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읽고 또 읽기/사회 과학

[북 리뷰] 사람, 장소, 환대, 김현경. 문학과 지성사. (2015)

꽃.개 2021. 10. 3. 22:09

[2021-30 / 사회과학] 사람, 장소, 환대, 김현경. 문학과 지성사. (2015)

‘내가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해온 것들이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 나의 무지, 무인지가 타인을 평가하거나 판단하면서 서로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같은 깨달음과 생각의 전환을 경험할 수 있는 책이다. 몇 년 전 이반 일리치의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사월의 책, 2018)’를 읽으며 받았던 충격의 결과 비슷하다. 그리고 내 이해력으로는 좀처럼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사회과학’분류의 책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피로 사회(문학과 지성사, 2012), 혐오 사회(다산초당, 2017)가 있다.)

수년 전 독서모임의 선정도서였지만, 첫 몇 장을 읽다가 포기했던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 다시 책장을 넘겼다. 이전만큼 버겁진 않지만, 쉽지도 않다.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문장 구조나 어려운 단어가 사용된 건 아닌데도 읽기가 어려웠던 건 주제의 무게 덕분일 것이다. 이런 것들을 한 번도 문제 삼아 본 적이 없다는 나의 무지의 크기도 한몫했다. 하지만 이런 무게를 받아들일 수 있는 지금 이 시기에  다시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어떤 보이지 않는 공동체―도덕적 공동체―안에서 성원권을 갖는다는 뜻이다. 즉 사람임은 일종의 자격이며, 타인의 인정을 필요로 한다. 이것이 사람과 인간의 다른 점이다. 이 두 단어는 종종 혼용되지만, 그 외연과 내포가 결코 같지 않다. 인간이라는 것은 자연적 사실의 문제이지, 사회적 인정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개체가 인간이라면, 그 개체는 우리와의 관계 바깥에서도 인간일 것이다. 즉 우리가 그것을 보기 전에도, 이름을 부르기 전에도 그 고유한 특성에 의해 이미 인간일 것이다. 반면에 어떤 개체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사회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어야 하며, 그에게 자리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31)

저자 김현경은 서울대에서 인류학을 공부하고 프랑스로 건너가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역사와 문명’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으로 돌아와 인류학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글을 쓰고 있다. (책 날개 참고)

이 책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저자의 방식으로 정리하고 인용하여 설명을 덧붙이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동안 미처 의식하지 못한 차별의 순간을 나열하고 있다. 1년에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만 있다면 충분하다는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도 떠올랐다. 지금은 당연한 것들이 시대에 따라 절대 불가능했고, 누군가의 노력에 의한 결과물이라는 점도. 태아, 사형수, 노예, 수용소 등 갇힌 공간의 재소자, 장애인 등 신분이나 인종, 성별 외에 다양한 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절대적 환대라는 것이 실제로 가능한 걸까?’ 이상적인 개념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 스스로 가치를 판단할 수 없고, 저자의 안내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는 무게를 지닌 책을 그저 읽어낸 것만으로 위안이 되었다.

우리는 환대에 의해 사회 안에 들어가며 사람이 된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리/장소를 갖는다는 것이다. 환대는 자리를 주는 행위이다. (26)

‘순수와 위험’에서 더글러스는 더러움을 자리에 대한 관념과 연결시켰다. 더럽다는 것은 제자리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신발은 그 자체로는 더럽지않지만 식탁 위에 두기에는 더럽다. 음식이 그 자체로 더러운 건 아니지만, 밥그릇을 침실에 두거나 음식을 옷에 흘리면 더럽다. 마찬가지로 목욕 도구를 옷장에 두거나 옷을 의자에 걸어두는 것, 집 밖에서 쓰는 물건을 실내에 두는 것, 위층의 물건을 아래층에 두는 것, 겉옷이 있어야 할 자리에 속옷이 나와 있는 것 등은 더럽다.”(73)

사람의 수행은 사람을 연기한다는 의미와 사람을 존재하게 한다는 의미를 둘 다 갖는다. 사람이 수행적이라는 것은 사람다움이 우리 안에 있지 않다는 뜻이다. 사람다움은 우리가 원래 가지고 태어났거나(그래서 잃지 않으려고 애써야 하거나) 사회화를 통해 획득해야 하는 본질이 아니다. 그보다 사람다움은 우리에게 있다고 여겨지며, 우리 스스로 가지고 있는 체하는 어떤 것, 서로가 서로의 연극을 믿어줌으로써 비로소 존재하게 되는 어떤 것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본질을 갖지 않은 현상이다. (83-84)

지금 아이들은 사회에 나갔을 때 꼭 필요한 두 가지 기술ㅡ경멸하는 법과 경멸에 대처하는 법ㅡ을 익히는 중이다. (167)

환대란 타자에게 자리를 주는 행위, 혹은 사회 안에 있는 그의 자리를 인정하는 행위이다. 자리를 준다/인정한다는 것은 그 자리에 딸린 권리들을 준다/인정한다는 뜻이다. (…) 환대받음에 의해 우리는 사회의 구성원이 되고, 권리들에 대한 권리를 갖게 된다. (…) 누군가를 환대한다는 것은 그를 이 공간 안으로 들어오게 한다는 것, 그를 향한 적대를 거두어들이고 그에게 접근을 허락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207)

자기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뿐이다. (214)

환대란 타자를 도덕적 공동체로 초대하는 행위이다. 환대에 의하여 타자는 비로소 도덕적인 것 안으로 들어오며, 도덕적인 언어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된다. 사회를 만드는 것은 규범이나 제도가 아니라 바로 환대이다. (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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