느 중간쯤에 머물러있는 나는 둘 중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지만, 둘 다 어느 정도 포용할 수 있는 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서 지금 이런 마음으로 읽는 시인 장석주가 좋고, 그의 글이 좋고, 그가 추천한 책이 좋다.

이렇게 조금씩 나를 알아가면서 늙어가는 게 인생이려나.
그렇다면 이런 내 인생을 사랑해야겠다.
이런 내 모습을 인정해야겠다.


샛길로 새버렸지만, ‘이토록 멋진 문장이라면’은 가볍게, 따뜻하게, 편안하게 읽기에 좋았다.

Posted by 따듯한 꽃.개

[완독 60 / 자기계발, 기획] 기획자의 습관. 최장순. 홍익출판사. (2018)

모든 방법론은 하나의 도구일 뿐, 더욱 중요한 것은 ‘일상의 의미를 파헤치고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려는 노력’이다. 그러한 일상의 노력을 통해 우리 머릿속에 다양한 생각의 흔적이 새겨지고, 이는 탄탄한 기획력의 원천이 된다. (15)



‘기획자의 습관’의 저자 최장순은 기호학, 언어학, 철학을 전공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다. 기획자로서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습관 중 생활습관, 공부습관, 생각습관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기호학과 언어학, 철학을 공부한 저자는 단어나 행동이 지닌 의미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글자 하나라도 허투루 사용하지 않고 본질이나 숨은 속뜻까지도 고려하여 사용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읽기 좋았다. 현란한 미사여구나 화려한 경험이 나열되지 않아 차분한 감정으로 읽을 수 있었고, 적재적소에 필요한 단어만 사용하여 말끔하고 깔끔하게 읽을 수 있었다.

‘어떻게 하면 되지?’라는 생각이 곧 기획이다. 기획은 ‘어떻게 하면’이라는 ‘방법’의 차원과 ‘되지?’라는 ‘효과’의 차원을 동시에 담고 있다. (28)

책에 따르면 출근 전 오늘 입을 옷을 고르는 것도, 버스나 지하철 어떤 경로로 출근할 것인지 생각하는 것도, 인스타그램에 사진과 글을 올리기 위해 생각하는 것도 기획이다. 생활하는 동안 ‘어떻게’와 ‘왜’를 염두에 두며 생각하고 선택하여 기획자처럼 의미 있는 선택을 하자고 제시한다.

나 자신의 욕구에 따라 결정하는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방식으로 삶을 살아왔는데 이러한 ‘기획자의 습관’은 자신의 생활 습관을 다른 방식으로 들여다보고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하다.

글은 그 글을 쓴 사람을 드러낸다. 솔직한 사람인지, 미사여구 같은 꾸밈이 많은 사람인지, 무엇에 숨겨진 의미를 드러내길 좋아하는 사람인지, 과시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인지.
자기계발서의 특성상 저자의 경험과 생각을 책 제목 아래 한 권에 담아내야 하니까 더욱 글쓴이의 성격이나 생각 등이 잘 보인다. ‘기획자’라는 직업과 저자 최장순이라는 사람의 매력을 물씬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정리를 잘 하려면, 정보를 생산하는 순간부터 정리를 염두에 두고 정보를 저장해야 한다. (116)




골든 서클 : 사이먼 사이넥 : ‘왜’는 목적이다. 원인이자 신념이다. (240)

Posted by 따듯한 꽃.개



[완독 59 / 사회과학, 교육학] 발도르프학교의 형태그리기 수업. 한스 루돌프 니더호이저 & 마가렛 프로리히. 도서출판 푸른씨앗. (2015)

학부 시절 교양으로 듣던 교육학 어쩌구 수업시간에 들어본 적이 있던 슈타이너의 발도르프 교육. 너무나 이상적이어서 과연 우리의 학교 교과교육에 접목시킬 수 있을까 생각하다 흘려 보냈던 기억이 난다. 작년 겨울 유유출판사에서 출간한 ‘발도르프 공부법 강의(2017)’를 읽으며 부모와 교사가 꼭 알아야 할 교육법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실체를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우연한 기회에 읽게 된 이 책은 발도르프 공부법 중 미술 교과, 그중에서도 ‘형태 그리기 수업’ 대해서 실물을 찾아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 책은 도서출판 푸른 씨앗의 번역팀에서 번역한 두 번째 책으로 교사에게 제안하는 ‘형태 그리기 수업’ 방법을 제시한다. 우리나라에도 발도르프 학교가 있는데 올해로 개교 15년째에 접어드는 청계 자유 발도르프 학교가 있다. 형태 그리기는 발도르프 교육의 독특한 과목이다. 발도르프 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은 첫 수업에서 앞으로 12년 동안 배울 모든 내용의 집약으로 직선과 곡선을 배운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형태 그리기는 모든 과목과 연결되는 아주 중요한 교육 수단이다. (8)

이 책의 내용을 우리나라 정규 교육과정에 전부 적용시키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겠지만 책에서 제시하는 형태 그리기의 요소들을 잘 이해하고 적용한다면 수학과 과학, 도덕과 같은 교과목 학습, 사회성 협동성의 발달을 가르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담임교사가 형태 그리기에 내재한 다양한 요소들을 잘 이해한다면 다른 과목을 가르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담임교사의 가장 큰 힘의 원천은, 다음의 세 가지 질문을 항상 되새기면서, 그것이 의미하는 바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데 있다. 나는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나는 그것을 어떻게 하려고 하는가? 왜 그것을 하려고 하는가? 이러한 내적 태도를 가진다면 교사는 자신에게 맡겨진 아이들을 잘 이끌어 줄 수 있을 것이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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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58 / 에세이]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박완서. 현대문학. (2010)

박완서님의 첫책.


작년 이맘때에는 작가의 위트가 느껴지는 글을 좋아했다. 임경선이나 사노 요코 처럼 톡톡 튀는 글이 좋았고, 그 말투와 성격을 닮고 싶었다. 에세이보다는 인문학책을 즐겨 읽는 요즘은 논리정연한 문체의 글이 좋아 잡다한 신변잡기식 상식 말고 진짜 전문가나 기자의 논리적이고 똑 떨어지는 설명글을 즐겨 읽는다. 이 책이나 저 책이나 쓴 사람도 다르고 목적도 다르다. 나의 책 취향은 변해가고 있고 앞으로도 변할 예정이지만 그런데도 변치 않는 것은 잘 쓰인 글이 좋다는 것이다.

소설이든 에세이든 전문서적이든 잘 쓰여진 글은 읽기가 좋고, 모든 글에는 쓴 사람의 흔적이 담겨있다.

수업 교재로 내가 좋아할 책이라고 추천받아 읽게 된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는 저자 박완서가 생활하고 책을 읽으면서, 옛사람을 추억하면서 썼던 산문을 엮은 책이다. 작가의 향기가 잘 묻어나오는 형식의 이 산문집은 에세이가 재미없는 요즘의 내가 읽기에 제법 흥미롭진 않았지만, 작가가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하나의 소단원을 어떤 흐름으로 어떻게 풀어가는지 느낄 수 있었던 것만으로 작가와 교감할 수 있어 좋았다.

저자 박완서는 1931년 경기도 개풍에서 태어나 숙명여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하였으나 한국전쟁으로 학업을 중단하였다. (책날개 참고) 우리나라 근현대사 중 가장 힘겨웠던 한국전쟁을 살아내면서 가질 수밖에 없던 생각과 감정, 여성으로서의 인생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산문집이었다. 올곧은 사람의 글을 읽고, 나도 그와 닮을 수 있다면 백번이라도 다시 읽고 싶다.

좋은 글 읽기는 쉽지만 좋은 글쓰기는 어렵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좋은 글이 많이 읽을 수 있어 행복하다.



어떤 극한상황에서도 우리를 덜 절망스럽게 하고 희망과 꿈을 갖게 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믿음이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다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 그러나 자신을 믿고, 다른 누군가에게까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아무런 생각 없이 무작정 따라야 한다거나, 확신 없는 믿음은 오히려 믿지 않느니만 못하다. 나를 믿는다는 것은 살아온 날에 대한 만족과 후회 없음 위에 쌓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좋은 책을 읽으며 나에 대한 신뢰를 쌓는 법을 배우고 있다. 작가가 책 한 권을 쓰기 위해 쏟아부은 에너지 중 일부를 핥아 먹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 깊이를 조금이라도 닮아가고 싶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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