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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고 또 읽기/문학2020. 3. 30. 23:59

[2020-13] 삼국지 첩보전 2.안개에 잠긴 형주. 허무 지음. 홍민경 옮김. 살림출판사. (2020)

삼국지 첩보전은 총 4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삼국지를 기반으로 한 역사 추리소설이다. 그중 2권 ‘안개에 잠긴 형주’는 형주성에서 벌어졌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삼국지 첩보전’ 속 비밀 조직인 위나라의 진주조, 촉나라의 군의사, 오나라의 해번영을 중심으로 주인공 가일과 주변 인물인 우청, 손몽, 부진 그리고 가장 비밀스러운 인물 한선은 삼국지에서는 볼 수 없는 인물들이다. (아마 그럴 것이다) 가공된 인물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와 진짜 삼국지의 이야기, 유비의 명을 받들어 형주를 지키던 관우가 여몽에게 죽음을 당하기까지의 이야기가 절묘하게 섞여 있어 삼국지 원작에 대한 이해가 적은 내가 읽어내기에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가 거짓, 아니 허구인지 알 수 없었다. 그만큼 실감 나는 상황 묘사와 흡입력 덕분에 숨을 죽이고 다음 장을 넘길 수 있었다.

위, 촉, 오나라의 경계의 중심지이던 ‘형주’는 2020년을 사는 우리에게는 코로나19의 발원지로 더욱 유명한 우한 지역의 옛 지명이기도 하다. 중국 역사에서 의미가 있는 지역이 코로나로 오명을 쓰게 되었으니 아쉽고 안타까울 뿐이다.

일개 역사 추리소설 속 등장인물도 서로를 속고 속이고 눈치싸움(?)이 빈번하게 만들어내고 있는데, 코로나19 이후로 보여지는 혼란스러운 국내 정치 상황에 빗대어 볼 때 단순히 눈에 보이는 상황만으로 전체를 판단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국지 첩보전을 읽으면서 책 속 등장인물처럼 명석하지 못한 보통 사람에 불과한 내가 알 수 없는 새로운 세상이 존재할 것만 같다. 해리포터와 나니아 연대기 같은 판타지 소설을 읽은 기분이 든다.

하나라도 놓치면 흐름을 잃게 되는 많은 이야기와 4권이라는 부담감 덕분에 빠르게 읽을 수는 없었지만 다음 장이 궁금하고 다음 권이 궁금한 시리즈물이었다. 삼국지를 좋아하고 추리소설을 좋아한다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세상의 만물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습니다. 무엇도 영원한 것은 없지요. 예전에 누구의 것이었든, 그런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세상도 변하고, 그의 것이 더 이상 그의 것이 아니게 됩니다. 장군은 왜 집착을 내려놓지 못하십니까? 장군이 그것을 내려놓는 순간 몸과 마음이 편안해질 겁니다. (118)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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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고 또 읽기/인문2020. 3. 29. 21:57

[2020-12/인문학, 글쓰기] 소설을 살다. 이승우. 마음산책. (2019)

왜 나는 내 고향이 떳떳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내가 떳떳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떳떳하지 않았을까. 아, 나는 죄를 지었다. 존재의 기반을 폐하고자 하는 나의 낡고 오만한 자의식은 시간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시간이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고향과의 거리가 반대로 좁혀지는 것을 느낀다. 나는 조금씩 조금씩 나의 문학이 고향을 향해 나아가는 낌새를 챈다. 고향이 어찌 한낱 산천이겠는가? 고향은, 말하자면 위대한 서사의 공간이다. 나무 나무마다에 기억이 잠자고 있고, 길모퉁이마다에 이야기가 숨 쉬고 있다. 고향이 어찌 한낱 자연이겠는가? 고향은 기억의 근원인 것을, 존재의 밭인 것을. 문학이 그것을 어떻게 외면하겠는가. (29)

자유가 사랑으로 행해지고 사랑이 자유로 행해져서, 서로가 서로 속으로 깃들면서 행해질 수만 있다면야 사랑이고 자유고 굳이 나눠 따질 일이 없겠지만, 이 섬에서 일어난 일들로 해서는, 자유라는 것 속에 사랑이 깃들기는 어려웠어도 사랑으로 행하는 길에 자유는 함께 행해질 수가 있다는 조짐을 보였거든. -이청준, ‘당신들의 천국’, 문학과 지성사, 1976 (40)

모든 소설은 자전적이다. 그리고 모든 자전적인 소설들은 가면을 쓰고 있다. 물론 그 가면은 춤을 추기 위한 가면이다. 춤을 추기 위해서 가면을 쓴다. 가면을 벗으라는 요구는 따라서 부당하다. 춤을 끝낼 때가 아니고는 가면을 벗지 않는 법이다. 나는 내 소설의 마지막에 이렇게 써두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의 글쓰기는 감춰진 것의 드러내기이다. 그 드러내기는 그러나 감추기보다 더 교묘하다. 그것은 전략적인 드러냄이다. 말을 바꾸면 그는 감추기 위해서 드러낸다. - 이승우, ‘생의 이면’, 문이당, 1995 (84)

여러 가지 생각으로 머리가 산만하고 상상력이 동굴처럼 캄캄해질 때면 물을 보러 간다. 강변 둑을 걷거나 강이 잘 내려다보이는 커피 집에 앉아 통유리를 통해 물을 바라보곤 한다. 물은 그냥 바라보기만 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만지거나 그 안으로 들어가면 금방 형체를 무너뜨려버린다. 그것은 물이 간섭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곳은 구상의 공간이 아니다. 자연은 생각 자체를 지워 없앰으로써 자연 안에 들어온 자를 강복한다. 강물 속에 문학을 담그고 나는 내 문학에게 세례를 베푼다. 물속에 잠김으로써 옛 문학은 죽고 새 문학이 태어나리라.....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세례의 일회성을 믿지 못하는 엉터리 사제다. 세계는 거듭거듭 끝없건만 문학은 낡은 채로 그냥 있다. (95)

저자 이승우는 1959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서울신학대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에서 공부했다. 1981년 ‘에리직톤의 초상’으로 <한국문학> 신인상에 당선되어 작가로서 등단했다. 여러 소설, 산문집을 내었다.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 현대문학상, 동서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다수의 작품이 독일어, 프랑스어, 일본어 등으로 번역되었다. 결혼했고 남양주에 산 적이 있으며 현재는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책날개 참고)

‘맛의 기억’이라는 제목의 단행본, 2019서울국제도서전의 기념품 같은 책 속의 짧은 글에 반해 연초부터 몇 권을 연달아 읽고 있다. 처절하게 사랑할 줄 아는 젊은이인 줄 알았는데 부모님뻘 아저씨였다. ‘소설을 살다’는 소설가로 살아온 작가의 일상과 소설에 관한 생각을 담은 산문집인데 이 또한 소설 같다. 단편이거나 연작처럼 느껴진다. 3월 초에 읽었는데 리뷰를 빨리 쓰고 싶지가 않았다. 이 책을 빨리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다.

멋쟁이 소설가 이승우님의 새 책을 또 읽고 싶다. 나 같은 보통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이런 글을 쓸 수 없겠지. 전부를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이 책을 읽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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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고 또 읽기/문학2020. 3. 29. 20:10

[2020-11] 삼국지 첩보전 1.정군산 암투. 허무 지음. 홍민경 옮김. 살림출판사. (2020)

초등학생 시절 5권짜리 만화책 삼국지를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다. 유비와 관우, 장비, 제갈공명, 조조 등 위, 촉, 오나라의 삼국통일 이야기에 빠져 몇 번이고 다시 읽던 기억이 난다. 성인이 될 때까지 삼국지를 또 읽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는데, 몇 년 전 경영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조조를 담은 책, ‘조조에게 배우는 경영의 기술(시그마 북스, 2016)’을 보면서 기억이 전부 옳은 건 아니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내 기억 속 조조는 나쁜 놈이었는데 다른 시점으로 바라보니 다른 이야기가 보였다.

‘삼국지 첩보전’은 총 4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저자 허무는 중국의 미스터리 작가로 주목받았고, 오랫동안 ‘삼국지연의’를 고증하여 이 소설을 만들어냈다. ‘삼국지연의’가 양지의 이야기라면 ‘삼국지 첩보전’은 음지의 이야기이다. 1권은 정군산 전투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정군산 전투’는 219년 유비가 한중을 차지하기 위해 하후연이 지키던 정군산을 공격한 전투이며, 촉이 승리하고 유비가 촉의 첫 황제가 된 결정적 역할을 한 전투이다. 위, 촉, 오 삼국에는 자국의 비밀병기처럼 운영하는 진주조(위), 군의사(촉), 해번영(오)이 있다. 이 첩보 기관 사이의 은밀한 정보 전쟁이 정군산 전투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베일 속 첩자로 등장하는 ‘한선’이라는 인물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신이 살펴보니 ‘춘추’에서 전대에 이미 일어난 일들을 돌아보고 하늘과 인간 세상의 관계를 깊이 있게 분석한 결과가 꽤나 놀라웠습니다. 한 나라가 도에 어긋나는 일을 하려 하면 하늘이 먼저 재해를 내려 그것을 경고하고, 그럼에도 반성하는 빛을 보이지 않으면 기괴한 일을 내려 모두를 두려움에 떨게 합니다. 그럼에도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재앙과 멸망이 닥치게 될 것입니다. (52)


코로나19 바이러스 전쟁(!) 시국에 ‘정군산 암투’ 책을 읽으려니 이상하게 감정 이입이 잘 되면서 200년대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음모가 가득한 세상, 잔인한 전투 묘사가 썩 유쾌하진 않았다. 그때는 시민의 인권 보장 같은 것도 없고, 정보공유도 어려웠겠지. 국가의 지도자나, 장군, 귀족 급이 아니어도 소소한 누림을 누릴 수 있는 2020년에 살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 이런 소설 따위에 감정 이입해서 현재에 감사하는 작고 작은 내가 보였다.


모든 인간사는 하늘의 뜻에 달려 있으니 사람으로서 할 일을 다 했다면 그저 겸손하게 그 뜻을 기다려야 한다. (59)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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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경제경영, 마케팅] 작은 회사의 마케팅은 달라야 한다. 이연수. 문인선. 미니멈 출판사. (2020)


계획 변경을 실패로 여기지 않아야 한다.

2020년 봄, 코로나19로 인한 위기 상황은 너무 막막하다. 누군가 일부러 만들어낸 것도 아니고, 뚜렷한 해결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겪고 있는 이 어려움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어느 하나 쉬운 게 없다. 이 와중에 좋은 생각을 하려고 시선을 돌리다 만난 ‘작은 회사의 마케팅은 달라야 한다.’는 힘겨운 이 시기에 만난 선물처럼 느껴졌다.

이 책은 이연수 문인선 두 명의 공동 저자가 쓴 책이다. 이연수는 언론인 출신의 홍보마케터이자 문화기획자 및 국제행사 전문가이고, 문인선은 공익재단 온라인 마케터 및 사회공헌 전문가이다. (책 소개 참고)

‘뛰어난 기술만 있으면 성공한다.’, ‘올바른 마음가짐으로 운영하면 된다.’ 같은 말은 요즘 세상에서는 결코 조언이 될 수 없다. 이마트나 대기업 편의점 등으로 이미 동네 슈퍼가 사라진 지 오래다. 대기업, 다양한 프랜차이즈들이 넘치는 세상에서 소상공인, 작은 회사의 순진하고 절실한 마음가짐 따위로 원하는 것을 지켜낼 수는 없다.

저비용으로 최대 홍보 효과를 만드는 방법, ‘스토리텔링’이 중요성, ‘SNS’를 효과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 등 홍보 마케팅에 대한 다양한 정보가 넘쳐나지만, 정작 무엇을 언제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무엇이 필요한지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특히 소상공인, 스타트업, 1인 기업가, 프리랜서, 비영리재단 등 홍보를 전담하는 인원이 없는 곳에서는 홍보란 더욱더 어렵고 버거운 분야이다. 이 책은 작은 회사가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홍보마케팅의 a부터 z까지를 담고 있다. 너무 많은 정보가 담겨있어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무엇을 당장 실천하기는 어렵겠지만, 홍보마케팅에 관심이 있고, 시도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활용 가능한 정도의 깊이와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의 강점은 저자가 한국인이자 실무자라는 점이다. 유명하고 훌륭한 번역서는 번역자의 섬세한 통찰 없이 공감하기 어렵다. 특히 예를 든 부분이 우리나라 상황과 맞지 않아 이해하기 어려웠던 경험이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은 ‘인천대교’ 홍보마케팅을 담당했던 실무자로서 익히고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엮은 책이어서 막연하거나 이론적인 부분만 다루지 않고, 현실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개인적으로 7장, ‘위기 때 더 빛을 발하는 홍보’ 부분이 의미 있게 느껴졌다. 홍보마케팅은 ‘내가 가진 무기를 효과적으로 돋보이게 만드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지 ‘위기관리’까지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코로나19 같은 위기 상황을 준비해온 회사나 사람도 드물겠지만, 시련은 언제든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매뉴얼을 만들고 관리해야 한다는 새로운 가르침을 얻은 것이 참 좋았다.

작은 회사를 운영하거나 전문가의 도움 없이 무언가를 홍보해야 한다면 곁에 두고 오랫동안 살펴봐도 좋을 책이다.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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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고 또 읽기/문학2020. 3. 18. 15:00

[2020-09/소설, 독일문학] 개가 인간과 통하는데 꼭 필요한 대화 사전. 오셀로. 이형진 그림. 선우미정 옮김. 율리 체 받아 적음. 들녘. (2008)

 

2020년 초, 율리 체의 '새해'를 읽고 작가의 전작을 살펴보고 싶다는 호기심으로 도전한 책인데 저자명에 '오셀로'라고 쓰여있다. 율리 체와 오셀로는 어떤 관계지?

 

이 글을 쓴 오셀로는 여류작가의 개다. 작가를 주인으로 둔 덕에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관찰할 수 있었다. 그는 마침내 견공들이 인간의 언어를 정확히 이해하면 할수록 오해의 소지가 줄어들며, 견공과 호모사피엔스의 공생도 훨씬 수월해지고 행복해질 거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오셀로는 '개가 인간과 통하는 데 꼭 필요한 대화 사전'을 통해 견공의 시각에서 본 인간의 세계를 유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율리 체 받아 적음.

 

 

이 책은 소설가 율리 체의 독특한 발상과 시선이 담긴 '반려견 생활 탐구 백과사전'이다. '오셀로'라는 개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사를 ㄱ부터 ㅎ까지 사전의 형식으로 설명한다. 그림작가 이형진의 자유로운 그림체와 찰떡궁합을 이루고 있다.

저자는 오셀로의 마음속에 들어가 본 적이 있는 듯 개의 시선으로 본 인간 세상을 위트 있게 표현한다. 한국에서만 살아본, 한국인의 정서로 읽다 보니 공감할 수 없는 유럽? 독일식 유머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이건 그저 허구일 뿐. 부담 갖지 않고 그저 소설처럼 느끼는 대로 읽으면 된다.

반려견과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보시라. 율리 체라는 작가에게 매력을 느낄 것이다. 난해한 편집 덕분에 가독성이 좋지 않지만 이 차도 저자 오셀로의 의도일 수 있으니 받아들이자.



Posted by 따듯한 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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