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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2019-23 / 사회과학, 노동] 그림자 노동. 이반 일리치. 박홍규 옮김. 미토. (2015)

만일 당신이 통근 시간대를 피하여 통근할 수 있다면 당신은 이미 성공한 것이다. 만일 당신이 자택에서 아기를 낳을 수 있다면 당신은 필경 엘리트 학교에서 공부한 것과 같다. 당신이 병들었을 때 의사에게 가지 않고 스스로 낫는다면 당신은 타인이 모르는 특별한 지식에 정통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신선한 공기를 호흡할 수 있다면 당신은 부유하고 행복한 것이다. 만일 당신이 당신의 오두막을 지을 수가 있다면 당신은 결코 가난한 것이 아니다. (23)

요즘은 사회과학 분야 그중에서도 노동에 관한 책을 즐겨 읽는다. 그림자 노동 같은 걸 하는 게 지금 나의 직업이기 때문인가 보다. 오늘은 퇴근 무렵 아주 불쾌한 경험을 했다. 고객이라는 이름으로 영업 전략 떠봄과 몰아 붙임을 당했다. 내게 무언가 물어봐 놓고 대답을 듣지도 않고 대답을 가로막은 후 다음 질문을 해댔다. 어쩌라는 건지.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다가 갔다. 이런 게 그림자 노동인가? 내게 요구되지 않았지만, 서비스직종으로서 견뎌야 하는 감정 소비+낭비의 시간. 요즘 직업적으로 느끼는 허무함을 극복하고자 사회비판이나 노동 관련 분야의 책을 즐기나 보다. 세상사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만 이렇게 힘든 게 아니라는 위로를 받고 싶어서.

그런 의미에서 이반 일리치의 그림자 노동은 꼭 한번 읽고 싶었지만 어려웠다. 이 책을 처음 펼친 지 수개월이 지났고, 드디어 어젯밤 꾸역꾸역 다 읽었다. 사회비판이나 노동 경제를 논하기엔 나의 앎의 깊이가 충분하진 않지만, 나라는 사람은 정체되어 고여있지 않음을 추구하는 사람이니까. 덮어버리고 다음 책을 보면 그만이지만, 지금 내 상황의 가장 큰 불만을 해결하고 싶다는 욕구로 읽어냈다. 장하다.

책장을 덮었지만,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한물간 사상가 이반 일리치의 사상을 요즘 누가 즐기는지 모르겠지만, 나라는 사람 자체가 유행의 흐름대로 세상사를 대하는 사람이 아니니 그런 건 문제 되지 않았고,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어떤 것들이 이반 일리치의 책 속 문장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사람의 의견이 궁금했고 지금의 나를 깨우치려면 철학 같은 뜬구름 이야기 말고 이런 글도 필요할 것 같았다.

이 책은 총 5장으로 구성되어있다. 1장에는 이반 일리치가 바라보는 세상의 불합리한 구조를 나타낸다. 2, 3, 4장은 세계사 속에 등장하는 ‘보통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다른 의미를 담아 행했던 행동들이 사실은 그림자 노동을 품고 있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지막 5장은 이반 일리치가 생각하는 요즘의 그림자 노동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글을 읽는다는 것이 가진 사회적 의미, 모어와 토박이 언어의 차이, 언어를 학습함으로써 가정에서 당연히 누려야 할 부모와 아이 사이의 교류가 학습자와 교수자 사이의 관계로 변질되었다는 점, 상류의 언어를 알고 있는 것이 계급을 쟁취할 수 있다는 점, 민중에 ‘의한’ 연구인지 민중을 ‘위한’ 연구인지 그 의미가 어떻게 섞여버리게 된 건지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성의 임무가 그림자 노동으로 취급받게 된 필연적 요소들. 살면서 평상시 생각해본 적이 없는 이런 내용을 접할 때마다 나의 무지가 부끄럽고, 더 많이 알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의 방향성과도 맞닿아 있는 이 사람의 글을 살면서 계속 알아가고 싶다.


위그의 과학과 우리의 과학이 어떻게 다른지 제대로 알려면, 우리는 딘디무스처럼 위그의 용어에 충실하게 과학을 필로소피아로 말하긴 하되 다음과 같은 것으로 보아야 한다. 딘디무스가 말하기를, 과학이란 “잘 알려진 것을 소중히 아끼는 사랑의 태도라기보다는, 이미 맛보았고 그래서 만족을 얻었던 것을 더 얻으려는 욕망에 이끌린 사려 깊은 진리 추구”라는 것이다. (...) 이것은 오늘날 ‘민중에 의한 과학’ 말고는 마땅한 이름이 없다. (153)

이성으로는 비관하되 의지로 낙관하라. -안토니오 그람시. (...) 일리치를 읽는 것은 나 자신과 이 사회를 재발견하고 우리 자신에 대한 희망을 다시 세우는 일이 될 것이다. (240)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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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2019-13 / 사회과학. 노동]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이반 일리치. 허택 옮김. 느린걸음출판사. (2014)

인간을 무력하게 만드는 이 신종 가난을,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 간에 벌어진 소비 격차와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날이 갈수록 인간의 기본적 필요가 상품이 되어가는 세계에서 점점 더 벌어지는 이 소비 격차는 전통적 가난이 산업사회의 방식으로 드러나는 모습이며, 기존의 계급투쟁이라는 개념으로 이 격차를 적절히 노출시키거나 줄일 수 있다. (9)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세상과 접촉하지 못한 채 지내고, 누군지 모르는 사람을 위해 일을 하고, 자신이 느끼는 것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 채 살아간다. (12)

현대화된 가난이 인간에게 끼치는 직접적이며 구체적인 결과이며, 그것을 견뎌내는 인간의 인내이며, 이 새로운 비참함에서 벗어날 가능성이다. (15)

인류 역사에서 그 시대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가늠하는 가장 정확한 척도는 먹는 음식 중 사서 먹는 음식이 차지하는 비중이다. (32)

학교라는 곳에 가본 적 없는 멕시코 오악사카주 인디언이 지금은 졸업장을 ‘따기’ 위해 학교에 끌려간다. 이들에게 졸업장이란 자신들이 도시인보다 얼마나 열등한지를 정확하게 측정해주는 증서이다. 그나마 이 종이 한 장이라도 없으면 도시에 나가 빌딩 청소부 일도 할 수 없다. 정말로 중요한 문제는 이런 것이다. ‘필요’가 현대화될 때마다 가난에는 새로운 차별이 하나씩 더 붙는다. (35)

이반 일리치에 대한 관심으로 연달아 몇 권을 빌려왔다. 그중 가장 빠르게 완독한 책. 얇지만 깊이가 있어 쉽고 빠르게 읽지 못하는 이반 일리치의 책은 나의 지적 허영심을 충족시켜주기에 참 좋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까지 나름대로 고급(?) 교육을 받은 지성인(!)이라고 불릴 수 있는 학력을 소유하고 있지만, 몇십년 전 유럽 저편에서 살던 이반 일리치 같은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한 문장 한 문장 읽다 보면 나는 그동안 무얼 배우고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 있었나 반성하게 된다. 곰곰이 곱씹으며 나는 과연 가치 있고 쓸모있는 일을 하면서 살고 있는지 나의 직업에 대하여 돌아보게 된다. 하지만 생계에는 의미보다는 책임감이 우선일 테니 일단은 먹고사는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차근히 일하는 게 우선이겠지.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마음의 눈을 키운 후 또 한 번 읽고 싶은 이반 일리치의 책. 오랫동안 곁에 두고 즐겨 읽고 싶다. 오랜만에 호감 가는 사람이 생겼다. 죽은 사람이지만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아야겠다.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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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38 / 경제경영] 다시, 장인이다. 장원섭. 영인미디어.

석사 졸업 후 더는 내 머릿속만 채우는 배움에 머물지 않고 내가 가진 지식이나 정보를 노동으로 사회에 환원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일을 시작했다. 그런 마음으로 직업을 구하니 직업의 귀천이나 월급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그때 내가 원하던 건 나누는 삶이었다. ‘다시, 장인이다’의 저자 장원섭처럼 ‘선한 영향력’, 바로 그게 내가 하고 싶던 직업, 노동, 삶이다.

연대 교육학과 교수이며 지적 장인으로서 일을 통한 배움과 성장에 관하여 연구하고 있는 저자 장원섭의 신간 ‘다시, 장인이다’는 2015년 ‘장인의 탄생’의 2편이라고 볼 수 있다. 배움과 성장과 나눔을 연구 중인 저자의 관심사가 진화하는 과정을 엿볼 수 있었다.

최근 나의 읽기 목록 중 1/2 정도를 차지하는 분야는 교육이다. 언어와 교육에 관계된 책을 출판하는 유유출판사의 책을 즐겨 읽었고, 교사교육자인 사이토 다카시의 책을 몇 권 읽었다. 그 외에도 교육과 관련된 책이거나 교육관계자가 쓴 책을 즐겨 읽었다. 배움과 성장을 꿈꾸는 내게 어쩔 수 없이 끌림으로 다가온 이 책은 100% 만족 그 자체였다.

대기업 속 부품처럼 돈 버는 기계로 일하며 살아가는 오늘날 사람들에게 ‘장인 정신을 가지고 일해야 한다.’라는 이 책은 나이든 부장님의 잔소리처럼 케케묵은 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부자가 되기를 꿈꾸기보다 왜 장인처럼 일해야 하는지, 그런 방식이 자신에게 어떤 도움을 주는지, 결국 한 사람 한 사람이 장인이 되어 일한다면 어떤 변화가 찾아올지 생각해보면 저자의 주장이 전부 맞는 말처럼 느껴진다.

인간의 본성을 선하게 여겨 성선설을 주장한 맹자가 있듯 성악설을 주장한 순자가 있다. 맹자의 관점에서 보면 장원섭의 논리는 그럴듯하다. 순자의 관점에서 보면 과연 모든 사람이 장인을 바라며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해 의심하게 된다. 나는 장인처럼 일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할 것 같진 않다. 이렇게 생각하는 나도 성악설을 전제로 두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이야 어떻든 나는 옳다고 여기는 나의 방식대로 살아가야겠지만. 아무튼.

노동은 하찮은 것, 직업은 먹고 살기 위해 해야 하는 것, 장인은 특별한 사람, 삶은 이런 거라고 생각했던 나의 짧은 생각을 반성하며 저자가 곱씹어주는 장인 예찬론을 읽고 있으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노동과 직업, 장인과 삶이 연장 선상에 놓여있다면 그 삶은 얼마나 행복할까. 마법사의 마법에 홀리듯 저자 장원섭의 글에 홀려 장인이 되고 싶어졌다. 그놈의 돈 때문에 먹고사는데 팍팍해서 지쳐있던 내게 장인처럼, 능동적인 노동을 하며 내 삶을 이끌어가야겠다고 다짐한다.



직업명은 소유의 이름이라서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이기면 가질 수 있는 반면, 일의 의미는 존재의 방식이기 때문에 오랜 기간 거기에 자기 자신을 투입하지 않으면 얻어질 수 없다. (47)

남이 아니라 자신의 리듬에 따라 일할 때 비로소 기계가 하지 못하는 인간만의 고유하고 독특한 생산과 서비스가 만들어 질 수 있게 된다. 한 마디로, 김밥 한 줄을 말더라도 정성을 다하여 스스로 의미를 찾고 다른 사람에게도 인정받는 일이 필요하다. (73)

많은 사람, 특히 생계를 위해 시간과 공간을 때우는 방식으로 노동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일에 대해 철두철미하지 못할 수밖에 없다. (78)

성공은 ‘끝까지 해내는 것’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89)

‘생각하는 손’과 ‘수고하는 머리’는 필연적이다. (108)

장인이 자신의 리듬을 따라 일한다는 것은 기계나 고객의 리듬에 휘둘리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117)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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